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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깊은 내면을 만나는 자전거 인문기행

자전거 두 바퀴로 달리는 오천 년 역사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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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자전거에 미친 사람은 아니다. 여행이라는 움직임의 수단으로 제격이기 때문에 자전거를 선택했을 뿐이다. 물론 걸어서 할 수도 있다. 걷기야말로 공간에서 발신하는 신호들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행위일 뿐 아니라 움직임의 기동성에서 최고다. 전후좌우 마음대로 회전할 수 있으며 진퇴 역시 자유롭다. 이것은 어떤 동력수단도 아직 따라갈 수 없는 경지다. 다만 느리다.


더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동안 일어서려다 주저앉은 게 벌써 몇 번째다. 이제는 움직일 때다. 마치 먹이 주위를 맴돌다가 느릿느릿, 그러다 쏜살같이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사자처럼.

나도 모르는 일이다. 아내의 질문처럼 왜 하필이면 자전거를 타고가야 하는지. 남들처럼 차 타고 다니면 안 되는 건지. 왜 중국인지. 그 이전에 직장을 왜 관둬야 하는지. 지금부터 차근차근 따져보자.


인류는 앉아서 다른 사람한테 일을 시키면서(노예사회), 기계에 일을 시키면서(산업사회) 그리고 돈에 일을 시키면서(자본사회) 걷거나 달리거나 날아다니는 동물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앉아서 일을 시킨다는 것은 머리로 일을 한다는 뜻이다. 수백만 년 동안 걷거나 달리는데 최적화돼 있는 인간의 유전자에 없던 일이다. 앉아 있는 것은, 머리만 돌리는 것은 그래서 필연적으로 몸과 머리의 불균형을 낳는다.

물론 인간이 앉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헬스클럽이나 수영장을 다니고 주말에는 등산과 마라톤을 하면서 심신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육된 움직임이다. 바람에 묻어나는 냄새를 느끼면서, 바스락거리는 풀잎에 스치면서 지평선을 넘어가는 것과는 다른 움직임이다. 그것은 움직임의 모사이지, 움직임이 아니다. 움직임은 공간에 대한 오감을 가동하는 행위이며 공간에 대한 지각을 넓히는 일이다. 그런 움직임을 통해 인류는 먹을 수 있는 사과를 찾아냈고 파푸아뉴기니까지 이동했다. 움직임은 발견과 같은 뜻이기도 하다. A라는 지점에서 본 풍경과 B라는 지점에서 본 풍경은 같을 수 없다. 그래서 A에서 B로 이동하는 것은 발견하는 행위다.

줄여 말한다면 러닝머신에서 달리기를 복제하기보다는 그냥 벌판을 달리고 싶은 것이다. 박차고 일어나 가보지 못한 세계로 뛰어들고 싶다. 그게 오랜 주입식 교육과 좌식 노동을 통해 순치돼버린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이자 DNA의 명령에 따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규격화되지 않는 삶의 추구야말로 좀더 본성적이지 않을까.


중국 여행은 오래전부터 생각한 일이다. 대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 동양사학과를 선택할 때 중국을 염두에 뒀다. 그러나 그때는 대학생에게 해외여행이 허용되지 않았다. 허용됐어도 돈이 없어서 가지는 못했겠지만. 중국은 그때부터 뭔가 옆구리를 간질이는 나라였다. 한반도 바로 옆에 우리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데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죽겠다. 학창 시절 다른 동네에 학생 수가 10만명쯤 되는 학교가 있다고 하면 그 학교가 어떤지 한번 가보고 싶지 않을까? 더구나 그 학교 학생들이 예전에 월담해서 우리 학교 친구들을 혼내준 적이 있거나 지역의 명문고교라고 한다면?

7년 전 미국 대륙 횡단을 마치자마자 중국 여행 준비에 들어갔다. 중국 여행의 주제도 생각해놓았다. ‘레드 차이나를 찾아서’. 이것은 2005년 펴낸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에 이은 연작이 될 것이다. 블루 아메리카는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이긴 주를 파란색으로 표시하는 데서 유래해 노동자ㆍ농민의 아메리카를 상징한다. 공화당 후보가 이긴 주는 반대로 붉은색으로 표시한다. 미국은 희한하게 노동자ㆍ농민이 밀집한 곳에서 부자 정당이라고 하는 공화당 후보가 우세한 곳이 많다.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는 실제는 블루 아메리카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레드 아메리카인 곳들을 다니면서 미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쓴 책이다. 중국에서 붉은색은 사회주의를 뜻한다. 시장경제를 도입한 이후 붉은색이 퇴색했다는 얘기가 서방 언론을 통해 들려오는데, 사회주의적 평등의 문화와 가치가 과연 얼마나 남아 있는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21세기 양대 강대국을 같은 관점으로 꿰뚫어보자는 생각을 해내다니…… 스스로 대견해하면서 중국어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다니던 미국 대학에서 중국어를 청강하는 동시에 앞집에 사는 중국인 아주머니한테 발음을 익히기 시작하는 등 부산을 떨 무렵 아내로부터 한 소리를 들었다. 아이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아버지가 직업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미주리 주 컬럼비아 시 스미스턴 중학교의 아이 담임교사는 학부모와의 면담시간에 찾아간 나를 보고 “한국에서 언제 왔느냐”고 물었다. 내내 같이 살아왔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람. 아이는 가정환경 조사서의 학부형란에 엄마하고만 산다고 적었던 것. 친한 친구들의 아버지는 교수, 변호사, 의사와 같은 직업이 다 있는데 자신의 아버지는 무직이라고 쓰기 싫었던 것일까. 사십대의 나이에 유학 와서 석사과정을 끝내고 집에서 뒹굴거리는 아버지는 사실 어느 아이라 해도 떳떳하게 내세울 아버지의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고 경제 형편이 받쳐주는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귀국해 다시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고,중학교 2학년이던 아이는 지난해 대학에 진학했다. 야호!

그사이 7년이 흘렀다. 중국행에 대해서 대학생 아이는 적극적인 지지자로 바뀌었다. 아내는 용인하면서도 꼭 자전거를 타야 하느냐는 질문을 되풀이했다. 나도 자전거에 미친 사람은 아니다. 여행이라는 움직임의 수단으로 제격이기 때문에 자전거를 선택했을 뿐이다. 물론 걸어서 할 수도 있다. 걷기야말로 공간에서 발신하는 신호들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행위일 뿐 아니라 움직임의 기동성에서 최고다. 전후좌우 마음대로 회전할 수 있으며 진퇴 역시 자유롭다. 이것은 어떤 동력수단도 아직 따라갈 수 없는 경지다. 다만 느리다.

걷는 것은 말하는 것과 같다. 같은 말을 쓴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하는 말이 같지는 않다. 문법이라는 언어의 내재적 규칙에 따르지만 음색도, 성량도 다르며 문법에 벗어난 말을 하기도 하고 처음에는 생소하지만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걷는 것도 그렇다. 길이라는 문법에 따라 걷지만 사람마다 보속도, 보폭도 다 다르다. 어느 한 걸음 같은 걸음이 없다. 그리고 때로는 길을 벗어나기도 하고 그 구간이 나중에 길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걷는 것은 말하기처럼 인간의 보편적 행위이면서 특수한 경험인 것이다.

여기서 나는 걷기를 살짝 페달링으로 바꿨을 뿐이다. 페달링 역시 어느 한 사람 같지 않다. 속도도 다르고 돌리는 운율RPM(분당 회전수)도 다르다. 걷기의 의미를 대부분 계승하면서 걷기의 무료함만 덜어낼 수 있다. 비유하자면 페달링은 말하는 게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다. 사실 자전거를 타고 가다보면 잊혔던 노래가 절로 나오곤 한다. 페달의 운율이 마치 노래방의 전주 부분 같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맞바람이 불 때는 리듬앤드블루스, 등바람이 불 때는 랩이 나올 수 있다. 물론 풍경을 스쳐지나간다는 느낌은 있을 것이다. 많은 것을 흘려 보내겠지만 길의 굴곡과 파동을 더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 역시 온몸으로 느낄 수 있으며, 스스로 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점에서 주체적이다. 페달링은 문신하는 것처럼 낯선 곳을 근육에 새기는 좋은 방법이다.

아내의 얘기는 자동차나 기차로도 여행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일텐데 자신의 두 다리 외의 동력장치에 실려 움직이는 것은 이동이지, 여행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집 밖을 나설 때부터 돌아올 때까지 모든 순간순간을 온전한 여행의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때로는 고통스럽겠지만 끝내는 웃을 수 있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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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만리장정 홍은택 저 | 문학동네
소문난 자전거 라이더(rider)이자 자전거 라이터(writer), 홍은택의 옆구리를 30년간 간질이던 나라가 있었다. 칠 년 전 아메리카 대륙을 80일간 자전거로 횡단한 후 바로 준비에 들어갔을 정도로, 궁금했던 그 나라의 이름이 바로 ‘중국’이다. 유럽과 비슷한 크기의 땅덩어리에 56개 민족, 14억의 인민이 모여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있는, 미국과 함께 21세기 양대 강대국으로 꼽히는 중국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책은 자전거 애호가라면 누구나 꿈꿀만한 중국 자전거 여행에 대한 안내서이자, 이 광활한 대륙을 학습하는 초심자들을 위한 훌륭한 중국 입문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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