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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 J. R. R. 톨킨 <호빗(The Hobbit), 1937>

‘땅속 어느 굴에 호빗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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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은 출판사가 원하는 글을 써보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글을 썼다가 뒤엎고 중단했다가 다시 쓰기를 숱하게 반복해야 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완전히 포기하려던 순간에 C. S. 루이스의 격려를 받고 나서야 다시 힘을 낸 적도 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끝에, 톨킨은 마침내 새로운 호빗 이야기를 완성했다…

1930년대 초 어느 여름 날, J. R. R. 톨킨은 시험지를 채점하는 중이었다.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로 지낸 몇 년 동안 학생들의 과제를 검토하는 게 일상이 되었지만, 그날은 유난히도 그 일이 따분하게만 느껴졌다. 수북이 쌓인 시험지를 심드렁하게 한 장 한 장 넘기던 그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백지 한 장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실수로 섞여 들어간 것 같았다. 빽빽하게 채워진 종이들만 눈이 빠지도록 들여다보던 그에게, 우연히 발견한 텅 빈 백지는 마치 시원한 청량음료와도 같았다. 그는 즉시 펜을 들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을 무작정 빈 종이에 적었다.

‘땅속 어느 굴에 호빗이 살고 있었다.’

호빗이 뭔지, 그게 왜 땅속에서 사는지도 몰랐다. 그저 단 한 줄의 문장일 뿐. 하지만 톨킨은 그 문장 하나를 단서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어떤 명칭을 대하면, 그 명칭에 얽힌 이야기가 함께 떠오르곤 한다. 결국 나는 호빗이 어떤 녀석인지 알아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얼마 후 톨킨은 노스무어 로드를 굽어보는 창가, 바로 그 책상에 앉아 수많은 백지를 가득 채웠다. 쓰면 쓸수록, ‘호빗’이라는 땅딸막한 친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알면 알수록, 호빗은 그와 닮은 점이 무척 많았다. 학계에서 인정받는 교수이면서도 학문적인 틀에 갇히거나 고리타분한 연구 따위에 빠져들지 않는 점이 특히 그러했다. 1958년 10월에 톨킨이 고전학자인 데보라 웹스터 로저스에게 보낸 편지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올 12월에 개봉 예정인 <호빗 : 뜻밖의 여정> 中
[출처] 예스24 영화

‘정말이지 나는 체격만 빼곤 완전히 호빗이야.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일구는 논밭과 정원, 나무를 사랑하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지. 냉동 식품이 아닌 맛좋고 소박한 음식을 좋아하기도 하고. (……) 심지어 요즘처럼 흐린 날에도 번듯하게 조끼를 갖춰 입지 않나.’


호빗이란 종족이 이처럼 작가의 특징을 많이 닮았듯이, 그들의 삶의 터전인 ‘샤이어’도 자연스럽게 작가가 좋아하는 환경을 두루 갖추게 되었다. 다섯 살 때 영국 우스터시어의 작은 마을 세어홀로 이사한 후 톨킨은 주로 바깥에서 뛰어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세어홀의 비옥한 들판과 완만한 언덕들을 누비며 자란 톨킨에게 그곳은 언제나 마음의 고향이었다. 어릴 적 신나게 탐험놀이를 즐기던 세어홀의 자연환경을 떠올리며, 톨킨은 호빗들이 울퉁불퉁한 언덕 밑에 굴을 파서 집을 짓고 사는 모습을 구상했다. 심지어 소설의 주인공인 빌보 배긴스의 집 이름 ‘백엔드’는 톨킨의 고모가 소유한 우스터시어의 농장 이름을 그대로 갖다 붙인 것이다.

‘호빗’이라는 소재가 작가의 머릿속에서 번듯한 소설로 자라나는 과정은 첫 문장을 떠올렸을 때만큼 즉흥적이고 빠르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언젠가 그가 “내 이야기는 마치 한 톨의 먼지를 감싸고 눈송이가 피어나듯 서서히 정교하게 자라나는 것 같다.”고 언급했듯이, 이 이야기도 오랜 시간에 걸쳐 한 겹 한 겹 층을 쌓아가며 성장했다.




결국 톨킨은 그 여름날 이후 몇 년이 지난 다음에야 실질적인 집필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몇 년 동안 그가 제대로 기록한 것이라곤 샤이어 너머로 펼쳐지는 세계의 일부인 ‘트로르’의 지도뿐이었다. 하지만 톨킨은 내내 호빗의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게 분명하다. 집필을 재개했을 때는 이야기가 막힘없이 술술 이어졌기 때문이다. 소설 《호빗》은 수수께끼 같은 첫 문장이 탄생한 지 거의 6년이 흐른 뒤인 1936년에 마침내 완성되었다.

소설을 완성한 후, 톨킨은 원고를 정돈하여 마지막 장(章)을 제외한 나머지를 타자기로 깔끔하게 베껴 옮겼다. 소설의 결말은 아이들에게만 들려주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원고는 그냥 백지로 비워두었다. 사실 그가 소설의 내용을 들려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초기에 이 소설을 접하는 행운을 누린 사람들은 톨킨이 속했던 문학회 ‘잉클링스(Inklings)’의 회원들이었다. C. S. 루이스가 창단한 잉클링스의 회원들은 ‘이글 앤드 차일드’라는 술집에서 자주 모였다고 한다. 톨킨은 이 술집에서 동료 작가들에게 아직 초고 상태인 소설의 일부를 들려주곤 했다.

잉클링스 회원이 아니지만 《호빗》의 원고를 읽을 기회를 얻었던 소수의 지인들 중에 톨킨의 오랜 제자였던 일레인 그리피스가 있다. 그리피스는 이 소설을 읽자마자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할 작품임을 알아봤다. 당시 그녀는 런던의 출판사 조지 알렌 앤드 언윈의 의뢰로 고대 영시 <베어울프>를 현대영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피스는 자신을 만나러 옥스퍼드에 들른 담당 편집자 수전 대그널에게 《호빗》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피스의 얘기에 혹한 대그널은 톨킨을 직접 만나 작가의 허락 하에 미완성 원고를 받아 들고 런던으로 돌아갔다.

원고를 탐독한 후, 대그널은 완성된 원고가 있어야 출판사 측에 이 소설을 출간하자고 설득할 수 있다면서 톨킨에게 마지막 장을 덧붙여주길 요청했다. 하지만 완성된 원고를 받고서도 그녀의 상사인 스탠리 언윈은 곧바로 출간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열 살 난 아들에게 그 원고를 읽게 했다.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책을 내기에 앞서 독자의 반응을 예측해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에, 언윈의 아들은 자주 ‘원고 검토자’ 역할을 했다. 열 살 소년은 톨킨의 원고를 흥미진진하게 읽어치웠고, 그 후로 《호빗》의 출간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언윈의 아들은 원고 검토의 대가로 1실링을 받았다. 아이 입장에서야 재미있는 이야기도 읽고 용돈도 버는 일석이조의 경험이었겠지만, 이 대작을 세상에 알리는 데 기여한 공의 대가로 1실링은 아무래도 너무 박했던 게 아닌가 싶다. 《호빗》은 1937년 9월에 출간되어 같은 해 12월에 완판되는 기염을 토했다. 언윈은 독자들이 이 소설의 속편에도 기꺼이 돈을 쓸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톨킨은 호빗이 등장하는 속편을 써달라는 언윈의 열렬한 요청에 선뜻 응하지 않았다. 출간된 소설 속에 이미 호빗의 광대한 세계를 모두 담아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샤이어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톨킨은 이러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호빗의 속편이 아닌 《실마릴리온(The Silmarillion)》을 집필했다. 《실마릴리온》의 배경은 호빗이 사는 세상과 같은 곳이지만, 여기에는 이 매력 만점의 종족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도 언윈은 흔들리지 않았다. 톨킨이 가져온 새 원고를 가차 없이 거절하고 호빗에 관한 소설을 쓰라고 다시 한 번 권했다.

작가도 자신의 고집만 내세울 수는 없었다. 톨킨은 출판사가 원하는 글을 써보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글을 썼다가 뒤엎고 중단했다가 다시 쓰기를 숱하게 반복해야 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완전히 포기하려던 순간에 C. S. 루이스의 격려를 받고 나서야 다시 힘을 낸 적도 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끝에, 톨킨은 마침내 새로운 호빗 이야기를 완성했다. 썩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시작한 원고였지만, 막상 완성된 이야기는 작가 자신도 놀랄 만큼 훌륭했다. 탈고 후 작가는 “글을 쓰는 동안 마주하게 된 수많은 일들이 나에겐 전부 경이로웠다.”고 고백했다.




[ 반지 원정대 ]
[ 두 개의 탑 ]
[ 왕의 귀환 ]



새 작품은 엄청난 분량의 대하소설이었고, 다루는 내용의 범위도 《호빗》을 훌쩍 뛰어넘었다. 언윈은 학술서적 저리 가라 할만한 이 엄청난 소설을 3부작으로 출간하기로 결정했다. 《반지 원정대》에서 《두 개의 탑》과 《왕의 귀환》으로 이어지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이렇게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다.






J. R. R. 톨킨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이자 언어학자, 문헌학자다. 1892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나 네 살 때 영국으로 이주했으며,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교수로 재임했다. 대표작으로는 《잃어버린 이야기들》, 《베어울프》, 《호빗》 등이 있으며, 《호빗》에서 영감을 얻어 판타지 소설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반지의 제왕》 3부작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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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실리어 블루 존슨 저/신선해 역 | 지식채널

작가들의 문학적 영감에 대해 늘 궁금해하던 편집자 실리어 블루 존슨은 어느 날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소설의 첫 줄이 탄생하기 이전의 일을 찾아보기 시작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우아한 사교계 명사를 창조하기 위해 밟았던 과정을 직접 따라가면서, 그녀는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문학작품을 품은 작가들의 반짝이는 영감을 캐내보기로 한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작가들의 공통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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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실리어 블루 존슨

미국 뉴욕대학교에서 영미문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출판사 랜덤하우스와 그랜드 센트럴 퍼블리싱에서 편집자로 근무했다. 비영리 문예지 「슬라이스Slice」를 공동 설립, 운영하면서 수많은 베스트셀러 작가들과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평소 많은 작가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어떻게 문학적 영감을 얻고 아이디어를 글로 옮기는지에 관심이 많았던 존슨은 《댈러웨이 부인》, 《오만과 편견》, 《노인과 바다》, 《어린 왕자》 등 위대한 문학작품들의 흥미진진한 뒷이야기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을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에 오롯이 담아냈다. 현재는 유명 작가들의 독특한 글쓰기 기술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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