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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사랑의 질과 양을 가늠하고 싶지 않아요 - 이도우

책을 이야기하는 책을 쓰고 싶다 해피엔딩은 강박의 단어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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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조용한 응원 속에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가 출간 10주년을 맞아 개정판으로 독자에게 선보인다. 라디오작가 공진솔과 PD 이건의 담담한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이도우 작가를 독보적인 로맨스소설 작가로 데뷔시켰다. 한번도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았던 이도우 작가를 <채널예스>에서 서면으로 만났다. 이도우 작가는 “30대 초중반, 적당히 쓸쓸하고 마음 한 자락 조용히 접어버린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천천히, 조금 느리게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재 파주 언저리에서 ‘조용히 나이 들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이도우 작가. 요즘은 단편소설들을 쓰고 있는데,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물 위의 책방」, 「먼저 간 자의 발자국」, 「내가 방문한 The shop around the corner」 같은 제목을 가진 이야기들이다. 다가올 겨울 즈음에 단편집으로 묶어서 세상에 내보일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도우 작가는 「물 위의 책방」이야기를 살짝 공개했다. 평소 저수지에 떠 있는 비둘기집 같은 좌대를 몹시 좋아하는 작가는 밤낚시를 핑계 삼아 낚싯대는 무늬로만 드리워놓고 물에 떠있는 흔들리는 비둘기집 안에서 어두운 밤을 보내곤 한다. 젊은 날, 그렇게 좌대를 타려는 목적으로 낚시를 다니다가 좌대 방에 책방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던 이도우 작가. 그 책방에 가려면 나룻배를 저어 저수지를 가로질러 가야 하는데, 그 물 위의 책방에 관한 이야기다.


이도우 작가는 좋아하는 작가로 리처드 브라우티건, 김채원, 최승자, 엘리너 파존, 토베 얀손 등을 꼽았다. 이들은 시간도 공간도 초월해 작가의 마음을 묶어버리는 마력이 있는 저자들이다. 이들의 특장이랄까 공통점을 곰곰 생각해본다면, 산문을 써도 시와 같은 리듬감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도우 작가는 “그건 본능에 가까운 산문적 보폭인데, 훈련한다고 쉬이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외경심을 품게 된다”고 말한다. 특히 최승자 작가가 90년대에 번역한 브라우티건의 『워터멜론 슈가에서』는 이도우 작가에게 바이블 같은 의미의 책이다. 이도우 작가는 “최승자 시인께선 몇 해 전부터 편찮으셔서 요양 중이신데 면회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늘 찾아가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소설집 『초록빛 모자』의 김채원, 『작은 책방』의 엘리너 파존, 『무민 시리즈』의 토베 얀손은 섣불리 가르치지 않음으로써 가르쳐 주셨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음으로써 무엇보다 강렬한 목소리를 내 내면에 남긴 문학가들”이라고 전했다. 작가는 힘든 일이 있어도 그들의 책,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다른 일은 모두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곤 한다. ‘이런 글을,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하는 마음으로.

작가는 쓰고 싶은 소설이 너무 많지만 손이 느려 괴로울 뿐이라고 스스로를 타박하는 중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 중에서도 꼭 써야 할 과제처럼 느껴지는 소설이 있는데, 그건 유성기에 관한 이야기다. 이도우 작가는 “나 역시 책이 없으면 약간 초조해지는 책 마니아라, 책을 이야기하는 책을 쓰고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동기

개정판이 나올 만큼 많은 독자들에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사랑을 받았습니다. 소설을 어떻게 쓰시게 되었고, 인물 설정 및 집필하면서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시작은 함성호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불현듯 「落花流水(낙화유수)」 라는 시가 마음에 꽂혔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네가 죽어도 나는 죽지 않으리라 우리의 옛 맹세를 저버리지만 그때는 진실했으니,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거지 꽃이 피는 날엔 목련꽃 담 밑에서 서성이고, 꽃이 질 땐 붉은 꽃나무 우거진 그늘로 옮겨가지 거기에서 나는 너의 애절을 통한할 뿐 나는 새로운 사랑의 가지에서 잠시 머물 뿐이니 이 잔인에 대해서 나는 아무 죄 없으니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걸, 배고파서 먹었으니 어쩔 수 없었으니, 남아일언이라도 나는 말과 행동이 다르니 단지, 변치 말자던 약속에는 절절했으니 나는 새로운 욕망에 사로잡힌 거지 운명이라고 해도 잡놈이라고 해도 나는, 지금, 순간 속에 있네 그대의 장구한 약속도 벌써 나는 잊었다네 그러나 모든 꽃들이 시든다고 해도 모든 진리가 인생의 덧없음을 속삭인다 해도 나는 말하고 싶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절없이, 어찌할 수 없이.
-「落花流水」 함성호
‘네가 죽어도 나는 죽지 않으리라. 단지, 변치 말자던 약속에는 절절했으니…… 운명이라 해도 잡놈이라 해도 나는, 지금, 순간 속에 있네’. 이 시를 읽으며 저릿했던 느낌으로, 어떤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실꾸리가 딸려오듯 줄거리가 떠올랐고, 그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됐어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 저의 가까운 친구들과 지인들의 모습이 겹치기도 했고, 몇몇 에피소드는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이기도 했고요. 10년이 지나니 그때의 느낌도 희미해져가지만, 잊지는 못할 추억입니다.


라디오

작가님께서 라디오 구성작가로 일하셨고 또 소설 속 주인공 ‘공진솔’도 라디오작가입니다. 작가님께 라디오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라디오 일을 좋아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라디오에는 책과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종이와 활자뿐인 흑백의 텍스트에서 독자들은 무궁무진한 이미지를 얻어내잖아요. 비주얼한 지원을 받지 않아도, 책을 통해 얼마든지 자신만의 이미지를 끌어냅니다. 라디오 역시 제공하는 건 소리뿐이지만, 듣는 이들은 그 소리의 공간에 개인의 취향대로 보이지 않는 영역을 만드는 것 같아요. 집을 짓는 것처럼. 영상이 완전한 제품을 공급하는 느낌이라면, 책이나 라디오는 제겐 DIY의 느낌입니다. 오래 전 <볼륨을 높여라>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학교에선 내성적이고 눈에 띄지 않는 남학생이, 밤이 되면 해적방송 DJ로 변신해서 인근 학생들을 열광하게 만들죠. 지금이야 인터넷방송이나 팟캐스트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만, 영화가 나온 1990년엔 아마추어 무선통신기를 썼죠. 라디오에 대한 애정은 그런 이미지로부터 생긴 게 아닐까 해요. 바다에 배를 띄워놓고 발칙한 음악방송을 송출하는 영화 <락앤롤 보트>도 게릴라 같았죠. 즐거운 해적 방송에 대한 로망이겠지요.


편지

작가님이 받거나 보낸 편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편지는 누구와 소통했던 편지인가요?

청소년 시기와 20대 때 동생들, 사촌동생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이에요. ‘그럼 이만 총총’의 시절이었는데, 제 다른 소설 『잠옷을 입으렴』에 그 시절의 추억을 녹여 쓰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럼 이만 총총’이란 구절이 이상하게 좋았어요. 그걸 처음 본 건 엘리너 파존의 동화집 『보리와 임금님』에서였는데, 영어 원문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아동문학가 신지식 선생님께서 그렇게 번역을 해놓으셨어요. 등장인물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면서 항상 필통을 동봉합니다. 그러고는 ‘추신. 이번에도 필통을 동봉합니다. 그럼 이만 총총.’ 하고 편지를 끝맺지요. 그 후로 오랫동안 제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때는 ‘추신’과 ‘동봉’, ‘그럼 이만 총총’이 키워드처럼 붙어 다녔습니다. 봄날 아지랑이 같이 간질간질한 어휘들이네요(웃음).



호각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에 호각 부는 장면이 많이 나왔는데요. 호각에 남다른 의미를 두신 것 같습니다. 작가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물은 무엇인가요?

호각은 대부분 은빛이고, 은빛은 차갑지만 매혹적인 색이기도 합니다. 은빛을 생각하면 저는 초여름 햇살 아래 운동장 식수대에서 찰나처럼 반짝이던 수도꼭지 같은 게 떠오릅니다. 예전엔 호각 소리가 싫었어요. 졸음의 끝을 잘라내는 경고 혹은 명령 같아서요. 체육시간을 연상하게 하고, 민방위 훈련도 싫었고, 경찰들의 호각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겠고. 그런데 나이를 먹고 어느 날, 학교 앞 문방구에서 호각을 봤어요. 그 즈음 이시영 시인의 시집 『은빛 호각』을 읽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새삼 ‘뭐야, 호각은 생각보다 예쁜 사물이었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훅 불면 그 속에 구슬이 움직이며 호르륵 그렇게 큰 소리를 내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에게 선물로 호각을 사주었는데, 목에 걸고 불어보면서 좋아하더군요. 제게 특별한 사물은 램프와 양초예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물들 중에서 가난한 사치품처럼 갖고 싶은 게 있다면 제겐 그것들입니다. 어두운 밤에 마루에 혼자 앉아 어둑한 램프 불빛을 바라보노라면 밤새도록이라도 앉아 있을 것 같습니다. 태양 아래선 역사가 되고 달빛 아래선 전설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램프와 촛불 아래선 모든 게 스토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애

연애소설이기 때문에 작가님의 연애사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작가님의 사랑법은 무엇이었나요? 사람을 사랑할 때 어떤 마음으로 사랑하고자 했나요?

사서함에 그런 구절이 있잖아요. ‘누군가를 아무리 사랑해도, 그 사람을 위해 죽을 수도 있어도, 때로는 담 밑에 핀 꽃이나 내리는 눈이나 바람이나… 그런 것들이 사랑보다 더 천국처럼 보일 때가 있다는 것’.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 그런 점을 이해해 주는 일 같아요. 살다보면, 사람을 더 사랑하는 이들도 만나고, 사람 아닌 것들을 더 사랑하는 이들도 만나게 되죠. 가치관, 자기 일, 자연, 이념, 예술, 특별한 사물, 그 어떤 것이라도. 그것들과 함께 비교 대상에 놓고 그 사람의 사랑의 질과 양을 가늠하고 싶지 않아요. 그는 나를 사람 가운데 가장 사랑하고, 그러나 어쩌면 나보다 바다에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더 사랑하는지도 모르지만, 그걸 비교하고 싶지는 않은 거죠. 폭풍우와 경쟁할 수는 없잖아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다른 대상에 대한, 다른 방향에 대한 사랑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제가 생각하는 사랑인 것 같습니다.


화해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썼을 때는 청춘과 화해했고 『잠옷을 입으렴』을 쓰면서는 유년과 화해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화해를 했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목격자’라는 말이 있지요. 처음 사서함이 나왔을 때, 첫 번째 책 작가 후기에 ‘서로의 청춘을 목격했던 벗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목격 당한다는 말의 뉘앙스는 좋은 일보다는 궂은 일, 한심했던 일, 약점이 될만한 일들에 더 가깝지요. 숨기고 싶고 들키고 싶지 않은데, 서로가 미숙한 청춘이었기 때문에 다들 한심하고 짠했던 모습들을 보여주고 목격하고 했던 겁니다. 사서함엔 제 청춘시절이 많이 녹아있는데, 그걸 소설로 풀어내니 차라리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고, 이왕 목격당한 이야기들도 이제는 따듯하게 품어낼 만큼 세월이 흘렀구나 싶어서 그 시절과 화해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잠옷을 입으렴』도 마찬가지였고요. 유년과 성장기는 사람의 인생에서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정서적인 면에서 몹시 강력한 시기입니다. 성장기 15년이, 어른이 되어 살아내는 몇 십년 세월의 변화에 맞먹는 힘을 지녔다고 할까요. 그런 유년과 성장기를 서로 목격하고 목격당하는 일차적 존재들은 역시나 가족입니다. 그 무수한 가족 테마는 이제 그만― 이라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꼭 한번은 서로의 옛 모습과 화해하고 싶은 것이 가족을 소재로 한 성장소설이 아닐까 합니다.


결핍

결핍의 시절이 그립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세대는 결핍이 없는 세대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자신의 결핍을 알고 느끼는 게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결핍의 힘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요?

‘결핍’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으로 나옵니다. 요즘 세대는 얼핏 풍요로운 듯하지만, 알고 보면 지금처럼 결핍이 많은 세대도 없었을 것 같아요. 너무나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지만, 실은 그것들이 정말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요. 백 가지를 소유하고 있어도, 정작 내게 필요한 열 가지는 빠져 있는. 하지만 어떤 사람은 겨우 스무 가지를 소유하고 있어도, 정말 그에게 필요한 열 가지도 함께 있기 때문에 결핍감이 덜합니다. 문제는, 내가 많은 것을 갖고 있는데 꼭 필요한 것들도 그 속에 있는지 없는지, 그 질문 자체를 던질 여유가 없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내 진짜 결핍을 알아차리고, 많은 걸 얻고자 막연히 쏘아대는 게 아니라, 오직 한 점, 그 과녁을 찾기 위해 활을 쏘는 열망이 그립다고 한 것입니다.


결계

결말에서 진솔이 건이에게 ‘당신은 나의 결계’라고 말합니다. ‘결계’라고 표현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작가님의 결계란 무엇인가요?

진솔이 건에게 ‘결계’라고 말한 건 힘들었던 서울이라는 공간이, 그녀의 사랑을 만나면서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변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을 거예요. 분명 같은 공간인데, 어제와는 다른 장소인 것처럼 다가오는 기분. 결계는 경계선과도, 울타리와도 좀 다른 느낌이죠. 저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 인물이 움직이는 소설을 좋아하는 편인데, 밀실보다는 결계처럼 느껴지는 공간이 좋습니다. 예를 들면 마를렌 하우스호퍼의 소설 『벽』을 보면, 시내에 무언가 아주 위험한 (핵폭탄 같은) 것이 터졌고, 동시에 다른 공간의 생명체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보이지 않는 거대한 돔이 형성됩니다. 숲의 오두막에서 휴가 중이던 주인공 여자는 그 돔 바깥에서 혼자 살아남아 몇 안 되는 동물, 식물과 함께 몇 년을 고독하게 생존합니다. 고독하지만 안전하고, 안전하지만 덧없지요. 숲 속에서 나무들이 만든 진(陣)을 풀지 못해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시공간이 다른 차원에서 따로 움직이는 듯한 결계는 늘 매혹적인 배경입니다.


해피엔딩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해피엔딩의 삶은 무엇인가요?

언젠가 이런 단편소설을 상상해본 적이 있었어요. 모든 인간의 삶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어떤 도시에 관한 이야기요. 드물긴 하지만, 살다가 그야말로 순수한 행복의 절정을 느끼는 순간 육신이 공기방울처럼 가볍게 흩어져 깨끗하게 허공으로 소멸하는. 그래서 그 도시의 사람들은 정말로 완전한 행복은 느끼지 않으려고 조심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행복감이 찾아오는 날이 있고, 그 순간 행복의 정점에서 거품으로 소멸하니까 그의 인생은 해피엔딩이 돼버리는 거죠. 사실 해피엔딩이란 소설과 영화처럼 편집된 이야기에서만 존재하지 않을까요. 실시간 인생은 그럴 수가 없죠. 결말? 인간의 결말은 태곳적부터 정해져 있잖아요. 누구에게나 평등한 죽음이 진짜 엔딩인데, 뭐가 해피엔딩이란 말입니까. (웃음) 그러니 인생을 하나의 긴 여정으로 보고 결말에 가서 해피엔딩이 되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건 어리석은 일일 거예요. 차라리 해피엔딩의 일상화를 만드는 게 낫지 싶습니다. 아, 이번 한 주는 해피엔딩으로 마감했군. 오늘 하루는 그럭저럭 해피엔딩이었어. 오전 타임은 해피엔딩인데? 이렇게요. 너무 긴 여정으로 두고 보면, 피로한 강박이 돼버리는 게 해피엔딩이란 단어가 아닐까 합니다.


독자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고 또 개정판이 출간됐습니다. 작가님에게도 의미가 특별할 것 같은데요. 독자들에 대한 마음은 표현해주신다면?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이렇게 오래 독자님들 곁을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3~4년 정도 세상에 머무르다가 자연스레 잊히려니 했었습니다. 작가 손을 떠난 책은 저 혼자 움직이는 것 같아요. 많은 독자님들이 사서함에 관한 메일을 보내주시고, 리뷰 글을 올려 주셨습니다. 저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실은 본격적인 로맨스소설 작가로 활동하겠다는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냥 제가 보고 싶었던 어떤 사랑의 모습에 관해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그게 사서함이었거든요. 그런데 책이 꾸준히 팔리면서 저는 어느새 온라인서점 등에 ‘로맨스소설 작가’로 정확히 분류되어 등재돼 있었습니다. 저절로 주어진 명찰이라 할까. 그렇다면 그건 내게 맞는 옷일까. 나는 또 사랑 이야기를 쓸 준비가 돼있는가. 생각해봤지만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제가 들려주고 싶은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는 사서함이 전부였거든요. 오래 시간이 지나고 소설 『잠옷을 입으렴』을 출간했을 때, 기존 독자님들이 좀 당황하셨어요.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두 소녀의 성장 이야기로 돌아왔으니까요. 반면, 잠옷으로 제 소설을 처음 접한 독자님들은, 나중에 사서함을 찾아 읽고는 또 예상과 달라 갸우뚱하시는 걸 느끼기도 했답니다. 앞으로도 저는 아마 여러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어느 책이든 제 소설을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께 정말이지 감사하는 마음뿐이죠. 읽어주지 않는 책은, 아무 것도 비치지 않는 거울 같잖아요. 그건 너무 슬픈 일이고, 그래서 제가 들려드리는 이야기를 기꺼이 허락하셨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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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도우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2004년 처음 선을 보인 이 사랑 이야기는 독자들의 조용한 지지와 입소문 속에서 롱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까지 독자들이 웹상에 기록한 블로그 감상평과 리뷰 포스팅은 수천 건에 달한다. 그 동안 두 번 표지가 바뀌었고, 잠깐 ‘구하기 힘든 걸작’ 취급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로맨틱하고도 현실적인 캐릭터’ ‘잔잔하지만 확 와 닿는’ 문장으로 읽는 이들을 사로잡았고, ‘읽고 나면 곁에 있는 사람이 사랑스러워지는 소설’이라는 호평 속에 꾸준히 독자들의 곁을 지켜왔다. 2013년 올해 출간 10주년을 맞아 전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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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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