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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고든 래빗, 왜 그가 대세인가? - <500일의 썸머>부터 <루퍼>까지

푸른 떡잎, 배우로 만개한 매력 ‘과거-현재-미래’를 하나로 아우르는 매력을 지닌 어느 ‘루퍼’의 고군분투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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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도시로 변한 2074년 캔사스, 시간여행은 가능하지만 불법으로 규정되어 거대 범죄 조직원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이용되고 있다. 완벽한 증거 소멸과 시체 처리를 위해 미래의 조직은 2044년에 ‘루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킬러들에게 보낸다. 완벽한 임무 수행으로 최고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는 킬러 조(조셉 고든 레빗)의 앞에 새로운 표적이 등장하는데…


2003년 샤를리즈 테론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몬스터>는 색다른 의미에서 매우 흥미로운 영화였다. 샤를리즈 테론은 아름다운 얼굴 위에 가짜 치아와 지저분한 분장, 그리고 15kg의 살을 덧붙여 추한 외모로 거듭난다. 이런 외모와 어울리는 거친 말투와 행동을 덧입혀 샤를리즈 테론이라는 배우가 가진 미모와 지적인 태도를 모두 지우고서야 샤를리즈 테론은 비로소 배우로서의 역량을 제대로 인정받게 된다.

2012년 전 세계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영화 <루퍼>의 조셉 고든 래빗을 보고 있자면 2003년의 샤를리즈 테론의 변신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특수 분장을 통해 선이 고운 얼굴을 지우고, 미래에서 온 또 다른 자신인 조 역할의 브루스 윌리스의 말투, 행동, 연기 패턴을 고스란히 체화하여 젊은 브루스 윌리스로 거듭난 조셉 고든 래빗에게서는 그 특유의 진지하면서도 개구쟁이 같이 장난스러운 표정과 샐쭉거리는 미소를 찾아볼 수 없다. SF 장르의 화려한 볼거리에 앞서 이야기의 층위를 강조하는 라이언 존슨 감독의 <루퍼>에서 조셉 고든 래빗의 연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볼거리가 된다.


색다른 시간여행의 영화, <루퍼>


암흑의 도시로 변한 2074년 캔사스, 시간여행은 가능하지만 불법으로 규정되어 거대 범죄 조직원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이용되고 있다. 완벽한 증거 소멸과 시체 처리를 위해 미래의 조직은 2044년에 ‘루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킬러들에게 보낸다. 완벽한 임무 수행으로 최고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는 킬러 조(조셉 고든 레빗)의 앞에 새로운 표적이 등장하는데, 도시를 장악한 ‘레인메이커’라는 조직에 의해 살해당한 자신의 아내를 살려내기 위해 과거로 돌아온 30년 후의 자기 자신(브루스 윌리스)이다. 미래의 조는 도시를 장악한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내가 만나는 순간, 시간은 전쟁이 되고 나는 나와 맞서 싸워야 한다.

시간의 흐름을 교란시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하나의 공간 속에 섞어버리는 시간 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색다른 이야기라 매우 흥미로운 소재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소재는 매력적인 만큼 충분한 인과관계와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 치밀한 이야기의 층위를 가져야 한다. 게다가 <터미네이터> 류의 블록버스터, <백 투 더 퓨처> 같은 휴먼 코미디, <시간 여행자의 아내> 같은 멜로 등 다양한 장르로 전이된 완성도 높은 시간여행 영화들 사이에서 부각되려면 이야기의 설득력에 독창적인 스타일도 더해져야 한다.

<루퍼>는 시간여행의 충분한 설득을 위해 영화의 초반부를 설명적으로 사용하면서 꽤 긴 예열시간을 가지면서 치밀하게 시작된다. 그리고 일단 발동이 걸리는 순간에는 끝없이 새롭고 자극적인 이야기가 이어져, 관객들이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달린다. 2005년 조셉 고든 레빗이 주인공을 맡았던 데뷔작 <브릭>을 통해 느와르 장르의 특성을 고등학교라는 학교에 고스란히 전이시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라이언 존슨 감독은 2008년 재기 넘치는 <블룸형제 사기단>에 이어 세 번째 영화로 <루퍼>라는 SF 장르를 선택했는데,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장르 영화 속에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는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서로의 생존을 위해 총구를 들이미는 순간에 비장한 서정미까지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루퍼>는 인간의 ‘존재’로 파고든 SF의 걸작의 반열에 들 정도는 아니지만, 조셉 고든 레빗이라는 걸출한 배우와 자신만의 연출세계가 확실한 감독이 만나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충분히 보고 즐길 가치가 있다. 가치 있는 ‘상상력’의 힘에 힘입어 미국 현지는 물론, 한국에서도 <광해, 왕이 된 남자>와 <회사원> 등 한국영화 화제작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는 흥행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500일의 썸머>를 통해 귀여운 훈남의 모습을, <인셉션>에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보였으며,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정의롭고 신선한 로빈으로 거듭난 조셉 고든 레빗은 <루퍼>를 통해 할리우드의 새로운 스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될 성싶은 나무의 푸른 떡잎


<흐르는 강물처럼>


<미스테리어스 스킨>

조셉 고든 레빗은 알려진 대로 아역배우 출신이다. 장난기 가득한 눈빛과 똘똘해 보이는 이미지로 10대 시절 인기 미국 드라마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에서 엉뚱한 매력을 가진 소년으로 출연했던 그는, 1992년 로버트 레드포드의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다니엘 크레이그의 아역으로 등장하였고, 1996년 <주어러>에서는 데미 무어의 아들로 등장하였고, 1999년에는 하이틴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 출연하였다.

2001년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의 마지막 시즌을 거절하고 콜롬비아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던 그는 독립영화를 통해 배우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2001년 폭력적인 십대 역할을 맡았던 영화 <매닉>에 이어, 감성적인 퀴어 영화 <래터 데이즈>에서는 조연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가 배우로서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었던 작품은 2004년 그렉 아라키 감독의 <미스테리어스 스킨>이었다.

당시 조셉 고든 레빗은 20대였지만 깡마르고 앳된 얼굴 때문에 10대 역할을 맡았고, 아역배우로서의 잔영이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에 영화와 그의 연기는 더욱 충격적인 아우라로 다가왔다. 이 영화는 아동 성추행이란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서로 다른 삶을 사는 두 주인공을 통해 상처의 치유와 그 시간의 의미를 되묻는 영화였다. 영화의 대사처럼 ‘심장이 있는 자리에 블랙홀을 가진’ 주인공 닐 역할을 맡은 조셉 고든 레빗은 아역배우가 아닌, 독립영화의 새로운 얼굴로 급부상하였고 이 영화는 동시에 틴에이저 퀴어영화라는 평을 받은 그렉 아라키가 영화 작가로서 급성장하게 된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브릭>

시트콤을 거절하고 학업에 전념하면서, 독립영화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조셉 고든 레빗이 영화에 보다 집중하겠다며 학업을 그만두고 선택한 영화는 2005년 <브릭>이었다. <루퍼>의 감독 라이언 존슨과 인연을 맺은 작품이기도 한 이 영화를 통해, 그는 차갑지만 몽환적인 매력을 가진 배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어 그는 암에 걸린 여성 킬러의 영화 <쉐도우 박서>, 2007년 <룩 아웃>에서 단기기억 상실증에 걸린 주인공 역할을 맡아 ‘인디 신에서 가장 뜨거운 배우’라는 극찬을 얻기도 했다.


<인셉션>


<다크 나이트 라이즈>

2009년 <지.아이.조> 같은 블록버스터의 조연으로 커리어를 쌓아가던 조셉 고든 레빗이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실하게 얻은 작품은 2010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이었다. 제임스 프랑코의 대타로 투입되긴 했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정확한 대척점에 서서 그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그리고 놀런 감독과의 인연은 <다크 나이트 라이즈>로 이어진다. 주인공 브루스 웨인과 정확하게 대비되는 젊고 이상적인 인물로서의 존 블레이크에 조셉 고든 레빗 만큼 적합한 인물은 없다는 놀런 감독의 선택은 주효했고, 그는 철학적이고 완성도 높은 블록버스터의 강직한 주인공으로 신뢰할 만한 배우가 되었다.


<링컨>

<루퍼>에 이어 개봉을 앞둔 작품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링컨>인데, 레빗은 다니엘 데이-루이스의 아들 로버트 링컨 역할로 등장한다. 그리고 2013년에는 조셉 고든 레빗의 감독 데뷔작인 <돈 존스 어딕션>을 만나볼 수 있다. 스칼렛 요한슨, 줄리앤 무어, 그리고 조셉 고든 레빗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포르노에 중독된 남성이 이기적인 삶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진지한 드라마라고 한다.


<500일의 썸머>

개인적으로는 2009년 <500일의 썸머>의 조셉 고든 레빗의 연기를 좋아한다. 이 영화는 달콤한 로맨스 영화라기보다 소년에서 남자로 거듭나는 진지하고 재미있는 성장영화이다. 흥행과 비평 모두 큰 호응을 얻은 흔치 않는 이 작품에서 뒤죽박죽된 시간 속에서 열정과 그 실패 사이를 오가면서 섬세한 감정을 잡아내는 조셉 고든 레빗이야 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성공요인이라 할 수 있는데, 독립영화와 블록버스터를 오가면서 그 스스로 감독이 되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쳐놓으려 하는 이 젊은 배우에게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하기에 조셉 고든 레빗의 다음 작품이 무엇이건 우리는 믿고 그 영화를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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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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