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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유비, 알수록 짜증나고 때려주고 싶은 사람” - 『유비에게 묻고 조조에게 배우다』 한석준

한석준, 『삼국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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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무대를 마음껏 발 디딜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돌아다녔다. 인구 천 만이 넘는 대도시부터 아주 작은 현까지 하나하나 밟았다. 『삼국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 감격, 어찌 그냥 놔둘 수 있으리오. 글을 썼다. 책이 탄생했다. 그 결과물이 『유비에게 묻고 조조에게 배우다』였다. 한석준 KBS아나운서의 『삼국지』유랑기는 그렇게 탄생했다.

『삼국지』를 처음 만났다. 빠졌다. 읽고 또 읽었다. 그럼에도, 흥미진진했다. 유비, 관우, 장비 도원결의를 한 의형제의 이야기가 첫 유혹이었다면, 볼 때마다 유혹의 지점이 달랐다. 각각의 인물이 뿜어내는 포스는 마흔 번도 넘게 『삼국지』를 들게 만들었다. 그들의 머리싸움에도 반했다. 그래서일까. 중국이라면 남달랐다.

2008베이징올림픽,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등의 메인MC로 중국을 찾았다. 중국에 대한 열망이 더 커졌다. 반드시 알아야 하고, 꼭 배워야 할 나라였다. 회사를 휴직하고, 중국 연수를 가기로 했다. 남들, 연수라면 대개 미국이나 유럽을 택했지만, 당연히 중국이었다. 남들은 의아했지만, 『삼국지』마니아라면 그래야만 한다. 연수지는 베이징의 칭화대.




『삼국지』의 무대를 마음껏 발 디딜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돌아다녔다. 인구 천 만이 넘는 대도시부터 아주 작은 현까지 하나하나 밟았다. 『삼국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 감격, 어찌 그냥 놔둘 수 있으리오. 글을 썼다. 책이 탄생했다. 그 결과물이 『유비에게 묻고 조조에게 배우다』(한석준 지음/이영미편집|웅진지식하우스 펴냄)였다. 한석준 KBS아나운서의 『삼국지』유랑기는 그렇게 탄생했다.

독자들, 궁금했다. 한석준과 『삼국지』는 어떤 관계이기에. 한석준,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로 했다. 지난 8월18일, 서울 종로구 엠스퀘어, ‘『유비에게 묻고 조조에게 배우다』 저자 한석준과의 만남’이 펼쳐졌다. ‘1대100’의 경쟁률... 은 아니었지만, 만만찮은 경쟁을 뚫고 그 만남, 이뤄졌다.

저자의 글을 본인 외에 가장 먼저 접했을 이영미 편집자, 본격적인 만남에 앞서 예열을 한다. “처음 보내온 원고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빨간 줄 투성이였다. 그러나 글은 쓰면 는다. 나중에는 고칠 게 없을 정도였다. 괄목상대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칭화대 연수를 간 1년 동안 80%를 썼고, 한국에 돌아와서 나머지 20%를 완성했다.”


한석준, 『삼국지』를 만나다

이어 한석준 아나운서, 아니 한석준 저자의 등장. 『삼국지』로 들여다 본 중국은 어떤 곳이며,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알아야 할까. 이것을 나누기로 한다. 한석준의 눈이 『삼국지』를 거쳐 중국을 어떻게 투영했는지 들어가 보자. 『삼국지』에 빠진 한석준의 이야기부터.




“왠지 나도 모르게 어릴 때부터 『삼국지』를 좋아했다. 처음엔 유비, 관우, 장비, 이 의형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들 사이의 계략, 인물간의 관계에 관심이 갔다. 주변 여자들은 두 번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이 없더라. 1년을 휴직하고 연수를 간다고 했다. 10년쯤 일한 아나운서가 휴직하면 사람들이 의아해할 줄 알았다. 그러나 꽤 많은 사람이 쉬고 싶을 법 하지, 그러더라. (웃음) 궁금해 하는 건, 왜 남들 다 가는 미국이 아닌 중국이냐는 거였다.”




“최초에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인식이 생긴 계기는 두말할 것도 없이 《삼국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한 권짜리 간략한 책을 처음 접한 이후로 《삼국지》를 마흔 번 정도 읽은 것 같다.”(p.13)



중국. 그는 그것을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2003년 입사 이후, 중국에 출장 갈 일이 종종 있었다.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관련 사진을 보여준다. 개막식 앞두고 백화점에 갔다가 소매치기를 당해서 경찰에까지 갔던 에피소드도 꺼낸다. 그는 그때, 올림픽 개최에 대한 중국 사람들의 자부심이 대단했음을 기억한다.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그런 자부심이었다.

그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앞서 1988년, 올림픽을 치렀다는 사실만으로 한국민의 자부심도 대단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헌데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치른 광저우 사람들의 자부심이었다. 너무 이상했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가 뭔가 못보고 있거나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광저우 사람들의 행동과 말을 관찰했다. 자원봉사자 등을 통해 자부심을 가질 법한 행동이나 정신이 슬쩍 보였다. 더 알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래, 결심했어. 중국에서 1년을 보내자. 연수를 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자부심이나 자존심, 그리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려는 모습은 이미 그 자체로 선진국 국민의 모습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사람들을 이렇게 빨리 선진국 국민으로 만들었을까? 난 그 답을 ‘문화’에서 찾는다. 문학, 사학, 철학의 세 가지 학문을 묶어 인문학이라고 하는데, 중국은 이 인문학의 세 가지 분야에서 역사적으로 세계 최고의 수준이 아닌가.”(p.11)



일사천리였다. 휴직과 연수까지. 2011년 2월, 중국에 도착해 5월까지 중국어만 팠다. 그리고 ‘삼국지 여행’을 떠났다. 스무 번 가까이 본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처럼, 삼국지에 나온 장소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때 그 장소를 찾는 것. 2000년 전의 지명이 현재 어떤 지명인지 찾고 알아내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중국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찾았다. 아무 것도 아닌 곳도 있었고, 정말 우연히 찾은 곳도 있었다. 그렇게 우연과 필연이 뒤섞인 삼국지 여행.


한석준이 때려주고 싶은 사람, 유비

저자가 꺼낸 사진은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의 동상이었다. 그들의 ‘도원결의’가 이뤄진, 즉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허베이 줘저우. 렌트카를 몰고 남자 둘이 떠난 가을날 드라이브에서 만난 우연에 대한 이야기.




“유비가 베이징 근처 사람인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탁현’이 어딘지 모르겠더라. 현재 어디인지 알아내서 갔는데, 별거 없더라. 실망해서 국도로 돌아오는 길, 스쳐지나갈 수도 있었는데, 갑자기 오른쪽에 이상한 동상이 눈에 띄더라. 세 명이 서 있는 동상인데, 차를 멈춰 세우고 보니, 맞았다. 광장 이름도 ‘삼의(三義)’였다. 진짜 저들이 날 부른 것 같더라. 그렇지 않으면 운전하다가 봤을 것 같지 않다.”




“대 위에 있는 말 탄 장수 세 명은 확실히 내가 찾던 그 세 의형제의 모습이다. 어떤 여행안내 책자에서도 여기에 이런 것이 있다는 얘기는 본 적이 없다. 아마 비가 왔거나 드라이브를 하기에 좋지 않은 날씨여서 처음 계획대로 고속도로를 이용했다면, 혹은 이 길로 갔다 해도 그 순간 졸았거나 줘저우를 찾느라 지도를 보고 있었다면 이 동상을 만나지 못했겠지. 어쩌면 유비, 관우, 장비 세 의형제가 날 이리로 불렀을까?”(p.168)



그는 유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더 나아가 알면 알수록 짜증나고, 신경질 나며, 때려주고 싶은 사람이 유비다. 당시 그토록 극심한 혼란에 빠진 책임의 절반은 유비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비의 선택이 그랬다. 착한 척 하고, 전쟁이라는 극심한 혼란의 시절에 ‘정정당당’만 부르짖으며 인민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




“인의를 중시한 유비는 유교 사상에 입각해서 관찰하면 참 좋은 정치인 같지만, 실제로는 ‘옳음’을 추구하느라(그가 추구한 옳음이 진정한 정치인의 옳음인지에 대해선 확신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정치인의 절대선은 정치인 개인의 평화와 행복보다는 국민들의 평화와 행복이라고 생각하니까) 백성들에게는 험난한 삶을 살게 했다. 매 순간의 선택은 그 시대의 인의의 정치인으로서 ‘옳은’ 것이지만, 그 결과로 백성들은 자신들이 원했던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없었다.”(p.37)

안타까운 관우와 순수의 결정체 장비

관우의 머리가 묻힌 뤄양(낙양)의 관린쓰(관림성)에 대한 사진을 보여주며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곳은 관우의 머리가 있는 유일한 사당으로, 제사도 꼬박꼬박 지낸다. 유비의 충복이자 동생으로만 알려진 관우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유비의 부장으로만 생각하겠지만, 관우는 유비가 죽은 줄 알고 조조에게 다녀온 사람이다. 유비가 살아있음을 알고는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다시 유비에게 갔다. 유비가 성도에 들어간 뒤, 관우는 형주의 총대장으로 남는다. 그래서 형주의 군사적인 장군으로 이해하는데, 그렇지 않다. 유비와의 관계가 탄탄해서 두 개 나라를 하나로 인식하지, 실제론 독립된 군벌이다. 오나라와의 외교를 거절할 때는 유비에게 허락 없이 독립적으로 판단한다.”

다시 말해 관우도 사실상의 왕이었다. 형주는 당시 중국의 가장 비옥한 농토였는데, 그곳의 대장이었다. 손권의 오나라를 막아내는 형세에서 5년 동안, 관우는 불패였단다. 군사적, 경제, 외교에서도 최강. 그랬던 형주의 관우, 자만이었을까. 방심을 한 탓인지, 부하의 말을 안 듣고, 안티가 생겼고, 관우는 죽었다.

“관우를 보면서 배운 것은, 중용이 되게 어렵단 것이다. 이쪽저쪽 다 아우르면서 치우치지 않는 건 정말 어렵다. 관우는 자신과 부하들, 자신과 유비, 자신과 조조 사이의 정도를 못지킨 게 아닐까 싶어 안타까운 게 많다. 아까운 사람이다.”




“뛰어난 무예와 충성심, 그리고 스스로의 능력을 바탕으로 한 자부심이야말로 인간 관우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정점이었다. 관우의 자부심은 때론 교만으로 비칠 정도였고, 그 교만이 행동이나 말로 표출된 일로 《삼국지》를 읽는 동안 여러 번 볼 수 있다. 그러나 관우는 결국 그 자부심 때문에 패망한다.”(p.133)



장비가 빠질 수 없다. 장비 묘는 현재 수몰됐다. 스촨을 지나 총칭(중경)에서 상하이까지 다니는 크루즈 때문이다. 한석준 저자가 보기에, 장비는 정말 순수한 사람이다. 유비와 전쟁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으로 뭉친. 싸움도 잘 했고, 불같은 성미를 가진. 장비는 정치적인 대장을 할 스타일은 아니었다. 유비 입장에서 보면 정말 고맙고, 그만한 동지나 우군이 없었을 사람이 장비라는 것.

“관우가 살해당했을 때, 장비에겐 생각할 거리가 아니었다. 무조건 복수해야 했다.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유비를 찾아가 울고불고 했다더라. 유비가 손권을 치자고 했을 때, 광분해서 형님의 복수를 위한 싸움이라면서, 부하들에게 무모한 요구를 했다. 부하들이 성질이 나서 밤에 장비를 암살한다. 암살한 장면도 동상으로 표현해 놨다. 평생을 싸움터에 보낸 장비가 자다가 죽임을 당한다. 관우, 장비가 죽으면서 우리가 즐긴 『삼국지』는 끝난다. 그 뒤 진짜 정치적인 얘기로 본격 돌입한다.”


다시 보는 조조

『삼국지』의 또 다른 주인공은 조조다. 저자는 군사 전략가로서, 정치가로서, 문학가로서 조조는 최고 수준이라고 말한다. 특히 조조가 군사적으로 이룬 업적, 『삼국지』의 주요 내용이라고 한다. 저자가 보여주는 사진의 장소는 허난 성 쉬창(허창). 조조가 후한의 헌제를 강제로 데리고 새로운 도읍을 세운 곳이다. 헌데, 그곳에 가니 아무 것도 없었다.




“진짜 아무 것도 없다. 깜짝 놀랐다. 쉬창에 간다고 했더니, 중국인들은 “거긴, 왜?”, 이런 반응이었다. 중국엔 관광지마다 정부가 별을 매긴다. 5개는 좋은 곳이고, 여긴 별 세 개짜린데, 거지같았다. 성벽 안쪽에 삼국지를 부조로 박아 놨는데, 삼국지 장면을 떠올린 정도?”




“막상 실제로 가본 쉬창엔 아무것도 없었다. 조조가 남긴 것은 하나도 없다. 도읍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린 후 잊힌 세월이 너무나 길었던 것일까? 쉬창은 그저 중국 내륙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한적한 도시일 뿐이다.”(p.40)



저자의 관점에서 삼국지의 진정한 승자는 조조다. 전쟁은 모름지기 남의 땅에서 해야 하는데, 조조는 초반을 제외하고 남의 땅에서 전쟁을 치른다. 자신의 땅에서 하는 건 딱 한 번. 그 덕에 조조는 경제적 안정을 취할 수 있었고, 백성들이 평화로웠을 거라는 것이다.

“조조는 확실한 선택을 했다. 개인적으로 욕먹을지언정, 혼란한 세상을 통일하겠다는 목적성 하나에 자신을 바쳤다. 비겁하고 옳지 않은 수를 쓴 거지. 『삼국지』 보면서 우리 정치를 생각했다. 대선이 다가오는데, 누군가를 정해야한다는 것 때문에 피곤하다. (웃음) 더 나쁜 자가 안 되게 하려고 투표해야 하는데, 그들은 큰 명제만 얘기할 것이다. 행복해야 한다, 잘 살아야 한다, 통일돼야 한다. 그런 말에 현혹될 필요도 없고, ‘어떻게’가 중요하다. 복지를 한다면,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투입할지를 봐야 한다. 다른 사람을 욕할 것도 없다. 우리는 현 정권에 대해 더러운 놈이라도 좋으니 경제를 일으켜달라고 요구했었다. 그 정도 더러울 거라고 다들 예상하지 않았나? (웃음)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번영하길 원하는지, 골고루 분배해서 잘 살기를 원하는지 판단해서 투표했으면 좋겠다.”




“능력 있는 자의 정의는 시대마다 달라지겠지만, 능력 있는 자가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을 이끌어가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과연 우리 시대의 능력 있는 자는 어떤 사람이며, 그래서 우리를 ‘잘’ 이끌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지, 2012년 연말이 궁금해진다.”(p.59)

한석준이 바라본 삼국지의 다른 인물들

저자, 칼을 맞대고 있는 유비와 손권의 동상을 보여준다. 전장 시에 있는 석상이다. 태사자묘를 찾아가는 길에 만났다. 손권에 대해 저자의 평가는, 자기 땅을 잘 방어한 사람, 백성을 전쟁의 포화에 몰아넣은 적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주식회사 대표와 비슷했다.




“오나라가 완벽하게 통일되는 계기가 적벽대전이다. 오나라는 여러 군벌의 연합체로 실제로 통일된 상태에 있은 적이 없다고 하더라. 손권은 관계에 능했다. 오나라 대장으로 적합한 인물이었던 거지. 70넘게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그가 무사하게 통치한 데는 관계에 능한 그의 능력이 있었다. 손권의 사후에 오나라는 쉽게 쪼개져서 멸망한다.”

내몽골과 몽골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석준 왈. “몽골은 나라이고, 내몽골은 몽골에 접한 성의 이름이다.” 내몽골을 꺼낸 것은, 당대 최강의 장수였던 여포를 말하기 위함이었다. 여포의 출신은 오원군 구원현. 즉, 내몽골출신.

“지금도 변방인데, 그 당시 얼마나 변방이었겠나. 추측인데, 당시엔 민족을 나누진 않았으나 출신지역은 되게 구분했던 것 같다. 출신지로 사람을 평가해서, 여포에 대해 높이 평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여포하면, 배신, 싸움, 술 등 나쁜 얘기뿐이다. 당시 배신 않고, 술 안 먹고, 여자 안 좋아한 놈 없었는데, 여포에 대해 유독 악랄하게 쓰인 건 지역적 차별로 본다. 여포가 그리 쓰레기였다면, 사람들이 따라다녔겠나.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이나 능력 없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나의 추측이다. 아직 민족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던 그 시대 사람들은 오히려 출신 지역으로 구분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무슨 종족이니 하는 표현은 어느 책에도 잘 나오지 않는 반면, 어느 동네 사람인지는 각 인물 소개의 기본이라고 할 정도로 많이 나온다. 어느 지역 출신이냐에 따라 인물의 사람됨을 규정짓는, 지역에 따른 선입관이 강한 시대적 배경에 크게 좌우되었을 거라 여겨진다.”(p.27)



제갈공명도 빠질 수 없다. 제갈공명이 죽은 시안의 오장원, 저자도 다녀왔다. 그러나 오장원에 제갈공명의 시신은 없다. 관과 옷을 묻어두었을 뿐이다. 청도에 묘지가 있다고 한다.

“제갈공명은 정치투쟁에 능한 사람이었다는 설도 있다. 관우와 장비를 내치고 조자룡 등 자신의 말만 잘 듣는 사람만 거느린 2인자의 나쁜 예라고도 할 수 있다. 유비가 죽고 제갈공명은 모든 일을 혼자만 해야 했다. 진심으로 함께 일할 사람이 없었던 거지. 스트레스는 물론 일의 강도는 얼마나 셌겠나. 그래서 천수를 못 누린 게 아니었을까. 조조를 공략할 때도 과감히 못하고 굉장히 보수적이었다. 공격은 과감해야 하는데, 수비자의 마음으로 했던 거지. 유비와 제갈공명은 사람들 연민을 얻고 감정적으로 편이 되게 할 진 몰라도, 정치적으로 패권을 잡으면 안 될 것 같다. 제갈공명도 아쉬운 사람이다.”

저자는 시안(장안)에 있는 정교한 조각물의 사진을 보여준다. 진시황의 도읍이었고, 동탁의 근거지였으며 당나라의 수도였던 곳. 그곳에서 저자는 중국 문화의 뿌리에 있는 중국인들의 힘을 봤다. 유적은 물론 당나라 시대의 건물을 현대적으로 되살리려고 한 중국인들의 노력이 돋보였다. 그리고 그는 장점이 거의 없는 사람으로 나온 동탁을 다시 생각했다.




『삼국지』에 보면, 동탁도 되게 나쁘게 묘사됐다. 포악하고 재물, 여자, 술을 좋아하는 그런 인간으로. 그건 좀 과장이었다고 본다. 좋은 놈은 아니었다고는 보나, 능력은 있었을 거다. 능력도 없고 심성도 나쁘기만 했다면 그런 자리까지 오르긴 불가능했을 거다. 물론, 지금 우리가 아는 어떤 정권을 보면 꼭 그렇지 않지만, 삼국시대엔 달랐을 거다. (웃음)”




“동탁은 강대한 권력을 잡은 후, 그 권력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본 적이 있을까? 다시 말해 그에게 비전이 있었을까? 동탁에게는 아마도 그런 것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동탁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었다.”(p.29)



한석준 저자와 독자들이 함께 한 삼국지 기행은 이렇게 끝. 삼국지 마니아로서 삼국지의 장소를 찾는 여행을 하고 책을 남긴 그의 소감이 마지막을 장식했다.

“책을 쓰고 나서 가장 후회되고 아쉬운 건,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다닌 것이다. 그래서 최근 사진기 하나를 샀다. 다음에 혹시 책을 내게 되면 좋은 사진을 담고 싶다. 사진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글을 못 쓸 줄 몰랐다. (웃음) 글 쓰는 게 이리 어려운줄 새삼 알았다. 책을 쓴 모든 사람을 존경하기로 했다. 그래도 기분 좋고 뿌듯하다. 1년 동안 중국에 살면서 생각하고 공부한 것에 마침표 하나를 찍고 가는 기분이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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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에게 묻고 조조에게 배우다 한석준 저 | 웅진지식하우스
이 책은 미처 자신의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거나 나라를 위한 비전이 없거나 인재를 잘 활용하지 못한 여러 영웅들의 승리와 몰락,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잘 적용되는 멋진 사례들, 옛 도읍지를 만날 때마다 떠오르는 역사 속의 에피소드들이 자유롭게 어우러지면서, 『삼국지』를 마흔 번 읽은 한석준 아나운서 특유의 호기심과 감성들이 펼쳐진다. 특히 그가 열심히 발품을 팔아준 덕분에, 지명이나 여전히 중국인들의 생활 곳곳에 남아 있는 역사 속 『삼국지』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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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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