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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나와 화해하기 - 밀란 쿤데라, 『농담』

인생의 중대한 순간은 한 번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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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싱싱하고 통통 튄다. 주름과 잡티가 없는 뽀얀 피부, 언제라도 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 탱탱한 다리를 보고 있으면 부럽기까지 하다. 시답지 않은 농담에도 까르르 웃는 젊음은 스스로 빛난다. 그래서 은근히 질투가 난다. 반면에 젊음은 미숙하다.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도 자신감이 넘쳤다. 소설 『농담』의 작가 밀란 쿤데라가 “젊음이 주인공일 때 역사는 끔찍했다.”고 표현한 것처럼.

20대는 나에게 무척 힘든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어서 빨리 20대가 지나가기를 바랐다. 서른이 되면, 마흔이 되면 지금의 고민은 더 이상 두통거리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불투명한 것들이 서서히 투명해지고, 안정궤도에 올라서는 것이 나이 드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어른이 되었다는 얘기처럼, 나는 마흔이 다 되어서도 여전히 스무 살에 했던 고민을 안고 있다. 젊음의 성숙한 모습이 마흔이라면 좋겠지만 대다수에게 마흔은 그저 젊음이 사라진 시기일 뿐이다.

“그럼 난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젊음’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젊음은 싱싱하고 통통 튄다. 주름과 잡티가 없는 뽀얀 피부, 언제라도 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 탱탱한 다리를 보고 있으면 부럽기까지 하다. 시답지 않은 농담에도 까르르 웃는 젊음은 스스로 빛난다. 그래서 은근히 질투가 난다. 반면에 젊음은 미숙하다.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도 자신감이 넘쳤다. 소설 『농담』의 작가 밀란 쿤데라가 “젊음이 주인공일 때 역사는 끔찍했다.”고 표현한 것처럼.

젊음이란 참혹한 것이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이 그리스 비극 배우의 장화에, 다양한 무대 의상 차림을 하고,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면서, 광적으로 신봉하는 대사를 외워서 읊으며 누비고 다니는 그런 무대이다. 역사 또한, 미숙한 이들에게 너무도 자주 놀이터가 되어주는 이 역사 또한 끔찍한 것이다. 네로라는 풋내기, 나폴레옹이라는 애송이, 흥분하여 날뛰는 수많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흉내 내는 열정이나 간단하게 맡아버린 역할들은 처참하도록 실제적인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밀란 쿤데라의 젊음에 대한 생각에 동의한다. 이는 내가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가 유별나게 행복한 것도 아니고, 나의 젊음이 남들보다 유달리 실수투성이였던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젊음의 미숙함이 싫다. 그래서 못난 젊음이 흘러가는 것이 그다지 아쉽지 않다. 다만, 내 못난 젊음과 화해를 하고 싶을 뿐이다.




나처럼 지지리도 못난 루드빅

자기 자신과의 화해는 나에게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 나 마음속에서조차 발가벗은 자신과 마주하고 싶지 않는 ‘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렇다.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화해도 가능한데, 자신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니, 화해 또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유는 조금 다르지만 나와 같은 고민에 빠진 인물이 『농담』의 루드빅이다. 그는 여자친구 마르케타에게 엽서를 보냈다가 인생이 완전히 꼬여버린 남자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이것은 그의 진심이 아니었다. 재미삼아 던진 농담이었다. 너무도 진지하게 공산당 연수에 참여하는 여자친구를 그저 놀려주고 싶었을 따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살던 시대는 그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소설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체코다. 당시 체코는 소련에 의해 해방됐고,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스탈린주의가 득세했고 정적이었던 트로츠키의 사상은 제거됐다.

결국 엽서에 적은 농담 때문에 루드빅은 공산당에서 제명되고 학교에서도 제적당한다. 그리고 군대에 강제 징집당해 광산에서 강제노역을 하면서 젊음을 날려버린다. 청춘을 잃어버린 루드빅이 복수를 위해 고향 모라비아를 찾는 날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루드빅은 지난 15년간, 공개재판에서 자신을 제명시키는 데 앞장섰던 친구 제마넥을 증오하며 살았다. 루드빅의 계획은 제마넥의 아내인 헬레나의 몸과 마음을 빼앗아 그에게 복수하는 것이었다. 철저하게 계획한 루드빅의 복수는 당초 의도와 달리 우스꽝스럽게 끝난다. 루드빅은 헬레나를 유혹하는데 성공하지만 제마넥에게 상처를 주지는 못했다. 제마넥은 루드빅과 헬레나의 행복을 바랄 정도로 결혼 생활에 지쳐 있었다. 사상과 태도도 변했으며, 언제든지 루드빅에게 사과할 준비가 돼 있었다. 광산에서 강제노역을 하는 2년간 지독히 사랑했던 루치에도 매일 저녁마다 철조망 사이로 장미를 넣어주던 과거의 그녀가 아니었다.

사랑했던 루치에나 증오했던 제마넥이나 오직 루드빅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었다. “마침내 잘못을 저지른 책임자로 색출해 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루드빅의 독백처럼 오직 루드빅 자신만 15년 전의 사건에 매몰된 채 그 속에서 살고 있었다. 억울한 젊음은 시간과 함께 지워졌다. 수정할 방법도 없고 복수마저 허무하게 끝났다.

밀란 쿤데라는 인과응보나 인연 같은 단어로 애써 삶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루드빅의 삶을 통해 농담처럼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게 인생임을 보여줄 뿐이다. 15년이나 증오를 불태웠던 루드빅의 복수가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끝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인생의 중대한 순간은 한 번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 삶의 모든 중대한 순간은 단 한 번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렇게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완전히 알고 있어야만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 속임수를 써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을 전혀 모르는 척해서도 안 된다. 현대인은 속임수를 쓴다.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중대한 순간들을 모두 교묘히 피해가려 하고, 그렇게 해서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은 채 탄생의 순간에서 죽음까지 가려 한다.

우리는 작은 배신에도 오랫동안 복수심을 불태운다. 작은 실패에도 남의 탓을 하고, 작은 비난에도 분노한다. 알고 보면 작은 사건들은 스스로 저지른 실수로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그 작은 사건이 인생의 행로를 바꾸는 갈림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실수를 저지른 젊은 날이 중대한 순간이었음을 인정하지 못한다. 나의 젊음을 아예 부정할 수 없고, 지금 작게나마 이룬 것들을 무너뜨릴 수 없다. 오히려 복수나 비난 등으로 남에게 책임을 전가해 나를 지키고,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 한다. 그래서 복수는 결국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복수는 돌아갈 수 없는 내 인생의 중대한 순간에, 다름 아닌 젊은 내가 잘못된 판단을 했음을 계속해서 부정하는 작업이다.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인 것이다. 복수를 안 하면 미칠 것 같지만, 복수를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저지른 것은 ‘젊은 나’였고, 그 중대한 실수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지금의 나’일 뿐이다. 내가 ‘젊은 나’와 화해를 하면 될 테지만, 그 힘겨운 성찰의 길을 걷기보다 우리는 ‘남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그대로 두자, 그저 내일을 맞이하면 잊힌다

인생의 모든 일들을 전부 취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일들 을 초래한 실수들이 내가 한 실수들이 아니라면 무슨 권리로 내가 그것을 취소할 수 있겠는가? 사실, 내 엽서의 농담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졌을 때, (…) 잘못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이런 실수들은 너무도 흔하고 일반적인 것이어서 세상의 이치 속에서 예외나 잘못도 될 수 없고 오히려 그 순리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잘못한 것이란 말인가? 역사 자체가? 그 신성한, 합리적인 역사가? 그런데 왜 그런 실수들이 역사 탓이라고 해야만 할 것인가? 인간으로서의 나의 이성에만 그렇게 보일 뿐, 만일 역사가 자기 고유의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 때문에 그 이성이 인간들의 이해를 신경 쓸 것이며 여선생처럼 꼭 진지해야 하는가? 그리고 만일 역사가 장난을 한다면?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그리고 내 인생 전체가 훨씬 더 광대 (나를 넘어서는) 하고 전적으로 철회 불가능한 농담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상, 나 자신의 농담을 완전히 무화시켜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가장 되돌아가고 싶은 나이는 몇 살일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20대를 꼽는다. 그땐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인생 레이스의 ‘준비’ 자세에서 ‘땅’하고 출발하는 시작점이었다. 인생의 중대한 갈림길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했더라도 그것을 되돌릴 수 있었다.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스물세 살, 떠나는 연인을 잡지 못했던 스물네 살,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스물다섯 살 등 말이다. 우리는 가지 않은 길을 택했다면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젊은 나’와 쉽게 화해하지 못한다. 그 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젊은 나를 비난하거나 책임을 뒤집어씌운다. 마치 이제라도 수정 할 수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괴롭히고는, ‘젊은 나’를 마음속으로 벌한다. 하지만 밀란 쿤데라는 개인사든, 역사든 수정되는 것이 아니라 잊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대한 믿음과 고쳐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히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힐 것이다.
루드빅은 자신의 억울한 젊은 시절을 어느 누구도 고치지 못하지만, 모든 잘못은 잊힐 거라며 자신의 삶을 받아들인다. 젊은 세대는 앞선 젊은 세대의 자리를 차지하며 역사는 굴러간다. 앞선 세대의 가치를 지우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역사에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견 허무해 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또 용서받을 수가 있다. 미숙한 젊음에 대해 분노를 느낄 필요도 없다. 쿤데라가 젊음에 대해 “역사의 불한당들이 저지른 일들이 갑자기 그저 미숙아들의 무시무시한 소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면서 그들에 대하여 역설적인 너그러움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듯이 우리 세대의 흔적이 새로운 세대에 의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할 필요도 없다.

나의 젊음이 저질렀던 무모하고 창피하고 서투르고 미숙했던 모든 결정을, 그 때문에 달라져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 것을 어떻게 바꾸려 해도 헛될 뿐이다. 우리는 젊음의 갈림길에서 가지 않은 길을 갔다면 다른 삶을 살았겠지만, 그 역시 시간이 가면 지워질 역사다. 그러고 보면 성숙함은 앞으로 다가올 중대한 순간에 ‘젊은 나’보다 좀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과거는 그대로 두고, 새로 뜨는 태양을 담담히 맞이하는 것. 그것이 마흔이 가져야 할 성숙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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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고전에게 인생을 묻다 이경주,우경임 공저 | 글담
이 책은 저자들이 읽은 고전 중 마흔 즈음 독자들과 함께 읽고 싶은 24권의 고전을 엄선해 24편의 그림과 함께 수록했다.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 젊을 때보다 다시 읽을 때 더 큰 감동을 느꼈던 『데미안』과 『노인과 바다』, 세상의 흐름을 이해하게 도와준 『불확실성의 시대』, 『소유의 종말』 등 동서양의 다양한 고전들을 만날 수 있다. 고전을 읽은 것으로 삶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들처런 삶의 본질과 마주할 용기를 얻고 마흔의 문턱을 조금 낮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흔, 책을 만나다

흔들리는 마흔,
이순신을 만나다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
마흔 즈음에 읽었으면
좋았을 책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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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경주, 우경임

이경주
열심히 살면 행복하다는 신념을 가진 전형적인 워커홀릭. 마흔을 앞두고 열심히 뿐 아니라 잘 살고 싶다며 고전을 들었다. 속독과 다독을 통해 며칠이고 마음을 빼앗길 명문장을 캐내는 것을 즐긴다. 현재 서울신문 경제부 기자. 연세대에서 영문학·심리학을 전공했고, 동국대학원에서 광고홍보학 석사를 받았다. 2012년 7월부터 1년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UNC) 저널리즘대학에서 방문연구원(visiting scholar)으로 지내고 있다.

우경임
읽기를 놀이 삼아 자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절박한 학습이었다. 딱히 잘못된 것은 없는데 인생의 실타래가 꼬인 것만 같았다. 이리저리 용을 써 봤자 더욱 복잡해질 뿐이었다. 행간에서 답을 찾고자 빨간 줄을 정성껏 그어가며 읽었다. 정독을 즐기는 작가는 현재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연세대에서 사회학·심리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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