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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에서 발견된 8미리 필름의 정체는? - <살인소설>

<살인소설>로 살펴본 작가가 주인공인 공포 영화들 신념이란 거짓말의 실체, 그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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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범죄 소재의 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앨리슨은 당당하게 자신의 작품 철학을 밝힐 줄 아는 신념 있는 작가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처지는 과거의 명성을 되찾는 데만 급급한 변변치 않은 소설가일 뿐이다. 심지어 그는 궁핍한 생활을 극복시켜줄 베스트셀러를 쓰기 위해 실제 일가족 살인이 일어난 집으로 아내와 어린 자식 2명을 데리고 이사를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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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기 최고의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잘스는 1939년 조국 스페인이 프랑코 독재 정권에 지배되자, 강력하게 항의하기 위해 연주를 포기하고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 칩거하면서 ‘사람들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순간에도 예술가의 목소리는 전달될 수 있기에, 예술가는 특별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켜야할 신념을 위해 연주를 포기한 파블로 카잘스의 충고는 예술가로서의 특권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먼저 얘기하고 있다. 파블로 카잘스처럼 극단적인 선택은 아니겠지만, 예술가들은 언제나 자신의 예술작품과 사회적 현실 앞에서 갈등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살인소설>의 주인공 앨리슨(에단 호크)도 예술가로서의 자존심과 초라한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연쇄살인의 행적을 쫓는 지난한 과정 속에 앨리슨은 과거 자신의 인터뷰 영상을 들여다본다. “저는 사회 정의를 위해 책을 씁니다. 돈과 명예를 위해 쓴다면 손을 자를 거예요.” 실제 범죄 소재의 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앨리슨은 그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작품 철학을 밝힐 줄 아는 신념 있는 작가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처지는 과거의 명성을 되찾는 데만 급급한 변변치 않은 소설가일 뿐이다. 심지어 그는 궁핍한 생활을 극복시켜줄 베스트셀러를 쓰기 위해 실제 일가족 살인이 일어난 집으로 아내와 어린 자식 2명을 데리고 이사를 온다. 가족을 방패삼고 있지만, 자신의 야망이 우선인 앨리슨은 가족들에게 새로운 집의 비밀은 철저하게 숨긴다.

이 극단적인 현실 속에서 맞이하게 된 공포는 영화의 충격적인 반전에도 녹아들어있지만, 앨리슨이라는 사람이 처한 공포는 작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작가로서의 신념을 지킨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겠지만, 현실과 타협을 하지 않는 순간 이미 작가로서의 가능성은 끝나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지구가 멈추는 날>을 연출한 스콧 데릭슨 감독의 <살인소설>은 장르의 습성을 파괴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스콧 데릭슨 감독은 호러와 스릴러 장르의 익숙한 관습들을 영화 속에 천연덕스럽게 배치시킨다. 장르 영화의 관습을 따르면서 극적 재미를 주기 위해서 감독이 선택한 건, 작가로서의 앨리슨의 갈등 속에 녹아들어 있는 가족들의 경제적 위기, 달아날 수 없는 가족이라는 유대, 그리고 일가족 살인 사건 속에서 실종된 아이들의 행적 등에 관한 미스터리 등 궁금증을 자아내는 흥미로운 이야기의 층위다.


일가족이 나무에 매달린 채 끔찍하게 교살당하는 장면을 찍은 슈퍼 8 카메라 영상으로 시작하는 충격적인 오프닝이 끝나면, 살인사건이 일어난 집으로 이사 오는 앨리슨 가족을 보여주는데, 이 가족은 들떠 있고 불안해 보인다. 앨리슨은 다락방에서 정체불명의 8 미리 필름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속에는 일가족 몰살이라는 연쇄 살인의 기록이 담겨 있다. 돈과 명예를 위해서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는 앨리슨은 극심한 공포를 체험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신념을 버리고 선택한 돈은 가족을 위한 것이라는 핑계로 극한으로 몰아가는 앨리슨이라는 가장의 이야기는 신념을 꺾으면서까지 돈과 명예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대인을 조롱하는 하나의 우화가 된다. 예술가로서의 신념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에단 호크의 연기는 <살인소설>이라는 심령 공포의 분위기에 ‘공감’이라는 보기 드문 장점을 더해준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엄습해 오는 공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앨리슨은 가족을 위해 다시 이사를 선택하지만, 이미 그의 삶 속에 너무 깊이 파고든 공포는 그의 뒤를 따른다. 살인사건의 이면을 캐는 논리적인 스릴러의 분위기로 시작된 <살인소설>은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악령과 저주의 분위기를 담은 오컬트적인 영화로 변화한다. 충격적인 반전이 노출될 수도 있기에 자세히 언급할 수 없는 결말은 어떤 점에서는 잘 쌓아온 이야기의 층위를 일거에 무너뜨릴 만큼 논리적인 비약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공포의 실체는 살인사건의 비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이 처한 현실 그 자체에 있다는 영화의 화법은 일관성이 있다.

스콧 데릭슨 감독이 밝혔듯 <살인소설>에 등장하는 영상의 모티브는 1998년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링>에서 가져왔는데, 주인공이 온전히 보았다고 생각했던 영상의 ‘삭제’된 부분이 있었고, 주인공도 관객도 몰랐던 충격적 사실은 그 편집본에 있다는 결말을 위해 꼭꼭 숨겨둔 반전은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볼 가치가 있다.


자아분열, 그 공포를 다룬 영화들


<샤이닝>

스콧 데릭슨 감독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소설가가 자신의 가족을 한적한 곳으로 데려가고 그곳에서 끔찍한 정신분열적 공포가 벌어진다는 이야기는 1980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을 떠오르게 한다. <샤이닝> 속 카메라의 시선은 스테디 캠을 활용하여 늘 뒤에서 쫓아가거나, 타자의 시선을 앞서 간다. 누군가를 인도하거나, 누군가를 지켜보는 이 모호한 카메라의 시선은 주인공의 시점인지, 오버룩 호텔을 떠도는 망자의 시선인지 애매모호하지만, 공포영화에 있어서 카메라의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부터 30년 전 영화지만, <샤이닝>은 섬뜩하게 조여 오는 공포가 피나 효과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선, 여백, 침묵, 그리고 이미지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효과적인 공포영화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준다.


<매드니스>

1995년 존 카펜터 감독의 <매드니스>는 베스트셀러 작가를 내세운 흥미로운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의 백미로 꼽힌다. 베스트셀러 작가 케인의 실종으로 출판사측은 사립 탐정 트랜트(샘 닐)를 고용하여 케인의 실종 사건을 의뢰하게 된다. 케인의 소설을 따라 작가의 행적을 따라가던 트랜트의 앞에 소설 속 예언된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트랜트는 마치 소설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점점 소설과 현실 사이의 경계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 트랜트, 가상세계와 현실세계가 무너진 그 경계에서 존 카펜터 감독은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탐정 트랜트는 그는 케인의 소설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정신병자였던 것일까?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혼란 속에서 주인공이 겪는 정신병적인 혼란을 고스란히 겪는 관객 역시 그 경계에선 공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시크릿 윈도우>

2004년 데이빗 코엡 감독의 <시크릿 윈도우>의 주인공은 미스터리 소설 작가 레이니(조니 뎁)의 정신병적 분열 속 인간 본성을 파고드는 호러 스릴러이다. 자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것을 목격하고 시골 마을에 내려와 있는 레이니에게 어느 날 슈터라는 남자가 찾아와 자신의 소설을 표절했다고 위협한다. 갑자기 자신의 인생 속으로 파고든 슈터 때문에 레이니의 인생은 송두리째 뒤흔들리는데, 영화의 최후에 슈터는 레이니가 만들어낸 또 다른 그의 자아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베스트셀러>


<1408>

분열된 자아가 만들어 낸 환상, 그 반전의 이야기는 2010년 이정호 감독의 한국영화 <베스트셀러> 속에도 드러난다. <시크릿 윈도우>처럼 이 영화의 소재도 베스트셀러 작가와 표절이다. 표절작가라는 낙인을 떼고 다시 재기하려는 작가가 외딴 마을 별장에서 우연히 딸의 이야기를 듣고 쓴 소설이 다시 표절시비에 휘말리게 되면서, 표절 혐의를 벗기 위한 필사적인 추적을 그리고 있다. 이외에도 존 쿠작 주연, 미카엘 하프스트롬 감독의 <1408>은 1408호라는 호텔방에서 공포소설 작가가 겪는 정신분열적 공포를 다룬 미스터리 호러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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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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