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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수학여행은 이제 그만 갑시다”

“고전을 내 삶 안으로 끌어들이는 법” “들려주세요. 보여주세요. 느끼게 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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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느냐고 되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사는 게 조금은 편해질 거라고. 고전에는 우리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경험하게 되는 공통적인 감정이 담겨 있으니, 미리 경험해보는 편이 조금은 편할 거라고 말이다.

“영원한 사랑? 영원한 것은 오직 돌과 청동과 푸른 하늘 뿐이다”


고전(古典)
예전에 쓰인 작품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변함없이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
고전의 힘. 어쩌면, 우리는 이 힘을 인식하고, 얻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는지도 모르겠다. 고전의 힘. 이제는 상투적이고 낡은 말이지만, 아직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고전은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껏 전해져 오는 가치 있는 것이다. 인문학 특강 세 번째 시간, 오늘의 주제는 고전이다. 자존, 본질에 이어 고전이라는 추상어를 내 삶의 구체어로 끌어안으려는 시간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일만 해도 아득한데, 100년 전, 200년 전의 세계를 거슬러 올라가 본다면 어떨까?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나를 둘러싼 세계에 있는 어떤 것들이 200년, 300년 전에도 있었을까? 있다.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문학과 음악, 그림이 그 긴 시간을 꿰뚫고 지금도 살아있다. 200년 전, 300년 전의 사람과 내가 같이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실감 나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황홀한 일이다.

무엇이 시간을 뚫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나의 뜨거운 짝사랑? 온종일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고민?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이슈들? 박웅현 ECD는 전작 『책은 도끼다』에서 “말 없는 돌이 승리한다”고 했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 자연을 이길 방법이 없다고, 김화영 교수의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을 이야기하면서 이야기한 바 있다.

그 책에서 김화영 교수는 지중해의 쏟아지는 태양을 맞으며 시간을 머금고 있는 돌들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누가 그랬던가. ‘영원한 사랑’이라고? 영원한 것은 오직 돌과 청동과 푸른 하늘뿐이다.” 허무감이 밀려드는 말이다. 하지만 가만히 음미해보면 지중해의 돌과 청동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순간 내 머릿속에 시간성과 공간성이 한껏 확대된다. 300년 전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떠올리진 못하지만, 300년 전에도 있었을, 그 돌과 청동과 푸른 하늘은 떠올려볼 수 있으니 말이다.


“300년을 넘게 살아남았다는 것, 이상하지 않아요?”


“초등학교 때 들었던 아이돌 스타들 지금도 활동하나요? 지금도 좋나요? 10년 후에도 좋을까요? 소녀시대? 좋죠. 지금 우리 시대, 주류잖아요. 10년 후에 어떨 것 같아요? 싸이? 강남 스타일? 멋지잖아요. 몇 년이나 갈까요? 비틀즈는 60년대 활동했어요. 지금까지 비틀즈는 비틀즈에요. 대단하죠. 클래식에 들어가고 있죠. 150년 후에 살아남을까요? 그건 장담할 수 없어요. 이글스와 싸워야 하고, 에미넴하고도 싸워야 하고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직 100년이 안 된 책이에요. 하지만 시간이 더 흘러도 살아남을 것 같아요.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요? 뭐가 있길래 이렇게 오래갈까요? 저는 이런 힘이 무서워요. 우리가 정말 무서워해야 할 것은 이런 힘인 것 같아요. 이런 무서움에 비해서 요즘 고전은 너무 무시당하고 있어요. 200년 전 러시아에서 쓰인 책이 어떻게 여기 와서 나한테 울림을 주냐고요. 200년 전에 독일에서 귀도 못 듣는 사람이 피아노 몇 개 음을 짚으면서 만든 <월광>이라는 음악이, 어떻게 지금 한국에 사는 나한테 와서, 스산할 때마다 떠오를 수 있는 걸까요? 난 이게 너무 궁금해요. 거기 뭔가 있는 거죠. 그걸 알지 못하면 인생이 풍요로울 것 같지 않아요. 우리가 왜 이걸 모를까요?

아는 게 너무 많아서 그래요. 우리가 수박이라는 걸 처음 봤다고 해봐요. 놀라지 않겠어요? 뭐 이렇게 커. 두껍네. 색깔을 살펴보겠죠. 안에는 뭐가 들었는지 매우 궁금하겠죠. 쩍 갈라지네. 까만 씨가 있고. 이게 뭔 오묘한 거냐는 거죠.” 그렇게 흔한 수박을 보고도, 김훈은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이렇게 썼다. “수박은 천지개벽하듯이 갈라진다. 수박이 두 쪽으로 벌어지는 순간, ‘앗!’ 소리를 지를 여유도 없이 초록은 빨강으로 바뀐다.’”


“들려주세요. 보여주세요. 느끼게 해주시면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고전의 힘을 체감하고, 익힐 수 있을까? 박웅현 ECD는 이전에 경기 지역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 나눈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어떻게 창의적으로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느끼게 해주십시오. 느끼게 해주면 됩니다.” 박웅현 ECD 역시 ‘느낌 없는 교육’을 받으며 커왔다.

“봄의 왈츠? 외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이거 외워둬. 한 악장은 세 개로 구성되어 있어. 외워. 모나리자? 스푸마토 기법이야. 외워. 보바리 부인은 대단한 작품이야. 읽어.” 고전의 권위만 강조한 교육이었다. 이렇게 접한 ‘봄의 왈츠’가 ‘보바리 부인’이 재미있을 리가 없다. 그는 교사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한 번만 시간의 효율성을 포기해주세요. 선생님이 보여주고 싶은 그림을 그냥 보여주세요. 비발디의 겨울 1악장을 그냥 들려주세요. 그 중 몇 명은 그 음악을 듣고 소름이 돋을 겁니다. 그럼 끝난 겁니다.” 즉, 너무 많이 가르치려고 하는 게 문제라는 거다.

대한민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면, 누구나 경험했을, ‘경주 수학여행’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경주로 수학여행가지 말자는 캠페인을 해야 해요. 남자 고등학교 70명이 같이 가요. 상상이 돼요? 선생님은 애들 몇백 명을 데리고 가는 거잖아요. 그 친구들은 ‘경주 가면 신라여고 애들, 어디서 만날 수 있나? 소주는 언제 먹을까?’ 이런 생각만 해요.(웃음) 당연하잖아요. 이런 친구들을 선생님이 통제하려는 거죠. ‘40분까지 보고, 여기 모여. 늦으면 죽여.’ 그렇게 수학여행을 다녀오는 거예요. 누군가, ‘경주 어때요? 경주 아세요?’라고 말하면 그 친구들이 뭐라고 말하겠어요? “경주 볼 거 없어. 첨성대는 완전 작고, 불국사는 가봤자 발만 아프다.”(웃음)

클래식, 어떻게 하면 내 삶 속으로 끌어안을 수 있을까?



“힘써 십여 리를 가서 고개를 넘고 1리 정도 내려가니 석굴암에 다다랐다. 암자의 스님 명해가 맞이하므로 잠시 앉아 있다가 석굴에 올라가니 모두 사람이 공력을 들여 만든 것이었다. 석문 밖 양변엔 큰 돌이 각각 4,5,명의 불상을 조각하였는데 그 교묘함이 마치 하늘을 이룬 것 같았다. 석문은 돌을 다듬어 무지개 모양을 했다. 그 안에 큰 석불상이 있는데 엄연히 살아 있는 듯하다. 좌대는 반듯하고 아주 정교하다. 굴 위에 덮개 돌과 여러 돌들은 둥글고 반듯하게 서 있어 하나도 기울어지거나 어긋난 것이 없다. 줄지어 서 있는 불상들은 마치 살아 있는 듯한데 그 신기하고 괴이함을 말로 다할 수 없다. 이러한 기이한 모습은 보기 드문 일이다.” (유홍준, 『나의문화유산답사기3』)

유홍준이 석굴암을 보고 쓴 글이다. 우리는 이런 글을 보고 감탄한다. 만약 유홍준의 이런 시선으로 석굴암을 본다면? 조금이라도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 “지금 유홍준의 이 글을 읽는 데 몇 분이나 걸렸습니까? 몇 분 만에 석굴암을 생각하면서 ‘우와’ 감탄하게 되잖아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함부로 클래식을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내가 직접 보고 느껴야 해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알아야 할 것을 가리고 있어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가리고 있어요.” 우리는 비발디를 안다. 첨성대도 알고. 도스토예스프키도 안다. 정말 알고 있나?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그는 당부했다. “느끼세요. 알아야 건 인터넷에서 치면 다 나와요. 내 몸 속에 들어오게 합시다. 한번 입구만 잡히면 들어와요.”

박웅현 ECD는 대학교 때 『안나 카레리나』를 ‘읽었다’. 그런데, 자랑이 아니다. “글자 수를 셌어요. 1페이지부터 한 페이지도 그냥 넘어가는 게 없더라고요. 사회에 나와서 다시 읽었을 때야 비로소 무릎을 쳤어요. 오늘의 저를 만든 가장 큰 엔진은 클래식에 대한 궁금증이었어요. 도대체 뭐가 있길래 이토록 오래갈까. 그 궁금증에 다시 읽은 거죠. 그 책에 줄을 쳐가면서 읽었던 순간은 정말 제가 평생 가져갈 순간이에요.”

만약 우리가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느냐고 되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사는 게 조금은 편해질 거라고. 고전에는 우리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경험하게 되는 공통적인 감정이 담겨 있으니, 미리 경험해보는 편이 조금은 편할 거라고 말이다. 물론 각자의 삶이야 하나도 같을 리 없겠지만, 혼자라고 느낄 때,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이와 비슷한 상황에 부닥쳤던 이전에 읽었던 개츠비가 혹은 데미안이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 때, 그들이 정말 위로 되지 않을까? 그 난관을 뚫고 나갈, 어떤 힌트라도 던져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것들을 봤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으셔야 해요. 이 책도 읽고 저 책도 읽어봐야 하고요. 이 얘기를 꼭 드리고 싶어요. 좋은 것들은 진짜 많아요. 다만 그 클래식들을 당신의 삶 밖에 살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삶 안으로 여러분 안으로 끌어들였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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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연답게 잘, 헤쳐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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