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故천상병 시인, 막걸리 돈이 간첩 공작금으로 둔갑되기도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1993년 4월 28일, 시인은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잠시 지상으로 왔던 소풍을 마치고 말이지요. 그의 몸은 오래전에 겪었던 옥고로 이미 많이 허약해진 상태였습니다. 그가 옮겨왔던 발걸음들을 돌아보면서, 저는 그가 겪었을 그 모든 고통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오늘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천상병(千祥炳, 1930년 1월 29일 ~ 1993년 4월 28일)이 태어난 날이다. 호는 심온(深溫)이다. 일본 효고 현 히메지 출생이며 원적지는 경상남도 마산이다. 1949년 마산중학 5학년 때, 『죽순』 11집에 시 「공상(空想)」 외 1편을 추천 받았고, 1952년 『문예』에 「강물」「갈매기」 등을 추천 받은 후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했다. 소풍 온 속세를 떠나 하늘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귀천(歸天)》으로 유명하다. 1967년 억울하게도 중앙정보부에 의해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심한 옥고와 고문을 겪었다. 친구 강빈구에게 막걸리 값으로 5백원, 1천원씩 받아 썼던 돈이 간첩에게 받은 공작금으로 과장되었고, 천상병 시인 자신은 전기고문으로 몸과 정신이 멍들었다. 1993년 지병인 간경화로 인해 타계하였다.

가난ㆍ무직ㆍ방탕ㆍ주벽 등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그는 우주의 근원,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한 시를 썼다. 1971년 가을 문우들이 주선해서 내준 제1시집 『새』는 천상병 시인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지인들이 그를 위한 유고시집으로 발간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당시 시집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1972년 친구의 여동생인 목순옥 여사와 결혼한 천상병 시인은 1979년 시집 《주막에서》를 펴냈고,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1984년),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년), 시집 《요놈! 요놈! 요 이쁜 놈!》(1991년),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1993년)도 발표하였다. 말년에 천주교에 입문한 천시인은 하느님에 대한 소박하고 순수한 기독교적 신앙을 보여주는 작품활동도 하였다. (내용출처: 예스24 작가파일, 위키백과)


천상병 시인과 아버지

책을 가까이 두십니다. 흘러가는 세월에 잠도 같이 많아지셔서인지, 책 펴놓고 잠드시기가 일쑤지만 여전히 책을 가까이 두십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을까요. 친구들 불러 모아 넓지도 않은 아파트를 운동장처럼 뛰어놀던 시절에도 그러셨습니다. 방 세 개. 작은 집 여기저기를 천방지축으로 어지럽히고 놀았지만, 책이 많았던 아빠 방엔 잘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들어오지 말라고 따로 말씀하셨던 것은 아니지만, 책이 많은 방은 아빠를 닮아 조용했고, 신나게 떠들고 놀다가도 그 방에만 들어서면 왠지 저도 모르게 조용히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햇빛이 조용히 창문 틈새로 스미고, 바람도 가만히 나뭇잎만 스쳐 지나가는 날들이면 언제나 책 한 권 펴고 자리에 앉아 계시고는 했습니다. 그런 날들처럼, 조용하고 깊은 분이십니다. 평소 부모님께 말도 많이 하고, 장난도 많이 치는 편이었지만 책을 읽고 계실 때는 왠지 어려웠습니다. 의자 다리 옆에 앉아, 무얼 보시는지 여쭈어보기는 했었지만, 온통 모르는 것투성이였습니다. 그러다가 지레 시들해져 의자 다리에 기대 잠들곤 했던 기억도 납니다.

시를 자주 읽으셨습니다. 가끔 옆에 기대앉은 제게 읽어주시기도 했지요. 김소월, 천상병, 서정주, 윤동주……. 시를 조금이나마 즐겨 읽는 것은, 어렸을 적 아빠가 들려주신 시들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읽으시던, 좋아하셨던 시는 천상병 시인의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살짝살짝 뒤에서 엿보던 책에는 그의 이름이 자주 보였고, 아빠는 그 사람의 시를 어린 제게 자주 읽어주시기도 했습니다.

『천상병을 말하다』. 저는 아빠가 좋아하시던 시인이 어떻게 말해지는지 궁금했습니다. 시인의 주변 사람들이 그의 삶을 기려 기억을 적어둔 책이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면서, 저는 시인과, 그가 보았던 세상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습니다.

1993년 4월 28일, 시인은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잠시 지상으로 왔던 소풍을 마치고 말이지요. 그의 몸은 오래전에 겪었던 옥고로 이미 많이 허약해진 상태였습니다. 그가 옮겨왔던 발걸음들을 돌아보면서, 저는 그가 겪었을 그 모든 고통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단지 같이 술자리를 몇 번 했던 사람의 수첩에서 시인의 이름이 나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인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3개월, 그리고 교도소에서 3개월 동안 갖은 고문과 취조를 받았습니다.

이젠 몇 년이었는가 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 당한 그날은…
이젠 몇 년이었는가 무서운 집 뒷 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 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
네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시인의 시, ‘그날은-새’ 중의 일부입니다. 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 라는 표현에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몇 번에 걸쳐 받았던 전기고문에, 시인은 자식도 가질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당했던 온갖 비합리적이고 온당하지 못한 처사에 관련 없는 저조차도 화가 치밀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세상에게 그는 물질로도 보상받지 못했습니다. 빈한한 삶이었습니다.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행복’이라는 시에서 그는 그렇게 적었습니다. 세상에 한 맺힌 울음만을 토해내도 부족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래서 설움과 고통만으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시구는 마치 성경처럼 담담했습니다. 담담함을 넘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생각과 틀어지면 세상에 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하듯 말하지만, 돌아보면 저부터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족에게, 사회에, 배경에 불평하곤 합니다. 우리가 행복을 우리 밖에서 찾는 것과는 반대로, 시인은 자기 자신에게 행복을 물었습니다.

“나는 볼품없이 가난하지만 / 인간의 삶에는 부족하지 않다. / (…) / 다만, 하늘에 감사할 뿐이다”라고, 시인은 시 ‘행복’에서 말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무엇 하나 받은 것 없는, 받기보다 빼앗기기만 한 그가 하늘에 감사한다고 말하는 모습에 저는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진정으로 “행복”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리 밖이 아닌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난 뒤부터 늦게 귀가하게 되어서 아빠가 읽어주시는 시들을 많이 듣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요즘도 가끔 밤늦도록 책을 펴고 계신 모습을 보면 그날들과 함께, 제가 들었던 많은 시와 시인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출처 : <형범이의 행복한 책읽기>
           //ch.yes24.com/Article/View/13561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7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최경진

지구에 춤을 추러 온 화성인입니다. 여행과 영화 감상을 좋아하며, 책을 사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잘 읽지는 못하고 쌓아만 둡니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춤을 추는 게 삶의 목표입니다.

오늘의 책

김기태라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장르

2024년 가장 주목받는 신예 김기태 소설가의 첫 소설집. 젊은작가상, 이상문학상 등 작품성을 입증받은 그가 비관과 희망의 느슨한 사이에서 2020년대 세태의 윤리와 사랑, 개인과 사회를 세심하게 풀어냈다. 오늘날의 한국소설을 말할 때, 항상 거론될 이름과 작품들을 만나보시길.

제 1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제 1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율의 시선』은 주인공 안율의 시선을 따라간다. 인간 관계는 수단이자 전략이라며 늘 땅만 보고 걷던 율이 '진짜 친구'의 눈을 바라보기까지. 율의 성장은 외로웠던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진심으로 안아주는 데서 시작한다.

돈 없는 대한민국의 초상

GDP 10위권, 1인당 GDP는 3만 달러가 넘는 대한민국에 돈이 없다고? 사실이다. 돈이 없어 안정된 주거를 누리지 못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 누구 탓일까? 우리가 만들어온 구조다. 수도권 집중, 낮은 노동 생산성, 능력주의를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

잘 되는 장사의 모든 것

선진국에 비해 유독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 왜 대한민국 식당의 절반은 3년 안에 폐업할까? 잘 되는 가게에는 어떤 비결이 있을까? 장사 콘텐츠 조회수 1위 유튜버 장사 권프로가 알려주는 잘 되는 장사의 모든 것. 장사의 기본부터 실천법까지 저자만의 장사 노하우를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