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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손가락 깨물면 더 아픈 손가락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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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세상이 바뀌면서 한 번 헤어지면 부모도 자식을 더 이상 찾지 않고, 자식도 부모를 더 이상 찾게 않게 되는 해체가족이 늘어나고 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옳지 않은 것인지 점점 알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간다. 가족의 신화는 깨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족을 포기할 수도 없지 않은가.

[출처: //www.morguefile.com/archive/display/178352 by kamuelaboy]

외동딸을 위해서 둘째를 계획한 우울증 환자가 있었다. 딸의 표정이 어둡고 허전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아이가 허전함을 느낀 것은 어머니의 우울증으로 인해서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동생이 생기면 마음의 공허함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동생이 생기면 그나마 부족한 관심을 나눠야 하니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어머니는 둘째를 임신하는 내내 힘들어했고 그런 엄마의 투정을 딸이 받아내야 했다. 환자는 아들을 낳았다. 산후 우울증 때문에 한동안 힘들었지만 우울증에서 회복되면서 무엇을 하든 아들이 하면 웃으며 좋아해주었다. 우울증이 나으면서 아들이 더욱 귀엽게 느껴진 것인데 어머니는 아들이 우울증을 낫게 해줬다고 생각하면서 아들에 대한 의존도가 더 커졌던 것이다. 자신에게는 보여준 적이 없는 따뜻한 태도로 동생을 대하는 엄마를 보며 딸은 마음이 아팠다. 동생을 돌보느라 바빠진 엄마는 계속 딸에게 잔심부름을 시켰고 딸이 징징대는 동생에게 짜증 어린 표정이라도 지으면 야단을 쳤다. 하지만 자신은 첫째 딸과 둘째 아들을 똑같이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일은 비단 이 환자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생각보다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부모는 자식을 똑같이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식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이에 부모는 자식이 오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1/n로 똑같이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공부를 잘하든 운동을 잘하든 예쁜 짓을 하든, 뭐가 되었든 부모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를 더 좋아하기 마련이다. 부모는 자식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랑한다고 하지만 자식의 입장에서 그 다름은 차이가 아닌 차별일 뿐이다. 그리고 부모가 자식을 다르게 대하는 것은 주관적인 요인도 한몫한다. 자신과 닮은 자식, 자신과 통한다고 믿는 자식을 더 좋아한다.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 감독의 영화 <보통 사람들(Ordinary People)>은 이러한 다른 사랑이 가져온 가족의 상처를 다루고 있다.

형 버크와 동생 콘래드는 보트를 타고 항해를 나갔지만 날씨가 나빠지고 갑자기 폭풍이 밀려오면서 배가 뒤집혀 물에 빠지고 만다. 뒤집혀진 배를 겨우 붙잡은 콘래드는 형의 손을 잡고 절대로 놓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형은 콘래드의 손을 놓쳤고 거센 물결에 휩쓸려 사라졌고 콘래드는 혼자 살아남았다. 큰아들을 잃은 어머니 베스는 감정을 추스르고 일상생활을 유지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마음속에는 슬픔과 분노가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분노의 화살은 살아남은 작은 아들 콘래드를 향한다. 자신과 꼭 닮은 큰아들 버크가 죽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의 냉정한 태도에 콘래드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영화는 콘래드가 정신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에서 위태로운 일상을 보내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원래 수영부 선수였던 콘래드는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고 수영을 중단했다. 대신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위안을 찾았다. 수영을 할 때마다 수영부 에이스였던 형이 떠오르고 물에 대한 공포로 괴로운데 어머니는 수영을 하기 싫어하는 콘래드에 공감하지 못하고 괴롭힌다. 우유부단한 아버지는 모자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할 뿐이다. 어머니와 콘래드의 갈등은 점점 깊어가고 마침내 콘래드는 어머니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소리친다. 어머니는 자식을 미워하는 어머니가 어디 있냐면서 맞받아친다. 하지만 아버지는 ‘형이 죽고 대신 살아온 콘래드! 네가 미워 죽겠다’라는 말만 안했을 뿐 보이지 않는 냉기로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롭고 슬픈 콘래드를 심리 상담사는 보트 사고 났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형이 죽은 것은 콘래드의 탓이 아니라고 하면서 죄책감을 덜어준다. 집으로 돌아온 콘래드는 어머니를 껴안고 자신은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을 어머니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베스에게 말하지만 베스는 여전히 자신이 아들을 미워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아들의 용서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새벽에 콘래드가 깨어났을 때 어머니는 짐을 챙겨서 택시를 타고 떠난 후였고 아버지와 콘래드는 서로를 위로한다.

정신과 의사로 일을 하다 보면 환자들을 대하면서 영화와 같은 비극을 실제로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필자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때마다 <보통 사람들>을 봤는데 과거에는 안 보이던 부분이 보이고, 과거에는 못 느꼈던 부분이 느껴지곤 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가족을 모든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가 그동안 접했던 케이스를 돌이켜보면 비극을 극복하는 가족보다는 비극 앞에서 무너지는 가족이 더 많았다. 경제적 곤란이 되었든 질병이 되었든 가족의 사망이 되었든 불행이 닥치면 그동안 감춰왔던 갈등이 더욱 격렬하게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보통 사람들>의 보통 가족도 만약에 이런 비극이 없었다면 갈등을 덮고 살았을 것이다. 단지 큰아들의 죽음이라는 비극이 닥쳐 미세한 균열이 깨졌을 뿐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더 아픈 손가락과 덜 아픈 손가락이 있는 법이다. 부모는 알게 모르게 더 좋아하는 자식이 있다. 때로는 미워하는 자식도 있다. 자신이 자식을 편애하고 있다는 것 혹은 자식을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은 누구는 착한 일을 해서 예뻐하고 누구는 미운 짓을 하니까 미워한다며 합리화한다. 그래서 미움 받은 아이한테 너도 형처럼만 하면, 너도 누나처럼만 하면, 너도 언니처럼만 하면, 너도 동생처럼만 하면 나도 싫은 얘기하지 않게 되어서 좋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버지 혹은 어머니로부터 귀여움을 받고, 예쁨을 받는 자식은 더 착하게 보이고자 노력하고, 더 좋은 성적표를 보여드리고자 노력하고, 더 성공을 하고자 노력한다. 반면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믿는 자식은 부모의 인정을 받는 것을 포기하고 오히려 반항을 통해서 관심을 받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삶이 잘못 흘러가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자신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그저 그런 삶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부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누군가를 무의식적인 라이벌로 삼고 투쟁하는 삶을 살게 되면 행복과 더욱 멀어질 뿐이다. 부모는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자. 부모도 나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가질 수 있고, 그 편견에 근거해서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에서 아들 콘래드가 어머니 베스에게 했듯이 완벽하지 못한 부모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은 어른이 되어간다는 신호일 것이다.

가족이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처럼 큰 비극은 없다. 그 상처는 대게 평생 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자식을 미워하는 부모도 있고, 부모를 미워하는 자식도 있다. 서로 미워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위한 서로에 대한 증오를 사랑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증오와 분노를 직면하고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기에 어설프게 화를 내면서 표현하려고 했다가는 또다시 달콤한 말과 제스처로 덮어버리게 되곤 한다. 그런 가족은 만나면 싸움을 반복한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면서 한 번 헤어지면 부모도 자식을 더 이상 찾지 않고, 자식도 부모를 더 이상 찾게 않게 되는 해체가족이 늘어나고 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옳지 않은 것인지 점점 알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간다. 가족의 신화는 깨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족을 포기할 수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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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부모 콤플렉스 최명기 저 | 필로소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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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명기

지은이 최명기는 마음경영 전문의다.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아산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2003년 듀크 대학교에서 MBA를 취득하고, 내친김에 건강의 통합적 방법을 모색하다 듀크 대학교 Health Sector Management 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에 돌아와 부여다사랑병원을 열었다.
경영학을 공부한 정신과 전문의라는 독특한 이력을 살려, 경영학과 정신의학을 통합한 마음경영을 통해 삶의 균형을 찾는 방법을 연구하고 널리 알리고 있다.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병원경영 강의를 했으며,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의료경영학과 겸직교수를 맡고 있다. 「동아비즈니즈리뷰」에서 마음경영을 주제로 칼럼을 썼고, 의료전문 사이트 ‘메디게이트’에 의료경영 칼럼을 연재 중이다. 한국생산성본부(KPC)에서 CEO 마인드테라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정신분열증을 대처하는 방법』, 『심리학 테라피』, 『병원이 경영을 만나다』, 『마음이 경영을 만나다』, 『트라우마 테라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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