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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익, 음악으로 본성을 일깨우다

‘수긍할 수 있는 모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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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날로 활동하던 조동익과 이병우가 투 탑의 감수성을 합쳐 선율 중심의 완결된 ‘노래’를 만든 후, 둘은 각각 연주 중심의 ‘음악’을 구상하기 위해 각자의 둥지를 튼다. 홀로 선 이병우의 재량은 이후 발표한 다섯 장의 정규 앨범과 몇몇 영화 음악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 그리고 조동익은 1994년 발표한 대망의 솔로 앨범으로 1980년대의 ‘어떤 날’은 ‘지난 날’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1980년대 후반을 장식한 ‘어떤날’의 멤버 이병우와 조동익은 솔로 활동을 통해서도 뚜렷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조동익은 1994년에 발표한 이 앨범을 통해 앨범명 그대로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이들의 마음에 다가갔습니다. 듀오로 활동할 당시 보여준 순수한 음악적 감각을 그대로 살려 개인적인 감성에서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 낸 것이죠. <동경(憧憬)>을 통해 그가 들려주는 추억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조동익 <동경(憧憬)> (1994)

1980년대 끝자락에 피어 난, 꽃만큼 혹은 꽃보다 아름다운 두 뮤지션을 우리는 기억한다. ‘들국화’라는 이름의 야생화가 있었고 ‘어떤날’이라는 이름의 향초가 있었다. 발아한지 20년에 접어드는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두 꽃은 시들지 않았고 은은한 향기 또한 여전하다. 들국화와 어떤날, 두 뮤지션이 당대에 남긴 1, 2집은 각각 밴드 음악의 교본이자 싱어 송 라이터들의 필청 음반으로 독보적인 위상을 점하며, 감상자들에게는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도 꾸준히 나가는 스테디 셀러로 자리하고 있다.

어떤날로 활동하던 조동익과 이병우가 투 탑의 감수성을 합쳐 선율 중심의 완결된 ‘노래’를 만든 후, 둘은 각각 연주 중심의 ‘음악’을 구상하기 위해 각자의 둥지를 튼다. 홀로 선 이병우의 재량은 이후 발표한 다섯 장의 정규 앨범과 몇몇 영화 음악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 그리고 조동익은 1994년 발표한 대망의 솔로 앨범으로 1980년대의 ‘어떤 날’은 ‘지난 날’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앨범의 제목은 <동경(憧憬)>(1994)이다. 동경이란 무엇인가? ‘그리울 동’에 ‘깨달을 경’자(字)를 쓴, 새삼스럽지만 ‘그리움을 깨닫다’라는 뜻이다. 한 뮤지션의 그리운 어린 날을 기록하고 있는 이 앨범은, 한 뮤지션의 ‘어떤 그리움’은 개인적인 감상을 넘어 보편적인 추억을 환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조동익이 담아 낸 과거의 순수는 역설적으로, 그리고 대중적으로 우리의 그리움을 대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긍할 수 있는 모호함’.

조셉 콘레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1899)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살다 보면 우리에게 전혀 짬이 없다고 여겨지는 순간에도 이따금 과거가 회고되듯이 그렇게 과거가 우리에게 생각나는 순간들이 있는 법일세.” 맞다. 그런 순간 있다. 그리고 본능적인 잠깐의 과거 지향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 전부가 아니다. 조동익의 <동경(憧憬)>은 사랑을 배우기 이전의 풋풋한 유년 시절, 내면에 켜켜이 쌓여 있을 아득한 순수의 나날로 우리를 인도한다.

추억을 꺼내는 화법은 직설적이다. ‘엄마와 성당에’와 동산과 우물, 밭, 그리고 ‘정릉’이라는 결정적인 지명과 ‘1970년’이라는 연도가 등장하는 「노란 대문(정릉 배밭골 '70)」이 그렇다. 구체적인 장소와 명확한 시대적 배경이 가사를 지배한다. 하지만 이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받침하는 음악은 노래를 부르는 조동익의 미성과 함께 보편적인 감수성을 자극한다. 추억의 내용은 다르되 「노란 대문」의 가사대로 ‘생각만 해도 내 입가에 웃음 짓게 하는’ 공통적인 감정이 있는 것이다.


수필 같은 음악은 다분히 감상적이다. 어쿠스틱한 현(기타)과 건반이 주도하는 가운데 잔잔한 리듬이 깔리는 가장 일반적인 전개를 보이지만 탁월한 변별력으로 사색에 몰입할 수 있는 볼륨이 낮은 음악, 낮고 느리고 긴 흐름의 음악으로 가득 차 있다. 「경윤이를 위한 노래」 「동쪽으로」 「물고기들의 춤」 등 시적이고 손으로 적어나간 편지 같은 제목을 달고 있는 연주 음악들은, 사람은 원래 태어날 적부터 착하다는 맹자의 성선설에 수줍게 맞장구를 친다.

“부끄러움 없었던 내 어린 시절 / 그대는 잊었나요 그 맑은 웃음을 / 그 푸르른 꿈이 있던 내 어린 시절 / 그대도 읽었나요 그 더운 가슴을 / 함께 떠날까요? 모든 게 싫어질 땐 바람이 시작되는 곳 / 멀리 떠날까요? 무언가 그리울 땐 먼 옛날 꿈이 있는 곳…” (「함께 떠날까요?」 중에서)
마지막은 유목이다. 함께 떠나자고 권유하고(「함께 떠날까요?」), 나홀로 여행을 제안한다(「혼자만의 여행」). 소극적 감상이 능동적인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순간이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건 달변이 아니라 은은한 속삭임이었음을 깨닫게 하는 감동적인 기록을, 조동익은 1994년의 또 다른 데뷔작 <동경(憧憬)>에 적어두었다. 손 글씨를 첨부해 앨범의 속지를 아기자기하게 직접 꾸민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런 조동익은 휘하에 걸출한 후배들을 거느리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을 꽃 피우던, 하지만 지금은 불안하게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동아기획과 하나뮤직의 반짝이는 보석들이 선배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초기의) 김현철과 장필순으로 대표되는 이 믿음직한 뮤지션들은 고(故) 유재하의 피를 섞어 한 계보를 형성, 이른바 ‘조동익 사단’이라는 서정적인 집단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후예들이다.

조동익의 <동경(憧憬)>은, 어지럽고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 선 우리가 습관적으로 잊고 사는 ‘본성’을 일깨우는 앨범이다. 그리고 내면적 감수성의 보편화를 지향하는 싱어 송 라이터들에게 귀감이 된 명반이다. 한편으로는 이 시대의 기성세대들에게 트랜드가 된 ‘7080’의 코드보다 품격이 높은, 클래시컬한 안식을 제공한다.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절정기, 시리도록 아름다운 1980년대 낭만의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핸드 메이드’로 쓴 그리운 편지다.

글/ 이민희(shamc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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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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