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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박훈정 감독의 차기작이 더 기대되는 이유

변죽과 변주 사이의 날선 균형 <신세계>와 함께 본 박훈정 감독의 작품들 세 남자가 꿈꾸는 그들만의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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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작가로 탄탄하게 쌓아올린 경력처럼 박훈정 감독이 축조해낸 남성들의 세계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작가로 참여했던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 첫 연출작 <혈투>에 이르기 까지 그의 작품 속 강한 남성 캐릭터들은 선악의 경계가 무너진 극한 대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혈투를 벌인다.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 개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맺음과 반목을 거듭하게 되는 인물 사이의 날선 재미가 그의 작품 속에는 있다.


2011년 데뷔작 <혈투>의 아쉬움을 한 번에 날리기라도 하듯 영화 <신세계>는 연일 흥행기록을 갱신하면서 박훈정 감독에게 ‘신세계’를 열어주고 있는 중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신세계>는 비밀잠입 경찰이라는 소재를 이용한 갱스터 누아르 영화로, 국내 최대 범죄조직에 잠입한 형사 이자성(이정재)과 그의 정체를 모르고 친형제처럼 아끼는 조직의 2인자 정청(황정민), 그리고 잠입수사 작전을 설계하고 조직의 목을 조여 오는 형사 강과장(최민식) 사이에서 벌어지는 의리와 배신, 그리고 음모가 뒤섞인 남성적 향기가 물씬 풍기는 영화다. 시나리오 작가로 탄탄하게 쌓아올린 경력처럼 박훈정 감독이 축조해낸 남성들의 세계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작가로 참여했던 <악마를 보았다><부당거래>, 첫 연출작 <혈투>에 이르기 까지 그의 작품 속 강한 남성 캐릭터들은 선악의 경계가 무너진 극한 대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혈투를 벌인다.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 개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맺음과 반목을 거듭하게 되는 인물 사이의 날선 재미가 그의 작품 속에는 있다.



형사가 갱스터 조직에 잠입한다는 소재는 1998년 조니 뎁의 <도니 브래스코>는 물론 2002년 홍콩 영화의 부활을 알렸던 <무간도> 등 수많은 작품에서 변주되어 온 갱스터 장르 영화의 흥미로운 소재 중의 하나이다. <신세계> 속 대사처럼 정체를 숨긴 채 연기를 해야 하는 수사관은 잠꼬대를 하다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기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이자성은 국내 최대 범죄조직인 '골드문'에 잠입해 8년째 몸담으며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해 그곳을 벗어나게 되는 날만을 기다리며 입지를 다졌다. 마음은 법과 정의를 수호하는 경찰인데도 억지로 잔인하고 몹쓸 짓을 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상황에 절망한다. 하지만 골드문 회장이 사망하고 후계자 문제로 조직에 피바람이 몰아치면서, 그의 생활은 더욱 더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자성은 자신의 위장수사가 끝나길 바라고, 강과장은 골드문 소탕이 끝나길 바라고, 정청은 조직의 1인자가 되어 지금의 자신의 삶이 아닌 ‘신세계’를 꿈꾸지만 결론적으로 어느 누구도 각자가 바라는 신세계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한다.

세상은 온통 뒤죽박죽 뒤엉켜 있으며,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잔인하다. 그 잔인함은 폭력조직 내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의 수호자라 불리는 경찰 조직 내부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세 꼭짓점을 확실하게 잡아주는 최민식, 황정민, 이정재와 함께 이중구 역할의 박성웅까지 가세한 배우들의 연기는 그저 표정만으로도 팽팽한 긴장감을 흐르게 만든다. <7번방의 선물>, <베를린>에 이어 흥행작 대열에 들어선 <신세계>의 흥행은 남자 관객들의 호평과 입소문으로 더욱 거세질 것 같다.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는?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

<부당거래><혈투>처럼 <신세계>의 주인공은 세 사람이다. 홀수는 결속의 이면에 늘 대립과 잉여를 전제로 하는 숫자다. 정치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듯 2인 구도 체제에서 제3의 세력이 어느 쪽에 붙느냐에 따라 판도가 달라지는 법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박훈정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로 먼저 데뷔했다. 그의 이름을 가장 먼저 알린 작품은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악마를 보았다>이다. 오리지널 시나리오의 제목 <아열대의 밤>처럼 습하고 뜨겁고 어둡고 찝찝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극단적인 폭력을 통해 인간 본성을 드러내는 극악의 방법을 사용한다.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부당거래>는 거대한 먹이사슬로 엮인 캐릭터들의 관계를 보여준다. 검사, 경찰, 조폭 사이의 기생 혹은 공생관계의 적나라한 재현을 통해 한국 사회의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뉴스를 보고 모티브를 얻어 시나리오를 썼다는 박훈정 감독의 말처럼 <부당거래>의 상황은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혈투>

전국 관객 4만 여명, 어쩌면 그 제목도 생소할 수 있는 <혈투>는 2011년 박훈정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한 영화였다. 다른 시대극처럼 세트와 의상의 미장센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형식과 극적 긴장감으로 적은 예산과 한정된 공간을 극복해 내는 작품이었다. <혈투>는 궁극적으로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개성 강한 남성 캐릭터에 대한 감독의 취향이 드러난 작품으로, 이야기 속 세 남자는 <부당거래>의 세 남자와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탈출할 구멍을 틀어 막아놓고 사내들을 싸우게 만드는 방법도,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의리와 동지애를 이토록 신뢰하지 않는 방법까지 <신세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감독의 취향들은 <혈투>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러한 일관적인 세계관과 캐릭터를 축조하는 방법은 층층이 쌓여 <신세계>에 투영되었다.


<대부>


<무간도>

<신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윤종빈 감독의 영화가 갱스터 누아르 장르에 대해 가지는 장르에 대한 낭만적 취향과 장르 영화의 묵직한 개성은 차용하면서 캐릭터의 습성을 생생하게 한국화하면서 ‘한국적 누아르’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얻었던 것과 달리 <신세계>는 우리가 너무나 익숙한 홍콩 누아르와 그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누아르 영화의 걸작 <대부>에 이르기까지 혈통의 유전자가 다르다는 이유에서이다. <무간도>를 통해 부활한 홍콩 누아르의 전통과 이야기에서 동지애와 끈끈한 정을 빼면 <신세계>가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신세계>의 생물학적 유전자는 <무간도>와 닮아 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강렬해지는 <신세계>만의 이야기는 <무간도>의 변죽이 될 뻔한 이야기를 세련된 변주로 승격시킨다. 하지만 <신세계><무간도> 뿐만 아니라, 두기봉 감독의 <흑사회>와 코폴라 감독의 <대부>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렇게 박훈정 감독의 장르 영화에 대한 매혹과 선배들이 이룬 소재의 차용을 굳이 숨기지 않고 전면에 드러낸다. 그럼에도 지금 자신이 처한 세계의 끝 혹은 타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신세계’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신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적 전언은 강렬하다. 굳이 장르영화의 속성을 ‘한국화’할 필요가 없다는 전제하에서 보자면 <신세계>는 충분히 즐겨 볼 수 있는 짜임새 있는 장르영화로서의 구실은 제대로 하고 있다. 단, 변죽과 변주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균형 있는 작품을 창조해내려면 뭔가 더 새로운 세계를 보여줘야 할 필요는 있다.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는 차기작으로 완성되리라 기대해보고 싶은 이유는 물론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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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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