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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꾸는 꿈은 언제나 개꿈인 걸까?

꿈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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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 얘길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최근에 꾼 꿈 때문이었다. 뉴욕에서 돌아온 후 꿈에 소설가 폴 오스터가 나왔다. 추리해볼 수 있는 건 우리가 꿈 이야길 한 것이 ‘덤보 아트 페스티벌’에 다녀온 직후였고, ‘덤보’는 폴 오스터가 사는 ‘파크 슬로프’에서 매우 가까운 지역이라는 사실이었다. 사실 이 꿈은 너무나 많은 우연들이 겹치는 지극히 폴 오스터적인 꿈이었다.

몇 달 전, 친구들과 함께 ‘꿈’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맨해튼으로 나가는 지하철을 탔는데 어떤 여자가 날 빤히 바라보고 있는 거야. 머리카락이 부드러운 정말 아름다운 여자였어. 검은색 정장을 입고 하이힐을 신고 있었어. 근데 그 여자가 갑자기 사람들을 헤치고 내 쪽으로 다가오더라고. 그러더니 내게 키스를 하는 거야.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내 목덜미에 와 닿는 느낌이 너무 선명해서 꿈인가 싶더라. 입술도 너무 부드럽고 말이지. 왜 계속해서 아래로 서서히 가라앉는 기분 있잖아. 근데 눈을 떠보니 그 여자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더라. 남자가 키스한 거야, 나한테.”

뉴욕적이라 할 수 있는 꿈 얘길 듣는 동안 계속해서 비가 왔다. 2012년 가을, 충동적으로 뉴욕 행 비행기를 탔다. 언제나 폴 오스터가 살았던 브루클린에 살고 싶었기 때문에 윌리암스버그에 무거운 짐을 풀었다. 9월은 언제나 날씨가 좋았다는 게 뉴요커들의 전언이었다. 하지만 내가 있는 동안 브루클린에는 비가 자주 내렸다. 우산 없이 갈 수 있는 곳이라곤 주변에 널려 있는 갤러리와 서점, 2달러짜리 커피를 파는 카페 밖에 없었다.


<[출처] 뉴욕 덤보 아트페스티벌(http://www.dumboartsfestival.com) 홈페이지>

우리가 꿈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한 건 9월 말이면 열리는 브루클린의 ‘덤보 아트 페스티벌’에 다녀온 후였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한 후배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꿈을 꾸면 그것이 꼭 현실 같아서 꿈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꿈을 꾸면 그것이 꿈이라는 걸 ‘정확히!’ 알고 있는 나와는 반대였다.

“정말? 꿈인지 모른다는 거야?”
나는 그를 바라봤다.
“네. 전혀.”
“그럼 키스를 한다거나, 섹스를 하면 그게 실제 상황처럼 느껴져? 진짜로 하는 것처럼?”

옆에 있던 친구가 물었다.
“당연하죠. 실제로 느껴요.”
“정말 좋겠다!”

하지만 후배는 당장 손사래를 쳤다.
“악몽을 꿔도 정말 실제처럼 느껴요. 누군가 목을 조르면 정말 목이 졸려 토할 것 같고, 누군가 칼로 내 배를 찌르면 칼이 들어가는 서늘한 느낌이 뱃속의 장기 안에서 느껴져요. 식은땀 흘리고, 소리 지르면서 잠에서 깨는 경우도 많아요.”

흥미로운 건 꿈에 대해 느끼는 사람들의 반응이 제각각이라는 것이었다. 가령 나처럼 자신이 꾸는 꿈이 정확히 ‘꿈’이라는 걸 인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꿈이라는 걸 안다고 해서 그것이 고통스럽지 않은 건 아니다. 내 경우,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어김없이 화장실에 가지 못해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꿈을 꾸게 됐다. 내 꿈의 가장 끔찍한 대목은 화장실에 도착하면 어김없이 신발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화장실은 그 옛날 데니 보일의 영화 <트레인스포팅>에 나왔던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화장실’에 버금가는 화장실이고 말이다. 맨발로 지구에서 제일 더러운 화장실에 가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꿈은 엄청난 방광의 압박과 함께 종결됐다.

친구들과 이야길 하다가 알게 된, 자신이 꾼 꿈을 ‘조종’할 수 있는 특별한 사람도 있다는 것이었다. 가령 내가 원하면 다른 쪽으로 상황을 전진시키거나 후퇴시킬 수도 있다. 그 남자가 싫으면 집으로 돌려보낼 수도, 그 남자가 좋으면 공원 벤치에 앉아 어떤 과일이나 팝송을 좋아하는지 시시껄렁한 얘길 하거나, 클럽에 가서 마티니 한 잔을 마실 수도 있다는 것.

물론 작가들 중에는 황정은처럼 자신이 꾼 꿈을 눈부시게 아름답고 기묘한 소설로 쓰기도 하는 작가도 있다. 꿈을 기억해내는 능력. 이것은 언제나 내가 부러워하는 종류의 재능이었다. 꿈을 꾸면 90퍼센트 이상이 소실돼버리고 마는 나 같은 사람은 온통 뒤죽박죽인 꿈 얘길 하다가 스스로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언제나 해피엔딩’이 아니라 ‘결국은 개꿈’이 내 꿈의 똑같은 결론이다. 그러다가 오래된 노트에서 이런 글을 발견했다. 2004년 7월 12일에 쓴 글이었다.

‘블로흐의 「낮꿈과 밤꿈」 을 인용하다 내가 엄청난 착각에 빠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알고 보니 내가 인용한 블로흐는 소설가 블로흐가 아니라, 애런스트 블로흐라는 독일의 철학가였다. (그가 쓴 『희망의 원리』 란 책이 솔 출판사에서 나왔다) 거칠게 요약하면 낮꿈을 꾸는 한 인간은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희망의 근거를 안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 왜냐하면 낮꿈이란 자아가 개입하고 자아가 녹아 있어 그것을 변형시키거나 (가끔 맘에 들지 않는 꿈을 자기 멋대로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대개 그런 꿈은 낮에 꾼다) 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꿈 얘길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최근에 꾼 꿈 때문이었다. 뉴욕에서 돌아온 후 꿈에 소설가 폴 오스터가 나왔다. 추리해볼 수 있는 건 우리가 꿈 이야길 한 것이 ‘덤보 아트 페스티벌’에 다녀온 직후였고, ‘덤보’는 폴 오스터가 사는 ‘파크 슬로프’에서 매우 가까운 지역이라는 사실이었다. 사실 이 꿈은 너무나 많은 우연들이 겹치는 지극히 폴 오스터적인 꿈이었다. 폴 오스터 식으로 말해 언젠가 나는 카페에서 내 책 『아주 보통의 연애』를 읽는 사람을 우연히 4명이나 마주친 적이 있었던 적이 있고, 나와 이름이 똑같은 20대와 60대 여자 두 명에게 우연히 사인을 해준 적도 있었다. (20대 백영옥 씨가 자신의 이름을 무척 싫어할 거란 내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그녀에게 축복을!!)

어쨌든 덤보 페스티벌의 오픈 스튜디오를 보고 온 날, 나는 친구와 함께 ‘브루클린 다리’를 걸었다. 그곳을 걸으면서 폴 오스터의 소설 『브루클린 풍자극』의 한 장면을 떠올렸었다.

새벽 세 시 반에 타임스 광장을 미끄러지듯 통과하다보면 모든 통행이 다 끊어져서 문득 세상 한 복판에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은 때가 있어요. 머리 위로는 사방에서 온통 네온 불빛이 쏟아져 내리구요. 아니면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는 찰나에 아치 사이로 막 보름달이 떠오르는 순간이나, 그런 순간이면 보이는 거라곤 밝고 둥근 노란 달 뿐인데, 그 달이 너무 커서 놀라게 되고 내가 여기 지구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날고 있는 중이라는, 택시에 날개가 달려 있어서 실제로 우주 속을 날고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되지요.

눈을 감으면 정말 소설 속 주인공처럼 뉴욕의 택시 운전사가 된 것 같았다. 인도나 파키스탄, 에콰도르나 멕시코 출신 운전자가 유독 많은 엘로우 캡 안의 모호한 향신료 냄새가 내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주말이라 브루클린 다리를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브루클린 다리를 걸어 시청이 있는 곳까지 쉬지 않고 걸어갔다. 브루클린 다리를 걸으며 언젠가 폴 오스터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를 만난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가 거짓말처럼 꿈에 나타난 것이다. 꿈속에서 그는 깊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책을 들고 앉아 있었다.

언젠가 유명한 북극 탐험가 피터 프로이첸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거기에 그가 그린랜드 북쪽에서 눈보라에 갇혔던 얘기가 나온다. 보급품이 점점 떨어져 가는 가운데 혼자 있던 그는 이글루를 짓고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났다. 무엇보다도 늑대들의 공격을 두려워한 그는 이따금씩 밖으로 나가 늑대들을 이기기 위해 목청껏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러나 바람이 너무 심해서 아무리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귀게 들리는 건 바람소리뿐이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는 이글루에서 발생했다. 프로이첸은 자신이 있는 작은 이글루의 벽이 점점 더 좁혀 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외부의 특별한 기후 조건 때문에 그가 내뿜는 숨이 그대로 이글루 벽에 얼어붙었으며, 매번 숨을 내쉴 때마다 벽은 점점 더 두꺼워지고 그 결과 이글루는 점점 좁아졌다. 그래서 결국 그의 몸뚱이가 있는 곳을 제외하면 공간이 거의 남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내가 내쉬는 숨이 나를 집어넣을 얼음관이 된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일 것이다. 그것은 에드가 앨런 포가 쓴 ‘구덩이와 추’ 보다 훨씬 무서운 이야기 같았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는 것이 바로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파멸의 도구는 자신이 살아있기 위해 꼭 필요한 행위이기도 하다.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숨을 쉴 경우에도 살지 못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책을 낭독하고 있었다. 관객은 나 하나였다. 브루클린의 작가가 서울의 작가에게 자신의 책을 한국어로 낭독하는 이상하고 기묘한 연극무대는 한 동안 이어졌다. 나는 그가 들고 있던 책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들고 있던 책에는 어떤 제목도 적혀 있지 않았다.

예전에 나는 셰익스피어 극의 배우처럼 말하는 부랑자를 알고 지낸 적이 있었다. 그는 찌들대로 찌든 중년의 알콜 중독자로 얼굴에는 상처 딱지가 앉고 넝마를 걸친 채 거리에서 잠을 자며 내게서 돈을 구걸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한때 매디슨 애브뉴에 있는 화랑 주인이었다. 또, 한때 미국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 작가로 여겨졌던 사람도 알았다. 내가 만났을 무렵, 얼마 전 아버지에게서 1만 5천 달러를 상속받은 그는 뉴욕 길거리에 서서 낯선 사람들에게 백달러짜리 지폐를 나눠 주고 있었다. 그가 내게 설명한 바에 의하면, 그것이 미국 경제를 붕괴시키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인생들이 어떻게 산산조각 나는지 말이다. 이를테면, 찰스 1세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두 명의 재판관 고프와 훨리는 왕정 복고가 시작되자 코네티컷으로 건너와서는 여생을 굴 속에서 지냈다. 또, 라이플총 제조업자의 미망인인 윈체스터 부인은 남편이 만든 총으로 죽은 사람들의 망령이 자신의 영혼을 빼앗을까 두려운 나머지 저택에 이곳저곳 방을 만들어, 집안을 온통 복도와 은신처의 기괴한 미로로 바꾸어 놓고 말았다. 그녀는 매일 밤 방을 바꿔 가며 잠을 잠으로써 유령을 피하려 했다. 그런데 얄궂게도 그녀는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 때 저택의 방에 갇힌 채 거의 굶어 죽을 뻔했다. 하인들이 도저히 그녀를 찾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또, 러시아의 비평가이며 문예철학자인 바흐친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러시아를 침공한 동안 그는 몇 년 동안에 걸쳐 쓴 한 권 분량의 독일 소설론 원고를 담배 종이로 모두 없애 버렸다. 그는 원고 한장 한장을 담배 마는 종이로 쓰면서 원고가 모두 없어질 때까지 매일같이 조금씩 담배를 피웠던 것이다.

꿈속에서 그가 읽던 글들은 어디에서 나왔던 걸까. 그것은 자신이 쓴 글이었을까. 다른 작가의 글일까. 물론 그것은 100퍼센트 폴 오스터의 글이었다. 그의 심호흡이었고, 그의 숨결이었다. 대학생 때 『거대한 괴물』 (그 당시 열린책들에서 『리바이어던』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었다)을 읽은 후, 그의 빅팬이 되기로 결심한 나는 꿈에서 깬 후, 이 글들이 『뉴욕 3부작』에 나오는 글이라는 걸 알아냈다. 하지만 그것을 안다고 해서 꿈의 열쇠가 풀리는 건 아니었다. 작가가 직접 나와 자신의 책을 읽어주는 꿈은 어떤 종류의 꿈인 걸까.

2012년 여름. 나는 내가 쓴 장편 소설 한 권을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소리 내어 읽는 다소 무모한 모험을 감행했었다. 자신이 쓴 소설을 자신이 읽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마을버스와 지하철, 셔틀버스를 번갈아 타며 EBS가 있는 우면산 산중턱까지 등산하듯 올라갔다. 그곳에서 다섯 시간 넘게 내가 쓴 문장들을 직접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면, 정확히 그 글을 쓰던 때의 감상들이 떠올랐다. 아마도 ‘회한’이란 이럴 때 쓸 수 있는 말로, 마지막 문장을 읽을 즈음에는 이 모든 일들이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절대로 완성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소설을 나는 쓰고 있는 게 아니라 심지어 ‘읽고’ 있었으니까.

폴 오스터가 내게 읽어준 글의 공통점은 자신이 자신의 몸을 스스로 옥죄어 자기 파괴에 근접하게 되는 인간의 한계적 상황들이었다. 스스로가 내뱉는 숨 때문에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아이러니는 극단적인 예였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삶의 어느 순간 놓이게 되는 은유로 이해할 수 있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 『기나긴 이별』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은 잠시 동안 죽는 것이다.” 이별은 잠시 동안의 임사체험이다. 이별한 순간, 우리는 살지도 죽지도 못한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브루클린을 떠나기 전, 만났던 허리케인 ‘샌디’를 보며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것이었다. 뉴욕의 모든 지하철이 끊겼다. 버스는 정지됐고, 가스와 전기가 나갔다. JFK와 라과디아 공항은 폐쇄됐고, 내 비행기 표는 취소되었다. 도시는 침울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이 내겐 스스로 쓴 뉴욕에 대한 예고편처럼 느껴졌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에서 사강과 지훈은 갑작스런 도쿄의 정전사태로 깊은 어둠을 맞이한다. 그들은 이제 자신의 감각만을 의지하며 함께 길을 걸어야 한다. 나는 당황스런 얼굴로 뉴욕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어둠은 떠나길 원치 않는 남자처럼 내 눈 앞에 서 있었다. 내 손에는 누구의 손도 잡혀 있지 않았다. 꿈속의 꿈같았다. 나는 내 꿈을 조종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랐다. 이루어지지 않을 꿈을 꾸는 사람처럼. 꿈을 꾼 다음 날, 문득 나는 고독하다고 느꼈다.

며칠 후, 그의 책들을 찾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고독’이란 글자가 들어가는 어떤 책들이었다. “나는 고인의 유품을 대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건들은 활성이 없어서 이용하는 사람이 살아 움직일 때에만 의미를 갖는다. 그 삶이 끝나면 물건 또한, 비록 그대로 남아 있다 하더라도, 바뀐다. 거기에 있으면서도 거기에 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더 이상 소속될 데가 없는 세상에 잔존하도록 선고받은 실체적인 유령들. 예를 들어서, 다시는 돌아와 문을 열지 않을 남자에게 입혀지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옷장 가득한 옷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내의며 양말들로 넘쳐 나는 서랍들 사이에 흩어진 콘돔 포장지들은?”

막 이사를 끝낸 작업실에는 이전에 쓰던 물건들이 흩어져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벽들 사이엔 미처 치우지 못한 책과 약병과 크리스마스 세일이란 이유로 마구 사들인 양초들이 뒹굴고 있었다. 뉴욕을 떠나던 날, 친구가 준 스웨터와 팔찌와 화집도 보였다. 그것들을 입고, 차고, 읽고, 먹고, 맡는다, 라고 생각하자 수많은 ‘동사’들이 공기방울처럼 떠다녔다. 나는 ‘물건은 남고, 사람은 사라진다’라는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에서 실연의 기념품을 교환하며 상념에 젖었던 사람들처럼.

고독을 떠올릴 때, 요즘의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는 사람은 『태연한 인생』의 류였다. 그녀가 자신을 배신한 남편 뒤에서 묵묵히 고통과 고독을 분리해내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떠올린 상념들, “복수라면 아버지를 고독하게 만든 것으로 충분했다. 아버지를 향한 복수는 아니었다. 자신을 고독으로 이끈 매혹의 세계에 복수를 한 것이었다. 류의 아버지가 사랑에 빠진 것은 다른 남자와 통화하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아버지를 어머니에게로 이끌었던 매혹은 처음부터 배신 속에서 잉태되었다. 어머니는 그 매혹을 고독으로 환산함으로써 운명에게 갚아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될 때처럼 불현듯 끝났다”라는 말들.

고독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적요로운 평화를 주었다. 애써 고독하지 않으려고 할 때의 고립감이 견디기 힘들 뿐이었다. 타인이란 영원히 오해하게 돼 있는 존재이지만 서로의 오해를 존중하는 순간 연민 안에서 연대할 수 있었다. 고독끼리의 친근과 오해의 연대 속에 류의 삶은 흘러갔다. 류는 어둠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었다.

잠들기 전, 수면제처럼 나는 『태연한 인생』의 마지막 문장을 삼켰다. 그리고 그것이 따뜻한 물 한잔과 함께 녹아 내 잠에 스며들어 안착하길 바랐다. 꿈꾸고 싶지 않은 날, 읽어도 좋을 문장들 사이에서, 나는 비로소 어떠한 악몽 없이 깊게 잠들 수 있었다. 말하자면 어둠 속에서도 나는 노래할 수 있었다. 태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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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백영옥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 2008년에서 2009년에 걸쳐 YES블로그에 장편소설 『다이어트의 여왕』 연재, 일간지 연재칼럼을 모아 낸 에세이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단편집 『아주 보통의 연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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