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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특강] 세종대왕도 인정한 천재, 왜 그는 벼슬을 포기했을까

어떤 이미지로 김시습을 연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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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에도 김시습이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건, 그가 문장을 잘 쓴 덕이다. 조선 시대는 문장을 잘 쓰는 것 하나만으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시기였다. 학문이 곧 권력이고 재물이었다. 더욱이 김시습은 유학뿐 아니라 불교와 도교에도 능통했다. 얼마든지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왜 그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떠돌아 다니기만 했을까?

천재 : 보통 사람에 비하여 극히 뛰어난 정신 능력을 선천적으로 가진 사람.
(출처, 두산 동아 백과사전)


한 웹툰의 인기 캐릭터는 이렇게 말했다. “천재 물론 있지요. 하지만 넌 아니에요.” 가까이는 엄마 친구 아들부터 시작해 멀게는 동서고금의 위인까지, 천재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곁에 있다. 자기 자신이 아닐 뿐이다

. 이번에 <동양고전, 2012년을 말하다>에서 만난 천재는 매월당 김시습이었다. 강연을 맡은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심경호는 김시습이 천재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리하여 15년에 걸쳐서 김시습의 평전을 집필하며, 그가 천재가 아님을 증명하려 했다. 하지만 심경호는 평전을 쓰는 과정에서 김시습이 천재임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조선 전기의 천재 김시습. 이제부터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천재 김시습

김시습은 어린 시절부터 비상한 재능으로 유명했다. 그 명성은 당시 통치를 하던 세종의 귀에도 들릴 정도였다. 세종은 궁금했다. 김시습을 불러 한시를 짓도록 했다. 당시 다섯 살이던 김시습은 기대에 부흥하는 시를 만들었고, 세종은 답례로 비단 50필을 내렸다. 모두가 김시습이 어떻게 비단 50필을 들고 갈까 궁금해했다. 김시습은 비단 50필을 풀어 허리에 묶고는 집으로 유유히 돌아갔다.

김시습의 천재성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다. 물론 다소의 과장은 섞여있다. 비단 50필을 풀어 허리에 묶어도 5살짜리 아이가 끌고 갈 수는 없다. 마찰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린 김시습의 재능을 세종대왕도 아꼈다는 건 사실에 가깝다.

김시습은 살아 생전에 엄청난 벼슬을 하거나 대단한 치적을 남긴 인물은 아니다. 죽은 후에 그는 조선을 흔들었다. 선조는 김시습의 글을 묶어서 매월당집을 활자본으로 출간했다. 국가에서 김시습의 문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정조는 김시습을 이조 판서에 추증하고 청간(淸簡)이란 시호를 내리기도 했다. 김시습에 반한 사람은 임금만이 아니었다. 우암 송시열과 연암 박지원 같은 당대의 학자도 김시습을 사랑했다.

후대에도 김시습이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건, 그가 문장을 잘 쓴 덕이다. 조선 시대는 문장을 잘 쓰는 것 하나만으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시기였다. 학문이 곧 권력이고 재물이었다. 더욱이 김시습은 유학뿐 아니라 불교와 도교에도 능통했다. 얼마든지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왜 그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떠돌아 다니기만 했을까?


시대가 김시습을 외면하다

김시습이 처음부터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으려 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시기가 좋지 않았다. 당시 조선을 통치하고 있던 임금은 세조였다. 세조는 자신의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임금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김시습은 계유정난을 보면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과거에 유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세상에 나가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김시습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권력을 위해 자신의 조카도 죽이는 세상에 환멸을 느꼈다. 김시습은 후한 말 동탁의 폭정을 비난하는 시를 썼는데, 동탁에 빗대어 세조를 비난한 셈이다.

개에게 뼈다귀를 주지 말지니
떼로 모여 어지러이 다투어선
자기 무리와 어긋날 뿐만 아니라
종당에는 주인과도 어그러지리라.
주 왕실 높인다며 정벌 일삼고
한 왕실 안정시킨다며 어린 황제 죽였네.
명분을 엄하게 해서
근왕하여 행동거지 같이함만 못하여라.
물론 이런 상황을 신경 쓰지 않은 상태로 벼슬길에 오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시습은 그런 속된 선비로써 살고 싶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경호는 논어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로 인지생야직(人之生也直)을 꼽았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정직하게 사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정직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을 기만해선 안 된다. 김시습은 그런 사람이었다. 결국 그는 벼슬길에 오르는 걸 포기하고 승려가 되어 방랑길에 오른다.


원효를 본받다

승려 김시습이 좋아했던 인물은 신라의 고승 원효였다. 그는 원효의 삶에서 두 가지를 깨닫고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려 노력했다. 첫 번째 깨달음은 피모대각(被毛戴角)이다. 극락 세계에 가기 보다는 소가 되어 농사꾼의 농사일을 돕겠다는 의미가 담긴 단어다. 불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종교다. 깨달음을 얻으면 극락세계로 갈 수 있다. 하지만 깨달은 승려가 모두 극락세계로 향한 건 아니다. 현실 세계에 남아 일반 민중과 뒤엉켜 살기도 했다. 원효가 그랬고 김시습이 그랬다. 김시습은 20대 후반부터 불법에 밝은 승려로 명성이 높았다. 주지가 되어 달라 부른 절도 많았다. 하지만 김시습은 주지가 되어 몸을 편안히 하기 보다는, 직접 농사일을 하며 민중과 호흡했다.

김시습이 원효의 삶에서 얻은 두 번째 깨달음은 바로 집필이었다. 원효는 생전에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저술은 한국 불교는 물론이고 일본 불교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김시습도 원효를 따라 많은 글을 남겼다. 효령대군의 요청으로 묘법연화경 언해 사업에 초빙되기도 했고, 묘법연화경별찬, 화엄경석제, 대화엄일승법계도주병서, 심현담요해와 같은 저서를 남겼다.

하지만 김시습은 늘 아쉬웠다. 그는 당대를 호령하는 천재였지만, 자신이 진리를 보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했다. 그의 시 무쟁비(無諍碑)에서 김시습이 가지고 있던 고뇌를 살펴볼 수 있다.

그대는 보지 못했나 신라의 이승 원욱씨가
머리 깎고 신라 저자에 도를 행한 것을
당에 가서 불법 배워 고국으로 돌아와
승속을 넘나들며 민간에 다니면서
거리 아동과 아녀자도 쉽게 깨우치니
그를 두고 아무개 집 아무개라 가리킬 정도
그러나 큰 무상의 도를 가만히 행하여
소 타고 법을 펴서 종지를 풀이하니
불경의 소초가 책 상자에 가득해
후인들이 보고서 다투어 따랐다
국사로 뒤늦게 무쟁이라 시호 내려
곧은 돌에 새겨 자못 칭송했다
비갈 위 금가루는 광채가 찬란하고
불화와 사도 역시 좋아라
우리도 환어 잘하는 무리라서
환어에 대하여는 대략 아는 편
다만 나는 옛 도를 좋아해 뒷짐 지고 읽을 뿐
아아, 서쪽서 오신 분(부처)를 보지는 못하누나
이 시에서 언급된 환어는 불교의 교리를 뜻한다. 김시습은 자신이 불교의 교리에 능숙함을 자부하면서도, 불교의 진리를 진정으로 체득하지 못함을 한탄했다. 그렇기 때문에 서쪽에서 온 부처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고뇌에서 인간 김시습의 매력이 탄생한다. 아마도 그가 모든 것을 안다고 자부하는 천재였다면 이토록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김시습이 생을 마감한 무량사 전경 [출처: 무량사 홈페이지(//www.muryangsa.or.kr)]


경계인간 김시습

심경호는 김시습을 경계인간이라 정의했다. 동양에서는 현실세계를 방(方)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방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방외인(方外人)이다. 김시습도 그렇게 살 수 있었다. 이미 이상은 꺾였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떠돌아 다니며 살다가 죽어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김시습은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방 안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살 수 있는 인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온전히 세상을 등지고 살 수 있는 인물도 아니었다. 그래서 경계인간이다.

그리하여 김시습은 현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높은 벼슬에 있는 사람에게도, 그 행동이 합당하지 않으면 길거리에서 큰소리로 비난했다. 단종 복위를 시도했다거나,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했다는 전설로 내려온다. 심경호는 이런 김시습의 모습에서 이상적인 현대 시민의 모습을 본다고 말한다. 정치와는 먼 거리에 있지만 결코 정치에 관심을 거두지 않는, 한 마디로 깨어있는 시민이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정의를 말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는 정의를 스스로 실천한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김시습은 자신이 생각하고 말하는 정의에 부합하려 끊임없이 노력한 인물이다. 그는 사상이 사상으로서만 권위를 가지고 실생활에서 구현되지 못함을 우려하며, 스스로 실천했다. 사상의 육화를 강조했다.



매월당 김시습 초상화 [출처: 위키피디아]


어떤 모습으로 김시습을 상상할 것인가?

김시습의 초상화는 여러 점 남아있다. 어떤 초상화는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처럼 예쁘장하고, 어떤 초상화는 뚱뚱하고 못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스스로 그린 자화상에 경우에는 한 것 찌푸린 인상이다. 김시습은 자화상을 그린 뒤 스스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이하를 내리깔아 볼 만큼 해동에서 최고라고들 말하지.
격에 벗어난 이름과 부질없는 명예, 너에게 어이 해당하랴?
너의 형용은 아주 작고, 너의 말은 너무나 지각없구나.
마땅히 너(초상화와 초상화 속의 인물)를 두어야 하리, 골짜기 속에.
김시습의 초상화가 다양하듯, 세상 사람이 바라보는 김시습의 모습도 다양하다. 어떤 이는 생육신으로써의 절의를 높이 평가하며, 어떤 이는 불교 전문가로써 학문적 성취를 높이 평가한다. 또한 현실에 좌절해서 세상을 등진 안타까운 인물로 볼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꼭 일괄적으로 규정된 이미지로 김시습을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심경호는 논어를 아무리 암송해도 자신만의 이미지로 공자를 연상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충고한다. 김시습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미지로 김시습을 연상할 것인가? 심경호가 던지는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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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준민

어쩌다 보니 글을 쓰고 있는

김시습 평전

심경호 저25,200원(10% + 1%)

이번에 펴내는 『김시습 평전』은 김시습이 남긴 시문집과 저술, 그가 교유하였던 인물들의 문집과 저술 등을 집대성하여 김시습의 삶의 모습을 매우 충실하고 구체적으로 서술한 작품이다. 김시습의 천재성과 탁월함, 인간적인 매력뿐 아니라, 불완전한 고뇌와 흔들림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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