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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잘 입는 여자에 대해 알고 싶나요?

단정하고 당당하게 때론 섹시하고 순결하게 자신의 스타일을 하나하나 명쾌하게 설명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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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여자의 옷 입기는 나이에 맞아야 하면서도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어야 한다. 그게 여자의 스타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머리만으로 욕망만으로 따라주지 않는 것

나는 옷을 잘 입는 사람이 좋다. 밥 잘 먹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정갈하고 뽀얀 잇속만 보면 마음이 열리는 사람이 있듯 내 선입견의 칠 할은 옷차림에 좌우된다. 사치품을 걸친 사람과 맵시 있는 사람을 구분하는 최소한의 심미안은 있으니 시작부터 속물 취급은 말아주시길.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나를 잘 이해해야만 얻을 수 있는 축복이다. 옷 잘 입는 사람 치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 못 봤다. 물리적인 시간과 노력과 발품을 투자하고, 타고나거나 분발한 센스를 동원해 최대한으로 자신을 드러냈는데 당연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겉으로는 자신의 단점과 콤플렉스를 담담하고 세련되게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이런 ‘쿨한 척’이 옷 입기에 있어서는 통하지 않는다. 냉정하다. 단점을 알고 인정하는 단계를 넘어 단점을 극복하는 묘안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옷 잘 입는 사람을 간과하지 못할 대목 가운데 하나다.

남들이 입어 예쁘다고 순순히 내 몸에 맞아주겠나, 히피건 섹시건 모던이건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들 순순히 내 것이 돼주겠나, 대충 걸쳐도 멋스러운 연예인급 ‘간지’가 순순히 내게 와주겠나. 머리만으로, 욕망만으로 따라주지 않는 게 스타일이고 패션인 것 같다. 그러니 나를 모르고는 옷을 잘 입을 수 없다. 어딘가 불일치가 일어나는 패션의 경우 자신을 과신하거나 반대로 위축돼 있다는 증거다.

세상에 옷 잘 입는 사람은 너무 많다. 몇 가지 공식만 지켜도 어디 가서 주눅 들지 않을 수 있다. 샤넬 트위드 재킷과 면 티셔츠와 청바지, 진주 목걸이와 화이트 셔츠와 블랙 팬츠, 잘 재단된 테일러드 수트에 시계와 스니커 등등 약간의 믹스 매치 공식만 알아도 세련됐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옷 잘 입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굳으면 가끔 ‘삑사리’가 난다고 해도 대개 잘 어울린다, 멋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잡지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옷 입는 사람은 쌔고 쌨다. 내가 반하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 아니다. 옷을 잘 걸쳐서 착장이 돋보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의 분위기가 옷과 일치되고, 나아가 옷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스타일이 뿜어져 나올 때다.

블라우스와 카디건, 주름 스커트와 단화를 신었을 뿐인데 여전히 여자로 고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던 어린 시절의 외할머니는 내게 천방지축의 싹을 잠재우던 뮤즈의 시작이셨다. 대갓집 귀한 딸로 태어나 풍파를 겪으며 가계를 일으킨 외유내강의 여장부셨다.

삼베 저고리와 치마를 정갈하게 입으시고는 외갓집 거실의 선풍기 앞에 앉아 반백의 머리를 가지런히 말리시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나를 무릎에 누이고 부채질하며 너는 어떤 색이 좋으냐 물으시길래 분홍색이요, 했더니 나는 옥색이 좋다, 색이 처지지 않으면서 점잖다 하셨다.

아홉 살 때 ‘처지지 않으면서 점잖다’는 말이 그토록 아름답게 들릴 수 없었다. 디자인에 우선하는 것이 소재와 색감이라는 것을 나는 외할머니께 배웠다.


단정하고 당당하게 때론 섹시하고 순결하게

『옷 이야기』를 쓴 김은정은 “가장 소중한 옷은 나를 나답게 해주는 옷”이라고 했다. 책에는 아이템별로 분류돼 있다. 백만 인의 머스트해브 아이템인 화이트 셔츠를 필두로 청바지, 재킷, 티셔츠, 트렌치코트, 블라우스, 레깅스, 겉옷, 줄무늬 티셔츠, 스웨터 카디건부터 속옷과 양말은 물론 각종 액세서리까지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옷장 앞에서 고민하는 시작과 끝을 모조리 다룬다. 순서를 조금 더 살펴보자면 캐주얼하게 멋내기, 현대적이라는 것, 색의 힘, 목선의 파임에 대하여, 이렇게는 입지 말자 등 꼭 한번 일독해야 할 옷 입기의 멘토링이 담겨 있다.

단순히 옷을 잘 입는 방법이라면 요즘 넘쳐나는 케이블 방송만 눈여겨보고 공식대로 따라 하면 될 일이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아이템 하나하나를 적어 내려가면서 얼마나 흐뭇하고 즐거웠을까 싶고, 그 순수와 애정이 내게 이입되면서 절로 흥미진진해진다는 것이다. 정확한 고증과 신뢰할 만한 분석과 실례를 들었고 여기에 다방면의 소위 ‘패션피플’들이 각종 아이템을 어떻게 멋들어지게 소화하고 있나 사진과 코멘트를 실었다. 싸구려 잡지처럼 다닥다닥 성급하게 편집하지 않았다. 언뜻 무심하면서도 필요한 정보와 설명은 다 들어 있는 친절함이 또 하나의 매력이다.

저자는 파리 유학파 출신으로 라이선스 패션지 「엘르」를 시작으로 동종업계에서 라이선스 잡지 편집장을 거쳐 럭셔리브랜드 샤넬의 홍보부장을 지낸,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전형적인 트렌드세터에 믿음직한 패션 전문가다. 별스럽게 저자의 프로필을 읊는 것은 패션이네 옷입기네 목소리를 내는 다수의 호사가들 가운데 우선적인 신뢰를 담보하기 위해서다. 많이 먹으면 요리를 잘하게 되고, 많이 입으면 옷을 잘 입게 된다. 나아가 때에 맞춰 새로운 시도들을 남보다 빨리 접하는 행운을 누렸다면 분석까지 가능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옷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이 책이 복식부터 트렌드, 노하우에 이르는 대안이어야 할 이유다.

나는 해외출장을 가거나 국내 쇼핑을 할 때 화이트 셔츠만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화이트 셔츠 홀릭’이다. 관리를 잘 못 해서 내 손을 떠난 셔츠만 다섯 손가락을 넘지만, 여전히 내 옷장에는 열 벌 넘는 화이트 셔츠가 걸려 있다. 친구들은 “거기서 거기”인 셔츠들을 왜 자꾸 사들이냐고 핀잔이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좌절감에 고개를 빳빳이 들며 외치는 거다. “제각각 다르거덩?!”

김은정은 화이트 셔츠를 ‘빛을 뿜어내는 조명’이라고 표현하면서 이 한 벌의 옷이 사람을 얼마나 단정하고 당당하게, 때로 섹시하고 순결하게 만들어주는지를 설명해 준다. 똑 떨어지는 재킷일수록 안에 입는 옷은 풍성하고 여성스럽게 입을 것, 치노 팬츠는 맨발에 납작한 신발, 헐렁한 셔츠라면 오케이고 좀 더 멋을 부리려면 보색의 스웨터를 곁들여 입으라는 팁도 들어 있다.

키가 크고 마른 데다 (어릴 적엔 특히나) 여성스러운 외모라기보다 차라리 보이시한 축에 드는 나는 셔츠와 재킷에 이어 조끼에도 관심이 많다. 나 말고도 정말 많은 신뢰할 만한 사람이 조끼에 대한 효용을 찬미할 때는 “과연!” 싶었다.


내가 나를 아끼면 남도 나를 알아준다

저자가 잡지 편집장이던 시절 또 다른 잡지의 기자로 한 건물에서 매일 그녀와 마주치던 나는 성춘향의 고무신 뒤축에 끌려가는 이몽룡처럼 고개를 돌려가며 그녀의 스타일을 시선에 담았다. 정석을 넘어 우아한 개성으로 확대되는 존재감이었다.

내 기억에 따르면 그녀는 아주 멋진 무릎을 갖고 있었다. 지방층이 없이, 그렇다고 뼈가 툭 튀어나와 볼썽사납지 않게 약간의 결핍을 선사하는 유약한 형태. 그 무릎이 닿을락 말락 펜슬 스커트를 입거나 반바지와 펑키한 블라우스를 매치하기도 했다. 반드시 도를 넘지 않으면서 세련된 스타일이 드러났다. 미인형의 무표정한 얼굴과 멋진 무릎은 그때마다 도드라졌다. 스키니한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어도 어딘가 반드시 시선을 잡아끄는 뭔가가 있었다. 액세서리건 옷감의 디테일이건.

이론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여자의 옷 입기는 나이에 맞아야 하면서도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어야 한다. 그게 여자의 스타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바람이 훈훈해지고 이파리들이 연두색으로 다투어 올라오는 오월과 태양이 기운을 잃고 바람에 식는 시월이면 옷을 잘, 멋있게, 챙겨 입고 싶어진다. 겨울엔 간혹 추위에 맞서고 일상에 때우듯 옷을 입다가도, 여름내 몸은 축 늘어지는데 배와 팔뚝에 힘 꽉 주고 살다가도 봄이라 모세혈관이 확장되고 가을이라 피부가 숨을 쉬면 감각은 일사불란하게 깨어난다. “자자, 이제 옷장정리를 하고 햇살과 바람에 어울리는 옷으로 피부를 광합성 하자구!”라고 내게 말을 건다.

요새 옷장을 자꾸 비우고 있다. 삼 년 이상 입지 않는 옷은 더 이상 입지 않을 거란 뜻이다. 옷장을 덜어내는 일이 내 스타일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안 입는 옷들, 나와 맞지 않는 옷들은 아까워하지 말고 덜어내야 한다. 중구난방의 옷장은 중구난방의 스타일을 만든다.

내 경우 주름 잡힌 핀턱 블라우스를 두 번이나 샀다가 결국 친구에게 줘버렸다. 타이트한 원피스가 낫지, 볼륨 스커트는 도저히 입을 엄두가 나지 않아 사놓고 쟁여만 놓다가 친한 후배의 옷장으로 직행했다.

작가의 말처럼 나다운 옷 입기의 척도다. 덜어낸 옷장을 보면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내가 가진 옷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나니 외출 전 고민하는 시간이 줄었다.

설렘으로 잘 보이고 싶을 때보다 나 자신에게 기운을 북돋고 싶을 때 나는 더 옷을 잘 입고 싶다. 내가 나를 아끼면 남도 나를 아껴줄 거니까. “그래서 언니는 얼마나 옷을 잘 입어?” 라고 물으면 “으하하 패션 테러리스트지” 하면서 웃고 만다. 잘 입고 싶어서 눈은 이리저리 바쁜데 몸이 게을러서 따라주지 않는다. 멋쟁이를 존경하는 마지막 이유,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최적의 착장을 하고 나서는 그대들은 진짜 부지런하다.

A를 생각하면 튼실한 허벅지를 가리기 위해 늘 무릎 라인 스커트와 스틸레토 힐이 떠오르고, B를 생각하면 작은 키와 큰 가슴을 커버하고 잘록한 허리라인을 감각 있게 살리던 구치의 재킷이 떠오른다.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게 꽃무늬를 소화하던 C, 최소한의 선과 최소한의 디테일로 자기만의 심플 스타일을 만들었던 D. 당신의 시그니처 스타일은 무엇인가. 옷 잘 입는 여자가 아니라 자신의 스타일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여자가 ‘스타일리시한 여자’다.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은 몇 가지 tip_

브라더미싱을 샀다. 최종목적은 옷 만들어 입기. 아직은 쿠션커버 수준이지만 내 실력은 일취월장할 것이다. 신기한 건 분명히 직선박기를 하는데 결과는 곡선이라는 것. 이것도 재능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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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인생 충전기 안은영 저 | 해냄
베스트셀러 『여자생활백서』를 통해 40만 독자들에게 일과 사랑에 관한 멘토로 활동해온 안은영 작가가 신작 『여자 인생 충전기』를 내놓는다. 18년이라는 오랜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작가 스스로도 충전의 시간을 보내며 써내려간 이 책 속에는 "뭘 하기보다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성장과 치유의 시간을 통해 '나 자신 찾기'를 해볼 것을 제안한다.

 





안은영 작가의 여자 이야기

[ 여자 생활 백서 ]
[ 사랑하기 전에 알아야 할… ]
[ 여자공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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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안은영

여성들의 사랑과 연애, 직장생활과 인간관계에 대한 상큼발랄한 조언서 『여자생활백서』로 40만 독자를 사로잡으며 2030 여성들의 멘토로 자리잡았다. 남자와 연애에 관한 지침서 『여자생활백서2』, 연애와 결혼의 갈림길에서 좌충우돌하는 이 시대 여성들에게 보내는 진심어린 충고와 따듯한 위로를 담은『여자공감』이 있으며, 소설로는 『이지연과 이지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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