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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입양, 아들이 그렇게 필요했냐고?

나는 여전히 엄마로 완성 중이다 입양, 상상 속의 아이가 내 품으로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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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것이 있다면 웃을 일이 훨씬 많아졌다는 것, 내가 학교에 나가지 않게 됐다는 것, 방바닥에 널브러진 잡동사니가 많아졌다는 것, 그리운 시골 농가의 아침 햇살이 다시 넓은 창으로 넘치도록 비춰 온다는 것. 우리 모두 함께 뒹굴고 함께 울고 웃는다. 처음부터 한 식구로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사랑을 받는 것은 행복이 아니다.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이다.


-헤르만 헤세


처음으로 발령이 난 바닷가 마을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였다. 으레 여느 시골 마을처럼 이곳에도 아이들이 아프면 손도 따주고, 아기 이름도 지어주고, 마을에 중요한 일들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 여쭈어 보는 어르신이 계셨다.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그 어르신이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기에, 방향도 같고 해서 짐을 들어드리며 이런저런 말씀을 듣는데 뜬금없이 손금을 좀 보잔다. 한참을 보시더니 하시는 말씀.

“선상님은 애들이 많겠네요. 슬하에 넷은 둘 것 같은디요. 아들 둘에 딸 둘.”

아직 시집도 안 간 새파란 처녀에게 애를 넷이나 낳는다니…. 그때는 민망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때 그 말씀을 오래도록 두고두고 간직하고 있었다. 내가 아이들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아기의 엄마가 된다는 신비를 곧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는지도…. 그때는 막연하게 많은 아이를 키운다는 건 축복 받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 나와 연애 중이었던 남편은 그 소릴 듣고는 왠지 모르게 으쓱해하며 좋아했다.

그렇게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아 길렀다. 첫째는 엉겁결에, 둘째는 기대를 잔뜩하고 계획해서 낳았다. 둘째를 낳고는 TV도 라디오도 좀처럼 잡히지 않는 산기슭 깊숙한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휴직을 하고 여유롭게 아이들과 자연 속에서 뒹굴고 싶다는 생각에 남편도 기꺼이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참 행복했다. 물론 그때라고 왜 힘들지 않았을까? 세 살 터울의 갓난아기와 유아를 혼자 키우면서 장을 보러 가려면 1시간 이상 마을버스를 갈아타야 하고, 병원에 한 번 갈라치면 하루 온종일을 다 써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그때를 생각하면 먼저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시장을 자주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과자나 인스턴트식품에 손도 대지 않았고, 텃밭에서 나는 푸성귀와 된장이 날마다 밥상 위를 수놓았다. 병원이 멀어 항생제와 약물과도 멀어져 민간요법을 통해 천천히 면역력을 키워나가는 특권(?)도 누렸다.

얼기설기 시골 농가를 대충 수리한 집에는 웃풍이 돌아 아이들은 늘 콧물을 달고 볼이 빨갛게 터서 지내야 했다. 하지만 아침 햇살이 방으로 한가득 찾아들고, 더 이상 단잠에 빠지지 못하게 만드는 온갖 새소리 덕에 눈을 뜨고, 갖가지 나무와 꽃들이 지천에 깔려 있던 곳! 우리는 날마다 마당에 나가 놀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여유롭고 따스한 기억들로 가득하다.

그러면서도 왜 그곳에 더 머물지 못했을까? 나는 대안학교라는 꿈을 찾아 그곳을 떠났고 그때부터는 날마다 전쟁이었다. 이상을 좇기 위해서건 욕심을 위해서건 꿈을 향한 부푼 기대감에서건, 그때부터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나의 이상은 아이들과 더 행복해지는 것이었는데, 아이들은 일에 엄마를 뺏겨야 했다. 경제적으로는 날마다 궁핍했고, 인스턴트식품과 가까워지고, 늘 병원을 들락날락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 내려와 작은 집을 짓고 살게 되자 난 다시 ‘자연인 엄마’로 돌아가고 싶었다. 두 딸은 어느새 이미 다 커버려 나보다 키도 크고 몸무게도 더 많이 나가지만, 여전히 내 품에 안겨 어리광을 피우고 재롱을 떨기도 한다. 우리 딸들은 나의 이런 마음을 알고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징그럽게 다 커버린 딸들은 이미 나의 친구이자 삶의 동반자로서 자리를 잡아버렸다. 더 이상 나의 손길이 필요한 아기들이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그즈음 남편과 나는 둘 다 입양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오래전 그 어르신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듯이 아이가 더 있으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거란 생각이 마음속에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를 더 낳는 것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우리 가족과 인연이 될 수 있는 아이가 이 세상에 분명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 남편이 일찌감치 불임수술을 하기도 했고,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입양원의 소식을 늘 접하고 지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임신과 출산, 그 모든 힘든 과정을 숭고하게 치러내고 태어난 한 아이를 거저(?) 얻을 수 있다면 세상에 이보다 더 수지맞는 일이 어디 있을까 싶은, 엉뚱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내가 낳은 아이든, 입양을 한 아이든 함께 생활하고 커나가는 과정만이 전부일 뿐, 나중에 그 아이에게 무엇을 바란다거나,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강요할 것도 아니므로 굳이 혈육이란 게 중요할까 싶었다. 내가 이상한 건가?

그렇게 지내기를 예닐곱 해. 작은애가 6학년쯤 되어 나의 보호가 더 이상 세심하게 필요하지 않아도 될 때쯤 입양에 대한 어렴풋한 나의 생각이 현실로 성큼 다가오는 계기가 생겼다. 모든 것이 신의 섭리인 것 같았다. 작년부터 어린아이들에게 눈길이 꽂히기 시작해 마음이 설레더니, 유럽여행을 할 땐 들르는 성당마다 초를 봉헌하며 새 식구가 될 아이를 맞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내 모습도 보았다.

이런 우리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입 밖으로는 한 번도 입양에 대한 생각을 내비친 적이 없었는데도 입양원에서 일하는 지인이 우리 가족에게 새 식구를 소개시켜 주었다.




“아련히 떨어져 있던 우리의 상상 속 셋째 아이가 거기에 그렇게 살고 있었다. 원래부터 우리 가족이었던 것처럼. 우리와 똑같은 혈액형에, 같은 체형에, 우리와 닮은 눈매며 이마며 손가락에 발가락까지.”


우리는 잠시 헤어져있던 가족을 만난 양 자연스럽게, 당연한 듯 한집에 살게 되었다. 참 신기하게도 새로울 것도 낯설 것도 없이 셋째는 우리 집에 오는 첫날부터 아주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았다. 우리 가족들도 늘 그 아이가 있었던 것처럼 아이를 보고 안고 업고 먹이고 재웠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웃을 일이 훨씬 많아졌다는 것, 내가 학교에 나가지 않게 됐다는 것, 방바닥에 널브러진 잡동사니가 많아졌다는 것, 그리운 시골 농가의 아침 햇살이 다시 넓은 창으로 넘치도록 비춰 온다는 것. 우리 모두 함께 뒹굴고 함께 울고 웃는다. 처음부터 한 식구로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문득문득 입양 소식을 접한 지인들이 대단한 결심을 했다고 치켜세우면 그제야 ‘아, 우리가 뭔가 사고를 쳤구나’ 싶다. 내 배 안 아프고 이렇게 예쁜 아들을 낳은 것이 살짝 미안하기도 하다. 우리는 그냥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대단히 거창한 일이라도 한 듯 한마디씩 거드는 사람들에게 부끄럽기도 하다. 아무렇지 않게 애랑 뒹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내가 애써 아이에게 무언가를 더 해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과 욕심 같은 게 생기기도 한다.

또 어떤 지인은 내 손을 꼭 잡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집안에 아들이 그렇게 필요했냐고. 아들? 그렇다. 우리 집엔 딸만 둘이다. 조선시대도 아닌 21세기에 아들이 꼭 필요한가? 그래, 솔직히 내게도 아들이 있었으면 싶었다. 이 세상의 절반인 남자가 어떻게 자라고 성장하는지 알고 싶고 궁금했다. 남자아이의 성장과정, 감정 변화 그런 건 딸아이와 어떻게 다를까?

아들이 있으면 집안이 든든하다는데 그게 뭔지 나도 느껴보고 싶었다. 한밤중 지친 일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듬직한 아들이 내 가방을 들어주며 길동무를 해주는 일도 상상해봄 직하다. 남편 또한 삶의 동반자이자 친구가 되어줄 아들을 바랐다. 이런 이유들이 집안에 아들이 꼭 필요한 이유라면 그래, 난 아들을 원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마흔이 다 된 나이에 어떻게 그 갓난쟁이를 키울 거냐며 걱정들도 많이 하신다. 옆에서 이것저것 걱정이 태산인 친정 엄마 덕분에 애써 앞으로의 일을 걱정해본다. 아이의 감정 문제, 건강, 교육, 나와 남편의 나이, 경제력 등…. 이것저것 떠올리다 읽다가 만 책을 덮듯 생각의 책장을 탁 엎어버린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고, 딸아이를 키우던 때와 그다지 다를 것도 없을 거다. 설사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한들, 그걸 지금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원래 낙천적인 사람은 못되지만, 미리 사서 염려하고 걱정한들 나에게나 셋째 아이에게나 득이 될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쯤은 안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뒹굴뒹굴 자랐듯이 셋째 아이 또한 별스럽지 않게 하루하루 살아갈 텐데 뭐가 그리 걱정이랴. 단지 마주 보고 웃고 꼼지락거리며 내미는 손 잡아주고, 보채고 찡얼대면 업어주고, 맛있는 이유식을 만들어 너 한 숟갈 나 한 숟갈 먹으며 오늘을 보내면 되는 거다.

봄 햇살이 따뜻하다. 이제 마당에 감나무 꽃이 한 송이 두 송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예낭이 어렸을 때처럼 예쁘게 실에 꿰어 막내아들 목에 걸어주고 마을이나 한 바퀴 돌아야겠다.




편집자의 말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맘 노릇’은 암만 해도 맘처럼 되지 않는다. 15년 차 엄마가 되면 엄마 노릇에 익숙해져 아이를 돌보는 일이 수월할 것 같지만 셋째 아이, 예성이를 입양하자 저자는 다시 서툰 엄마로 돌아갔다. 입양을 하기 전 떨림과 설렘 같은 감정은 잠시 뒤로한 채 가족들과 육아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함께 질 것을 약속한다. 적어도 새로 꾸게 된 마흔의 꿈을 육아라는 핑계로 접어두지 않기 위해, 또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입양한 아이를 키우느라 아무것도 못했다는 푸념으로 돌리지 않기 위해. 비록 세 아이와 함께 지지고 볶느라 이전보다 더 정신없고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지만 늘어난 아이와 함께 행복도 더 커졌다는 것도 사실이다. 가족들은 전보다 웃을 일이 훨씬 많아졌으며, 저자는 예성이가 내미는 손을 잡으면서 자신이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엄마는, 그리고 나는 아이와의 부대낌 속에서 존재를 확인하고 함께 성장해나가는 미완의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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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맘, 때론 쌤, 그리고 나 김영란 저 | 한언
저자는 공립 초등학교, 대안학교, 기간제 교사, 소년원 상담교사 등을 거치면서 결국 맘과 쌤은 하나임을 깨닫는다. 가끔은 엄마란 이름에서, 교사란 이름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와 함께 엄마 자신도 끊임없이 키워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자신만의 꿈을 꾸는 엄마가 진정 행복한 엄마가 되는 길임을 피력한다. 이 책은 좋은 엄마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해선 ‘진정한 나를 찾아 아이와 함께 꿈을 꾸고 부대끼며 성장하라’는 메시지와 더불어…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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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영란

때론 맘, 때론 쌤, 그리고 나

<김영란> 저11,700원(10% + 1%)

좋은 엄마란 무엇인가? 누구나 엄마가 될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딸로 살다가 아내란 이름을 얻고 얼떨결에 엄마가 된다. 또 엄마는 가족들과 지지고 볶으며 살면서 완성되는 미완의 존재이기도 하다. 즉, 엄마는 그렇게 아이들과 ‘살아내려고’ 부단히 애써야 한다. 따라서 좋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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