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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인문학을 앓는다

인문학이 이토록 감성적일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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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이면서 감성적인 남녀가 만나 대화를 나눌 때 생기는 인문학적 감성의 시너지 효과는 실로 대단하다. 둘 사이에는 지적ㆍ감성적 긴장뿐만 아니라 오묘한 성적 긴장까지 가세되어 더욱 매혹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 풍경은 당사자들의 내면의 풍경이다. 제삼자들은 그들의 모습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만약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기라도 한다면 그 지적ㆍ감성적 과잉에 혀를 내두를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요한 것은 내면 풍경.



왜 인문학을 앓는다고 할까

저기, 한 쌍의 근사한 커플이 지나간다고 가정하자. 남자는 누구를 보겠는가. 당연히 여자 쪽을 본다. 그것도 위아래로 훑어본다. 남자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남자들은 원래 그렇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아무리 점잖고 인격이 높은 남자일지라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을 나는 한두 번 목격한 게 아니다. 그렇다면 그 근사한 한 쌍에 대해 여자는 누구를 응시하겠는가. 여자들은 다 알 것이다. 그렇다, 여자다. 여자는 여자를 본다. 저 여자가 어째서 저토록 근사한 남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건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외모도 보고, 분위기도 살펴보고, 취향도 분석해보고, 말씨나 제스처까지 그 순간에 꼼꼼히 데이터화된다.

우리는 이 순간에도 인문학을 작동시킬 수 있다. 왜 여자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를 볼까. 여자는 관계를 중시하고, 관계 속에서 자아를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사랑받고 있는 자신을 확인하면서 자아를 감정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의 눈 속에서 나를 봅니다”라는 식이다. 그러니 누군가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당연히 그녀를 벤치마킹해야 하기에 여자들은 서둘러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사랑이 끝나고 나면 남자가 떠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 남자에게 사랑받던 자신이 사라졌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럽다. 자아가 붕괴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현명한 여성들은 보부아르의 명제를 떠올린다. 사르트르의 아내였던 보부아르가 말하기를, 여성은 차라리 사랑을 할 때 익명이 되고 자신을 잃어버리지만, 남자가 멀어지면 그녀는 다시 자신의 땅 위에, 침대 위에, 그리고 밝은 불 아래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다시 이름을 얻고 얼굴을 갖게 된다고 하니까.

물론 보부아르의 말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을 할때 여성은 익명이 되고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우리만의 인문학을 가동시킬 수 있다. 사랑은 ‘나’를 포기하지 않고 온전한 ‘나’ 자신으로서 연인과 부딪치는 것이라는 관점을 고수하는 것이다. 인문학은 희대 지성의 명언을 따르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삶에서 자기 자신의 통찰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은 ‘앓는’ 것이 될 수 있다. 앓고 나면 우리는 한층더 성숙해진다. 앓는다는 건 단지 고통의 차원이 아니다. 그 앓는 시간을 지나 우리는 자신과 세상을 더 깊고 투명하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지혜와 지식이 있는 것은 항상 질병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는 맹자의 말씀도, “‘아름다움’의 원래 표기는 ‘앓음다움’이었다”는 소설가 박상륭의 설명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난 널 사랑해”라는 말에 대해서도 인문학적 사유를 작동시킨다면 좀 더 ‘앓음다운’ 고백이 될 수 있다. 롤랑 바르트를 인용하자면 “난 널 사랑해”라는 말, 그것의 심급(instance,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출발점)은 차라리 음악이다. 노래에서와 마찬가지로 “난 널 사랑해”의 발화 안에는 욕망이 억압되지도, 인지되지도 않고 다만 즐겨질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지하면서’ 간혹 ‘강요되어서’ 하는 고백은 진짜 고백이 아닌 셈이다. 롤랑 바르트의 성찰에 기대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음악처럼 하는 고백만을 진짜로 쳐야 할 것이다.


인문학 딜레탕트가 되자

가령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남성미가 넘치면서도 섬세한 남자 주인공을 보면서 그저 감탄만 연발하는 것이 아니라 ‘아, 이 남자는 테스토스테론과 아니마(여성성)를 겸비한 남자구나’라고 해석하면서 자신의 이상형을 수정하고 있을 때 우리 삶에는 이미 인문학 감성이 매개되고 있는 것이다.

가수 이문세가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라고 노래할 때 그 문장의 아이러니를 통감하고 더 쓸쓸해졌다면 그 또한 인문학적 감성이 자극된 까닭이다.

영화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가 복수를 위해 자살하지만 결국은 신에게 용서를 비는 장면을 보면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신의 관계, 복수와 용서의 관계에 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면 이미 우리는 인문주의자다.

때때로 나는 인문학자이기보다 인문학 딜레탕트(dilettante)가 되고자 한다.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에서 평범한 여자주인공이 멋진 인문학자의 사랑을 얻게 된 것도, 소설 《프랑스 중위의 여자》에서 남자주인공이 신비스러운 여성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녀들이 모두 인문학 딜레탕트였기 때문이었다. 즉 인문학자로 책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딜레탕트로서 세상에 나왔을 때 우리는 더욱 적극적인 인문학 수혜자가 되는 것이다.

시인 김수영에게 딜레탕트라고 종종 모욕을 당했던 박인환은 우리에게 <목마와 숙녀>나 <세월이 가면>과 같은 명시를 남겼다. 그뿐인가. 윈스턴 처칠은 그림에 대한 딜레탕트적인 취향 덕분에 아내의 불륜도, 재야에서 보낸 오랜 시간도 견뎌내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즐길 수 있었으리라.

버지니아 울프도 소설가가 되기 이전에 인문학 딜레탕트였을 것이다. 똑똑했고 감성적이었던 버지니아는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니던 오빠의 친구들과 함께 ‘블룸즈버리 그룹’을 만들었다. 말하자면 ‘지적이면서 감성적인 여자’와 ‘지적이지만 감성적이기까지 한 남자들’을 위한 인문학의 장을 만든 것이다. 그들은 곧잘 펍(pub)에 모였다. 버지니아는 펍에서 유쾌하게 취하기도 하고, 절망적으로 취하지 않기도 하면서 문학과 온갖 이즘(ism)을 맥주와 함께 들이켰을 것이다. 길다랗고 야윈 얼굴의 버지니아는 때때로 우울한 표정을 짓다가, 격앙된 어조로 남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깊은 생각에 빠져 그 대화 바깥으로 나와 오히려 고독을 향유하기도 했을 것이다.

버지니아뿐만이 아니다. 지적이면서 감성적인 남녀가 만나 대화를 나눌 때 생기는 인문학적 감성의 시너지 효과는 실로 대단하다. 둘 사이에는 지적ㆍ감성적 긴장뿐만 아니라 오묘한 성적 긴장까지 가세되어 더욱 매혹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 풍경은 당사자들의 내면의 풍경이다. 제삼자들은 그들의 모습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만약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기라도 한다면 그 지적ㆍ감성적 과잉에 혀를 내두를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요한 것은 내면 풍경.

둘이 연인이면 더 좋겠지만 그런 행운을 가진 이는 퍽 드물다. 간헐적이라도, 일회적이라도, 그런 만남과 대화를 가져본 경험이 있다면 그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후유증에 대해서 잘 알 것이다. 그것은 마치 흠뻑 사랑해보지도 못하고 헤어진 연인을 생각할 때와 비슷해서, 꼭 물을 들이킬 필요가 없을 정도의 애매한 갈증을 남긴다. 그 애매한 갈증이 인문학에 더 가까이 가게 함은 물론이다.

오랫동안 나는, 슬펐다기보다 서러웠다. 오랫동안 나는, 사랑받고 싶었다기보다는 다정한 손길을 받고 싶었다. 이제 서럽지 않고 보니, 서러움의 반대는 편안함이었다. 다정해지고 보니, 다정은 사랑과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였다. 이 편안과 다정함으로 향한 길을 나는 인문학과 함께 걸어왔다.

당신도, 삶의 모든 순간을 인문학과 더불어 향유하길 바란다. 삶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성숙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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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의 인문학 한귀은 저 | 한빛비즈
이 책은 지적으로 사유하는 힘, 깊이, 감성을 갖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나 드라마, 즉 ‘스토리’를 차용한다. 우리가 킬링 타임으로 쓰는 스토리를 통해 인문감성을 채움으로써 일상이 어떻게 의미를 되찾는지 보여준다. 특히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인 사랑, 이별, 관계, 상처 등 소소하고 사적이지만 중요한 삶의 순간들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여 우리가 부대꼈던 모든 순간에 인문학적 감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한다. 저자는 깜짝 놀랄 만한 솔직함과 섹시한 지성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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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의 인문학

<한귀은> 저12,6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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