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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철학자 윤구병 “아이들의 거짓말은 좋은 측면이 있다”

『철학을 다시 쓴다』 모든 생명체의 가장 아름다운 꽃은 자율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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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 동화작가가 ‘농부철학자 윤구병의 철학을 다시 쓴다: 있음과 없음에서 함과 됨까지’라는 주제로 독자들과 만났다. 좋은 세상을 앞당기기 위한 철학 강의, 좋은 세상을 꿈꾸는 시간이었다. 없어야 할 것이 없고, 있어야 할 것이 있는 그런 세상. 당신에게 묻는다.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어떤 사회의 한쪽에는 소중한 음식이 무더기로 버려지거나 썩어나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는 끼닛거리를 마련하지 못하여 굶주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회는 나쁜 사회고 죄 많은 사회입니다.”(p.169)



윤구병과 보리출판사

윤구병 동화작가는 ‘농부철학자’다. 대학교의 철학교수였지만, 그 말인즉슨, 안락하고 보장된 자리를 박차고 나와 전라도 변산에 둥지를 튼 농사꾼이 되었다. 농부철학자는 그렇게 나온 것인 셈이다.

“아버지가 부지런하고 고지식하고 성실한 농사꾼이셨어요. 다만 상상력은 없는 분이셨나 봅니다. 아이들이 태어나는 차례대로 일련번호를 붙였어요. ‘병’은 항렬자고요. 일병, 이병, 삼병... 그렇게 일련번호를 붙이다가, 설마 아들만 아홉 명 낳으리라곤 생각지 못하셨나봅니다. 내가 아홉째로 태어난 막내아들, 구병입니다. 궁금하긴 해요. 하나 더 낳았으면 뭐라 붙이셨을까. (웃음) 내 나이는 마흔 셋, 43년생, 일흔 한 살입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말, 일흔 살까지 살아남기가 예로부터 드물다는 말인데, 여지까지 살아있으니 여기서 목숨을 거둬도 자연사입니다. 당황하지 마세요(웃음).”

『철학을 다시 쓴다』를 낸 보리출판사는 1988년 9월 문을 열었다. 25년의 역사를 자랑하나, 펴낸 책은 300종이 안 된다고 한다. 아니, 큰 출판사는 한 해 동안 500종 이상 만드는 곳도 있는데, 25년 동안 300종이 안 된다니. 규모에 비해 출간한 책이 적다고 여길 만도 하다.

“책을 많이 내지 않은 까닭은, 처음부터 보리 식구들이 나무 한 그릇을 벨 가치가 있는지 꼼꼼하게 따져서 책을 내자고 약속했습니다. 나무와 우리는 보통 사이가 아니에요. 사랑하는 사이보다 더 가까운 사이입니다. 생명을 우리말로 ‘목숨’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내쉰 이산화탄소를 나무가 들이마시고, 나무가 내쉬는 산소를 우리가 마셔서 몸을 놀리고 머리도 써요. 즉, 나무와 우리는 목숨을 주고받고 나누는 사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꼼꼼히 잘 생각해서 꼭 필요한 책인지 생각해서 만들자. 한 번 만들면, 책을 읽은 사람이 나무 열 그릇 백 그릇을 심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고 생각해서 책을 만듭니다.”

변산에서 농사를 짓고 있어야할 농사꾼이 그렇다면 왜 보리의 대표를 맡아 출판사 경영에 힘을 쏟고 있는 걸까? 지금의 출판계, 매우 어렵다. 동네 서점은 이젠 찾아보기도 힘들다. 군 단위에도 서점이 없는 경우도 있다. 옛날, 면 단위에도 책방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윤구병은 도서정가제의 붕괴를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많은 독자들은 더 이상 서점에서 책을 들춰보고 고르지 않는다. 가격이 저렴한 인터넷을 통해 책을 사는 것이 일상화됐다. 더디 공들여 책을 만드는 보리로서는 대형서점이나 인터넷서점에서 할인해 달라는 값으로 책을 내보낼 수가 없다.

좋은 책 만드는 보리라고 출판계 불황에서 벗어날 방도는 없었나 보다. 변산공동체 등에 재원을 마련해주는 보리가 어렵다보니, 농사짓는 윤구병을 끌어 모셨다. 윤구병 작가, 보리의 대표로 4년째이나, ‘장사의 신’이 아닌 이상 쉽지가 않다. “나라고 별 수 있나요? 해마다 형편이 나빠져요.(웃음)” 역시나 보리가 후원하고 있는 서교동의 재단법인 민족의학연구원의 이야기도 따른다. 민족의학연구원은 동의보감처럼 우리에게 맞는 의학을 집대성한 책을 쓰고 있다. 동의보감, 허준(許浚)이 지은 25권 25책의 의서(醫書)로 1613년 간행됐다.

“지금, 허준이 동의보감 만들어 낸지 4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400년 동안 아무도 의학 관련 집대성한 책을 엮어낼 생각을 안 하고 있어요. 의료백과대전서를 만들려면 중국, 북녘, 일본의 임상경험이 필요하고, 의료관계자들이 자유롭게 만나 교류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으면 민간 교류가 불가능합니다. 민족의학연구원이 애를 썼는데 잘 안 됐어요. ‘동의본초도감’을 편찬 작업을 하고 있는데, 7년 동안 못 나오고 있어요.”

대신 ‘약손문고’라는 이름으로 민족의학연구원은 『약 안 쓰고 병 고치기』 『손 주물러 병 고치기』 『발 주물러 병 고치기』 『고루 먹고 병 고치기』 같은 책을 내고 있다. 그러나 동의보감 출간 400주년. 정부나 의학계 차원의 지원은 여전히 없다. 보리출판사에서 건물을 기증하고, ‘동의본초도감’ 편찬을 위해서 적잖은 재원을 뒷받침했지만,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킨다는 큰소리 뻥뻥 치는 이들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공공의료기관인 진주의료원을 폐쇄하고, 돈벌이가 목적인 병원 설립을 위해 드잡이를 하며, ‘의료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외국인 섭외에만 힘을 쏟는 이들.

그렇다고 보리가 죽을 순 없다. 『보리국어사전』. 보리의 가장 큰 효자입니다. 글만 가다듬는데 7년 이상 걸리고, 20억 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된. 고은 선생님이 『보리국어사전』을 보고, 이런 말을 했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사전을 봤는데, 어린이를 위해 이만큼 좋은 사전을 본 적이 없다. 이런 사전을 만든 것은 자랑할 만하다.” <개똥이네 놀이터> 또한 보리의 자랑거리다. 유일하게 명맥을 잇고 있는 어린이잡지로 많은 아이와 부모의 호응을 받고 있다.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지요. 실은, 이게 평소에 알고 있는 뜻이 아닙니다. 옛날엔 남자형제나 여자자매나 똑같이 먼저 태어난 사람을 언니라고 불렀어요. 남자들도 서울에선 언니라고 불렀고요. 형은 중국에서 들어온 말입니다. 뒤에 태어난 사람은 아우고요. 언니와 아우. ‘어’가 먼저고, ‘아’가 다음이죠. ‘지금’은 우리말로 ‘이제’고, 어제는 우리말입니다. 내일의 우리말은 없어졌는데, 아제였습니다. 어는 앞선 것, 아는 뒤의 것예요. 엄마와 아이도 마찬가지죠. ‘어’는 지난 날, ‘아’는 올 날을 가리킵니다. 우리말이 굉장히 뜻이 깊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물은 맑고, 불은 밝고, 바람은 부는 것입니다. 이름씨(명사)와 움직씨(동사), 그림씨(형용사)가 같은 소리, 하나의 말에서 흘러나옵니다. 우리 민족은 이런 점에서 아주 좋은 언어를 물려받았어요.”(p.66)
아이와 어른의 ‘거짓말’을 두고 이야기를 푼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거짓말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며, 아이들의 거짓말은 좋은 측면이 있다고 윤 선생님 말한다. 아이가 그런 거짓말을 안 하게 하려면 부모가 혼내지 말아야 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아이들, 필요 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나 양육자, 즉 어른은 반대에 가깝다. 쓸데 있는 말을 되레 별로 안 한다. 아이들이 혼날까봐 거짓말을 하는 건, 순전히 어른들 탓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멀쩡하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상상하는 것이다. 엄마를 놀리려고 하는 거짓말, 아주 좋은 것이다. 그런 경우, 상상력을 북돋고 창조성으로 이어진다. 그런 것, 좋은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 때 거짓말, 참말이라고 할까.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면 그 사람을 믿지 못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서로 돕고 나누고 살기 위해서는 서로를 믿어야 한다. 믿음을 주고, 믿게 하려면 필요한 것은? ‘참말’이다. 참말이 아닌 어떨 때 거짓말이라고 하는지, 윤구병 작가가 말을 건넨다.

“‘있는 것을 있다’ 그러고 ‘없는 것을 없다’ 그러면 참말이고, ‘없는 것을 있다’고 하거나 ‘있는 것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무엇이 아닌 것을 이라고 하거나, 인 것을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이건 세 살 배기 아이나 까막눈 어르신도 알아듣습니다. 이런 쉬운 말로 참 거짓을 구별할 수 있어야 민주 세상이 옵니다.”

“있는 것을 있다고 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하는 것, (무엇)인 것을 이라고 하고 (무엇이)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는 게 참말이고, 있는 것을 없다고 하거나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 인 것을 아니라고, 아닌 것을 이라고 하면 거짓말이죠.”(p.7)
윤구병 작가가 한탄하는 지점은 여기서 나온다. 쉬운 말을 버리고, 힘센 나라의 말을 빌어다 우리말을 밀어낸 것. 그는 질문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존재’가 무엇이고, ‘무’가 무엇일까. 이건 잘못된 질문이다. 일상에서 쓰지 않는 헛된 질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떨 때 ‘있다’고 하고 어떨 때 ‘없다’고 그럴까요?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가 왜 중요하느냐면, 좋다는 말을 굉장히 많은 용도로 씁니다. 우리는 어떨 때 좋다, 어떨 때 나쁘다고 할까요. 선이란 무엇이냐, 악이란 무엇이냐고 하면 또 헷갈립니다.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으면 좋은 것이고, 있을 것이 없거나 없을 것이 있으면 나쁜 것입니다. 전쟁. 독재. 착취. 탐욕. 이기심. 이런 것이 있는 세상은 나쁜 세상입니다. 없을 것이죠.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없을 것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없애야 합니다.”

“참과 거짓이 쉽게 가려지고, 좋음과 나쁨이 뚜렷이 드러나면, 우리는 그때 비로소 ‘참 세상’과 ‘좋은 앞날’을 꿈꿀 수 있습니다. 이 거짓 세상을 바꾸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억압’ ‘착취’ ‘탐욕’ ‘전쟁’ ‘증오’ ‘이기심’은 모두 있는 놈들이 더 많이 가지려고 ‘힘센 나라’에서 들여온 몹쓸 것, 몹쓸 짓, 없을 것들이고, 없애야 할 것들입니다.”(p.8~9)



좋은 세상을 위해 필요한 것들

윤구병 작가에 의하면, 있을 것과 없앨 것을 가리는 것이 ‘비판의식’이다. 즉,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한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가리라고 한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훈련시켜야 하고, 훈련이 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제도교육은 그렇지 않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세상 모든 일에는 하나의 정답밖에 없다는 식으로 세뇌가 됐다. 그런 교육환경 속, 많은 우리에겐 비판의식이 없다. 있을 것과 없을 것에 대한 생각을 못한다. 오로지 돈만 많이 버는 것만이 유일한 가치인양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세상 모든 가치를 ‘경제’나 ‘돈’으로 바꿔 불러도 좋은 세상.

“좋은 것, 좋은 사람, 좋은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빠진 것, 없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p.169)
“좋은 세상을 맞이하기 위해서 자유, 평등, 공정, 우애, 관용 등이 꼭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없다면, 가꾸어 내거나 만들어내야 합니다. 여기서는 창조적인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비판의식과 창조의식이 꼭 필요해요. 이걸 막는 것이 획일적인 교육이고요. 교육의 궁극 목표는 두 개에요. 사람도 대대로 살아남아야 하니까,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하나. 사람이 머리만 굴려서 살 순 없고, 손발, 몸을 놀려야 살 수 있습니다. 손발을 놀린다는 것은 손과 발을 놀게 한다는 것이에요. 다른 말로 열심히 일한다는 말이죠. 어렸을 때 많이 놀게 하세요. 머리 굴리게 하지 말고. 사람은 혼자서만 부지런히 손발, 몸 놀린다고 앞가림할 수 있는 생명체는 아니에요. 서로 도와야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체죠. 교육의 궁극 목표 나머지 하나는 서로 도우면서 살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만 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른다고 윤구병 작가는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 이런 목표에 충실했을까? 문제는 그것이다. 하면 된다는 말. 한국의 대통령직을 지낸 박정희가 무척 많이 했던 말이다. ‘나를 따르라’는 말도 빠지지 않았다. 혼자 다하고 나머지 다 따라서 하라고 하면, 과연 좋아했을까? 누군가는 죽을 맛이지 않았을까?

“모든 생명체의 가장 아름다운 꽃은 자율성이에요. 길에서 밟히는 질경이도 누가 옆에서 싹 트고 꽃 펴야 한다고 강제해서 싹 트고 꽃피지 않아요. 스스로 그러하니까. 우리는 그것을 자연이라고 합니다. 하는 것도 되는 것도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하고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아이를 그렇게 자라게 하고 있나요? 어린 시절 행복을 맛보지 못하면 자라서도 행복을 맛보지 못해요. 요즘 부모는 아이를 분 단위로 통제를 합니다. 끝까지 살아서 지켜주지도 못할 거면서. 통제하고 간섭하면 생명력은 점점 힘을 잃어요.”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

윤구병 작가는 인디언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인류가 지구상에 산 이후로 한 집단으로서 가장 제대로 살았던 종족이 아메리카 인디언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삶과 세계를 망가트린 것은 얼굴 하얀 사람들이었다. 인디언들을 몹쓸 곳으로 몰아넣고는 보호구역이라고 지칭했다. 인디언을 보호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자율학습’과 다르지 않았다. 타율학습임에도, 말만 그럴 듯하게 해서 아이들을 좀비처럼 바꿨다. 한참 손발 몸을 놀려야 할 때, 우리는 의자에 앉혀 머리만 굴리게 하는 교육을, 즉 사육했다.

“변산공동체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걔네들 공부는 노는 것이에요. 놀면서 삶에 꼭 필요한 것을 재미나게 익히도록 하는 교육을 받고 있어요. 제도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가난한 학생들을 받아들이는데, 학비, 기숙사비 일체 없어요. 이 아이들이 하루에 머리 굴리는 시간은 3시간이에요. 국어, 역사를 필수로, 나머지 과목은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과목이 또 있으면 변산공동체 식구들이 재능기부를 하고요. 나머지 시간은 몸과 손발을 놀려서 산살림, 들살림, 갯살림은 물론 목공, 도예, 천연염색, 풍물과 탈춤, 해동검도 등을 배웁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 이곳은 어른들이 키우지 않는다. 아이들 스스로 왜,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를 아는 자발성이 뒷받침되면 무섭게 빠른 속도로 공부를 하면서 대학을 간다고 한다. 그것은 타인의 삶을 살지 않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다. 남이 아닌 온전한 나의 삶. 변산공동체의 아이들이 스스로 자랄 수 있는 이유인 듯하다.

“삶에서 정답이 하나뿐인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시험은 정답이 하나에요. 그러니 쉬울 수밖에요.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목적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 학교의 아이들은 제도교육기관의 아이들과 달리 대학에 가려면 1년 재수를 해야 해요. 그런데 일평생 우리는 공부를 해요. 1년은 대수롭지 않은 거죠(웃음).”

변산공동체에는 막걸리동호회가 있다. 고등학생도 어른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기도 한다. 아이들은 가끔 토론을 한다. 토론을 위해 변산공동체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 이런 토론, 굉장히 활성화돼 있다.

“전 국민의 의식이 획일화되길 바라는 사람은 박정희 같은 사람들이에요. 시키는 대로 하니까요. 그러면 시키는 사람이 바라는 대로 됩니다. 이것이 있음과 없음, 함과 됨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때 느꼈던 행복과 뿌듯한 마음을 되살려 남에게 하고 싶은 일을 시키지 않으면 좋겠어요. 통제가 꼭 불필요한 건 아니에요. 자연은 사람을 무섭게 통제합니다. 이 시기에 씨를 뿌리라고 하면서, 씨 뿌릴래, 굶어죽을래, 하면서. 자연은 무섭게 다그쳐요. 시기를 늦춰서 파종하거나 철을 놓치면 안 됩니다. 살아남으려면 자연의 말을 들어야 하죠. 통제를 해서 아이의 좋은 삶에 연결된다면 해야 하지만, 나머지는 자율적으로 하도록 내버려 둬야 합니다. 그것이 아이가 제대로 공부하고 일하고 살 길을 찾는 방법이에요.”




농부철학자에게 묻고 답을 구하다

성인도 변산공동체에 들어갈 수 있나요?

도시에서 자란 사람은, ‘철없는’ 사람들이에요. 사람을 철들고 철나게 하는 것은 자연입니다. 사람들끼리 아무리 찧고 빻아도, 거룩한 말을 주고받아도 철나지 않습니다. 자연으로부터 못 배워서 철이 안 든 거죠. 성인도 (변산공동체에) 오세요.

아이가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도 있는 것 같아요. 며칠 전 깜짝 놀랄만한 일이 있었는데요. 1학년 자녀의 공개수업을 갔더니, 교사가 발표할 때 왼손이 아닌 오른손만 들라는 거예요. 어떻게 그런 걸 시킬 수 있는지 너무 놀랐어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큰 어려움이고 비극입니다. 농사도 못 짓는데 시골 가봐야 살 수도 없고.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천혜의 국가죠. 아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 때만 살 길이 나타납니다. 이 아이들이 주말이라도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도록 해줘야 합니다. 그것을 하려면 연대를 해야 해요. 부모들끼리 모여서 주말이면 어느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놀아주도록 해주세요. 우리 산천은 도시에서 30분만 나가도 자연이 나옵니다. 그렇게 해서 행복할 길이 있습니다. 연대만 되면 부모는 2~3개월에 한 번 아이들을 데리고 들판에 나가면 되고, 나머지 부모는 둘이서만 지낼 수 있고,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 잔소리 안 들으니 얼마나 좋아요(웃음). 혼자 해결은 안 됩니다. 연대를 해야 합니다.

혁신학교의 교육에 힌트를 주고 변산공동체 프로그램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충남에 ‘거산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폐교 직전까지 갔었던 학교였는데, 선생과 학부모가 함께 머리를 짜서 학교를 바꾸기 시작했어요. 텃밭을 가꾸고, 운영위원회도 점령하고. 그리고 아이들에게 하루에 머리 굴리는 시간을 3시간이상 하지 말라고 하고, 풍물과 탈춤도 가르쳤습니다. 학교만이 유일하게 그것을 할 수 있어요. 아이들도 스스로 자라고, 열매 맺는 것을 보도록 해야 합니다. 혼자 투덜거리지 말고 거산 초등학교에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가서 견학도 하고 행동에 옮기세요. 학교를 점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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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다시 쓴다 윤구병 저 | 보리
이 책은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는 ‘좋은 세상’을 앞당기기 위한 농부철학자 윤구병의 철학 강의를 담았습니다. 학생들과 주고받는 대화체로 진행되는 이 책에서는, ‘있음과 없음’, ‘함과 됨’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철학 문제를 두고 끝까지 왜냐고 따지고 묻는 치밀한 논증이 펼쳐집니다. ‘있음과 없음’은 무엇이고 ‘함과 됨’은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문제가 좋은 세상 만들기와 어떻게 잇닿을 수 있는지를, 우리 현실과 맞닿는 철학 이론으로 풀어냈습니다. 윤구병 선생의 삶과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과 함께,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두루 만날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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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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