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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아틀라스> 심각하게 보지 마세요

워쇼스키 남매 조합의 기술과 사유의 깊이, 그 사이를 걷다 시공을 초월하는 운명의 6중주, 그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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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돌아온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분명 누구나 덤빌 수 없는 야심찬 기획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것도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1849년부터 2346년까지 거의 500년이라는 기간 중에 벌어진 여섯 개의 이야기들이 교차로 진행되면서, 10여명의 주조연 배우들이 특수 분장의 힘을 입어 연령과 성별까지 바꿔 다양한 인물에 도전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이 광대한 프로젝트를 위해 워쇼스키 남매와 함께 톰 티크베어 감독이 공동연출로 나섰다.


빛의 속도로 달렸음에도, 뚜렷한 긴장감은 느낄 수가 없었던 <스피드 레이서> 이후, 5년 만에 돌아온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분명 누구나 덤빌 수 없는 야심찬 기획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것도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1849년부터 2346년까지 거의 500년이라는 기간 중에 벌어진 여섯 개의 이야기들이 교차로 진행되면서, 10여명의 주조연 배우들이 특수 분장의 힘을 입어 연령과 성별까지 바꿔 다양한 인물에 도전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이 광대한 프로젝트를 위해 워쇼스키 남매와 함께 톰 티크베어 감독이 공동연출로 나섰다.

인간의 삶이란 시공을 초월해 모두 연결되어 있고, 늘 새롭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삶의 양태들을 지겨울 정도로 유사하게 반복된다는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복잡하면서도 뒤얽힌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세 감독의 조합은 참신하고 획기적인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워쇼스키 형제였던 두 짝패의 한명인 래리 워쇼스키가 성전환을 통해 라나 워쇼스키로 바뀌었고 톰 티크베어 감독은 전작인 <쓰리>를 통해 삼각관계와 양성애가 가장 이상적인 미래의 관계라는 판타지를 설득력 있게 설파했다. 성별과 성정체성의 경계가 무너진 윤회의 이야기는 조각조각 펼쳐져 있지만, 세 사람은 흩어진 이야기를 절묘하게 하나의 서사로 꿰맨다.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모티브는 불교의 윤회사상에서 온다. 전생의 악연이 후생의 인연이 된다는 것과 현재의 인생을 만드는 것이 전생의 선택이라는 말하자면 ‘업’ 혹은 카르마가 이 영화의 중심에 있다. 여섯 개의 이야기는 역사, 드라마, 스릴러, 코미디의 장르적 특성을 담아 마구 뒤엉켜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승전결이 분명한 이야기로 완성된다. 하지만 ‘윤회와 업보’라는 동양적 사상이 가지고 있는 질기고 운명적인 ‘한’의 저변에 깔려있는 것이 패배주의가 아닌, 긍정과 낙관일 수도 있다는 동양 철학의 깊이까지는 파고들지 못했다. 그런 아쉬움을 가지고 극장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172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 동안, 나는 특정 에피소드에는 푹 빠지고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는 쾌감도 느꼈고, 특수 분장에 가려진 배우가 누구인지 추리해보는 재미도 느껴보았고 심지어 지루하지도 않았으면서, 왜 이 영화를 아쉬워하는가?



큰 기대를 접고 보자면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충분히 즐길만한 영화이다. 오히려 워쇼스키 남매라는 브랜드에서 온 기대감 때문에 영화 자체가 평가 절하되는 것도 사실이다. 대신 그들이 제작했던 <브이 포 벤데타>나 동양무술과 테크놀로지를 뒤섞은 디스토피아의 암울한 세계로 빠져들었던 <매트릭스> 시리즈의 강력한 메시지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워쇼스키 남매는 그 동안 지속적으로 동양의 무술과 애니메이션, 동양의 사상을 수혈 받았다. 그 가운데 동양철학에 대한 깊이가 어느 정도까지 답보되고 확장될 수 있는가는 분명 중요한 질문이지만, <스피드 레이서><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텅 빈 공허함이, 무언가 더 있을 것 같지만 결국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앞으로 워쇼스키 남매가 추구하는 오락 영화로서의 신세계인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미첼의 동명소설에서 차용한 것은,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짠하고 드러나는 순간의 놀라운 충격효과였던 것이라면, 이 영화는 충실하고 재미있는 오락영화의 제 몫은 분명히 하고 있다. 특수 분장을 하지 않은 배두나가 출연하는 에피소드가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기대할만한 요소이지만, 한국이라고 하는 미래사회는 베트남 같기도 하고, 일본 같기도 하다. 그러니 굳이 애국심을 발휘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명심하자. 사유와 분석의 깊이로 빠져들면 더 없이 시시해질 것이고, 단순히 보고 즐기려 든다면 2시간 52분은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철학적 사유와 의심, 그 사이의 오해



<바운드>

워쇼스키, 그들은 모든 신선하고 자극적인 것들을 믹스 앤 매치의 기술을 통해 조합해내는 탁월한 본능을 가진 예술가이다. 그리고 그 능력은 그들의 첫 번째 공동연출작 <바운드>에 잘 녹아들어있다. 그리고 관객과 그들의 작품 사이에 오해가 생기기 시작한 것도 이 작품부터인 것 같다. 우리는 <바운드><매트릭스>를 통해 그들이 ‘철학적 사유’를 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두 영화는 철학적 사유의 영화가 아니라 회의와 의심의 영화라는 것이 더 정확하다. <바운드>의 두 연인은 서로 믿고 의심하면서 관계의 긴장감을 이뤄내고, <매트릭스>는 네오가 절대자인가의 여부를 끊임없이 회의하고 질문하면서 긴장감을 배가시켰다.

<바운드>는 영악하게 레즈비언과 페미니즘을 상업적으로 포장하고 이용한다. 마초적 매력을 보여주는 지나 거손과 과장된 팜므 파탈 제니퍼 틸리가 남성 느와르를 비웃고 조롱하는 사이 <바운드>는 요부의 배신이라는 예정된 수순을 밟는 것 같았다. 하지만, 관객의 뒤통수를 때리면서 이 영화는 두 여자의 사랑과 신뢰에 박수를 보낸다.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 사랑과 묵직한 돈 가방, 누구나 꿈꿔봄직한 해피엔딩으로 나아간다. 당연하게도 페미니즘 영화로 읽힐 정도로 정치적 메시지가 있거나, 공정한 시선으로 여성을 다루는 영화는 아니었다.


<매트릭스>


<스피드 레이서>

1999년 세기말의 우울과 불안함의 틈새를 파고든 <매트릭스> 시리즈는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다. 동양무술과 테크놀로지가 만나, 화면 가득 펼쳐지는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시각적 황홀경을 선물했다. 그들은 현실과 가상현실 사이를 질문으로 채우면서, 그 고민을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혼재로 채우고, 몸과 기계 사이의 충돌을 이용한 액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은 다르다'는 <매트릭스>의 극중 대사처럼 그들은 자신들이 아는 길을 자신들의 상상의 영력으로 확장시키면서, 상상의 세계를 실사 화면으로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신화와 성경, 철학을 녹여낸 미래 공간으로 들어간 워쇼스키 남매는 믹스 & 매치의 기술을 활용해 장르영화의 새로운 틀을 만들어냈다. 다시 말해 <매트릭스>는 장르영화의 특성 속에 편입되었다기 보다 새로운 장르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게임의 내러티브와 홍콩 액션영화와 재패니메이션의 비주얼에 동양 철학과 무술을 녹여내는 워쇼스키 남매의 재능은 그 신비한 아우라에 비하면 철학적 사유가 깊은 것은 아니었다. 이제 <스피드 레이서>를 기점으로 워쇼스키 남매의 영화적 감수성이 변했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스피드 레이서>는 테크놀로지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 그 이상을 발휘한다. 최첨단 기술을 사용했지만, 기계적 느낌이 많은 3D보다는 재패니메이션을 상징하는 아날로그 만화 배경에 실사를 합성해 자동차 경주 게임을 화면가득 담아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매트릭스> 시리즈에 비해 훨씬 더 밝고 단순한 <스피드 레이서>는 세계를 지배하려는 기업가에 패기 넘치는 젊은 레이서가 맞선다는 단순한 대립구도를 가진 매끈한 오락영화였다.


워쇼스키 남매의 영화는 동시에 많은 것들을 아우르면서 장르의 관습을 비틀어 버리기 때문에, 각각의 눈에 다르게 읽히는 열린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단선적인 듯하면서도 복잡한 이야기 구조와 선명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몽환적으로 느껴지는 장면들 사이에서, 관객들은 자신이 마음에 드는 부분을 찾아내고 그것에 열광한다. 만화적 감수성과 동양철학은 뒤섞인다기 보다 장점들을 아우르는 화학작용을 하고, 어느 문을 열고 들어가도 상관없는 다양한 길을 영화에 풀어둔다. 결국 그들의 영화는 단순한 오락영화로 읽어도 그만이고, 철학적 사유가 있는 암울한 초상이라고 읽어도 크게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은 더 복잡해지고, 즐길 거리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워쇼스키 남매는 이것이 새로운 즐길 거리라고 관객에게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던져 주었다. 워쇼스키 형제가 어느 순간 워쇼스키 남매가 된 것처럼 그들의 영화는 거짓말 같은 현실을 믿어보라고 말한다. 설득되지 않더라도, 굳이 그 이상이 아니더라도 상관이 없는 건, 여전히 워쇼스키라는 이름의 브랜드 가치는 유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치가 퇴색되지 않으려면 다음 작품은 <클라우드 아틀라스> 보다는 나아야 한다. 그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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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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