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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은 앎에 대한 천착이요, 궁극적인 것을 찾는 것

『철학입문 18』 남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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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은 어떤 흐름으로 이어져 왔을까. 지난 4월 29일, 서울 연남동 휴머니스트 사옥에서는 ‘2013 휴머니스트 인문학페스티벌’의 2강으로 『철학입문 18』의 남경태 저자가 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그는 이날 ‘현대철학은 우리 삶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라는 주제로 현대철학의 지형도를 펼치며 독자들과 만났다.



궁극적이고 불변하는 서양철학

남경태에 의하면, 서양철학은 궁극적이고 불변적인 것에 대한 탐구다.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서양적인 사고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보면, 모든 것에는 이데아가 있다. 예를 들면, 컵에도 이데아가 있다. 즉, 컵의 본질. 그러나 컵의 본질은 경험되지 않는다. 문제는 컵의 본질을 알 수 있느냐 없느냐다. 궁극적인 본질을 찾는 것, 서양철학의 난제다.

“플라톤에 의하면, 이데아는 경험되지 않는다. 본질은 쉽게 경험되지 않아서 어렵다. 이데아론은 기독교 사상의 모태가 된다. 본질을 모르니 종교로 치환되는 것이다. 서양철학은 본질을 말하면서 세계를 둘로 나눈다. 플라톤은 이를 이원론이라고 말한다. 이데아의 세계는 신의 세계, 기독교의 내세관으로 수용된다. 이어진 중세 1천년 동안 플라톤이 남겨놓은 숙제를 풀기 위해 애쓴다. 보편자, 개별자 논쟁이 벌어진다. 보편자가 존재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싸운다.”

문제는 경험되지 않은 것의 본질을 찾으려는 데에서 발생한다. 12세기 넘어서면서 보편자는 없고, 이름만 존재하는 ‘유명론’이 등장한다. 보편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실재론으로 나타나고,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유명론이다. 중세 1천년 동안에도 사물의 궁극적인 앎이 가능한지를 놓고 논쟁이 계속 됐다.

이어 등장한 것이 근대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였다. 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그의 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코기토 에르고 숨ㆍCogito ergo sum). 데카르트는 이를 통해 인식과 앎의 주체를 확립했다. 주체의 정립, 그래서 그의 철학을 주체철학이라고도 말한다. 서양철학의 사고방식은 엄밀한 지식인 수학처럼 절대 진리를 찾고자 했다. 데카르트 역시 ‘명백한 진리’를 찾아 철학을 했다. 그는 불확실한 것을 차례로 지운 뒤 ‘나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영국 경험론자들, 앎의 궁극적인 것을 의심한다. 그들은 앎의 출발점은 경험일 뿐이라며, 극단적인 회의론을 주장했다. 칸트는 달랐다. 현대철학의 먼 출발점인 그는 사물을 사물에 근거가 있는 게 아니라 내 관념에 근거가 있을 수 있다는 ‘구성주의’를 내세웠다. 칸트를 ‘관념론철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에도 그런 구도가 관철돼 있다. 빛은 입자라는 설과 파동이라는 설이 양분하고 있었는데, 둘은 교집합이 없다. 칸트가 먼 의미의 현대철학의 맹아를 키웠다. 이에 과거 수천 년 동안의 필연성, 인과성이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칸트는 본질적인 앎을 포기한다. 알아도 본질을 알기 어려운 거지. 그러다가 주체와 대상이 이분법적으로 나뉘기 전에 합일돼 있다는 현상학이 나온다. 주체와 대상이 하나의 괄호 속에 묶여 있다는 것. 현상학은 이를 직관으로 파악하라고 말한다. 뿌리에 칸트가 있고, 현상학을 주장한 사람을 ‘신칸트파’라고 부른다. 주체와 대상의 간극을 메우려는 것이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추상적이고 구체적인 것을 포기하고 철학 과제를 좁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석철학이 등장한다. 이들은 언어나 논리를 분석하겠다는 자세를 갖고 있다. 언어가 올바른지 그렇지 않은지로 구분하는 것. 철학은 모든 것을 다루는 게 아닌 언어와 논리 분석만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20세기 중반부터는 다른 철학이 나온다. 현상학과 분석철학은 현대철학의 양대 사조인데, 분석철학은 형이상학을 포기하자고 하는 실존(주의)철학과 연관이 된다. 실존주의의 대표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 주체를 데카르트처럼 단단한 덩어리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현존재(Daseinㆍ거기에 있음)라고 했다. 다자인은 존재의 존재방식이라고 했다. 즉, 인간은 유일하게 존재하면서 존재 자체를 묻는 존재라는 것. 살아가면서 삶 자체를 묻는 유일한 존재.

“사르트르는 인간을 무(無)라고 했다. 대상과 합일된 상태로서만 존재한다고 했다. 인간은 결핍이라 뭔가 채워 넣으려고 해서 잠시 채우는 순간, 부정이 되고 다른 것을 찾는다고 했다. 시시포스가 돌을 끊임없이 끌어올리려는 것처럼 인간은 실패한다는 걸 알면서도 해야 하는 존재라는 거지. 인간은 타고난 바람둥이다. 숙명적인 자유, 비극적인 자유의 존재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계 속에 처해진 존재라고 하고, 실존을 분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이데거는 죽을 때까지 형이상학의 한계를 고민했다. 말할 수 없는 것의 영역을 건드린 거지.”




철학의 본령, 현대철학의 중심

저자 남경태는 동서양철학에 대한 차이점을 언급했다. 철학의 본령은 ‘앎’에 대한 것이고, 철학은 인식론이 본령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동양철학은 삶 자체를 묻거나 삶의 지침을 주는 쪽으로 전개됐다. 이에 경전적인 지식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서양에서도 윤리학이나 종교철학이 이런 범주와 비슷하나, 서양철학에는 모든 것을 압도하는 경전이 없다.

“철학에서 일상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부분을 찾자면 도덕이나 종교인데, 그것들도 철학의 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철학의 본질은 아니다. 철학의 핵심, 가장 ‘철학적인 철학’은 바로 사유 자체에 있다. 즉 철학은 생각하는 방법을 다루는 학문이다.”(p.6)
현대철학은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스피노자가 처음 ‘관계의 철학’을 이야기했다. 스피노자는 전통 철학에서 벗어나 있는데, 스피노자는 관계에 중심을 두고, 실체적인 사고를 극복하고자 했다.

“좌우도 실체가 아닌 관계에 의한 것이다. 좌가 있으니까 우가 있고, 우가 있으니까 좌가 있는 것이다. 좌우는 하나로 통합할 필요가 없다. 갈등과 분열은 당연하다. 하나로 만들면 무슨 재민가. 우리는 통합이라는 의미를 단세포적으로 알고 있다. 화요일도 월요일과 수요일 사이에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제시한 사람이 소쉬르와 프로이트다. 구조주의 창시자인 소쉬르는 관계적인 사고를 처음 제시했다.”

고전적으로는 개라는 언어는 사물과 낱말이 일치한다고 봤다. 지시 대상과 지시 언어, 즉 기표와 기의가 찰떡궁합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소쉬르는 이것들이 관계가 없다고 봤다. 개를 소나 나무라고 불러도, 그 약속을 공감하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으며, 언어와 지시대상 간의 필연적인 관계를 부정했다. 개는 소나 말이 아니기 때문에 개라고 설명한 것이 소쉬르였다. 언어가 ‘사회적인 약속’임을 강조했다.

이어 등장한 것이 프로이트였다. 자연스레 ‘무의식’이 따랐다. 무의식이라는 말을 쓴 사람이 프로이트였다. 그렇다고 무의식이라는 말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데카르트가 이성적 주체를 만든 뒤 이성중심주의가 지배하던 시대, 산업혁명 등 인류는 다양한 발전상을 만들어갔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앞에서 인류는 이성이 인류를 발달시키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은 필연적인 산물이었다. 인간은 이성적으로 의식을 저지를 수도 있지만, 이면에는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덩어리가 있다. 프로이트의 의학 이론은 간단하다. 인간은 의식을 통해 기획하는 존재가 아니며, 일상도 의식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자기가 설명하지 않는 자기의 행동이 있다. 내 정신 영역에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 인간의 정신세계는 동질적이고 단일하지 않다. 프로이트는 인간 의식에 때로는 모르는 덩어리가 있으며 이것을 무의식이라고 했다. 프로이트에게 무의식이 발현되는 곳의 하나가 꿈이다.”




‘콘텍스트’를 파악한다는 것

남경태는 겉으로 드러난 ‘텍스트’만으로 해독 불가능한 지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콘텍스트’다. 그가 예로 든 것은 5공 시절의 대표적인 구호인 ‘정의사회 구현’이다. 당시 ‘질서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억압했다. 텍스트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질서를 정의하는 주체가 문제였다.

“불법으로 정권을 잡은, 말하자면 신군부가 질서와 정의를 정해놓고 학생들 시위하지 말라는 의미로 TV광고까지 했다. 텍스트 자체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중요한 것은 텍스트를 둘러싼 콘텍스트다. 정치적 발언이 대부분 그렇다. 텍스트는 노정돼 있는데, 사람들은 발언의 의도를 찾는다. 이미 텍스트를 넘어선 거지. 텍스트는 이미 투명하지 않다. 교통 상의 좌회전, 우회전과 같이 투명한 것도 물론 있지만.”

구조주의도 그와 같다. 드러난 것(presence)과 숨겨진 것(absence)으로 말할 수 있다. 텍스트는 드러나는 것,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면 일상과 꿈이다. 감춰져 있지만 때에 따라 드러나는 것이 콘텍스트로 대부분 메시지는 숨겨진 것이고, 그래서 의견이 분분하다. 인류 역사가 늘 그랬다. 모든 메시지에는 그래서 해석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숨겨진 것일 수도 있다.

“구조주의 이전까지 드러난 것만 놓고 얘기를 한 거다. 포스트구조주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은 언어를 중시하는데, 무의식적 언어를 중시한다. 그전까지의 모든 사고는 확실성, 필연성의 사고였지만, 구조주의 이후 필연적이지도, 확실하지도 않게 됐다. 우연성은 뉴턴 역학에선 없다. 하이젠베르크가 1930년대 불확정성의 원리를 말하는데, 현대철학적으로 같은 시기에 동질성, 필연성이 무너지고 우연성이 강조된다. 드디어 인간은 과거 인지할 수 없는 것을 대상화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졌다. 현대철학이 끝 간 데까지 왔다. 과거의 인식 틀이 무너지면서 무의식과 우연성이 개입하는데, 이것을 명쾌하게 정리하지 못한 상태다. 현대철학은 보이지 않고 숨겨진 것의 가치를 찾는다.”

“철학은 분명히 현실적인 용도가 있을 뿐 아니라 알고 보면 무척 광범한 실용성을 가진다. 철학은 모든 학문적 사유의 바탕을 형성하기 때문이다.”(p.5)
‘한국적 철학’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냐는 독자의 물음에 남경태는 “편견에 기대어 말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철학은 동양철학의 일부고, 기본적으로 성리학이다. 성리학은 조선의 지배이데올로기였다. 이를 만든 주희도 정치 이데올로기로 정립한 이론이다. 그전까지는 《논어》인데, 한국의 전통적인 철학을 윤리학이나 종교철학의 일부로 보면 가능하다고 본다. 폄하할 자격도 없고, 의도도 없으나 동양철학은 인식론, 앎에 대한 천착이 없다. 오늘 내가 말한 것은 앎을 따지는 철학인데, 한국 뿐 아니라 동양철학에는 이런 것이 없다. 동양철학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정치철학이고, 지배계급의 철학이다. 기본적으로 유학이고, 유학은 선현으로부터 답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15~16세기까지도 학문은 물론 과학적으로도 동양이 서양을 앞섰다. 문제는 학문이나 지식을 백성들에게까지 보급하지 않는다. 귀족들의 것으로만 여긴 것이다. 서양이 중국이나 한반도처럼 짜인 조직을 가진 것은 17세기 이후다. 로마제국도 관료제가 없었다. 고구려보다 못한 나라였다. 그래서 동양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식만 공급하면 된다는 식으로 지식을 가둬왔고, 서양은 그렇지 않고 의견이 민주적으로 자유롭게 제기됐다. 이것이 동서양의 역전된 구도를 가져왔다고 본다.”


(※ 이미지는 2013년 3월 22일 인터뷰 사진으로 대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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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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