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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책을 읽어야 인생이 바뀔까 - 정여울 『마음의 서재』

읽어야 할 책보다 읽은 책으로 만드는 ‘마음의 서재’ 책에 대해 수다를 나눌 벗이 있다는 것의 중요성 스스로 공부하는 ‘셀프 아카데미’를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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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8일, 서울 KT&G 서대문타워에서 열린 『마음의 서재』 출간 기념 저자강연회. 문학평론가 정여울은 남의 서재에 휘둘려 읽을 책의 강박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이 읽은 책으로 마음의 서재를 만들 것을 권했다. 그리고 서재의 책을 꺼내 다른 사람과 수다를 떨라고 강조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에게나 서재가 있다. 작거나 크거나, 물리적이거나 아니거나. 특히 요즘, 서재는 일종의 로망이다. 유명인들의 책 목록이나 실재 서재를 보여주는 ‘OOO의 서재’. 평범한 우리는 그것에 때론 혹하거나 압도당한다. 나도 서재를 갖고 싶다. 나도 저 책을 읽고 싶다. 서재의 유행은 한편으로 읽어야할 책의 강박이자 채워 넣고 싶은 책을 향한 수집가적 욕망을 닮은 듯도 하다.

지금 회자되는 많은 (물리적인) 서재들은 사회적 욕망의 산실에 가까운 듯 보인다. 가장의 사실(私室)임에도 굳이 ‘서재’라고 부른다. 서재를 소유했다는 것에 대한 상징성 때문이다. 정보와 지식이 권력과 경제자본으로 환원되는 사회에서 서재는 곧 권력과 경제력을 소유했다는 것과 같은 말로 때론 작동한다. 간혹 서재라는 풍경 앞에서 책보다 돈 냄새를 맡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그렇다면 평범한 우리는 영영 서재를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아니다. 마음 곳곳에 심어둔 책들이 꽂힌 서재가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은 『마음의 서재』 출간기념 저자강연회에서 “남의 서재에 휘둘려 읽을 책의 강박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이 읽은 책으로 마음의 서재를 만들 것”을 권했다. 그리고 서재의 책을 꺼내 다른 사람과 수다를 떨라고 강조했다. 이때, (책의) 정보는 지식이 되며, 이 지식을 바탕으로 실천할 때 지혜가 된다. 정보에서 지혜로 가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과 만나는 기쁨은 물론 덤이다.

“얼마 전 문득 깨달았다. 내겐 ‘앞으로 읽어야 할 수많은 책들의 목록’ 때문에 ‘이미 읽은 책들이 놓일 마음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나는 잠시 새로운 책에 대한 조바심을 내려놓고 오직 내가 읽은 책들로만 이루어진 작고 아름다운 마음의 도서관을 가꾸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읽어 가지는 것’이 아니라 ‘퍼뜨려 나누는 것’이니까.”(p.11~12)


읽은 책을 정리하는 법, 마음의 서재

우리는 왜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남과 이야기를 나눌까. 어느 날, 정여울은 그 좋아하던 독서에서 위기를 느꼈다. 읽은 책인데, 기억이 나지 않은 것. 아뿔싸. 읽은 책을 정리하지 않은 탓이었다. 읽은 책을 돌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늘, 읽은 책보다 읽어야 할 책이 많았던 불편한 진실. 읽어야한다는 의무감에 쫓겨 책읽기의 즐거움을 뺏긴 셈이었다. 원인을 분석하건대, 남과 이야기를 하면서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았다.

“몸은 그렇게 기억을 저장한다. 기억하라고 리와인드 해주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수다를 떨고 블로그 등에 이야기해야 한다. 자기만의 글쓰기를 통해 남겨두는 작업이 필요하다. 책이 삶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읽어야 할 책이 아닌 읽은 책을 마음의 서재에 정리하고, 나만의 비평을 해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을 어떻게 바꾸고,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나만의 언어로 적어둬야 한다. 내 마음에 어떤 서재가 있는지가 그래서 중요하다.”

그는 그래서 정리를 시작했다. 자신이 제일 못하는 것이 정리였지만, 마음의 서재는 달랐다. 정리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정여울은 정보가 지식이 되고, 지식이 지혜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친구를 꼽았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 수 있는 벗. 친한 친구도 좋고, 친하지 않지만 책에 대한 취향이 맞는 사람도 좋단다. 일주일에 한 번, 단 1명이라도 좋으니, 이런 존재가 있다면 책읽기가 단순히 정보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수많은 책을 읽어도 공허한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책을 너무 정보로만 다루기 때문이다!


함께 이야기하기의 중요성

정여울, 최근 자신의 마음의 서재에 꼽아둔 두 권을 언급한다. 『백년의 지혜』 『엄마와 함께 한 마지막 북클럽』. 그는 이것들을 읽으면서 책을 읽는 자세에 대해 생각했다.

『백년의 지혜』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홀로코스트 생존자 중에 최고령자인 111세 할머니(알리스 헤르츠좀머)다. 세계 최고령 피아니스트다. 홀로코스트 때, 남편, 엄마 등이 돌아가셨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홀로코스트를 당했다. 그렇게 자기가 알고 있던 세계가 무너졌는데, 이분은 지금 미소를 지으면서 남에게 영감을 주는 삶을 살고 있다. 그 비결에 대한 책이다.”

책에는 크게 두 가지 비결이 있었다. 음악과 배움. 우선, 나치가 음악가에게 관대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2002)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알리스도 그런 혜택을 받았다. 한 병사가 곡의 연주를 요청하면서 살아남게 해주겠다고 말했고, 그녀는 살아남았다. 음악이 죽음의 행렬에서 그녀를 구했다. 배움도 알리스를 지탱한 중요한 생의 이유였다. 105~106세 때도 인근 대학의 오픈 강좌를 들었을 정도로, 배움은 알리스에게 절실한 무엇이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홀로코스트라는 트라우마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싶은데, 이분은 배움과 음악을 통해 지금 멋지게 살고 있다. 뭔가를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런 분이 누군가의 스승이 될 수 있다. 하루 4~5시간을 베토벤을 외워서 치니까 치매도 안 걸리고.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벗이 있고,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을 진정으로 살아있게 하는 힘이다.”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 북클럽, 회원은 단 두 명이다. 엄마와 아들. 평생 다양한 자원봉사를 했던 엄마가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살 수 있는 시간은 몇 달이라고 의사는 말한다. 요리사이트 운영자인 아들과 엄마, 망연자실한 상태. 어느 날, 화학치료를 기다리다가, 아들이 제안을 한다. 엄마, 기다리는 시간도 지루한데, 읽은 책에 이야기해보는 것 어떨까요.

엄마, 어릴 때부터 독서광이었다. 아들, 책을 좋아하는 문화에서 자랐다. 모자, 소설을 읽고 대화를 시작했다. 북클럽을 통해 아들은 깨달았다. 아, 나는 엄마에 대해 너무 몰랐던 것이 많았구나. 그런 와중에 6개월을 버티지 못할 거라는 말을 들었던 엄마가 1년을 버텼다. 아들, 길어진 시간만큼 헤어질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엄마 없는 세상, 상상이 안 됐었지만, 북클럽을 통해 이별연습을 하게 된 것. 두 사람 모두, 즐거운 경험이자 사랑이었다.

“이런 책은 만나지 못했던 사람과 만났다는 인상을 준다. 그게 책이 가진 힘이다. 이전엔 큰 영향을 받은 줄 몰랐는데, 어느 날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순간에 베토벤에 대한 위인전을 읽었다는 생각이 났다. 책의 삽화까지 기억났다. 몇 십 년이 지났는데도 무의식에 저장이 돼 있었던 거지. 보통 위인전은 영웅성을 강조한다. 베토벤에게 영웅적인 이야기는 없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 받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인간이 고통 속에서 어떻게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는지, 어린 시절부터 영감과 용기를 줬던 것 같다. 베토벤을 좋아한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살다보니 잘 모르면서도 좋아했던 존재가 베토벤임을 알았다.”

말인즉슨, 의식만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도 독서를 한다. 읽었음을 잊을지라도, 마음 깊은 곳에 영향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 책이다. 아이에게 어릴 때 책을 읽어주는 것, 중요한 이유다. 정여울은 아동심리학자들이 양육자가 책을 읽어준 아이는 의식으로는 기억을 못해도, 커서 더 좋은 인성을 갖고 독해력이나 책을 쓰는 능력, 정보를 소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낭독을 통해 아이는 무의식속에 엄마의 목소리, 품 등을 심어놓는다. 도정일 교수는 죽기 직전까지 창조력이 왕성하게 살았던 괴테의 비범함의 비밀 중 하나를 칼럼을 통해 까발린 적이 있다. 어머니의 이야기 들려주기.

도 교수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아들이 반응하고 그 반응에 어머니가 반응함으로써 화자와 청자는 서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자극 받는다. 이 자극은 이야기 지어내기를 즐거운 일이게 한다. 밤하늘의 별과 별 사이를 즐겁게 나는 상상력은 또 별과 인간을 잇고, 지상의 별들인 사람과 사람의 가슴 사이에, 사람과 개구리 사이에 길을 놓는다. 이야기는 단순 오락이 아니다. 그것은 상호 교감이며 길 놓기이고 연결하기이다. 이 연결의 능력이 상상력이다.”

정여울은 이어 ‘세미나 뒤풀이’의 중요성을 환기했다. 그가 보기에 요즘, 스터디는 많이 하지만, 세미나는 덜 한다. 스터디는 정보 획득을 위한 기계적인 활동으로, 목적이 뚜렷하므로 즐겁기는 어렵다. 반면, 세미나에서는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누군가 발제를 하고, 질문과 문제제기를 통해 텍스트를 다양한 시각으로 탐사할 수 있는 것이 세미나의 장점. 그는 특히 욕과 질투, 비난이 난무하는 뒤풀이가 세미나의 정수라고 강조했다.

“과거 고리키의 『어머니』 같은 소설도 불온서적이었다. 학부생들이 러시아어를 배워서 번역하며 읽었다고 한다. 그리 어렵게 배웠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었겠나. 요즘은 지식을 얻기는 쉬워졌으나 지식을 사랑하기엔 더 어려워졌다. 뒤풀이도 제대로 안 하고. 그러면서 세미나가 점점 스터디화 되고 있다. 정보를 기계적으로 얻는 것으로 끝나고. 그러면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욕심도 커졌다. 많이 읽지만 지식을 통한 몸의 기쁨을 느끼기는 어려워졌다.”




자기표현과 PR은 다르다

정여울이 보기에 자기표현과 PR은 다르다. PR은 SNS 등을 통해 스스로를 광고의 대상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자기표현은 이보다 더 크다. 자신의 고통, 부끄러움, 보여주기 싫은 것까지 보여준다. 그것이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자기표현은 선과 악을 통합하는 것이며, 내 안의 어둠도 보여주는 것이다. 내 안의 어둠을 통해 배우기도 한다.

조셉 캠벨의 이야기가 따른다. 캠벨, 영웅을 정의했다. 그가 정의한 영웅의 본질은 힘든 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고 내 일이 아닌데도 누군가가 힘들거나 고통에 떨고 있으면 자비, 연민 때문에 잠 못 이룬다. 다른 사람의 삶에 끼어들지 않아도 되는데, 스스로 위험해질 것을 감수하며 도와주려는 마음이다. 캠벨은 그것을 영웅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캠벨의 눈에 비친 영웅은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처럼 초인적인 육체적 힘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내 일’이 아닌데도 굳이 타인의 삶에 끼어들어 타인의 아픔을 곧 자신의 인생으로 역전시켜버리는 자비로 완성되는 것이다.… 캠벨에게 영웅의 자비란 곧 타인의 슬픔에 기꺼이 참여하는 용기를 의미했다.”(p.262)
『신화의 힘』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자비라는 말이 쉬운 말은 아니다. 대개 많이 헷갈리는 게 ‘연민(sympathy’)과 ‘공감(empathy)’이다. 연민은 미디어 등을 통해 강조된다. 나보다 힘든 사람에게 느끼는 안타까움이다. ARS를 눌러 돈을 내게 만든다. 자선은 원래 좋은 것인데, 지금은 연예인이나 대기업이 자신의 입지를 넓히거나 잘못을 가리기 위한 것으로 변질됐다. 연민은 남을 나보다 낮게 봐서 생기는 감정이다. 함께 더 나은 삶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빚쟁이로 만든다. 좋은 감정으로 시작하지만,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감정이다. 그러나 동감은 더 깊은 감정이다.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같이 있다는 느낌을 가지는 것. 남을 하대하는 감정이 아니다.”

정여울은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 대해 언급한다. 이 책에 의하면,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이 규격화돼 있다. 고통의 이미지에 익숙해져서 고통 자체는 생각하지 않는 것. 즉, 배고픈 사람을 떠올리면 소말리아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전쟁하면 베트남, 6?25 사진이 떠오르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아닌 전쟁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는 곧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신체를 만든다는 것이 수잔 손택의 주장이다.

결국 이것은 미디어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정여울은 이라크전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미디어가 이라크전을 다룬 방식은 게임 방식이었다. 충격과 공포. 새벽에 빛으로 공격을 표현했다. 끔찍한 죽음이 자행되고 있는데도, 게임에서 포탄을 떨어트렸을 때의 영상으로 체험하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곧 미국의 속셈이었다. 미국 말을 듣지 않으면 이라크처럼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엄포용이었던 셈이다.

“지식이 내 안에서 발효 숙성되면서 지혜의 별자리가 되고, 그런 별자리를 그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의 서재』다. 책을 많이 읽으면 겹쳐 읽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그런 책이 생긴다. 『타인의 고통』『신화의 힘』과 함께, 『이기적 유전자』『눈먼 시계공』과 같이 읽으면 좋다. 하나의 책만 읽으면 평면적인데, 다른 책과 함께 읽으면 마음의 서재가 풍부해질 수 있다.”


마음의 서재

정여울이 ‘마음의 서재’를 상상하고 된 계기는 한 재소자 독자의 편지였다. 그것은 서문 ‘무슨 책을 읽어야 인생이 바뀔까’에 잘 나와 있다. 또 책을 최대한 펼쳐보지 않고 얼마만큼 안 보고 쓸 수 있는가를 실험했다. 고스란히 자신의 마음에 남아 있는 내용을 쓰고 싶었다. 꼭 필요한 인용문이 아니면 책을 다시 열지 않았다. 그리고 말한다. 마음에 진짜 남는 책은 얼마가 지나도, 써보면 안다고. 문신처럼 강렬히 남아서 10년이 지나도 할 말이 남아 있다.

“한 번 망각을 해야 한다. 읽었던 기억은 남아 있지만, 오랫동안 처박아 놨다가 다시 떠오르면 이것을 쓸 수 있는 것 같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문장으로 메모해 놔야 한다. 3년 뒤 다시 읽으면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이해되기도 한다. 3년 동안 조금씩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 다른 지식의 도움을 받아 이해가 되고, 두 번째 읽으면서 메모를 하면 더 훌륭하고 성숙한 글이 된다. 이걸 이용해야 독서의 시차를 글쓰기에 이용할 수 있다. 책을 덮어두고 한참 있다가 써야 한다. 신간 서평이 어려운 것이 이걸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셀프 아카데미를 열어라!

정여울은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를 통해 법으로 통제할 수 없는 무엇이 있음을 말하고,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언급한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한다. 아렌트는 이 책을 통해 히틀러에게 반기를 들지 못하고 따라간 평범한 사람들 또한 나쁘다고 주장했다. 즉, 악이 대단한 것에서 나온 게 아닌 윗사람이 시켜서라거나 자기 소관이 아니라는 책임회피에서 나온다고 봤다. ‘악의 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 곧 ‘악의 화신’일 수도 있음을 아렌트는 지적했다. 그것은 또한 신자유주의나 자본의 충직하고 충실한 하수인인 우리의 자화상이다.

정여울이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마음속 ‘셀프 아카데미’다. 물론 그가 보기에도 직장(직업)을 얻기 위한 공부가 아닌 공부를 통해 글을 쓰거나 새로운 앎을 추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 쉬운 일은 아니다. 그에게 진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더 이상 학생이 아닐 때였다. 박사과정을 끝내고 허탈감이 밀려왔다. 다 끝났는데, 살 길은 막막하고, 실용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미친 듯이 아르바이트를 해도 공허감은 채워지지 않았다. 왜 공부를 했는지를 첫 마음을 잊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은 셀프 아카데미를 여는 수밖에 없더라. 스스로 과목도 만들었다. 가장 하고 싶은 과목이 ‘남에게 상처를 받지 않는 방법’ ‘잘 이별하는 방법’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원하지 않는 것을 견디는 방법’과 같은 것이었다. 삶에서 정말 필요한데, 배울 곳이 없는 미묘한 지점들이었다. 그럴 때, 멘토가 되어준 어떤 책들이 떠올랐다. 그 책들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신화와 관련된 책들이었다. 사 놓고 읽지 않은 책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언젠가 그런 책들이 내게 말을 걸고 더 큰 폭발력을 가진다. 그때 처음 읽은 게 『신화의 힘』이었다. 그날 날밤을 새면서 읽고 울기도 하고, 가슴 속에 응어리가 씻겨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책이 진짜 내 책이 되려면 내적인 계기가 필요하다.”

그는 셀프 아카데미를 열면서 마음의 전공을 찾았다. ‘신화’라는 과목이 그때 그랬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다. 평생 공부해도 지겹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해서 그렇게 기분 좋았던 적이 어릴 때 이후 처음이었다. 나에게 소중한 것이 뭔지를 일깨워주고 내면의 삶을 돌보게 한 계기가 셀프아카데미였다. 그는 이제 안다. ‘마음의 서재’를 돌보는 것이 권장도서 100권보다 훨씬 좋다는 것을.

“우리는 서가를 채우기만 했는데, 책꽂이를 하나 비우면 좋겠다. 내가 좋아했던, 읽은 책으로 채워보라. 연대별로 하면 좋다. 그러면 내 삶이 책들의 앨범으로 드러나고 잃어버린 시간이 찾아온다. 망각했던 기억을 조립하면 잃어버린 조각이 뭔지 알 수 있다. 한때 열정을 쏟았다가 현실적인 조건 때문에 철회했던 것들이 있거든. 그런 것들이 되돌아오면서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것을 성숙하게 지속할 수 있는 시간이 온다. 일단 비우고 천천히 이미 읽은 책들을 좀 더 돌봐야 한다. 기억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돌봐야 한다. 그러면 생각이 깊어진다. 읽은 책을 또 읽는 것이 좋은 독서의 체험이자 지식이 지혜로 승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런 생각으로 자기만의 아카데미를 가꾸면 좋을 것 같다. 우리의 삶이 계속 치매에 걸리지 않고 배움을 유지할 수 있는 내 마음속의 전공을 찾는 것이 ‘내 마음의 서재’다.”

“진정한 교양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기쁨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교양은 학교나 사교계 같은 집단의 요구가 아닌 자기 내부의 열망으로부터 시작되는 마음속의 셀프 아카데미를 필요로 한다. ‘무엇을 암기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 방면의 지식이 ‘왜 필요한가’를 깨닫는 순간이 우리 안의 셀프 아카데미가 활짝 문을 여는 순간이다.”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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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서재 정여울 저 | 천년의상상
저자 정여울은 문학평론가다. 당장 ‘세계문학 필독서’라도 권해올 듯하지만, 오히려 ‘목록’에 기죽지 말라는 메시지부터 던진다. 남이 작성한 목록에만 의존하다가는 ‘타인의 목록’을 서재에 구비하게 될 뿐, 자신이 평생을 함께 할 내 ‘마음의 목록’은 절대 꾸릴 수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좋은 책’ 자체가 아니라 그런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과 책을 고르는 과정에 있다는 말은 작지만 큰 울림을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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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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