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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화선>, <서편제>를 보며 대성통곡 했다 - 이응준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내 연애의 모든 것』의 작가 시가 안 되면, 죄를 짓고 오라 배웠다 20세기 작가의 21세기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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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9일, 홍대 작은 카페에서 작가 이응준과 독자들의 만남이 있었다. 그 동안 절판되었던 작가의 첫 장편소설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의 재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스물여섯에 쓴 책을 재 출간하며 작가는 20세기에 시작한 문학을 21세기에 이어가고 있는 심경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근대문학의 종말’을 고한 가라타니 고진이 솔직한 건지도 모른다. 19세기, 20세기를 건너며 그려온 예술은 사실상 끝났다.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이응준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대답한다. 책을 쓰면 ‘그냥 재미없다’ 는 댓글이 달리고, 전 세계적으로 문학이 사망선고를 받더라도 나는 계속 쓸 거다. 이것이 20세기 작가다운 대답이다. 물론, 무턱대고 쓰겠다는 건 아니다. 최근 들어 그의 작품들이 드라마로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작가 이응준은 또 다른 길을 찾고 있음이 틀림없다. 20세기 작가의 21세기 생존법인 셈이다.

이응준 작가는 요즘 한창 산문을 쓰고 있다. 20세기 작가로 21세기를 사는 일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작가에게 그래도 믿을 건 글뿐인 모양이다. 이 시대와 싸워나가기 위한 벙커를 만들고 고민들을 정리해가고 있다. 그 고민을 엿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작가 이응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junbunker)를 찾아가 보자. 한 사람의 예인이 새로운 세기를 살아내는 치열한 모습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에게 독자는 어떤 존재인가?

20대부터 프로작가로 활동했지만 순탄하지는 않았다. 여러 번 문학을 그만둘 뻔했는데, 그런 고비에서 독자들을 만났다. 오도 가도 못하는 절망이 있을 때, 그 분들이 내 정신적 처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말을 하면 굉장히 신기하고 용기가 많이 됐다. 나는 내 독자들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감사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은 스물여섯에 쓴 장편이다. 그래서 이 책이 추억과 징표라는 이야기도 했다. 작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과 청춘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내가 청춘을 보냈던 20세기와 21세기의 이야기로 풀어볼까 한다. 나는 철들 때부터 문학을 하고 싶었고 그 뒤에 시인이 되었고 또 소설가가 되었다.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줄 아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문학에 대해 종교 같은 자세가 있다. 내가 문학을 시작했을 때 내 선생들은 시를 쓰려거든 보리밭에서 문둥이가 애기를 잡아먹고 밤 새 우는 것처럼 써라, 하고 말했다. 그게 내가 생각한 엄중한 20세기였고, 내 청춘이자 내 문학이었다. 시가 안 돼? 그럼 가서 죄를 지어라. 나는 이렇게 배웠다. 탐미주의적 문학을 했고, 문학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더 이상 이런 것들이 먹히지 않는 사회다. 문학이 가지는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 나는 대중적인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 동안 굉장히 어려운 일이 많았다. 문단에서도 아웃사이더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작품들을 드라마화, 영화화 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만들었다. 그 무렵 머릿속으로는 다 잘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거기에서 다시 방황이 시작됐다. 케이블에서 하는 <취화선>이나 <서편제>를 보며 대성통곡을 했다. 거기 나오는 장승업이나 창하는 사람들이 다 나 같았다. 한 시대가 넘어가면서 그 안에서 예인들이 겪는 실존적 처지들에 감정이입이 됐다.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서 문예사적으로 문학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내가 생각하던 20세기는 뭐고, 20세기 예술관은 어떤 것인지,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뭐였고, 지금 이 시대는 어떤지를 공부했다. 당연히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다. 이 생각들을 정리해 적은 게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에 실린 작가의 말이다. 사실 김수영이 이야기했듯 시인이나 작가는 몸으로 돌파하는 부분이 있다. 결국 겪을 것은 다 겪고 지나가는 게 맞는 것 같다. 그 속에서 다음 걸음으로 나아가는 힘도 생긴다.

외국에서는 새로운 이론이 나와서 이전에 있던 이론이 반쯤 폐기가 되었더라도 다시 책을 찍어낼 때 그 이론을 수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에 책을 재 출간하면서 일정부분 손보기는 했지만 거의 대부분을 그대로 두었다. 대신, 뒤에 작가의 말을 덧붙인 거다. 20세기에 청춘의 한복판에서 쓴 글을 21세기에 주석을 붙이는 거다. 나름대로 내 작가적 현 주소와 비전을 그려보았다. 앞으로 나는 이 현실 속에서 인문학적 투쟁을 계속해야 할 텐데 그 때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을 보면 ‘세기말의 청춘을 보낸다는 건 여러모로 독특한 경험’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독특한 경험은 무엇인가?

나는 1970년대에 태어나서 90년대에 등단을 했다. 그때 내가 육십까지 살면 20세기에 절반을 21세기에 절반을 살다가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독특한 경험이란 건 그 이야기다. 그런데 농담같이 한 생각이 이제 와서 이렇게 끔찍한 화두가 될 줄 몰랐다. 나는 20세기 작가로 21세기를 살아야 하는 거다. 이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가끔 나에게 광대의 시간만 남은 건 아닌가 겁이 난다. 더 이상 예전 같은 문학적 태도가 존중 받을 수 없는 시대다. 모욕 받을 일만 많다. 천국도 지옥도 아닌 일종의 연옥적 체험을 하게 된다.

20년 전, 인터뷰에서 지네처럼 여러 마디를 가진 작가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 바람은 이루어졌나.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보니 결국 그게 내가 된 것 같다. 주역에서도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해서 시스템을 알게 되면, 그것이 지속될 거라는 이야기를 한다. 옛날에 했던 생각을 또 하지 않고 기조는 유지하되 전형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그 부분은 나 스스로도 자부한다. 사실 사람이 편하면 계속 그 길로 가기 때문에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는 한 잘 변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변해왔다.

매 작품마다 충격적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꾸준한 변화에서 작가가 놓치지 않고 가지고 가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

20세기 작가로서의 자존심과 작업방식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거다. 그건 앞으로도 어기지 않을 거다. 적어도 책을 쓰는 일에서만큼은. 21세기를 사는 20세기 작가로서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대해 내 정체성을 가지고 쓰자, 하는 거다. 최근작 『내 연애의 모든 것』을 보면 겉은 로맨틱 코미디지만 구조는 20세기적인 틀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내 독자들은 내가 누아르를 써도, 로맨틱코미디를 써도 그 겉모습이 다를 뿐 그게 다가 아니란 걸 알고 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신명을 다한다, 가 있겠다.

최근작을 보면 이야기와 인물들이 연결되는 연작소설의 느낌이 있다. 앞으로도 이런 작업을 계속 할 생각인가?

연작소설집을 준비하고 있다. 이응준이 쓴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어떤 걸까 생각하며 썼다. 앞으로도 한동안 연작소설집을 내볼까, 하고 있다. 불교의 연기론 같은 걸 공부하며 대입도 해봤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변하는 거에 중독된 사람이다. 그렇게 살아와서 몸에 익숙해져 있다. 앞으로 한동안 연작소설을 만나게 될 거다.

시, 소설, 영화, 드라마 대본 등 다양한 작업을 하신다. 이것들이 작가 안에서 어떻게 포지셔닝 되어 있는가?

얼마 전, 시인 함성호 씨가 ‘시 쓰는 건 참 멋있는 거 같아’고 말하더라. 같은 생각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시를 써서 다른 것들을 제어한다. 나눠주기도 하고 갔다가 돌아오기도 한다. 다른 것들의 에너지원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 하고 싶은 건 연출을 하는 거다. 영화 연출이나 대본을 쓰는 건 생계유지를 위해서도 이기도 하다. 그 부분에서는 상업예술을 해보고 싶다. 또 스타일 자체가 아주 불온한 소설도 내보고 싶다. 아주 큰 행운은 바라지 않는다. 그냥 글 쓰는 사람으로 적당한 품위를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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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 이응준 저 | 시공사
신하균, 이민정 주연의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의 동명 원작소설과 통일 이후 암울한 근미래의 서울을 누아르적 색채로 그려내 호평을 얻은 《국가의 사생활》의 작가 이응준의 첫 번째 장편소설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이 다시 출간되었다.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은 작가 이응준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상처 같은 작품이다. 아물고 난 후에도 줄곧 어루만지게 되는. 때로는 그 흉터로 인해 내가 존재함을 느낄 수 있는. 그리고 영상화가 소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풍족한 미래가 된 지금에도 여전히 밑줄을 긋고 구절을 암송하는 즐거움을 주는 미덕을 지닌 보기 드문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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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정연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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