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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스 묘비 앞에 선 박경철 “그는 나의 영웅”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품고 그리스를 가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 인간이 쌓아 올린 문명의 모든 것! 앞으로 19년 6개월 정도 여행을 더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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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리스 대륙을 활보하며 특유의 매력에 푹 빠져있는 박경철. 마치 ‘딸 바보’가 된 아버지처럼 그리스에 대한 애정을 주체할 수 없이 마구 쏟아냈다. 20년 동안 꿈꿔온 나라로 떠나게 된 계기와 여행이야기, 삶의 모토이자 좋은 여행 안내자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에 대한 찬사를 들어보았다.


연세대 백양관에서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출간한 박경철과의 만남이 진행되었다. 매력포인트인 ‘아빠미소’를 띄며 등장한 그는 꿈을 이룬 사람답게 ‘나 지금 행복해요.’라는 꼬리말을 달고 있는 듯 보였다. 한눈에 보아도 전보다 훨씬 생기 있고 즐거움이 느껴졌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는 인생 제 2막이 시작되기 전 굳은 결심을 하고 그리스로 떠난 여행기를 담아낸 책이다. 연대기적이 아니라 공간 이동을 중심으로 꼼꼼하게 기행을 적어내었다. 그리스 역사와 문명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면서도 작가 특유의 시선으로 기록한 게 인상적이다. 여행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관문인 코린토스부터 스파르타까지, 마음 깊숙이 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과 손을 맞잡으며 시작한다.


무엇 때문에 그리스에 목을 메는가?

작가의 26년 전으로 돌아간다. 24살, 의과대학 본과 3학년 때 학교 시험을 치르고 난 후 학교 도서관에서 독특한 제목의 책을 발견한다.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다』라는 책이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이하 니코스)’라는 작가 이름도 특이해 책을 빌렸다. 그의 인생이 뒤흔들리게 된 시작이었다. 니코스의 책을 읽으면서 기분이 묘해지고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로부터 10년 후, 전문의 과정을 마친 30대 중반에 박경철은 그 책을 다시 읽는다. ‘마음에서 타오르던 불길은 비가 와서 줄어들고 땅이 촉촉해지는 느낌을 가졌다.’라고 표현하는 그가 당시 느낀 감정은 얼마나 소름이 돋을 정도로 컸을까. 그로부터 또 10년 뒤 40대 중반에는 니코스의 저서 전부를 읽게 된다.

“제게 가장 어려운 질문은 ‘너의 정체성은 뭐니?’라는 질문입니다. 원래 직업은 외과의사인데, 의료를 자주 못하니까 기술은 ‘장롱면허’ 같이 되어버렸고, 경제전문가라 불리기도 하는데 내가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책을 쓰지만 훌륭한 창작을 하는 게 아니라 있는 사실과 보고 느낀 걸 편집해서 씁니다. ‘지금 뭘하고 있지’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것에 대한 해답을 니코스의 책으로 얻었습니다.”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진득하게 한 것이 없었던 작가는 큰 고민에 빠졌다. 이때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아니었다면 그 고민을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박경철 씨가 고백했다. 당연히 그리스로 여행도 떠나지 않았을 테다.

“이처럼 니코스의 영혼은 20년 동안 연가시처럼 내 머릿속을 지배했고, 내 인생을 지배했습니다. 사람은 50대가 되면 인생 2막을 설계하는데,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전에 꼭 여행을 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1막을 마무리하는 49세에,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과감히 여행을 떠났습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의를 꺼내 입고 걸었던 그 길을 잊을 수 없다. 얇은 비닐 막을 사이에 두고 비는 내 온몸을 씻어 내렸다. 마치 나그네의 영혼을 정화하려는 듯 비는 순식간에 쏟아져 내렸지만, 우의를 쓴 나의 영혼은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나뭇가지를 붙들고 있었던 셈이다. 안경과 이마에 빗물이 흘러내리고 내 손은 최고 속도로 움직이는 와이퍼로 변신했다. (p.167)

그리스인들의 생각


“먼저 아테네에 도착해 국내선을 타고 니코스의 무덤이 있는 크레타 섬으로 날아갔습니다. 공항이름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입니다. 소설가 이름을 공항이름으로 정했다는 데에 굉장히 부러웠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자부심 줄 만한 표상이 없는 것도 아닌데 반대부터 하니까요.”

니코스의 묘비명에는 ‘나는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다. 나는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그래서 나는 자유다.’ 라는 세 문장이 쓰여있다고 한다. 저자는 20년 넘게 동경해오던 인물의 무덤을 보니 저절로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고 절을 했다. 그것도 모자라 슈퍼에서 소주를 사와 무덤에 뿌렸다. 박경철 씨의 이런 행위는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숭배하는, ‘영웅숭배’, ‘신앙’이라 할 만하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웅성웅성 거렸어요. 이 때 한 남자가 저한테 다가와서 ‘나는 크레타 섬에서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인데 무엇을 하는 행동이냐’ 물었습니다.”

저자는 “나는 한국에서 온 한국인이고, 우리나라에서 세상을 떠난 분에게 경의를 표하는 행동”이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가 ‘의식이 멋져 보이긴 한데, 당신 나라에는 작가가 없나?’하고 물었다고 한다.

“제 입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답이 튀어나왔죠. ‘He’s my Hero(그는 나의 영웅이다).’”

그 남자는 깜짝 놀라며 ‘한 푼의 돈을 받지 않고 니코스의 모든 흔적을 안내해주겠다’는 친절을 베풀었다. 처음에는 낯선 사람의 친절이라 경계심이 들었지만 기회라 생각하고 따라 나섰다.

“제 모습을 보니 그가 악의적으로 행동할 만한 요인이 전혀 없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따라 나섰어요. 니코스가 소꿉놀이하던 동굴까지 보고 와서 저녁 식사를 초대받아 그의 집까지 갔습니다. 이제는 미안한 마음과 함께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왜 제게 이런 친절을 베푸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니코스는 내게도 영웅이다. 그러니까 당신과 나는 친구다.’라고 답했습니다.”

그 낯선 남자는 물리적인 시간의 경과로 친밀함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상대방의 가치관이 같으면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 식당에서 50대로 보이는 커플이 서로 손을 맞잡고 코를 맞댄 채 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불륜’이라 오해할 만한 행동이다. 작가는 그들에게 부부인지, 이 식당은 그들의 것인지 물었다고 한다. 그 남자는 장인어른이 하는 식당이고 2년 전에 자신이 구조조정으로 실업자가 되어서 고향으로 내려와 맡은 식당이라고 말했다. 작가가 ‘그런데 어쩜 이렇게 행복해 보일 수 있느냐?’하고 물었더니 그 남자의 말이 명언이었다.

“당신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굳이 묻는다면 답해보겠다. 인생은 원래 행복한 거다. 삶이란 경이로운 일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 아닌가. 내 주변에는 행복 요소가 참 많다. 지금도 사랑하는 아내가 내 얼굴을 보며 웃고 있지 않나. 방금 전까지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라는 얘길 하고 있었다. 살다 보면 ‘불운’이 생길 수는 있다. 직장을 잃은 것은 나의 불운이긴 하지만, 그것이 내게 ‘불행’은 아니다.”

이 말을 들은 저자는 크게 감명하고 뉘우쳤다.

“생각해보면 스승이나 부모가 우리에게 행복해지는 법을 가르치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나도 아이들에게 행복해지는 법, 행복을 느끼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부부가 처음으로 제게 행복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셈입니다.”


독자 질문

그리스 신화 같은 것으로 우리는 주로 단편적인 그리스 얘기를 접하다 보니 와 닿는 게 적다. 서양의 고대 문명을 어떻게 쉽게 접하면서 공부할 수 있을지 조언을 듣고 싶다.

나도 고민인 부분이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저자 입장에서는 ‘엄밀성’이 중요하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써야 하기 때문이다. 독자는 독자의 입장에서만 해석하고 읽으면 된다.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까지만 알아도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외국인이 경복궁을 바라볼 때와 우리가 경복궁을 바라볼 때는 많이 다르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겪어온 한국의 역사를 오래 학습되어 있는 상태에서 느끼며 보지만 외국인은 한국 역사도 잘 모르고 느낌도 모른다. 우리도 다른 나라의 유물을 보면 외국인이 되어 그렇게 느끼듯이, 그 나라의 국민이 아니고는 어차피 깊게 느낄 수 없다. 그냥 책도 그대로 읽고 느끼며 작가의 의도까지만 생각해보면 좋겠다.

박경철 씨의 꿈은 무엇인가?

자유란 내가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 하고 싶은 일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자유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피를 흘리고 투쟁하고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 이것이 니코스 카잔차스키가 말한 자유다. 우리에게는 일종의 노예계약서가 있다. 태어나는 순간 나라의 한 국민이 되었다는 것과 누구의 아들이 되었다는 계약서와 같은 것이다. 나의 반경을 제약하지만 불가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이 말을 풀면, 하기 싫어도 참고 해야 할 것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지혜와 절제, 용기, 이 3가지를 충분히 사용했을 때 미덕에 이르렀다고 한다.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쓴 다음에는 과감하게 노예계약서를 찢어도 된다. 나는 오래 전부터 50세 이후로는 절대 원치 않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실존의 자유를 얻는 날까지 내 삶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49세까지 열심히 달렸고 후회 없이 노예계약서를 찢은 뒤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여러분도 고민거리와 힘든 것이 많겠지만,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면 내가 치열하게 짓이겨지더라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 19년 6개월 정도 여행을 더할 예정이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 2권은 그리스에서 탈고까지 마치고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영국, 러시아 등 여러 나라를 다닐 계획이다. 이게 꿈이고, 지금 이루어 가고 있어 행복하다.


나는 이제 연장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두렵거나 지쳤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해가 저물었기 때문이다. (임종 직전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메모에서, p433, 에필로그)
행사가 진행된 2시간 동안 좀더 유연해진 작가의 모습을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꿈을 이뤘거나 이루고 있는 사람은 저마다 마음속에 영웅을 품고 있었고 그를 좇아 가치 있는 삶을 산다. 작가의 영웅이란 영감을 주거나 올바른 생각으로 인도를 해주는 그런 명백한 존재라는 것이 내내 떠올랐다.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 박경철 저자. 앞으로의 여행기에도 많은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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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 박경철 저 | 리더스북
외과의사 출신 경제전문가에서 이 시대의 지성, 그리고 청년의 멘토로 활동하며 활발한 강연과 저술을 하던 박경철은 어느 날 홀연히 그리스로 향한다. 그리고 2년여 만에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들고 문명의 현장을 답사하는 순례자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는 책으로 만나는 지식이 아닌 발로 뛰어다니며 몸으로 부딪친 문명의 현장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느끼고 싶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문명 탐사는 그리스에서 시작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터키, 이란, 이집트와 시리아, 스페인 등 2년여에 걸친 대장정으로 이어졌으며, ‘박경철 그리스 기행’ 시리즈는 그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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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지민

닉네임은 가젤. 눈망울이 가젤을 닮았다고 친구가 붙여준 별명이다. 실제로 잘 뛰어다니며, 벌려놓은 일에 쫓기기도 한다.
인생 최대의 목표는 '재미'다. 문화와 예술, 철학과 심리학에 관심을 두고, 학습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리듬감 있고 담백한, 그리고 위트있는 문장으로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싶다. 채사모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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