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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현 “60대에도 비키니 입는 여자가 되고 싶다” - 예스24 문화축제

버킷 리스트 주제로 이원국, 허경환. 양방언, 백가흠, 김소현 토크 이동진, 녹스는 것 보다는 닳아서 헤지는 게 나은 것 같다 장기하와 얼굴들 콘서트에 예스24 독자들 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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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이 함께하는 감성 충만 콘서트 ‘예스24 문화축제’가 11월 20일 악스코리아(AX KOREA)에서 열렸다. 지난 5년 동안은 ‘블로그 축제’라는 이름으로 열렸지만, 올해부터는 ‘예스24 문화축제’로 새롭게 단장하면서 그 규모와 영역을 더욱 확장했다.


‘예스24 문화축제’는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사회로 발레무용가 이원국, 개그맨 허경환, 뉴에이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양방언, 소설가 백가흠, 뮤지컬배우 김소현 등 다양한 문화계 인사들이 1천여 명의 예스24 회원들과 만나 축제를 즐겼다. 장기하와 얼굴들, 대금연주가 박상은, 역사 어린이 합창단의 공연까지 더해져 연말의 그 어느 시상식보다 다채롭고 풍성한 큰잔치가 되었다. 올해의 주제는 ‘버킷리스트’. 이동진과 다섯 명의 연사들이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은 책과 영화와 음악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관객들의 가슴을 울렸다.


평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 사이로 기분 좋은 설렘이 전해졌다. 축제의 시작을 기다리는 회원들을 위해 로비에는 예스24에서 준비한 소다수와 커피, 맥주 등 음료수와 함께 사진촬영을 위한 포토 월, 각자의 버킷리스트를 적어 걸 수 있는 소원나무가 마련되어 있었다. 특히 포토 월에서 사진을 찍고, 소원나무에 버킷리스트 쪽지를 걸어 놓은 회원들은 추억 뿐 아니라 선물까지 받아가는 행운을 누렸다.

예스24 페이스북 이벤트 담벼락에 사진을 올린 회원 중 추첨을 통해 선정된 20명의 회원들에게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전달했고, 소원나무 이벤트에 참가한 회원 중 5명에게는 『삼국지』 전집을 증정했다. 축제가 모두 끝난 뒤에도 이벤트는 계속됐다. ‘예스24 문화축제’ 참가 후기를 예스24 블로그에 남긴 회원 50명에게는 영화 ‘엔딩노트’의 예매권을 전달했다.


다양한 이벤트를 즐기는 동안 지루할 틈 없이 기다림의 시간은 흘러가고, 드디어 축제의 막이 올랐다. 역사어린이합창단과 대금연주가 박상은의 오프닝 공연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티 없이 맑은 화음은 순수의 시간 속으로 관객들을 초대했다. 이어 무대에 오른 연주가 박상은은 대금과 소금의 청아한 음색으로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허경환, 내 인생의 책은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일순간 공기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한 사람이 등장했다. 경쾌한 기운을 몰고 나타난 그는 ‘500원을 받기 전엔 결코 궁금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 것 같은’ 꽃거지, 개그맨 허경환이다. 이 정도 얼굴이면 키 좀 작아도 아무 문제없잖아, 당당하게 외치는 그는 ‘단점을 부끄러워하면 아니 되오’라는 주제로 이동진 평론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동진 : ‘네 가지’ 코너를 보면, 자기의 콤플렉스와 단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바꾼 스타일의 개그를 하고 계시잖아요. 처음 기획 단계에서 생각하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허경환 : 예전에는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라는 개그를 했다면 이제는 ‘내가 키가 작은데 어쩔 거야, 여기서 키가 더 클 수도 없는 거고’ 이렇게 더 크게 외치는 거죠. 그렇게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개그를 통해서 뻔뻔함을 보여주자고 콘셉트를 잡고 ‘네 가지’ 코너를 탄생시키게 됐어요.

이동진 : 바빠서 책 읽을 시간도 없으실 것 같아요.

허경환 : 마음만 먹으면 책은 언제든지 읽을 수 있죠.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리처드 칼슨의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에요. 제목을 보는 순간 많은 걸 느꼈어요. 제 인생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줬죠. 사소한 것에 대해서 많이 신경 쓰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닌 일들인데 당시에는 왜 이렇게 신경을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은 반쯤 읽다가 말았는데, 제목만 보면서도 많은 걸 느꼈어요(좌중 웃음).

이동진 : 오늘의 주제가 버킷리스트인데요,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면 어떤 것들을 해보고 싶을까요.

허경환 : 최근에 <인간의 조건>이라는 프로그램을 녹화했어요. 휴대폰과 TV, 인터넷 없이 일주일을 지냈는데, 휴대폰이 없다는 게 생각보다 상당한 큰 혼란을 가져오더라고요. 제 시간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스스로를 바쁘고 분주하게 만들지 않게 되더라고요. 속도를 늦출 수 있게 된 거죠. 여러분도 한 번쯤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취미나 특기를 한 가지만 가지고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청소년들에게는 꿈을 위해서 도전할 수 있는,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 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겁먹지 말고 도전하는 청소년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이원국, 마흔 다섯의 발레리노가 아직도 무대에 서는 이유

두 번째 초대 손님은 발레무용가 이원국. 이동진 평론가는 그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한국 발레의 남성 시대를 연 발레스타, 한국 발레리노의 교과서. 그의 출연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한국의 발레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할 만큼, 발레무용가 이원국은 독보적인 존재다. 스무 살의 늦은 나이에 발레를 시작했지만 그가 가진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마흔 다섯이 된 지금까지도 발레리노로서 무대에 설 수 있는 비결은, 바로 그 열정이었다.


이동진 : 다른 어떤 분야보다 예술 분야의 정점은 빨리 온다고 생각하는데요, 마흔 다섯의 발레리노로 활약하신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감동적입니다.

이원국 : 방황을 청소년기를 보냈던 거 같아요.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는 저를 보고 어머니께서 발레를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어요. 그렇게 스무 살 때 발레를 시작하게 됐죠. 늦게 시작한 만큼 은퇴에 대한 압박을 빨리 받았지만 스스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나는 이제 시작했는데 무대를 떠나야 하나, 강박관념도 많았죠.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이동진 : 늘 최정상의 발레리노로서 현장에서 활동하고 계신데 그 비결이 무엇인가요.

이원국 : 지금도 발레 대중화를 위해서 매주 상설공연을 하고 있어요. 아직도 무대에 서는 이유는 오늘 연습하면 내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많이 들고요. 무엇보다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는 것 이상의 행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나 행복한 사람이고 싶고, 할 수 있는 데 까지 해보겠다는 생각입니다.

아직까지도 발레를 낯설게 느끼는 많은 관객들을 위해 그는 직접 무대 위에서 발레 동작을 선보였다. 음악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발레를 위해 준비된 무대 환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관객들의 박수 소리에 맞춰 날아올랐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발레에 매력을 느끼고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 그의 진심이 전해졌다. 뜨거운 열정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동진 : 만약 이원국 씨에게 남아 있는 날들이 많지 않다면, 어떤 일을 해 보고 싶으세요?

이원국 : 평상시에도 예술가로서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고민을 많이 해봅니다. 결국 나의 대답은 ‘나는 내일도 아침에 나가서 바뜨망 탄듀(Battement Tendu, 발레 동작의 하나)를 하겠다’는 거예요. 그 외에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링컨 센터에서 소극장 발레를 보여드리는 것, 그리고 발레 전용관을 만들어서 매일 상설 공연을 하면서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거죠. 아마도 그것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동진 : 아이디어가 고갈되거나 정서적으로 메마를 때 즐겨보는 책이나 음악, 영화가 있으신가요.

이원국 : 랭보의 시를 읽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10대 후반부터 20대에 걸쳐서 쓴 시가 아마도 프랑스 문학과 세계 문학 사상 가장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발레로 비교해 보자면 ‘나도 저렇게 멋지게 살다가 예술적인 자취를 남겨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래서 랭보의 작품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해 본 적도 있어요. 영화 같은 경우에는 알파치노 주연의 <스카페이스>라는 영화가 감동적이었어요. 난민자로서 미국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고독한 남성의 이야기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김소현, 오페라 <라 보엠>의 CD가 나의 인생을 바꿨다

뮤지컬배우 김소현은 이번 ‘예스24 문화축제’를 함께한 문화계 인사 중 유일한 홍일점이다. 특유의 밝고 꾸밈없는 모습으로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녀는, 뮤지컬배우가 된 계기와 무대에서의 에피소드 등 솔직한 이야기들로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김소현 : 성악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뒤늦게 시작하게 됐어요. 그 전까지는 바이올린을 계속 연주하고 싶었거든요. 성악을 전공하신 어머니의 권유로 저도 성악을 공부하게 된 거죠. 처음 성악을 시작할 때 어머니께서 오페라 <라 보엠>의 CD를 선물해 주셨는데, 그 CD가 제 인생을 바꿔놨어요. 갑자기 오페라에 빠져서 열심히 노래를 했고요. 우연의 일치인지 운명인지 모르겠는데 제가 처음으로 오페라 데뷔를 할 때도 <라 보엠> 작품을 했어요.

대학에 진학해 성악을 전공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오디션에 참가하게 됐고, 그 한 번의 오디션으로 주인공 크리스틴 역에 발탁되었다. 뮤지컬배우를 꿈꾼 적이 없기에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용감했다”고 말하는 그녀는 그 용기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뮤지컬배우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생애 첫 뮤지컬임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같은 배역을 연기했을 때보다 훌륭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뮤지컬배우로서 첫 발을 내딛던 그 순간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용기에 대한 칭찬이라고 했다.

이동진 : 김소현 씨의 버킷리스트는 어떤 것입니까?

김소현 : 부끄럽지만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60대가 되어도 비키니를 입을 수 있는 여자가 되자’는 건데요(웃음). 아무래도 여배우니까 관리를 계속해서 잘 했으면, 하는 소망인 거죠. 여자로서도 그렇고요. 또 원하는 것은 마지막에 제가 눈을 감는 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눈빛으로 저를 쳐다봤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카네기 홀에서 가족음악회를 했으면 좋겠어요. 저희 어머니도 성악을 하셨고 저와 여동생, 저희 남편, 제부, 모두 성악을 했거든요. 또 돈과 상관없이 저의 음악 인생이 담긴 앨범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도 있어요.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도 후회 없게 장식했으면 좋겠고, 가족들이 항상 서로 사랑하고 건강하길 바라죠.

예스24 회원들과의 만남이 끝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그녀는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 넘버 중 「Think of me」를 직접 부르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블로거 박신영, 인간이란 누구나 한 권의 역사책이다

‘예스24 문화축제’가 시작되기에 앞서 예스24 홈페이지에서는 ‘버킷리스트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은 책, 영화, 음악 이야기’라는 주제로 많은 회원들이 자신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거나 꼭 추천하고 싶은 작품, 그와 관련된 사연을 올리고 함께 공유했다. 그 중 가장 많은 댓글을 받은 박신영 씨가 무대에 올랐다. 그녀는 ‘검정드레스’라는 아이디로 ‘혼자 놀기의 달인’이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운영하는 예스24 블로거다.

박신영 씨가 들려주는 ‘내가 죽기 전에 읽고 싶은 책’의 이야기는 자신의 아버지와 역사에 관한 것이었다. 평소 역사책을 즐겨 읽는 그녀는 자신이 죽기 전에 읽고 싶은 책으로 『해방 전후사의 인식』과 함께 자신의 아버지를 꼽았다. 한 권의 책으로써 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


박신영 : 저는 한 번도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를 이해하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비단 이것은 저의 개인적 체험이 아니라 우리 한국 현대사와 부모 세대에 대한 보편적인 오해의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인간이란 누구나 한 권의 역사책입니다. 그리고 오독, 책을 잘못 읽는다는 것은 비단 책뿐만이 아니라 한 사람을 대상으로도 늘 벌어지는 일입니다.

당시 저는 제가 아버지를 오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저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미움 사이에서 힘든 10대 후반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화해의 계기가 왔어요. 대학 입시 후 혼자 읽었던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통해서였죠.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제가 깊이 소개해드릴 필요도 없는 고전적 역사서죠. 한마디로 한국 현대사의 현장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는 책이라고 볼 수 있겠죠. 『해방 전후사의 인식』에는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바라보는 교과서 밖의 시각이 담겨 있었습니다. 해방 후 한국 민족이 시급히 해결했어야 할 과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지금까지 남아서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도 읽게 되었어요. 저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통해 태어나 처음으로 한국 현대사를 접하고, 역사서 독서의 필요성을 배웠습니다.

이것은 저의 사적(史的)이고도 사적(私的)인 독서 체험입니다. 평생 아무리 노력해도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역사책이 단 한 권 있습니다, 바로 저의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제가 버킷리스트로 읽고 싶은 책은 『해방 전후사의 인식』과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사적(史的)이고도 사적(私的)인, 진솔한 고백을 마친 후 박신영 씨는 무대를 내려갔다. 암전된 무대 위에는 여운이 남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찰나의 침묵 속에서 관객들은 저마다의 아버지를 마주하는 듯 했다.


백가흠, 끝까지 작가로 죽는 것이 나의 버킷리스트

‘지독한 것을 지독하게 쓰지 않고 다만 담담하게 쓰는 작가’ 백가흠. 이동진의 말에 따르면 그는 불편한 진실을 아이러니와 판타지로 녹여내는 작가다. ‘예스24 문화축제’를 위해 백가흠 작가는 특별한 강연을 준비했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에 관한 작가의 이야기를 간추려 전한다.


백가흠 : 주제가 버킷리스트인 만큼 죽음과 관련한 작품을 떠올려 봤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입니다. 『노인과 바다』는 인간이 갖고 있는 삶에 대한 의지, 죽음을 물리치는 그 의지를 담고 있는 책이죠. 우리가 갖고 있는 삶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가느다란 목적과 열망과 연결되어 있고, 그런 점에서 산티아고 노인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가장 열망하고, 갖고 싶고, 하고자 하는 것들이 가느다란 낚싯줄로 연결되어 있고, 그것을 얻는다한들 결국에는 앙상한 뼈만 남는 것이 죽음을 목전에 둔 삶의 참모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헤밍웨이의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에서도 죽음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관조 같은 것들이 주로 다뤄집니다. 해리라는 인물(작가)이 아프리카 여행 중에 괴사병에 걸려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상처와 다리가 점점 썩어 들어가는 아픔 속에서도 생전에 미처 다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한 참회, 후회가 고통스럽게 다가오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작가로서 글을 쓰면서 미처 자기가 완결 짓지 못했던 문학에 대한 의지 혹은 열망이 아직 살아 있음을 느끼면서 더욱 더 고통스러워하죠.

『노인과 바다』도 마찬가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기가 품었던 삶의 진의가 진실로 느껴지는 소설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동진 : 누군가 작가님의 버킷리스트를 묻는다면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백가흠 : 헤밍웨이처럼 작가 스스로 완결을 짓는 것만큼 힘든 건 없는 것 같아요. 덧붙이면 끝까지 작가로 죽는 것도 하나의 버킷리스트가 될 것 같네요. 열망하는 것들 외에 자꾸 끼어드는 삶의 욕심들이 있잖아요, 그것들을 걸러내고자 하는 바람이 있겠죠.

이동진 : 소설가의 작품을 보면서 그 안에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백가흠 작가님께서는 한국 사회의 폭력성 같은 걸 드러내는 방식으로 부조리에 대해서 다루셨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뵈니까 너무나 정상인 것처럼 보이는데요(좌중 웃음).

백가흠 : 작가가 어떤 경험이나 체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는 시절도 있었죠. 현대의 작가들은 이 사회가 너무나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세계라고 보는데, 저는 이런 주체들이 누구인가에 주목을 하다 보니까 남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전쟁도 마찬가지고 정치도 마찬가지고, 남성들이 이끌어가는 그릇된 판타지가 이 세계를 망가뜨린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주체들에 대해서 주목을 했다고 보고요.

이동진 : 최근에 데뷔 11년 만에 첫 장편 소설 『나프탈렌』을 발표하셨습니다. 제목이 굉장히 독특한데요. 한 사람의 삶의 특성과 삶의 전체를 요약하는 것으로써 냄새, 향을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백가흠 : 예전에 부모님 옷장을 열어봤는데 아버지께서 젊었을 때부터 한평생 입으셨던 옷들이 진열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삶이라는 게 그런 거 같더라고요. 우리는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들을 옷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 거죠. 그런 것들이 이 소설과 연관이 깊은 것이라고 느꼈어요.


양방언,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책은 『뇌 구조』


‘예스24 문화축제’의 마지막 손님은 잔잔한 피아노 선율로 찾아왔다. 자신이 직접 작곡한 연주곡 「Swan yard」로 인사를 건넨 그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크로스오버 뮤지션, 양방언이다. 그는 자연인으로서도, 음악가로서도,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제주도가 고향인 조선 국적의 아버지와 신의주 출신의 한국 국적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그 자신은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일본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병원의 의사가 되었지만, 음악이 주는 즐거움의 강한 이끌림에 음악 활동을 재개했다. 이미 대학시절부터 프로뮤지션으로 활동했던 그였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사가 되었지만 결국 그는 그의 길로 돌아왔다.


이동진 : ‘예스24 문화축제’에 오시기 전에도 버킷리스트에 대해 생각한 적 있으신가요.

양방언 : 음악 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무인도에 음악이나 책을 가져간다면 무엇을 가져갈 것인지, 그런 얘기를 자주 해요.

이동진 : 그럴 때 어떤 책을 가져가고 싶으세요?

양방언 : 저는 예전에 의사 공부를 했지 않습니까. 25년간 음악만을 해서 이제는 거의 머릿속에서 없어졌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그 당시의 기억도 잊고 과학에 대한 관심이 다시 많아졌어요. 『뇌 구조』라는 책이 있어요. 제가 읽는 책이니까 어렵지 않아요(좌중 웃음). 어려운 과학식이 나오기는 하지만, 결론은 사람들의 뇌라는 것은 아주 적당하다는 거예요.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사람의 뇌라는 것은 자기 멋대로 생각을 한다는 것이죠. 사람의 뇌는 어디로 튈지 몰라요. 덧셈과 뺄셈 같은 연산은 인간이 컴퓨터를 따라갈 수 없지만, 컴퓨터가 아무리 뛰어나도 이러한 뇌의 기능을 따라갈 수는 없어요. 뇌가 자기 멋대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있으니까 우리가 창작을 할 수 있다는 것 같아요. 그게 저는 너무 재밌었어요. 그 사람밖에 할 수 없는 길이 있는 것이죠.


이동진, 녹스는 것 보다는 닳아서 헤지는 게 낫다

뉴에이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양방언의 피아노 연주로 다섯 명의 문화계 인사들과의 만남이 모두 끝났다. ‘예스24 문화축제’에 마련된 각종 이벤트의 추첨을 마친 후 이동진 영화평론가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이동진 : 죽음에 대해서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삶에 대해서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버킷 리스트>에는 굉장히 인상적이면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인용되는 대사가 나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살면서 한 일이 아니라 살면서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예전에 3년 정도 대학에서 강의한 적이 있는데, 매 종강 때마다 젊은 학생들한테 했던 얘기가 있습니다. 녹스는 것 보다는 닳아서 헤지는 게 나은 것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이 후회보다는 도전과 설렘으로 채워지길 바랍니다.


축제의 피날레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장식했다. 밴드가 등장하고 첫 번째 곡인 「풍문으로 들었소」가 시작되자 관객들이 일제히 무대 앞으로 모여들었다. 분위기는 자연스레 스탠딩 콘서트로 이어졌고, 「그렇고 그런 사이」와 「우리 지금 만나」가 연이어 울려 퍼지자 관객들은 더욱 열광했다.

‘예스24 문화축제’는 끝났지만 우리들의 축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각자의 버킷리스트를 채워가며,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오늘도, 내일도, 축제의 연속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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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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