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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가 너무 좋아 존 레논 창법 흉내 냈다” - 들국화 1집 (1985)

록 밴드의 규범을 제시하는 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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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록의 소생을 밝힌 앨범. 동시에 토종 밴드의 승전보였으며, 비주류의 가능성 확인이기도 했다. 전설 중에서도 맨 꼭대기에 위치해야 할 작품이다. 이듬해 두장짜리 라이브 앨범과 2집을 끝으로 이들의 활동은 단기로 막을 내렸지만 그 족적은 지금도 신화로 남아 후대에 대물림되면서 끊임없이 록 밴드의 규범을 제시했다. 그 성화의 불길은 아직도 활활 타오른다.

얼마 전, ‘조덕환’이 무려 25년 만의 새 앨범, <Long Way Home>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조덕환’은 그룹 ‘들국화’의 원년 멤버인데요, 이로 인해 젊은 음악 팬들에게도 ‘들국화’라는 이름이 회자되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전인권 최성원 조덕환 허성욱 주찬권으로 구성된 들국화는 그들의 작곡 능력은 물론, 수록된 9곡 모두가 인기를 얻는 대중성도 확보했죠. 지금까지도 록 밴드의 규범을 제시하는 명반 ’들국화 1집‘을 소개합니다.


들국화 <들국화 1집> (1985)

들국화가 1980년대 중반에 기치를 들어올린 것은 주지하다시피 ‘록의 새바람’이다. 당시 주류에도 얼마든지 록의 형태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록의 동격이자 원론이라 할 ‘밴드에 의한 연주’ 개념은 후퇴한 상태였다. 게다가 록에 대한 신념도 허약했다.

들국화 멤버들의 사고는 젊었을 때 한때 록이 좋아 일렉트릭 기타를 잡고 드럼을 두드리는 낭만성에 무게중심이 위치하지 않았다. 그들은 록에 목숨을 담보할 만큼 진지했고, 그 젊음의 음악을 가슴으로 당겼다. 전인권, 최성원, 조덕환, 허성욱, 주찬권은 일정 형식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주류음악 흐름에 밴드에 의한 록으로 충격을 줄 수 있고 그리하여 주류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믿었다.

이 점에서 의미를 갖는 것은 록 형식보다는 그들의 아이덴티티일 것이다. 그들은 결코 주류의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앨범을 내고 매니저가 붙고 그래서 라디오와 TV에 판을 돌리며 방송횟수에 의존하는 메카니즘에 용해되기를 거부했다. 오히려 그들은 록의 기초가 되는 공연의 힘을 신뢰했다.

1982년 결성한 후 서울 종로 피카디리 극장 옆 미리내 소극장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가지고 신촌 뮤직스펭스라는 곳에서 공연하면서 존재를 알린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비틀스가 리버풀의 허름한 술집공연장인 캐번에서, 그리고 독일 함부르크의 클럽에서 오랜 내공을 닦은 것과 그리 다를 게 없다. ‘한국의 비틀스’.

그들은 보편화되어버린 주류의 정복 뒤에 내려오는 하향 방식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훑어 상향하는 방식으로 지명도를 구축했다. 그 아래는 바로 ‘언더그라운드’다. 사실 그들과 언더는 당시부터 인연을 맺어 종이매체에서도 들국화를 수식하는 말은 무조건 언더그라운드 록그룹이었다. 아마도 들국화는 국내에 언더그라운드란 용어를 일반화시킨 최초의 뮤지션일 것이다. 다만 그것을 언론에서는 TV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 가수들로 해석한 것이 문제였다.

텔레비전에 나가지 않은 얼굴 없는 밴드라는 점에 악센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류와 제도의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는 정신적인 측면에 들국화의 진정성이 있었다. 국화가 아닌 들국화 아니던가. 그처럼 언더그라운드란 지하 또는 매체의 점에서가 아니라 주류 역학에 대한 반작용이란 측면에, 다시 말하면 ‘정신’에 위치하는 것이다.

들국화가 한국의 비틀스란 찬사를 얻은 배경에는 상기했듯 록이 음반음악이 아니라 먼저 ‘공연음악’임을 인식했다는 점에 있다. 공연을 통해서 자신들의 설자리를 찾고 지반을 마련한 것이다. 언더그라운드의 록그룹은 이런 경로를 타게 되어있다. 들국화에게 당시 언더그라운드 그룹이란 말이 붙었던 것은 당시의 록그룹들이 매체에서 출발한 것과 달리 라이브 현장을 터전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데뷔작으로 바람을 일으키고 그 바람이 더욱 강도를 높여가던 이듬해 ‘라이브 콘서트 앨범’을 냈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한다. 온전한 실황앨범으로 보기는 어렵다지만 당시에 라이브 앨범의 타이틀을 붙여 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연후 그들은 곧바로 대전을 시작으로 전국순회공연에 돌입했다. 들국화의 욾이덴티티가 공연에 있음을, 이를테면 진정한 록 밴드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이 역사적인 첫 앨범에서는 9곡 수록곡이 전부 인기를 얻었다. 조용필마저도 한 앨범에서 많아야 4곡 정도가 나오던 시절에, 전인권 특유의 외침이 시대의 울림과도 같았던 두 시그니처 송 「행진」과 「그것만이 내 세상」을 비롯해서 「세계로 가는 기차」 「사랑일 뿐이야」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매일 그대와」 「더 이상 내게」 등이 줄줄이 라디오 전파를 유린했다.

히트 곡 창출에 있어 거의 절대적이었던 당시 라디오의 PD들 사이에서 마치 들국화에 대한 관심을 놓고 경쟁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앨범의 거의 모든 노래가 전파를 타게 됐던 것이다. 이것 또한 가요계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고 지금도 목격하기 어려운, 전무후무한 풍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멤버 전원이 전혀 소외됨이 없이 모두가 핵심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각별한 것이었다. 「행진」은 전인권이 작사 작곡은 물론 노래했고 「세계로 가는 기차」 역시 곡을 만든 조덕환이 보컬을 맡았고 「매일 그대와」는 작곡 작사 노래 모두 최성원의 몫이었다. 「사랑일 뿐이야」의 경우는 전인권과 최성원이 번갈아 불렀다. ‘황금분할’이었다. 그것은 멤버들이 보여준 힘의 균형, 거창하게 말해 ‘공연그룹’에서 더러 보이는 공동체정신의 발현이었다.

들국화가 보여준 멤버들의 균형과 공동참여는 비틀스의 냄새를 강하게 풍겼다. 마치 비틀스의 궤적을 재현하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들국화의 멤버들이 모였을 때 출발점은 바로 “우리도 비틀스처럼 해보자”였다. 비틀스의 접근의식은 물론 작업방식마저 염두에 둔 것이었다. 여기가 들국화가 비틀스와 더 직접적으로 관련된 대목이다.

들국화는 멤버들 전원이 실제로 비틀스광이었다. 최성원은 늘 비틀스 앨범에 취해 있었고 그중 예술적인 작품을 잇달아 만들어낸 천재 폴 매카트니를 영웅시했다. 당연히 그는 폴처럼 베이스 주자가 됐다. 반면 전인권은 존 레논의 카리스마를 좋아했다. 그는 언젠가
“비틀스와 존 레논을 너무도 좋아해 우리 노래 「행진」은 솔직히 존 레논의 창법을 흉내 낸 곡”이라고 밝힌 바 있다.

조덕환, 주찬권, 허성욱도 비틀스 음악을 꿰고 있었다. 어쩌면 들국화라는 그룹의 끈을 이어준 요소는 비틀스에 대한 애정인지도 몰랐다. 당시 신문과 잡지가 언더그라운드 그룹이란 표현과 동시에 ‘한국의 비틀스’라는 수식어도 동원한 것은 당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음악을 듣지 않고 앨범만 쳐다봐도 비틀스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큰 정사각형을 다시 정사각형으로 4분해 거기에 멤버의 얼굴을 집어넣은 들국화 첫 앨범의 커버 디자인은 잘 알려진 대로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인 <Let It Be>의 재킷과 너무도 유사했다.

한국의 비틀스라는 말은 들국화가 처음은 아니었다. 비틀스의 영향 하에 출현한 국내 그룹도 역사적으로 무수히 많았다. 비틀스가 막 활동하며 회오리를 몰고 왔던 1964년, 이 땅에도 그들에 영향 받은 키 보이스(Key Boys)라는 그룹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비틀스와 달리 자작곡이 없었다. ‘한국의 비틀스’란 영예가 들국화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은 다름 아닌 이 부분, 멤버들이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모든 것을 ‘자가발전’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멤버들이 만들지 않은 곡은 이병우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 하나에 불과했다.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한다’는 록의 자생(自生)성이 갖는 의미는 외부(자본)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예술적 자유와의 관련성이다.

한국 록의 소생을 밝힌 앨범. 동시에 토종 밴드의 승전보였으며, 비주류의 가능성 확인이기도 했다. 전설 중에서도 맨 꼭대기에 위치해야 할 작품이다. 이듬해 두장짜리 라이브 앨범과 2집을 끝으로 이들의 활동은 단기로 막을 내렸지만 그 족적은 지금도 신화로 남아 후대에 대물림되면서 끊임없이 록 밴드의 규범을 제시했다. 그 성화의 불길은 아직도 활활 타오른다.

글 / 임진모(jjinmoo@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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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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