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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개척자에게 감사해야하는 이유 - 브라이언 이노 < Another Green World >

실험성에서 발현된 과감한 대작 앰비언트(환경 음악) 음악의 효시로 발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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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이노는 음악 팬들에게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와 유투(U2), 콜드플레이(Coldplay)의 앨범 프로듀서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가 팝 역사에서 인정받는 이유는 단지 프로듀서로서의 활동 때문만은 아니죠. 금주의 명반은 전자음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브라이언 이노의 1975년 작품, < Another Green World >입니다.

브라이언 이노는 음악 팬들에게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와 유투(U2), 콜드플레이(Coldplay)의 앨범 프로듀서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가 팝 역사에서 인정받는 이유는 단지 프로듀서로서의 활동 때문만은 아니죠. 금주의 명반은 전자음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브라이언 이노의 1975년 작품, < Another Green World >입니다.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 Another Green World > (1975)

존재 자체만으로도 화려했던 글램 록 밴드, 록시 뮤직(Roxy Music)의 두 축인 브라이언 페리(Bryan Ferry)와 브라이언 이노(Brian Eno)는 마침내 서로 다른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밴드 지휘에 있어 프런트 맨 브라이언 페리가 보여주었던 독단적인 모습이나, 프런트 맨 못지않게 막강한 존재감을 자아냈던 브라이언 이노와의 알력 다툼 등 분열의 원인은 여러 가지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음악적 견해의 차이였다.

비음 가득한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크루너 가수인 브라이언 페리는 자신의 음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음악을 노선으로 택해야했다. 보컬의 존재가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소울 풍의 팝이 가장 잘 어울리는 종목이었으며 이를 알고 있던 그 역시 록시 뮤직의 아트 록에 아름다운 멜로디를 이식시키려 했다. 그러나 브라이언 이노는 달랐다. 예술 학교에서 습득했던 전위적인 방법론은 실험성에 대한 탐닉을 낳았고 창의성으로 뒤덮인 고민들을 일으켰다. 정형화된 틀에서는 결코 만족할 수 없었다. 좀 더 획기적이고 과감한 결과물을 향해 끊임없이 접근하려 했던 것이다.

둘의 이 다른 방향성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초기 전자 음악에 관심을 보였던 브라이언 페리도 점차 브라이언 이노의 음악을 탐탁지 않게 여기기 시작했고 브라이언 이노 역시 밴드 음악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록시 뮤직의 세 번째 앨범 < For Your Pleasure >를 제작할 시기에 브라이언 페리가 브라이언 이노의 곡을 제외시킨 일은 반목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으며 「Do the strand」, 「The bogus man」 등이 수록된 이 앨범은 결국 브라이언 이노에게 있어 록시 뮤직에서의 마지막 음반이 되었다. 1973년의 일이었다.

탈퇴 이후 브라이언 이노는 빠르게 솔로 활동으로 돌입했다. 신디사이저 사운드나 기타 음향 효과를 첨가하던 제한된 역할에서 벗어나 온전한 아티스트로서의 영역을 확보하기 시작했고 실험성으로 가득한 1974년의 두 작품 < Here Come The Warm Jets >< Taking Tiger Mountain (By Strategy) >를 연달아 발표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5년 8월, 브라이언 이노라는 뮤지션의 전환점이자 앰비언트 음악(ambient music)의 선구작으로 회자될 < Another Green World >가 런던의 아일랜드 스튜디오(Island Studio)에서 녹음을 마쳤다.

세 번째 솔로 앨범은 글램 록의 요소를 적잖이 가지고 있던 이전의 작품들과는 확실히 다른 유형의 음반이었다. 신디사이저에 의해 변형된 음향이 트랙 전체를 지배했고 서사성을 상실한 짤막한 가사들만이 이따금 보컬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전위적인 작법에 있었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멜로디의 수평적 진행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일정한 패턴의 음을 루핑 기법으로 반복시키며 질감의 강도를 확대하는 식으로 풀어나가는 접근은 리듬과 멜로디를 중시하는 고전적인 방법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의 존 케일(John Cale)이 비올라 연주를 더한 공격적인 트랙 「Sky saw」나 필 콜린스(Phil Collins)의 퍼커션 라인을 기반으로 한 「Over fire island」은 이러한 시도의 전형적인 결과물이었다. 여기에 세련된 음침함을 갖춘 「In dark trees」과 「Sombre reptiles」, 점층적인 전개가 돋보이는 웅장한 일렉트로니카 「The Big ship」 로 대표되는 트랙들은 텍스처를 부각시킨 공간과 그 속을 채우는 기류에 초점을 맞추며 각양의 이미지를 창출하는 절묘한 효과를 낳는다. 공간감과 분위기가 구성하는 환경의 요소가 중심이 되는 앰비언트 음악의 효시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기에 이전 솔로 앨범들에서 보이는 팝과 록적인 측면은 이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프립 앤 이노(Fripp & Eno)라는 이름으로 이전에 협업했었던 킹 크림슨(King Crimson) 출신 기타리스트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의 기타 연주와 브라이언 이노의 고혹적인 보컬이 빛을 발하는 「St. Elmo's fire」와 「I'll come running」, 「Golden hours」는 온전한 가사와 후반부의 기타 솔로와 같은 전통적인 형식의 기준을 대부분 만족시키나 이 역시 정제된 전자 음색과 절제된 곡의 진행에 의해 기존 음악의 성향을 적잖게 잃은 모습이다.

< Another Green World >는 결국 브라이언 이노의 실험성에서 발현된 과감한 대작이었다. 록시 뮤직 시절부터 이어온 창조적인 사고들은 팝의 영역에 예상할 수 없는 독창적인 방법론들을 가감 없이 이식했고 아티스트의 지위를 새로운 음악의 선구자라는 영예로운 지위로 높이 끌어올렸다. 오늘날 일렉트로닉 음악들이 예술 장르의 영역에서 독립적인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것도, 영화나 게임 등 다방면의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는 것도 이러한 접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신디사이저의 마법사와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Multi-instrumentalist)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던 브라이언 이노는 이후 아방가르드의 대가와 앰비언트의 권위자,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와 유투(U2), 콜드플레이(Coldplay)의 작품에 직접 참여한 실력 있는 프로듀서라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다. 고민을 멈추지 않는 아티스트가 매순간 꺼내들었던 창의적인 카드들은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전무했던 새로운 결과물들로 나타났다. 팝의 저변을 끊임없이 넓혀온 이 개척자에게 우리가 감사해야하는 이유다.


글 /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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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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