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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독이는 서정적 음악 - 어떤날

실험성과 음악성 그리고 대중적인 균형감까지 갖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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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7080’이란 말로 포상되고 있듯이, 1980년대의 진지한 음악 팬들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기가수 말고도 참된 음악을 추구하는 사람을 찾을 줄 알았다. 너무도 깔끔하고 서정적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게 해주는 ‘어떤날’의 내면적 성격의 음반은 그러한 음악 수용자들의 희구에 대한 최적의 선물이었다.

텔레비전 속 연예인들은 화려합니다. 가요 프로그램에 나오는 가수들의 모습은 물론이고 이들이 들려주는 음악 또한 강한 자극으로 대중들의 이목을 끌곤 하죠. 이는 1980년대 후반에도 마찬가지였는데요, 그 가운데에서 듀오 어떤날은 조용하고 서정적인 음악들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휴식처와 같은 이들의 앨범, <어떤 날 Ⅰ-1960ㆍ1965>를 지금 만나보세요.


어떤날 <어떤 날 Ⅰ-1960ㆍ1965> (1986)

당시 ‘어떤날’은 TV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순간의 인기를 좇는 방송국의 쇼 프로그램에 그들이 들어설 공간이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베이스 조동익과 기타 이병우의 그 조용한 듀오는 텔레비전을 요란스레 휘젖는 스타가수들의 틈바구니에 낄 수도 없었고, 끼어서도 안 되었다.

현재 ‘7080’이란 말로 포상되고 있듯이, 1980년대의 진지한 음악 팬들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기가수 말고도 참된 음악을 추구하는 사람을 찾을 줄 알았다. 너무도 깔끔하고 서정적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게 해주는 ‘어떤날’의 내면적 성격의 음반은 그러한 음악 수용자들의 희구에 대한 최적의 선물이었다.

그들은 마치 장롱 깊숙이 금을 보관하는 심정으로 이 작품들을 자신들의 뇌리에 고이 저장했다. 「하늘」, 「오래된 친구」, 「지금 그대는」, 「너무 아쉬워하지 마」를 비롯해 일렉트릭 기타와 신시사이저가 기막힌 조화를 이뤄낸 수작 「그날」, 그룹 들국화의 앨범에도 수록된 곡 「오후만 있던 일요일」 등 수록된 9곡 모두가 가슴을 적시는 서정적 파장을 야기한다.

작사 작곡가 심현보는 “그 서정성이란… 지금 들어도 휴식 같은 앨범”이라고 했다. 그 말처럼 호들갑떠는 TV, 암울한 세상에 몸과 마음을 가누지 못한 당시의 젊은 세대들은 이 앨범으로 일말의 위안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부유하는 현실의 압박에 무너지지 않은, 적극적이지 않으나 슬기로운 몸부림 가운데 하나는 음악을 통해 자아를 보고 성찰하는 것이다.

그들은 기타와 베이스가 중심을 이뤄 달짝지근한 선율로부터 해방되어 ‘고감도 연주와 편곡’이 압도하는 소리의 신세계에 홀리기를 자청했다. 그 무렵 텔레비전에서 접했던 가요들, 이를테면 발라드와 댄스는 중심이 노래하는 가수였다. 하지만 이병우는 기타리스트, 포크의 대부인 조동진의 친동생인 조동익은 베이스주자였다는 사실은 가요가 가수만이 아닌 연주자가 중심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해준 것이다. (앨범의 편곡자는 조동진이었다)

음악은 보컬과 반주라는 등식은 지극히 재래식이라는 것, 그 고정관념의 파기를 은근히 주문했다고 할까. 연주는 보컬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독립된 것임을 실천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메시지와 등권(等權)을 이루는 고밀도의 연주가 동반되어야 한다. 이병우가 팻 메스니(Pat Metheny)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외국음악의 추종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세련된 연주에 대한 기대감으로 밀려왔다.


통속적인 패턴의 음악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처음 들을 때는 생경하고 지루해 수면제(?)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청각을 확 삼키는 멜로디 아니면 감각을 자극하는 리듬이 없으면 건조하게 들린다. 그래서 이러한 스타일의 음악에 경험이 적은 신세대는 이 앨범을 대할 때 어느 정도의 ‘인내’가 요구된다. 그것만 통과한다면 다음에 기다리는 것은 음악의 은근한 뒷맛이 주는 쾌감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새록새록 가슴을 두드리며 종국에는 치명적인 울림을 일으키고야 만다.

대중에 영합해 얻고자 하는 인기가 아닌 순수한 음악성의 향기를 퍼뜨린다. 겁먹을 필요는 전혀 없다. 듣다보면 깊이뿐 아니라 정겨움과 친근함도 있다. 이 앨범이 얼마나 후배 뮤지션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 알려주는 한마디. “실험성과 음악성을 가졌으면서도 대중적인 균형감을 갖추고 있는 앨범이다. 최고의 앙상블이 따로 없다.”(작곡가 방시혁) 이들이 출현한 이래 음악 하는 사람들은 물론, 팬들도 앨범을 구입할 때 가수 이름만 보는 게 아니라 뒷면에 적혀있는 편곡자나 연주자의 이름을 챙기게끔 되었다.

어떤날은 이 역사적인 앨범이 나온 뒤 시인과 촌장, 따로 또 같이, 김현식, 김두수, 최성원 등 동료 뮤지션의 앨범에 잇달아 세션으로 불려가, 질적으로 상승한 연주를 들려준다. 그리고 1989년에 역시 걸작으로 평가되는 두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이때쯤 전작 때와는 달리 팬 층도 구축되어 「출발」, 「초생달」, 「하루」, 「취중독백」 등의 노래가 꾸준히 전파를 타는 대중적 성과를 거둔다.

얼마 안 있어 둘은 흩어져 조동익은 특급 세션과 편곡자로, 이병우는 기타리스트 달인으로 독자적 명성을 구축했다. 조동익이 1994년에 낸 앨범 <동경>은 평자들의 격찬을 받은 바 있다. 2집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어떤날의 음악을 기억하는 팬들은 많다. 그들은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3집이 행여 나오지 않을까 무모하게 기다린다.

글/ 임진모(jjinmoo@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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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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