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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떠나는 나영석 PD, 그가 이적을 한 진짜 이유는?

아날로그 인간 <1박2일> 나영석이 선택한 여행지는 ’아이슬란드’ 방송생활 12년, 즐거운 리셋을 꿈꾼다 -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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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하는 여행 따위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나영석 PD가 홀로 아이슬란드 여행을 떠났다. 이유는 무척 단순했다. <1박2일> 시즌1이 막을 내렸고 회사에서 휴가를 주었기 때문. 어디라도 떠나고 싶었다는 그는 여행기와 그간의 삶을 정리한 에세이집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를 펴냈다. 타이틀은 ‘마흔을 준비하는 100일의 휴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서울을 뜨자’


PD는 프로그램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인터뷰 대상자가 되어도 주제는 언제나 프로그램, 개인적인 소견 보다는 제작진을 대표하는 입장으로 설 때가 많다. 하지만 스타PD가 되면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대중들은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제작자인 PD에 대한 호기심으로 확장한다. KBS <1박2일>의 수장이었던 나영석 PD도 그 중 한 명이다. 강호동, 이수근과 복불복 게임을 두고 신경전을 펼쳤던 나영석 PD는 종종 TV에 등장하며, 어느새 시청자들에게 무척 친근한 PD가 되었다. 그는 지난 2월 26일, <1박2일> 시즌1 마지막 방송을 끝내고 마치 말년 병장이 제대를 하듯, 방송사 문을 박차고 나왔다. 속마음은 “오 하느님, 드디어 오늘이 왔군요. 땡큐, 땡큐”였다. 그리고 다음 날, 쏟아지는 인터뷰 세례와 지인들의 연락을 받으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서울을 뜨자’고 결심한다.

<1박2일> 팀과 함께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평생 할 단체여행은 다했으니, 물론 여행은 ‘혼자’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어디로 가지? 사람들은 <1박2일> 덕분에 여행 전문가가 됐을 거라 짐작하지만, 구체적인 일정이나 계획을 짜는 건 조연출 몫이다. 나영석 PD는 생각보다(?) 비전문가다. 고백하건대 스태프들의 계획 없이 <1박2일> 멤버들이 주축이 된 자유여행을 할 때가 가장 재밌었다고 한다. 여행지 선택을 두고 고민하기를 며칠, 문득 책상 모서리에 삐죽 나와 있는 여행잡지 『론리플래닛』에 시선이 멈췄다. 『론리플래닛』은 배낭여행자의 바이블과 같은 여행 전문 잡지다. 나영석 PD는 ‘한겨울의 북유럽 여행’이라는 글귀와 ‘검은 하늘 위 녹색의 오로라’ 사진을 몇 초간 뚫어지게 쳐다본다. 평소 관심이 있던 곳도 아니었는데, 무턱대고 ‘오로라나 보러 가볼까’ 생각한다. 이윽고 결정한 여행지는 아이슬란드. 2년 전쯤 화산이 폭발해서 온 유럽 비행기를 스톱시켜버린 패기 넘치는 지역, 영국에서 비행기로 세 시간쯤 걸리는 섬나라, 자료가 많지 않은 여행지 ‘아이슬란드’로 오로라를 보러 떠나기로 결정한다.

열흘간의 여행. 특별한 목적은 없다. ‘괜히 다녀왔어 돈 아깝게’ 정도의 느낌만 안 들면 된다. ‘인생의 터닝포인트 같은 건 썰매개나 줘버려’라는 생각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릴, 아주 큰 결정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때는 4월이었고, 나영석 PD는 지난 12월 18일 KBS에 사직서를 냈고 내년 1월부터 CJ E&M에서 새 출발을 한다.


내 자신에게는 너무나 불성실했던 12년


“아이슬란드를 검색한다. 영국에서 비행기로 세 시간쯤 걸리는 섬나라. 크기는 영국과 비슷하고 화산과 빙하의 나라로 불린다. Fire and ice. 이거 멋진 걸? 그 외에는 자료가 극히 없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찾는 이가 거의 없는 듯. 그래 여길 가야겠다. 여기서 오로라를 보자. 오로라 이외에는 뭐가 있는지 가서 알아보지 뭐. 뭐가 있어도 있겠지. 이번 여행은 어차피 버리려고 떠나는 것이다. 뭐가 있든 오로라만 보면 돼.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오로라를 보면 왠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것만 같은 기분까지 든다. 거기서 오로라를 본 후 마음속에 짊어진 편지와 각종 선물과 5년의 세월을 눈밭에 파묻어버리고 돌아와야겠다.” (p.50)
우연히 자연이 만들어낸 현상, 오로라를 보면 뭔가 감흥이 있을 것 같았다. 『론리플래닛』 잡지에는 노르웨이의 오로라 여행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개썰매, 스노모빌 체험, 얼음으로 만들어진 호텔 숙박까지 자세히 나와 있었다. 하지만 반발심이 슬쩍 생겼다. 세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는 노르웨이 보다는 자료가 없는 아이슬란드에 가고 싶었다. 나영석 PD는 “아무도 안 간 데를 가보고 싶었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떠났지만, 사실 보게 되면 너무 좋은 거고, 못 보면 어쩔 수 없는 거다. 운 좋게 보게 되긴 했지만. 못 봤어도 전혀 상관 없었을 거다”라고 말했다.

“다 알고 가는 여행은 재미 없지 않나요? 일부러 좀 헐겁게 알아보고 갔어요. 어디에 가면 뭐가 있고 무얼 먹을 수 있고, 그렇게 완벽하게 계획한 여행은 편하긴 하지만 의외성이 없으니까요. 원래 계획을 세우고 무얼 하는 편이 아니에요.”

<1박2일>을 마치고 혼자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기행문 같은 걸 써보고 싶어서 나영석 PD는 출판사에 연락을 했다. 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 상념 같은 걸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1박2일>을 끝내고 떠난 여행인 탓에 <1박2일> 이야기가 자연스레 담겼다. 여행 이야기는 며칠 만에 정말 빨리 썼다. 하지만 나영석 PD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정리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친한 촬영감독 사무실에 불도 안 들어오는 쪽방에서 썼어요. 사실 여행을 했다고 해서 사람이 뭔가 바뀌는 건 아니에요. 여행을 하는 중에 일상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걸 떠올려보게 되고, 그것을 글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바가 크죠. 당시에는 힘든 것만 생각하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면 좋았던 것, 배우는 게 많은 것 같아요.”

2년 전, <1박2일> 멤버였던 가수 김C는 나영석 PD에게 독대를 청했다. 이유는 프로그램을 그만두고 싶다는 것. 그는 “더 늦기 전에 내가 원하는 걸 찾고 그것에 빠져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나영석 PD는 김C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이 말을 듣고는 ‘못 잡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2년 후, 나영석 PD는 김C의 베를린 여행과 다르지 않은 여행을 떠나게 됐다.

“지금 제가 37살이에요. 2001년도에 방송사에 입사해서 쉬지 않고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그 중 5년이란 시간을 <1박2일>과 함께했고요. 그런데 문득, 12년 동안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 생각은 많았지만 단 한 번도 나에 대한 고민은 안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자신한테는 너무 불성실했던 거죠. 김C 형이 그렇게 떠났을 때 제 안에 굉장한 울림이 있었어요. 하지만 방송을 해야 하니 금세 그 마음은 사라졌죠. 이번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면서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정리하게 되면서 그 때 형이 준 울림이 생각나더라고요.”

마흔을 준비하는 100일의 휴가. 책 제목 후보로도 올라갔던 타이틀이다. 나영석 PD는 오늘도 어딘가로 달리고 있는 이 땅의 서른일곱 동지들에게 ‘나 홀로 휴가’의 필요성을 넌지시 던진다.

“제가 예능PD이지만 한 직장의 직장인이잖아요.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일을 해야 하고 직장의 급한 일을 처리 해야 하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좀처럼 얻기가 힘들어요. 간혹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 떠올려보지만 그 보다 급한 일이 너무 많으니까 고민은 사치가 돼버리죠. 저는 예상치 못한 일의 휴지기를 갖게 되면서 운 좋게 휴가를 보낼 수 있게 돼서, 그 시간을 통해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어요. 저처럼 보통의 평범한 가장이 열흘 정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면, 확실하게 인생이 조금 더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더라도 똑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사람이 일을 대하는 느낌은 다를 거예요. 난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목표를 설정했으니까요.”

쉽지 않은 일이다. 직장인이 갖는 혼자만의 휴가. 그렇지만 어차피 레이스는 길지 않은가. 나영석은 PD라는 타이틀을 떼고 ‘가장 나영석’으로 말한다. 시속 200킬로미터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이라도, 조금만 엑셀을 더 밟으면 레이스에서 곧 1등을 할 것만 같은 순간이라 할지라도, 잠시 차를 갓길에 멈추고 시동을 끄고 차 주위를 한 바퀴 돌며 먼지라도 툭툭 털어주자. 앞으로 최소 30년은 더 달려야 하니까.


문제제기는 옳았는데 결론이 엉뚱했다?!


“종영 날짜가 정해지고 나서는 그 생각뿐이었다. 회사를 관두고 뭘 할까 하는 생각. 아무에게도 피해주지 않고 살 만한 게 뭐가 있을까. 혼자 고민한 결과 네 가지 정도의 안이 나왔다. 제주도에 내려가서 펜션을 하는 게 1번 안. 콧수염을 기르고 술집을 여는 게 2번. 요리학원을 다니고 식당을 여는 게 3번. 지인들과 프로덕션을 차려서 구멍가게처럼 지지고 볶으며 사는 게 4번 안. 뭘 할까. 그 생각만 하며 마지막 반 년을 버틴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나는 아이슬란드로 날아왔다. 오로라의 신이 뭔가 점지를 해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면서.”(p.325)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진 나영석 PD의 이적을 두고 사람들의 말이 많다. <1박2일> 시즌2가 방송되면서부터 유독 ‘이적설’이 끊임없이 회자된 주인공이었기 때문. 물론 실제로도 오래 전부터 타 방송사로부터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아왔다. 나영석 PD의 사직에 대한 결심은 <1박2일> 시즌1이 끝날 무렵부터 확고했다. 그는 마음도 몸도 지칠 대로 지쳐버린 상태였다. ‘이게 끝나면 또 뭘 하지, 또 다른 프로그램을 할 텐데, 그럼 또 욕심에 겨워 다른 사람을 쥐어짜고 내 자신을 쥐어짤 게 뻔한데’ 그런 생각을 하자 진절머리가 났다. 결국 스트레스가 극에 다다른 어느 날, 결정했다. 회사를 관두자고. 더 이상 나나 다른 사람을 학대하며 살지 말자고.

“일단 나가고 싶은 욕망이 강했는데,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게 이걸까?’ 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나는 그냥 열심히 프로그램을 많이 만드는 게 좋고, 정말 그게 좋아서 몸부림을 친 건데. 회사를 나와 새로운 일을 하면 과연 행복할까, 확신이 들지 않았어요. 실제로 지인들과 프로덕션을 차리는 건 어느 정도까지 진행을 했어요. 그런데 문득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마흔이라는 나이가 되기 전에 내 인생을 한 번 리셋 하고 싶다’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즐거운 리셋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CJ E&M을 선택한 건 거의 가족 같은 동료들이 그 곳에 있으니까요. 그동안 그 양반들이 없어서 외로웠거든요.”

KBS 파업이 한창일 때, 나영석 PD는 <1박2일>을 함께 만들었던, 최근 <응답하라 1997>를 히트시킨 이우정 작가를 오랜만에 만났다. 예능작가로 잘 나가고 있던 친구가 갑자기 드라마를 쓴다고 푹 빠져있는 걸 보고, 그는 “대체 언제 철이 들려고 이러니.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그러다 실패하면 큰일 난다. 화려한 경력에 오점을 남긴다”며 진지하게 설득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실로 심플했다. “우리가 언제부터 성공, 실패 따져가며 일했어? 재밌을 거 같고 꽂히면 하는 거지. 망하면 망하는 거지 뭐.” 나영석 PD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뭔가로 얻어맞은 듯 멍해지고 말았다.

“오래된 친구가 무심코 내뱉은 대답에는 뭐 하나 틀린 말이 없었어요. 저도 후배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얘기에요. ‘일은 머리가 시키는 것이 아니고 가슴이 명령하는 것이다. 성공을 좇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두근거림을 좇아서 하는 것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그동안 잊고 살았던 거죠. 나름 <1박2일>을 통해 유명해지고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는 생각에 다음 작품에 대한 걱정, 가슴으로 두근거리기 전에 머릿속으로 재단하려 들었던 거예요. 문득 저를 둘러싸던 고민의 실체가 뭔지 알게 됐죠. 그리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CJ E&M에는 나영석 PD와 동고동락했던 이명한 PD, 신원호 PD, 이우정 작가 등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그는 “이 사람들이 없었으면 절대로 안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남아도는 어느 날, 혼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핑계의 껍질을 하다 둘 벗겨가다 보면, 그 안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짜 ‘나’가 숨어 있다. 그제야 깨닫는다. 아아, 어른은 개뿔. 나는 지금까지 ‘어른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구나. 하고. 그래도 그 힘겨운 코스프레의 와중에도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파업이네 뭐네 하고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나의 뇌는 끊임없이 프로그램을 생각하고 있더라는 것. 한 마디로 몸이 근질근질한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특기인 ‘진짜 나’는 오랜만에 힘주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심심하지? 프로그램이나 하나 만들지 그래? 5년 전처럼 말이야. 지지고 볶고 울고 웃고 하는 그 지긋지긋한 일. 다시 한 번 해보는 게 어떠냐고 나한테 말하고 있는 것이다.”(p.404)

그냥 다 잘됐으면 하는 생각


<1박2일> 시즌2의 메가폰은 선배 최재형 PD가 잡고 있다. 나영석 PD와 시즌1을 함께했던 출연자 중에는 이수근, 김종민만 남아 있다. 나영석 PD에게 물었다. 가끔 시즌2를 시청하냐고, 두 멤버와는 연락을 자주 하냐고.

“한참 시즌2가 시작할 때는 자주 봤는데, 요즘은 그동안 놀아주지 못한 딸아이랑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 중이라서요. 많이 보지는 못해요. 프로그램은 제작진마다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다 다르고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배우는 거니까요. 제가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멤버들이랑은 가끔 연락하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안 해요.”

시즌1의 맏형이었던, 나영석 PD가 가장 의지했던 출연자 강호동은 1년간 잠정은퇴 끝에 최근 복귀했다. 오랫동안 진행했던 <스타킹>, <무릎팍도사>의 마이크를 다시 잡고 변함없는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나영석 PD는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의 두 챕터에 강호동 이야기를 할 만큼, 그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크다. <1박2일>에만 복귀하지 못한 강호동의 모습이 그립지는 않을까, 나영석 PD의 마음이 궁금했다.

“그냥 다 잘됐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형이 다시 <1박2일>에 복귀해서 같이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요. 저는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미련 없이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1박2일>이 끝나는 상황이 됐었고, 제게 있어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은 끝이 난 거예요. 호동 형이 힘든 시간을 겪다가 컴백하는 프로그램이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내가 그 프로그램을 같이 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은 없어요.”

다만 한 가지 꿈꿔보는 일은 몇 년이 지난 후, 시즌1 멤버들과 함께 명절 특집 편이든 특별 편이든, 한 번 다시 뭉쳐보는 상상이다.

“호동 형은 장난끼 있는 말을 하다가, 갑자기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 굉장히 추상적인 표현을 쓰세요. 명언 같은 걸 말하려고 하고요. 본인 나름대로는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하는 말인데, ‘아 형은 좀 쉽게 말하지’ 싶을 때가 종종 있어요(웃음).”

멤버들의 이야기를 꺼내자, 화색이 도는 나영석 PD. 조금은 그리워하는 듯싶다. 그는 사실 방송사 입사 초기 때만 해도 연예인 울렁증이 심했던 PD다. 리더십은커녕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도 잘 못하는 안면홍조증이 있었다. 그나마 스태프들과는 동고동락하니 금세 친해졌지만, 처음 보는 연예인과 대화를 할 때면 제대로 말도 못하고 웅얼거리다 돌아서기 십상이었다. 입사 1년차 때는 청룡영화상 시상식 MC였던 이병헌, 김혜수에게 스탠바이 요청을 못해 방송사고를 낸 일도 있다.

“<여걸 파이브>를 할 때가 5년차였는데 그 때도 출연자들을 잘 쳐다보지 못했어요(웃음). <여걸 식스>로 바뀌면서 그나마 친해졌죠. <1박2일>도 마찬가지에요. 남들보다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하지만 더디 걸린 만큼 나중에 더 친밀해진 것 같아요. 12년 방송을 하면서 고맙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촬영할 당시에는 불만이 생기는 사람들도 많아요. 언제는 조연출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가 언제는 출연자가 마음에 안 들고. 싫어하는 사람은 늘 존재해요. 그런데 다 지나고 보면, 모두가 고마워요. 그 때는 내가 잘나서 버티는 것 같았는데 끝나고 보면 저 사람 덕분이구나, 싶어요.”


나영석 PD는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를 쓰면서, “인간 나영석의 속살을 후벼 파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동안 불편해서, 힘들 걸 알기에 하지 않았던 스스로와의 독대를 시도했다. 인정하기 싫은 것들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통해 ‘진짜 원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게, 되게 힘들었어요. 내가 싫어지고도 했고요. 아마 여행을 하지 않고 책을 쓰지 않았더라면, 엉뚱한 결론을 냈을 수도 있었어요. 그래서 제 또래의 직장인들에게 짧은 시간이라도 혼자만의 여행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10년 후 또 한 번의 휴가가 찾아온다면, 그는 어떤 여행지를 택할까. 인터뷰 내내 진지했던 나영석 PD가 세상살이의 재미를 아는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어디를 가든 아이슬란드를 거쳐 가고 싶어요. 기억에 남는 건 예쁘거나 신기한 풍경이 아니라, 그 곳에서 내가 느낀 감정과 생각이 아닐까요.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아이슬란드를 지나쳐 올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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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나영석 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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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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