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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이 살육을 일삼는 야만족이라고?

역동적으로 세계를 움직인 유목제국의 가치를 발견하다! BC 7세기~18세기까지 세계사의 주역이었던 유목민, 21세기에 다시 주목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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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들어 특히 인류학과 역사학의 유목민들과 유목 사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그들 역시 정주 사회처럼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생존을 위해 사회구조와 사고를 변화시켜왔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유목민의 폭력성은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예외적인 상황에서 드러난다는 것도 역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특히 오늘날 유목민들의 사유는 현대사회의 특징과 맞물리면서 새삼 재발견되고 주목을 받고 있다.

역자 해설

이 글은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를 번역한 다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책의 내용을 새롭게 구성하고 거기에 현대적인 의미를 부가해 정리한 것입니다.




정주민의 잣대로 재단된 유목민에 대한 편견과 오해

유목민은 일반적으로 문자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유목민들 대부분은 자기들의 역사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인류학자인 C. 레비스 트로스Claude Levi Strauss의 말을 빌리면 유목 사회는 역사를 갖지 못한 ‘차가운 사회Cold Society’에 해당된다.

이런 이유로 유목민에 대한 시각과 그들의 역사는 대부분 그들과 인접한 문자를 가진 정주 사회가 남긴 역사를 통해 접근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유목민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나 연구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정주민들이 남긴 기록에는 그들의 유목민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담겨 있다.

위의 이유와 관련해서 유목민들에 대한 이미지나 생각은 늘 축소되거나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그것은 흡사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던 이중적인 시각을 일컫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과 유사하다. 오리엔탈리즘은 쉽게 말해 동양은 금과 은이 넘쳐나는 풍요롭고 신비한 땅이라는 이미지와 미개하고 전근대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사는 땅이 라는 이중적인 시각이 내포되어 있다.

유목민의 이미지 또한 그렇다. ‘고결한 야만인Noble Savage’이라는 루소의 말처럼 유목민들의 삶을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측면을 강조해서 자유롭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묘사하는 한편, 그들이 정주민들을 약탈과 파괴하는 그래서 폭력적이라는 이미지가 함께 공존해왔다.

오리엔탈리즘이 제국주의의 이념이 되어 미개하고 전근대적인 사람들을 개화해야 한다는 이유로 서양이 동양을 식민지로 만들고 착취한 것처럼 유목민에 대한 이미지 또한 주로 약탈과 파괴라는 폭력적인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특히 인류학과 역사학의 유목민들과 유목 사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그들 역시 정주 사회처럼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생존을 위해 사회구조와 사고를 변화시켜왔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유목민의 폭력성은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예외적인 상황에서 드러난다는 것도 역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특히 오늘날 유목민들의 사유는 현대사회의 특징과 맞물리면서 새삼 재발견되고 주목을 받고 있다.


왜 유목적 사유에 주목하는가?

유목적 사유의 특징 가운데 네트워크와 관련해서 꼽는다면 면(面)의 사고가 그것이다. 그것은 유목과 대비되는 사회구조인 농경 사회에서 점(點)의 사고가 중심인 것과 대조된다. 점의 사고는 근대를 통해 인간의 내면으로 깊게 들어가 인류의 사유를 확장시키고 여러 학문들이 발전하는 데 발판이 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교통수단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인류는 새로운 세계와 맞닥뜨리고 현대사회로 진입하면서 세계관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근대와 현대를 가르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바로 면의 사고다.

먼저 면과 점의 사고는 이동과 정주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현대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바일Mobile이다. 다양한 교통수단은 물론이고 컴퓨터와 전화기를 들고 다니며 세계라는 면과 늘 접촉하며 산다. 즉 깊이 한곳으로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확장성을 갖고 퍼져나가는 것이 현대의 특징이다. 그 확장성은 최근에 세계적으로 유행해서 짧은 시간에 세계로 확산된 싸이의 ‘강남스타일’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면의 사고가 지닌 특징을 다르게 표현하면 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처와 전체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정교한 정보력, 그리고 개인이 지닌 능력을 꼽을 수 있다. 이런 덕목들은 유목민들이 가졌던 특성이며 현대사회에서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들이다.

흔히 유목민들이 정주 사회인 도시에 기생해서 살아간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그것은 정주 사회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생기는 착오다. 면과 점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점은 면 내부에 포함되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도시(점) 같은 정주지의 고립을 벗어나게 해준 것이 유목민(면)들이었다. 이들 사이에서 점과 점을 연결하는 선의 사고를 하는 것은 상인들이다. 초기의 유목 사회가 유목 국가로 변신해가는 과정은 앞의 사실들을 여실히 확인시켜준다.


유목 국가의 형성과 전개

유목민이 문헌 속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등장하는 스키타이다. 스키타이는 각각 당대 최고를 자랑하던 페르시아의 대규모 군대와 알렉산드로스의 북방 원정군을 차례로 격파하며 역사에 나타났다가 곧바로 문헌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최초의 유목 국가를 형성했던 스키타이는 중앙아시아로 진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유목민들은 정주민들과 접촉했을 때 역사에 등장한다. 그것은 기록자들이 정주민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아시아의 두 축이었던 이란 지역(페르시아)과 중국 지역의 비교에서도 확인된다. 즉 세계 최초의 제국으로 꼽히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발생이 중화왕조의 발생보다 앞서며 유목 국가의 형성 또한 서쪽이 앞선다. 이를 통해 서쪽 유목민들에 의해 형성되고 발전된 기마 기술이 동쪽으로 전파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중국 전국시대에 기마를 처음 받아들인 것도 서쪽의 조와 진이었다는 것은 그 증거가 된다.

그러나 이후 유목 국가 또는 유목제국은 동쪽에서 세워지고 그들이 일으킨 파도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밀려간다.


동서 대교역권 시스템을 구축한 몽골의 쿠빌라이

칭기즈칸의 손자로 몽골제국의 5대 칸이 된 쿠빌라이는 ‘유라시아 대 교역권’을 구상해서 세상에 내놓았다. 쿠빌라이는 이 구상을 통해 정치ㆍ군사ㆍ경제ㆍ유통ㆍ생산ㆍ교통 등 다방면에 걸쳐 자유무역과 중상주의 정책을 펼쳤다. 또한 다인종, 다언어, 다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고용하며 세계제국을 운영했다. 쿠빌라이는 몽골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하나로 묶으려고 했다.

그 중심지는 13세기 쿠빌라이가 건설한 북경이었다. 중국의 수도 북경이 중국 동북쪽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북쪽의 몽골고원을 시야에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몽골고원부터 중국까지를 포함해서 보면 북경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쿠빌라이는 통혜하라는 운하를 통해 북경을 발해만과 연결시키고, 신중한 남송 공략을 통해 해양을 강화했다. 이때 발전한 도시가 천진과 상해다. 쿠빌라이는 이를 통해 기존에 여러 유목제국들이 기초를 닦고 확립해놓은 초원의 군사력과 중국의 경제력이라는 토대 위에 무슬림의 상업력을 결합시킨 대교역권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관세(현대적으로 표현하면 문화 장벽)를 철폐하고 더 큰 거래를 위한 염인(鹽引)의 활용과 지폐의 발행, 은(銀)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체제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은이라는 ‘가치’(현대적으로 표현하면 다문화 또는 문화상대주의)를 통해 세계경제가 하나로 연결되었다.


세계사를 뒤흔든 유목제국의 특징

유목민들이 세운 제국이 등장할 때마다 세계사는 요동을 쳤다. 흉노 제국은 유목 국가의 형태와 질서를 확정했고 그 이후로 기존의 형태와 질서를 확장해가면서 유목의 특징처럼 새롭게 변화하고 탈바꿈해왔다. 동서 교류 또한 유목제국의 성쇠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다. 유목 제국이 세워지면 그 비호를 통해 동서 교류 시스템은 활발하게 작동했다. 훗날 몽골에 이르면 유목과 정주, 해양이 복합된 교류 시스템이 갖추어지고 또한 군사 공동체에서 군사와 경제, 문화가 뒤섞인 혼합 공동체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유목제국의 특징 때문이다.

또한 유목제국은 몽골이 쇠퇴한 15세기 서구가 득세하기 전까지 늘 역사의 중심에 있었고, 유목제국이 만든 표준(그것이 시스템이기도 하고 가치 체계이기도 하다)에 따라 서양이 총과 화약을 들고 세계사에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세계를 움직여왔다.


유목과 현대사회

현대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앞서 살펴본 대로 유목의 속성인 모바일이다. 이성 중심의 근대가 진지하고 엄숙한 시대였다면 현대는 끊임없이 이동과 변화 속에서 가치를 해석하는 시대다. 즉 고정된 가치 체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고 늘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그래서 점의 사고보다 면의 사고가 우선되어 요청된다.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의미의 거미줄Web of meaning’에 대한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때 유목이 지닌 의미는 현대사회의 특징과 잘 부합된다. 특히 신자유주의 이후 서구적 가치가 힘을 잃고 아시아적 가치가 다시 부각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오랫동안 역동적으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를 움직여왔던 유목제국들이 가졌던 가치와 시스템은 다시 주목받아야 한다.

2013년 3월
이경덕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를 위해 덧붙인 글




이제는 거의 사라진 유목민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1997년 10월에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민족과 국경을 넘어서》라는 책을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사에서 간행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동서양을 불문하고, 거의 무조건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유목민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되어왔다. 세상에서 대가라고 불리는 역사가ㆍ역사 연구가를 비롯해서 민족학자ㆍ문명 사가ㆍ평론가ㆍ작가들 역시 유목민을 대부분 살육을 일삼는 야만족이라는 고정적인 이미지로 묘사하는 게 정형적인 패턴이었다.

근대 서양의 아시아에 대한 멸시나 아시아에 대한 우월감 또는 ‘차별 사상’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의 학자들이 가진 편견이나 믿음까지 더해 언젠가부터 매우 단순하고 소박한 ‘역사 속의 악마 이미지’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또한 고등학교의 세계사 교과서에서도 유목민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당연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어 시험공부 등을 통해 각인된 고정관념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책은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쓰게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서, 이 책의 영향이나 결과 때문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유목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다. 그 점은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포스트 몽골 시대와 그 이후

한편 몽골 세계제국이 일단 인류 역사에서 첫 번째로 큰 통합을 실현한 ‘몽골 시대’ 이후, 즉 ‘포스트Post 몽골 시대’의 유목민과 세계사에 대해 일괄해서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한 권의 책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여러 사람들에게 받았다. 참고로 고(故) 혼다 미노부(本田實信) 선생과 내가 명명하고 제안한 ‘몽골 시대’ 및 ‘포스트 몽골 시대’라는 개념과 사고방식은 현재 세계사의 개념으로 정착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한편 애프터After 몽골이라고 불러야 할 것에 대해서는 이 책의 끝 부분에 ‘책 한두 권의 분량이 필요할 정도다. 따라서 그에 대해서는 다음 작업으로 넘겨야 할 것이다’라고 핑계 비슷하게 적어놓았다. 책의 분량도 문제이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근현대의 유목민과 세계사’를 단숨에 써내려갈 준비와 전망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 스스로 서구가 대두하기 시작하는 18세기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도식의 전체가 윤곽을 갖추고 말할 수 있는 충분한 이해와 인식이 되어 있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하나는 러시아제국의 확대와 팽창을 주요 주제로 하는 중앙유라시아 여러 지역의 변용과 그 후 소련의 출현ㆍ민족 탄압ㆍ군사 확대와 붕괴를 거쳐 현대 러시아에 이르는 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파키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ㆍ이란 서쪽, 넓은 의미에서는 중동의 근현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전개다. 이들 두 주제는 근현대사이기도 하고 현대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유목민과 깊고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

제국 러시아의 확대와 그 행보는 몽골제국 이후의 다양한 유목민 집단과의 증오와 은원, 이용과 배신, 학살과 디아스포라Diaspora로 얼룩져 있다. 러시아제국에서 소련ㆍ현대 러시아 연방에 이르는 역사는 현재 사실이 사실로서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아니 일종의 ‘부정적인’ 역사는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다. 현재는 작은 통과 지점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 나름대로의 형태가 드러나기 위해서는 아마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다음은 중동으로 영어로는 ‘미들 이스트Middle East’라고 부른다. 통일성이 없고 어정쩡한 이 호칭은 19세기부터 불리기 시작해 20세기 초반 영국ㆍ프랑스ㆍ미국이 제멋대로 규정한 통칭에 불과하다.(이 이름을 붙인 사람은 아메리카의 해양 정책과 국제 전략의 방향을 정한 앨프리드 세이어 머핸Alfred Thayer, Mahan), 현재 이 지역은 2011년부터 ‘중동 대변동’이나 ‘민주화 도미노’라고 불리는 변화의 파도가 퍼져나가며 여전히 진행 중이다.

리비아는 100개가 넘는 부족으로 이루어진 유목민의 혼성체라고 할 정도로 잡다한 집합이다. ‘중동’이라는 타자가 붙인 이름과 그 넓은 지역 전체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찾아낸다면 크고 작은 수많은 나라 대부분이 과거 역사에서 다양한 유목민이 활동하던 세계였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 이 공통점은 국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유목민이 본 세계사-근현대판》을 향해

즉 ‘근현대의 유목민이 본 세계사’를 기술하기 위해서는 서구가 자기 문명에 자부심을 느끼며 프랑스어로 ‘시빌리자숑Civilisation’, 영어로는 비슷한 철자인 ‘시빌라이제이션’(Civilization, 이름을 붙인 사람은 19세기 초반의 프랑스인 키조, 라틴어로 키비스Civis, 키빌리타스Civilitas에서 유래한 이 조어는 본래 ‘도시화’ 정도의 의미였다. 이것을 영국과 프랑스 등이 자기들 마음대로 의미를 확대해서 강조했다. 일본은 ‘문명’이라고 번역했고, 일본의 계몽가나 교육가 등이 강하게 퍼뜨려 한반도와 중국에서도 ‘문명’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이라고 부르며 자기들을 특별시하는 한편, ‘문명화의 사명’이라고 부르며 ‘뒤처진 아시아ㆍ아프리카’ 등 세계를 분할 지배하려고 했던 비참한 시대를 하나의 주요 선율로 묘사해야 한다.

그 시대 유라시아 중앙에서는 여전히 과거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넓은 대지에 흩어져 사는 유목민들이 순전히 군사적인 이유로 ‘서구 문명’을 채용한 러시아제국과 장기간에 걸친 갈등과 분쟁을 겪어야 했고, 참으로 고단한 세월을 보내야 하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 특히 몽골제국 시절 현재의 러시아 방면을 통치했던 ‘조치 울루스’의 ‘좌익’(동방을 의미)에 속했던 카자흐스탄의 백성들(현재의 카자흐스탄의 유래가 된 사람들)은 러시아ㆍ소련에 의해 정복되고 식민지가 되었으며 최근까지도 악랄한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 살아왔다.

동쪽의 청왕조가 만주ㆍ몽골 기병과 함께 150년의 숙적이었던 중가르 유목민 국가를 무너뜨리고 마침내 파미르고원 동쪽의 넓은 영역을 수중에 넣은 18세기 중반 무렵(참고로 이 판도가 거의 그대로 현재의 중국 국경이 되었다), 거의 동일한 시기에 러시아가 카자흐스탄에 손을 뻗었다. 그 이후 러시아에서 보면 반란 또는 동란, 카자흐스탄 입장에서는 독립ㆍ해방 운동이 되풀이되었다. 그러나 1891년 카자흐스탄의 전 영역은 러시아의 소유로 선언되었다. 1898년의 조사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의 당시 인구는 414만이며 그 가운데 1만 5,000명이 칭기즈칸의 혈맥을 이은 사람들이었다.

러일전쟁 때 일본에 박수를 보내며 동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얼마 후 소련이라는 새로운 제국 아래에서 집단화와 숙청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특히 스탈린Joseph Stalin에 의해 1930년대에 147만 또는 201만의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일설에는 그 수가 3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인구의 절반이 말살된 셈이다. 그것은 유목의 전통과 그 백성을 근절시키려는 잔혹한 행위였다.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 소련 영역 내의 다양한 비(非)러시아 사람들이 독일군에게 협력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역시 스탈린의 명령으로 카자흐스탄의 대평원에 강제적으로 ‘버려졌다.’ 즉 말 그대로 ‘디아스포라’(원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유대인의 이산과 고향을 떠나 흩어져 살게 된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역사 속에서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에 불과하다)였다. 중앙아시아의 초원은 여러 민족의 ‘공동묘지’가 되었다. 사회주의화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분단ㆍ강제ㆍ탄압 그리고 강제적인 집단화와 농업 정책의 실패 등의 결과로 자연적으로 모여 살아가는 본래의 형태가 사라지고 과거의 목초지는 사막이나 토막(土漠)으로 변했다. 과거 유목민들의 그림자는 유라시아 북반(北半)의 땅에서 점점 엷어졌다.

한편 중동의 땅에서는 제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영국과 프랑스가 단숨에 세력권을 확산했고 여기에 신흥 아메리카까지 가세해 거의 이름만 남은 존재가 된 오스만제국의 과거 영역이었던 광대한 중동의 중앙부와 현재의 알제리ㆍ모로코 등의 마그레브(Maghreb, 아랍어로 해가 지는 곳이 라는 뜻)의 땅을 분할 지배했다. 그것이 현재 중동 지도의 원형적인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엄청난 석유 자원의 존재가 새롭게 드러나면서 세계의 도식은 크게 변화했다. 예부터 대체로 부족 단위로 결속하며 이합집산을 해왔던 유목민들이 더 정확하게 말하면 토호나 군벌, 왕가 등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존재들, 권위가 있었지만 규모 면에서 작은 권력자에 불과했던 수장들이 거대한 석유 수입을 배경으로 부강해진 것이다.

한편 과거의 유목민과 그 집단의 원리와는 별개로 석유 이권이라는 세계 규모의 다른 원리가 국제 정국 속에서 중동의 각 나라ㆍ각 지역의 의미를 변모시켰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중동에서 일어난 다양한 변전과 정치적인 문맥은 2011년 현재 과연 새로운 단계를 맞이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중동 서쪽에서 거대한 변화가 찾아올 것인지 어떤지 아직 확실하게 말하기 힘들다. 다만 개인적인 의견을 말한다면 ‘민주화’라는 대변동이 세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도미노가 붕괴’되는 것 같은 형태로 서쪽에서 중동 동쪽까지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라는 두 지역 대국의 동향이 모든 것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역사는 늘 통과하는 점이다.

나는 앞으로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근현대판》을 쓰려고 마음먹고 있다. 이미 오래전에 과거의 유물이나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유목민은 사실 아프로-유라시아Afro-Eurasia의 곳곳에서 지금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근현대라는 질풍노도 속에서 각지의 다양한 유목민들이 만들어낸 문화ㆍ풍습ㆍ가치관ㆍ시스템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역사는 죽은 과거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이어진 도정(道程)을 만들어온 다양한 생활을 밝히는 것이며 미래를 바라보며 그를 위한 최대의 양식을 준비하는 수단이다. 그리고 원래 역사는 시공을 초월해서 세계사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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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 스기야마 마사아키 저/이경덕 역 | 시루
이 책은 그동안 야만족, 미개인이라고 치부되었던 유목민들이 은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경제체제를 갖추고 있었으며, 오아시스에 사는 정주민들의 고립을 막아주는 문화 교류자였으며, 그들이 사용한 아람어가 소그드문자를 비롯해 위구르문자와 만주문자, 한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등의 그동안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있어 신선한 충격을 준다.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그동안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왜곡, 축소되었던 유목민들의 역사를 하나하나 되짚음으로써 동과 서로 단절되었던 세계사를 연결시켜 비로소 역사의 실체를 마주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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