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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의대 입학을 뜯어 말린 아버지, 속뜻은… - 『라이벌』 김재훈

츄파춥스에 담긴 문화 예술을 아시나요? 여성을 위한 샤넬, 오늘날 비극적인 얼굴로 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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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라는 이름으로 희생당하는 ‘다양성’은 어떻게 봐야할까. 문화는 다양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놓고 지난 10월의 마지막 날의 밤, 이젠 ‘할로윈 데이’라는 저쪽의 어떤 문화도 어렵지 않게 떠올리게 되는 날, ‘YES24 가을 예술 특강’이 열렸다. 주제는 인문학적 만화가 김재훈의 ‘라이벌’로 보는 문화 이야기였다.

문제는 ‘종 다양성’이다. 농업과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공생, 더 나아가 인류 생존을 위해 필요하고 보장돼야 할 것, 종 다양성. 20세기 최고의 식량학자 바빌로프가 주창하고, 지키기 위해 애를 쓴 ‘생물다양성’은 인류가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가장 명확하고 확실한 해결책이다.

국내외 유명 생태학자들도 지금 그것을 재차 확인시키고 있다. 최근 최재천 교수와 제인 구달 박사는 최근 <꿀벌, 도시의 생명을 잇다>는 강연회를 통해 “생태 다양성이 무너지면 인간의 생존까지 위협 받는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이를 위해 ‘생명다양성 재단(Biodiversity Foundation)’을 곧 출범하기로 했다. 아울러, 생물다양성협약은 기후변화협약(UNFCCC)ㆍ사막화방지협약(UNCCD)과 함께 유엔 3대 환경협약의 하나로, 2014년 생물다양성협약은 우리나라에서 열린다.

문화라고 예외가 아니다. 다양성이 꽃피워야만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 문화다. 그럼에도 그 문화적 종 다양성이 날로 협소해져가고 있다. 가령, ‘멀티플렉스’라는 이름의 극장에선, ‘잘 나가는 영화’가 도배질한다. 이 영화 저 영화, 골라먹는 재미가 아닌, 되는 놈만 민다. 그러니 ‘1,000만 영화’라는 이름, 자연스러운 현상도 아니요, 자랑스럽게 볼 것이 아니다. 한두 영화가 극장을 독점하고, 이른바 작은 영화는 기회조차 못 얻고 고사한다. 이것은 문화를 말살하는 위협이다. 취향과 기호의 획일화를 부르는 처사요. 획일적인 평준화의 길이다.


YES24 가을 예술 특강. 이날의 주제는 인문학적 만화가 김재훈의 ‘라이벌’로 보는 문화 이야기. 『라이벌』의 김재훈 작가, 등장해서는 대뜸 “문화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독자들의 다양한 답이 나온 가운데, 나는 이렇게 답했다. “이미 자본이 잠식해버린 오염된 단어”라고 답했다. 자본이 문화를 내세워 개인의 취향과 기호를 재조직하고 평준화시키는데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것이었다.



“새로운 유행의 대세를 좇을 의향이 충만한 대중은 문화 산업의 기획자들이 예의주시하는 곳에서 언제나 잠정적인 소비자이며 그런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홍보 프로젝트에는 관련 문화 아이템들이 첨부된다.… 그렇게 자극받은 대중은 좀 더 수준 있는 문화적 아비투스를 축적하는 유행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상품을 구매하고 문화를 소비하면서 안식을 얻는다.”(p.12)
김재훈 작가, 이날 혁신성과 상업성이라는 문화의 두 얼굴, 아방가르드와 그로 인한 소외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임을 예고했다. “문화에 대한 정의는 굉장히 다양하다. 문화가 가진 특징 중의 하나가 다양성이다. 그리고 자율성이다. 두 개를 지우면 문화는 소멸된다. 그만큼 두 가지는 중요하다.”


츄파춥스에 담긴 문화예술

이날 강연 시작 전, 독자들에게 츄파춥스를 나눠줬다. 할로윈 데이라고 그러는가 했다. 김 작가, 사탕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풀었다. 그것이 문화라고 했다. 그러니까, 배고파서 먹는 것이 아닌 것.


“인간은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 식욕, 성욕 등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하려고 하는 것은 문화가 아니다. 생존과 경제의 문제가 해소되고 다른 욕망을 추구할 때 문화를 만든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다. 사탕을 먹지 않는다. 음식문화를 떠올려 봐라. 배고픔을 해결하고 난 뒤, 좀 더 맛있는 것 없을까? 맛도 있으면서 보기에도 좋은 것 없을까? 거기에서 문화가 출발한다.”

김 작가 츄파춥스 막대에 대한 이야기를 잇는다. 다른 사탕과 차별화하는 츄파춥스의 특징. 아이디어였다. 손에 묻히면서 사탕을 먹는 것을 보고 들고 먹을 수 있게 만든 기능적인 편의. 기능적인 분야에서의 문화적 활동이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나타난 것이 예술이었다. 그는 “문화의 궁극을 예술”이라며, 문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예술이 나타난다고 언급했다.

“츄파춥스 껍질을 버리지 마라. 누구 작품인지 아나? 거실에 근사한 예술작품을 걸어놓고 싶다면 추파춥스 껍질을 다 펴서 액자로 만들어 걸어둬라.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이다. 업자가 사탕봉지를 근사하고 예쁘게 만들고 싶어서 달리를 만나서 의뢰한다. 달리가 그린 그림이 추파춥스 껍질 그림이다. 이게 팝아트다. 우리 가까이서 예술이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그렇다면 문화적 아이디어에 대한 고민이 왜 생길까. 김 작가의 답은 간명하다. 토대의 삶이 고달프기 때문이다! 생존 영역에서는 분쟁이 생긴다. 조금 더 먹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아야 한다. 자연스레 억압과 착취가 생기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나온다. 그래서 완충지대를 만들자는 것이 문화적인 활동이라는 것. 예술까지 가는 건 긍정적이며, 문화의 좋은 면이다.


문화의 이중성, 허장성세와 권력화

그러나 이것 역시 ‘변질’된다. 김 작가, 그것을 ‘뽀대’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문화를 통해 과시를 하겠다고 생각할 때 문화가 변질이 된다는 것. 그는 허장성세의 극치로 ‘캐딜락 엘도라도 1959년형’을 들었다.


“이 차에 왜 날개를 달았을까? 남자의 로망이 자동차인데, 빨간 색 페라리, 날개 달린 캐딜락을 선호한다. 빨라서가 아니다.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여기서 문화가 변질된다. 모두 공평하게 바람직한 삶을 만들고자 문화가 만들어졌는데, 과시에서 문화가 변질된다. 문화가 신분 차별을 드러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에르메스 버킨백’을 보자. 에르메스는 기호이지, 가방이 아니다. 에르메스는 칼이다, 무기다. 현대판 귀족들의 무기인 셈이지. 우리가 만들어낸 문화가 변질돼 신분차별적인 요소로 작용할 때, 문화의 양극화, 문화의 비극이 될 수 있다.”

김 작가,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문화적 안목도 높고 재밌는 사람이었던 아버지, 어느 날 그를 불러 이렇게 물었다. “하기 싫고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꼭 해내는 사람이 누군지 아니?” 답은 노예였다.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그 일을 하는 게 아닌 강요에 의해 할 수밖에 없는 사람. 그리고 문화의 이중성(?)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문화를 통해 우리는 자율적이고 역동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반면, 문화로 인해 억압되고 착취당하는 삶을 살 수도 있다. 청소년기, ‘왜 살까?’를 생각했다. 예쁜 여자를 만나는 게 목표였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웃음) 내가 만난 예쁜 여자가 웃고 행복해하는 것이 지금 목표고. 그런데 국가권력이 시민에게 어떤 이유로 태어났다고 말하는 게 상상이 되나? 1970년대, 그리 살았다. 국민교육헌장. 사는 게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다. 박정희 씨가 만들어 학생들에게 암기시켰다. 시험 봐서 틀릴 때마다 맞았다. 감수성 예민한 시절의 아이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삶을 바쳐야 한다고 달달 외웠다고 생각해보라. 하나의 거대한 힘에 의해 인간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것, 무섭지 않나? 또 하나. 지금 우리는 삶을 자율적으로 만들고, 물건을 살 때 주체적으로 살까? 유행을 쫓지 않나? 국가권력이 삶을 통제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권력이 우리의 문화영역을 통제하고 있다.”

이럴 때, 예술가들의 역할이 요구된다. 예술 분야는 특히 자율적이고 역동적이며 다양해야 한다. 문화영역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것이 예술가들. 예술가들의 아방가르드(Avant Gardeㆍ전위)적인 실험이 우리의 문화적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아방가르드는 원래 군대 용어였다. 적진을 향해 뛰어드는 돌격부대를 그렇게 불렀다. 그것은 곧 예술의 전위성과 맥락이 닿는다. 목숨을 잃는 한이 있어도 군중에 섞여 있기보다 적진을 향해 몸을 날리는 장렬한 모습. 그 모습을 떠올리면서 도취되고 감동받는 사람. 예술가들은 그런 사람이다. 칭찬에 죽고 칭찬에 죽는 사람. 즉, 자율성의 극단에 해당하는 경우다.

“그런데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는 없다. 요즘 어디서나 혁신을 강조하는데, 그게 약간 불편하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소박하고 눈에 띄지 않는 삶이라도 그 삶을 유지하면서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 제도와 분위기, 시스템이 중요하다. 누구나 혁신가, 예술가, 전사가 될 수는 없다. 20세기 초 바우하우스를 필두로 한 디자이너들은 보편적인 삶에서의 멋과 품격을 높이기 위해 디자인을 했다. 일상의 문화상품으로 우리는 문화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디자이너들이 모두가 누리길 의도한 문화가 신분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으로 변질된 것은 업자들의 농간이었다.”


바우하우스와 샤넬을 변질시킨 것은 누구인가


김재훈 작가는 바우하우스와 샤넬 이야기를 꺼냈다.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 세워진 바우하우스의 설립자들이 함께 찍은 사진. 그들, 바우하우스라는 학교를 통해, 귀족들이 누렸던 것이 아닌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멋을 부릴 수 있는 시민문화를 창달하자는 벅찬 꿈을 가졌다. 그들의 야심만만한 꿈은 사진을 통해서도 엿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꿈과 달리 흘러갔다. 그들의 디자인과 설계는 오늘날 희소가치 있는, 아무나 누릴 수 없는, 돈을 많이 가진 사람만이 소비할 수 있는 무엇이 됐다. 자본은 바우하우스의 꿈과 목표마저 삼켰다. 김 작가는 샤넬의 경우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했다.

“샤넬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샤넬 여사의 패션혁명, 취지 등을 생각할까? 아니다. 샤넬 수석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샤넬을 현재 반열에 올린 사람이지만, 내가 보기엔 샤넬의 원래 취지를 퇴락시킨 장본인이다. 샤넬은 여성들의 실질적인 권익 향상과 활동성을 높이기 위해 디자인했지만 오늘날 샤넬 매장에선 그런 취지를 발견할 수가 없다. 예전에 긍정적인 문화 창달이 오늘날 비극적인 또 다른 얼굴을 가지게 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가브리엘 샤넬. 현대적 의미의 여성 의복을 탄생시켰으며 멋은 상류층의 전유물이라는 구습을 깨고 파격을 선도했던 그녀는 현대 문화사에 금자탑을 세운 여성 전사였으며 혁명가였다. ‘샤넬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값비싼 특권이다’라는 오늘날 시장의 평가에 대해, 그 이름의 진짜 주인인 가브리엘 샤넬 여사께서는 과연 흐뭇해하실까?”(p.166)
지금의 억압과 착취는 예전의 것과 달라졌다. 과거, 국가권력이나 개인의 이해관계 충돌 등으로 그랬다면, 오늘날에는 자본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김 작가는 유행에 대한 선별적이고 비판적인 자세를 요구했다. 즉, 유행이 과하게 쏠린다면 거기에 따르기보다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명품이라는 이름의 유행에 대한 언급도 따른다.

“명품이 무가치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의미가 있지만, 지금은 다른 욕망을 부추기기 위한 소비상품으로 전락했는데, 절대왕정 시절을 희구하는 측면이 있다. 시스템화 된 허영이 최고조로 발휘했을 때가 프랑스 절대왕정이었다. 왕정은 문화적 관습을 세세한 부분까지 체계화해서 귀족들에게 제공했다. 최고 품격을 가진 장인의 작품을 귀족에게 줬다. 이런 의도였다. 누려라, 누리면서 타락해라. 왕정을 공고하게 하려면 귀족들을 억눌러야 했는데, 이런 사치를 제공받으면서 귀족의 의식은 낙후됐고 타락했다. 오늘날, 귀족들이 누린 사치, 특히 차별적 지위를 드러냄으로써 상대방이 열패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사회의 병적인 요소가 된다.”


향유할 것이냐, 소비할 것이냐?

김 작가는 다시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처음 대학에 들어가 신학을 전공했던 그는 1년 만에 그만뒀다. 군대를 갔고, 학교에 다시 들어가고자 했을 때, 의대에 입학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 의대를 가지 말라며 말렸다. 의대 가지 말라는 부모? 요즘 같으면, 아니 예전이라도 선뜻 이해하기 힘든 처사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의대 가려는 속뜻이 보인다면서 다시 생각하라고 하셨다. 그날따라 짜증이 나서 발끈했는데, 아버지의 의도는 이런 것이었다. 의사가 돼서 돈벌고 성공한다는 건, 다른 사람들이, 외부 환경이 만들어놓은 코드에 의해 성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질 좋은 노예로 탄생하는 것밖에 안 된다. 노예가 안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하신 거다. 그래서 미대를 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때 아버지가 던져주신 책이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이었다.”

아버지는 김 작가를 위해 이런 말씀도 던지셨다. “어렸을 때를 돌이켜보라.” 즉, 정말로 기분 좋고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들춰내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진로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요즘 들어 생각하면, 출세한 연사들이 늘 말하는 게 미래다. 미래의 희망, 꿈을 달성하기 위해 현재의 고루한 일상을 타파하라. 오늘을 혁신해서 미래의 성공을 쟁취하라고 말한다. 나는 거꾸로 말한다. 과거를 돌이켜라. 정답은 과거에 있을 수 있다. 미래만이 희망이고 꿈을 부추기는 이면에는 현재라는 삶의 볼품없음이 있다. 나는 오늘의 작은 삶이 가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오늘의 현재가 있게 하기 위해 과거의 모든 것을 떠올려 봐야하지 않느냐는 거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문화의 다양성. 문화가 유행으로 치닫는다. 한쪽으로 쏠린다. 그것은 곧 문화의 위기다.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문화가 소멸될지 모른다는 위기감. 그 쏠림을 만든 장본인은 자본이다.

“자본은 물량공세를 퍼 부어서 거대한 문화산업을 만든다. 그 다음 어떻게 되겠나? 쏠림 현상이 있기 전의 작은 문화는 끝장이 난다. 어릴 때, 홍옥, 정말 좋아했었다. 그때는 홍옥, 아오리 등 사과 종류가 다양했다. 그러나 요즘은 부사밖에 없다. 쏠림 현상 때문이다. 여러 종의 사과가 있었는데, 교배종인 부사가 나오면서, 공급자들이 그쪽으로만 쏠렸다. 결국 홍옥은 사라졌다. 문화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 무엇을 누렸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노래,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1990년대의 오래된 노래. 그러나 현재 어느 때 들어도 다시 아련해지게 만드는 노래. 그 당시에도 의미 있고, 오늘에도 의미 있는, 그런 문화. 아직도 여전히 있고, 많다. 옛날 문화만 들추라는 건, 아니다. 다양성과 자율성, 문화가 살아있게 하라. 그리고 향유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식 수준에서 짐작할 수 있는 문화는 정원에 피는 꽃과 같다.”(p.15)
그러나 지금 피할 수 없게 닥친 것, 문화에 있어서의 양극화. 문화산업은 양극화를 전제로 움직이고, 그것을 부추긴다. 자본이 증식하는 방식이다. 또한 소비를 통해 ‘구별 짓기’하게끔 만든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가령, ‘브런치’도 그렇다. 뉴욕에서 브런치를 먹는다는 것은, 공유 공간을 통해 이웃을 사귀는 계기로 작동하나 우리에게 브런치는 과시적이거나 ‘뉴욕 라이프’를 경험하는 것으로 포장된다.

물론, 그전에 미국이 문화적 양극화를 주도한 측면이 크다. 전후 유럽의 지성이 대거 미국으로 이동하면서 미국 중심의 거대문화가 형성됐다. 대중들이 한쪽으로 쏠리게 만든 미국 중심의 문화가 형성됐다. 순수 예술도 팝아트 문화상품으로 변질됐다. 유럽도 이를 보고 팝아트 작가들이 대거 나타났다. 미국이 문화적 다양성을 삼킨 셈이었다. 김 작가는 ‘비극적인 양상’이라고 말했다.



“만민의 인권과 생활 문화가 평등해야 한다는 근대정신은 수명을 다했다.”(p.13)
“아방가르드를 쫓아가는 것 외에 주변에서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그런 면에서 대중의 역할이 중요하고, 주도권이 대중에게로 넘어간 측면이 있다. 네트워크 시대에서 의미 있는 자기 문화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문화 활동을 기획자들이 발굴하고 문화산업에 편승시키곤 한다. 이 희비극의 악순환이 언제 끝날지 몰라도 긍정적인 면을 되찾기 위해서는 생산자, 공급자, 예술가들의 자율성보다 대중들의 자율성이 먼저 확보되는 것이 희망적이지 않을까!”



“농익은 부르주아 시대의 문화, 만개한 자본주의 시대의 문화, 심각한 양극화 시대의 문화, 그 전 지구적 문화 시장에서 활기차게 거래되었던 꽃들의 전면을 보면서 잃어버린 마을 어귀의 소박한 정원들을 다시 가꾸려는 희망이 생겨나기를.”(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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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 김재훈 저 | 아트북스
각 분야의 라이벌들을 통해 20ㆍ21세기 문화의 면면을 재조명하는 책이다. 캐리커처라는 형식, 경쾌한 색채와 발랄한 말풍선 대사는 일견 가벼워보일 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디자인에서부터 순수예술, 대중문화, 클래식까지 다양한 장르와 역사가 꽉꽉 들어차 있다. 또, 메릴린 먼로와 오드리헵번, 슈퍼맨과 배트맨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아이콘'에서부터, 한글 활자 디자인의 바탕을 다진 최정호와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한글 서체를 제안한 안상수, 팝아트 작가 클래스 올덴버그와 제프 쿤스까지 시대와 장르를 불문하고 한 분야의 선구자이자 개혁가였던 라이벌들을 들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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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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