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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입은 옷은?

나를 더 사랑하는 법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를 특별하게 만드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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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는 법은 결국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같다는 메시지. 그가 먹지 않는 볶음밥 속의 당근을 골라 먹는 일, 그가 먹지 않는 잡채 속의 양파와 시금치를 덜어 먹는 일, 그런 일들이 그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나를 사랑하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나와 너가 아니라 우리가 되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바람과 꽃과 나무와 돌멩이조차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고 끝내 믿는 일. 그것의 이름을 호박가시 나무와 배추나비라 부르고, 어두워진 하늘 자리를 바라보며 ‘천칭자리’와 ‘북두칠성’이라 감각하는 이 모든 일이 우주를 사랑하는 동시에 나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일이었다.

내가 ‘미란다 줄라이’를 알게 된 건, <미 앤 유 앤 에브리씽> 때문이었다. 자신이 직접 쓴 대본을 연출하고, 연기까지 한 영화가 내겐 꽤 특별하게 느껴졌는데, 마치 여자 우디 앨런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몽고메리 여사의 빨강머리 앤을 침대 맡에 끼고 자란 덕분에 절로 생긴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호감이 작용했던 건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에 대해 찾아보는 일은 흔치 않은데, 어쨌든 그날 미란다 줄라이에 대해 조사했다. 그리고 그녀가 1974년생으로 출판업자의 딸로 태어난 동갑내기이고, 행위예술가이며 연극연출가, 화가, 희곡작가이자 소설가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뭐지? 이 여자.


얼마 전, 그녀의 영화 <미래는 고양이처럼>을 보았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LA에 거주하는 4년차 커플인 소피와 제이슨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무료한 일상을 극복하기 위해 병든 길고양이를 입양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뜻밖의 얘기를 듣는다. 잘해야 6개월쯤 살 것이라 예상했던 길고양이 ‘꾹꾹이’가 사랑을 주고 잘 키우면 앞으로 5년은 더 살지도 모른다는 당황스런 소식이었다.

문득 이들은 두려움과 책임감을 느낀다. 살아 숨 쉬는 생명과 5년을 더 산다면 앞으로 엄청난 책임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양이 입양을 앞둔 30일 동안, 각자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기로 결심한다. 이미 가족처럼 친밀해져 무료해진 일상에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있었다.

소피는 당장 인터넷을 끊고 다니던 직장마저 그만둔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춤을 연습해 비디오로 찍고, 우연히 알게 된 번호로 전화를 걸고, 그 남자와 통화를 시도한다. 제이슨은 지구 온난화 방지 운동 협회에 가입해 가정 방문 홍보를 시작하고, 헤어드라이어처럼 다른 사람이 쓰던 옛날 물건들을 바꿔 쓰는 리사이클 운동에 동참한다. 이들은 각자의 시간을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일들에 쏟아붓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30일이라는 시간은 어쩌면 그들이 겪고 있는 30대를 압축해놓은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30대 중반의 나이란 그런 게 아닐까. 더 이상 뜨거운 청춘은 아닌 것 같고, 앞으로 맞이하게 될 중년이 불현듯 두려워지는 그런 나이. 5년 후면 맞이하게 될 마흔이 두려웠던 소피와 제이슨은 각자의 일에 치여 돌보지 않았던 관계의 균열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서로가 서로에게 멀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들은 권태기 부부처럼 서로를 무심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연인이 오래된 가죽처럼 함께 마모되며 낡아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나는 언제나 좋아했다. 그래서 소피가 동물보호소에서 제이슨이 사들인 그림을 바라보다가, 벽 틈에서 발견한 우연한 번호로 전화를 걸고,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마음 아팠다. 그를 떠나고 싶기 때문에 “나는 길들여지지 않는 사람이었어!”라고 독백하는 소피의 말과 그녀와 함께 머물고 싶기 때문에 “제발 말하지 마!”라고 절규하는 연인의 대화에는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현실이 놓여 있었다. 이들의 침대는 더 이상 사랑을 나누는 곳이 아니라, 지루한 대화를 나누는 주말 공원의 벤치 같은 곳이 된지 오래다. 이에 대해 프로이트는 절망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와 섹스하는 능력을 위태롭게 한다고!

올 여름,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를 읽다가 나는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결혼해서 잘 사는 법을 굳이 배우지 않아도 터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비행기 착륙법이나 외과수술법을 직관으로 터득하길 기대해선 안 되듯이, 아무런 도움도 없이 더불어 살아가라는 과업을 완수하는 비결을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선 안 된다……거의 모든 활동영역에서의 교육과 훈련에 그토록 열성적이었던 부르주아가 유독 사랑의 영역에서만은 감정의 순수성이 손상될까 염려한 나머지 지나치게 이성적이거나 체계적이기를 거부하기로 결정한 것은 몹시 유감스러운 일이다…… 직장에는 직원들끼리 서로 해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인위적 절차들이 차고 넘치는데, 현대의 연인들은 자신들의 삶에 의례적 절차와 외부의 조력을 받아들이는 것을 아직도 주저하고 있다. 너무 많이 '생각'하면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만트라가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부단히 그리고 아주 많이 생각하지 않으면 결국 서로를 파멸시키게 되리란 자명해졌는데도, 사람들은 이를 피할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이것은 결혼생활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 해당되는 말이다. 특히 그것이 사랑과 관련된 것이라면 우리는 많은 것들을 그저 ‘직관’과 ‘낭만성’에 의지하도록 강요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도 믿고 일도 믿지만, 사랑을 위한 일의 가치는 믿지 않는다”라는 말은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말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 얼마나 무지한지에 대해서라면 위안과 힐링과 관련된 책들의 판매부수가 그토록 높은 이유가 그 반증 아닌가.

미란다 줄라이의 영화를 본 후, 그녀의 사이트 ‘미란다 줄라이 닷컴(http://www.learningtoloveyoumore.com)’에서 특별한 프로젝트 하나를 알게 되었다. 일명 나를 더 사랑하는 법(Learning To Love You More)프로젝트. 이 프로젝트에는 자신의 삶을 더 사랑하기 위한 방법으로 아래와 같은 것들이 제시되어 있다.

유아복을 성인복 사이즈로 만들어 보기. 낯선 사람들에게 손을 잡게 한 뒤 그 모습을 사진에 담기. 죽음을 앞둔 사람과 시간 보내기. 나를 울렸던 영화의 한 장면 그려보기. 항의 팻말을 만들고 시위하기. 내가 뭘 하고 다니는 것 같은지 가족에게 물어보기. 늘 다니는 나만의 길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주기. 1984년 내게 일어난 5대 사건 적기. 최근에 한 말다툼 적어보기……다양한 과제를 통해 그녀는 국적, 나이, 성별, 직업을 초월한 사람들이 보낸 5,000여 개의 답변을 자신의 사이트에 수집했다. 그렇게 2002년에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2009년 5월, 마지막 70번째 과제 ‘작별 인사하기’로 마감했다.

이 프로젝트는 일종의 ‘지시예술’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오노 요코’의 1961년 작품 중 ‘city piece'처럼 관객들에게 빈 유모차를 끌고 도시 곳곳을 누빌 것을 지시하는 프로젝트인 셈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상처를 사진으로 찍고 그것에 대해 얘기하기’라는 과제의 경우, 상처는 과거에 생긴 것이라 이미 치유되고 아물어 흔적만 남은 것이어야 한다. 또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입고 있었던 옷을 찍는 과제는 지난 6개월 안에 일어난 일이어야 하며, 졸업식이나 할로윈처럼 중요한 날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입었던 옷은 절대 안 된다. ‘나를 더 사랑하는 법’ 프로젝트에는 옷을 찍는 구체적인 방법들이 지시되어 있다. 옷은 바닥에 펼쳐놓을 것. 셔츠는 바지 안에, 양말은 신발 안에, 액세서리 신발도 꼭 찍을 것, 사진과 함께 그 날이 왜 중요했는지도 적을 것!

브루클린에 머무는 동안, 나는 ‘나를 더 사랑하는 법’ 프로젝트를 개인적으로 몇 명의 친구들에게 실천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뉴욕에 사는 한 선배의 머리카락을 웨스트 빌리지의 한 카페 의자에 앉아 천천히 따주었다. 그녀는 내게 어린 시절 엄마가 촘촘히 따주었던 머리카락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부모님과 함께 있는 걸 싫어했는지에 대한 믿기 힘든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집에 있으면 화장실 가는 그 순간도 너무 싫었어. 그래서 방에 오강을 들여놓았었다니까. 정말 말 다 한 거지! 거실에 화장실이 있으니까 방문을 열고 거실로 가는 동안 부모님 얼굴을 마주치는 것도 싫었던 거야.”

지금 그녀는 아픈 엄마의 요양을 위해 열 시간 가까운 비행을 마다하지 않는 딸이 되어 있었다. 최악의 순간,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자신이 가장 불편해했던 존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건 마흔이 넘어서였다고 했다. 카페에는 유독 사람들이 많아서,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나는 코끝에 카푸치노 위에 뿌려진 시나몬 가루가 살짝 묻어 있던 그녀의 얼굴이, 삐삐 롱스타킹을 좋아하던 한 소녀가 자신의 머리를 사랑했던 시간의 이야기들이, 정말이지 좋았다. 나는 그녀에게 1980년대 초반, 어느 분주한 아침 풍경에 대해 얘기했다. 어린 삼촌들과 고모들, 아빠의 도시락까지 모두 10개의 도시락을 싸고, 연년생이던 우리 자매를 방바닥에 나란히 앉혀놓고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디스코 머리를 땋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난 김에, 나는 1984년 내게 일어난 5대 사건에 대해서도 떠올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잠겨 있던 과거들이 조금씩 스며 오르기 시작했다.

1) 그해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열렸었다.
2)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할아버지의 병수발 때문에 엄마는 집에 거의 없었다.
3) 동생들과 나. 삼남매는 올림픽에서 꽃돼지라는 별명을 가진 서향순 선수가 금메달 따는 장면을 지켜보며 좋아했다. 당시 일곱 살이던 막내는 말을 더듬어 우리 가족들을 걱정시켰는데, 우리는 그때 처음으로 그 아이가 정확한 발음으로 “한국이 금메달 땄어!”라고 말하는 걸 들었었다.
4) 할아버지는 끝내 암 투병 중 돌아가셨다.
5)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단 얘길 듣고 처음에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장지에서 돌아와 수척해진 엄마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듯 했던 말 앞에서 나는 엉엉 울었다. 돌아가시기 전, 할아버지와 간호사가 했다는 대화였다. “이런 멀건 것 말고. 얼큰한 국밥 한 그릇 먹었으면!” “할아버지 평생 그런 거 못 드시니까 꿈도 꾸지 마세요!” 유독 술을 좋아했던 할아버지가 밥그릇을 엎어 흰밥을 덩어리째 넣어 국밥에 말던 모습이 떠올랐다. 죽기 직전에 정말 먹고 싶었던 것이라면, 먹어도 좋지 않았을까. 1984년 올림픽의 환희와 할아버지의 죽음이 교차하는 장면들을 떠올리다가, 나는 결혼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1984년과 얽힌 이야기를 하다가 LA가 ‘천사의 도시’라는 애칭을 가진 곳이라면 언젠가 한 번 꼭 같이 가보자는 이야길 나누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우리는 함께 그 도시에 간 적이 없었다. 28년 만에 약속은 그렇게 다시 복원됐다. 28년 전, 꼬맹이들의 약속을 기억해낸 것이 우리에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서울과 뉴욕에서 인터넷 전화로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추억에 있어 ‘나’와 ‘너’는 희미하지만 ‘우리’는 강하다는 사실도!

낯선 사람의 손을 잡게 한 뒤 그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거나, 부모님이 키스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거나 하는 일은 한국에서 실천하기에 쉽지 않은 프로젝트이긴 하다. 하지만 자신만 아는 자신의 치유 비법에 대한 챕터를 읽다가 나는 바나나 껍질로 가시를 빼내는 방법 같은 걸 알아내곤 친구들에게 알려주었다.(신기하게도 바나나에 함유된 효소가 피부에 박힌 가시를 절로 빼준단다). 응원의 게시물을 만들어 사진으로 찍는 일은 더 의미 있어 보였다. 다소 선동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개중엔 이런 응원문구도 있다.

난독증은 당신을 더 강하게 만들어줄 겁니다!
그래도 아직 두 다리는 멀쩡히 붙어 있잖아!


과제 중에는 스스로의 유서를 미리 써보기도 있는데, 이런 일은 내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많은 영감을 주었다. 이를테면 “내가 죽으면 시신을 동물원에 기증해서 사자의 먹이로 삼았으면 한다. 그리고 사자 우리 옆에 팻말을 하나 세워주기를. 샤샤프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한결같이 동물을 사랑했다.”라고 말한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 사는 ‘샤샤프 폴라코’의 유서나 “내 시신을 관없이 바로 정원에 묻고 그 위에 과일나무를 심어주길 바란다. 시간이 흘러 나무에서 첫 열매가 열리면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 열매로 파이나 맛있는 과자를 만들어 먹으면 좋겠다. 어떤 나무를 심을지 아직 정하지는 못했지만”이라고 쓴 플로리다의 ‘케이시 조트 올낸드’의 유서는 어떤 시보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또 한 가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거울 속의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친구의 몸에 난 주근깨와 점을 연결해 자신만의 별자리 만들기. 이 과제를 수행하기 전 필요한 일은 먼저 내 몸에 난 주근깨와 점들의 숫자를 헤아려 보는 일이었다. 나는 어렵지 않게 내 나이보다 훨씬 더 많은 기미와 점의 숫자를 발견하고 스스로 놀랐다. 작정하고 그런 것들을 일일이 세어볼 생각 따윈 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나만의 별자리를 만드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적어도 내 몸에 난 점과 주근깨들로는 말이다.

그날, 책을 읽다가 잠들어 있던 누군가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녀가 읽고 있던 것은 내가 서울에서 가져간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이었다. 어쩌면 한 평생 태연해질 수 없는 삶을 살았던 나는 그녀의 얼굴에 난 다섯 개의 점을 관찰했고, 눈으로 그것을 꼼꼼히 찍었다. 그리고 그 몇 개의 점만으로도 별자리는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런 사소한 깨달음이 그 밤, 내게 큰 위로를 주었다.

나를 사랑하는 법은 결국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같다는 메시지. 그가 먹지 않는 볶음밥 속의 당근을 골라 먹는 일, 그가 먹지 않는 잡채 속의 양파와 시금치를 덜어 먹는 일, 그런 일들이 그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나를 사랑하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나와 너가 아니라 우리가 되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바람과 꽃과 나무와 돌멩이조차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고 끝내 믿는 일. 그것의 이름을 호박가시 나무와 배추나비라 부르고, 어두워진 하늘 자리를 바라보며 ‘천칭자리’와 ‘북두칠성’이라 감각하는 이 모든 일이 우주를 사랑하는 동시에 나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일이었다.

그날, 창문 밖에 뜬 달을 보았다. 친구에게 편지를 썼고, 머리를 땋아 올린 내 사진을 보내주었다. 아직 잠들지 않은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이게 뭐야? 디스코 머리네? 요새도 이런 촌스런 머릴 해?” 나는 내 팔뚝에 스스로 그린 별자리를 찍어 사진으로 보냈다. “설마 너! 문신한 거야?” 그녀는 LA에 있다. 28년 전, 초등학교 2학년이던 동생과 함께 손가락을 걸고 언젠가 꼭 가보자 약속했던 천사의 도시에 말이다. 뉴욕과 LA의 시차는 3시간이다. 3시간을 사이에 두고도 내가 바라보는 달이 또렷이 그녀의 창문에 박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어느새 마음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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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백영옥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 2008년에서 2009년에 걸쳐 YES블로그에 장편소설 『다이어트의 여왕』 연재, 일간지 연재칼럼을 모아 낸 에세이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단편집 『아주 보통의 연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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