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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백담사로 가던 날, 이순자는 울고…

권력은 달콤하다. 아이스크림처럼 빨리 녹을 뿐… 권력은 십년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십일을 넘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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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신의 채찍이다. 주름은 채찍의 상처다. 아버지의 노래한 시간의 허무함은, 다른 말로 ‘채찍의 아픔’이다. ‘시간은 주문받지 않고도 흐른다…숨겨진 모든 것이 시간이 흐르면 벗겨진다’는 당연한 말씀. 권력은 십년을 넘기지 못하고(권불십년),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십일을 넘기지 못한다(화무십일홍)는 말에도 토를 달 여지가 없다. 그저 1988년 스크랩에서 주인공을 찾아볼 뿐이다. 이순자라는 여인.




그 해 7월, 수마가 전국을 휩쓸었다. 8월엔 찍소리도 못하고 당하고만 살아온 노동자들의 성난 함성이 전국의 공장을 흔들었다. 6월항쟁을 잇는 계급적 싸움, 노동자대투쟁이었다. 12월16일 대선까지는 넉 달이 남았다. 선거를 두 주 앞두고 버마 근해 안다만 해역에서 대한항공 858 보잉 707기가 폭발했다. 한국인 승객 93명을 포함 총 115명이 불귀의 객이 됐다. 선거를 하루 앞둔 12월15일, 테러범중 한 명이라는 북한 공작원 마유미(김현희)가 서울로 압송됐다. 야권 후보단일화도 진작에 깨진 상태였다. 대통령은 노태우!

몸을 부수어서라도 쟁취하고 싶었던 직선제와 정권교체. 그 과정에서 뿌려진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희생. 역사는 나선형으로 흐른다지만 도무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에게 1987년은 딱 한마디로 남고 말았다. 개뿔!


비사

시간은 주문받지 않고도 스스로 흐른다
시간은 설명 듣지 않고도 먼저 흐른다
시간은 억압과 탄압 속에서도 거침없이 흐른다

시간은 인간의 속옷-
시간은 인간의 마음-
숨겨진 모든 것이 시간이 흐르면 벗겨진다
시간은 창조자의 비밀스러운 무기
시간의 모래터 우에 묘비를 세운다
權不十年이요 花無十日紅이라

1988년 1월1일





시간은 신의 채찍이다. 주름은 채찍의 상처다. 아버지의 노래한 시간의 허무함은, 다른 말로 ‘채찍의 아픔’이다. ‘시간은 주문받지 않고도 흐른다…숨겨진 모든 것이 시간이 흐르면 벗겨진다’는 당연한 말씀. 권력은 십년을 넘기지 못하고(권불십년),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십일을 넘기지 못한다(화무십일홍)는 말에도 토를 달 여지가 없다. 그저 1988년 스크랩에서 주인공을 찾아볼 뿐이다. 이순자라는 여인.



“나는 콩고물도 만져본 적 없다”
“언론서 사실과 달리 잘못보도” 강한 불만 표시
치부(致富) 않고 기부금 강요도 안했다“ 억양 높이기도
이순자씨 ‘새세대’ 떠나던 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는 14일 오후 새세대육영회 대의원임시총회에 참석, 회장직 사퇴의사를 밝히면서 새세대 육영회와 관련한 비리 등 의혹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그동안의 언론 보도 등에 대해 불만과 유감의 뜻을 강하게 표시했다.
이씨는 이날 그동안의 서울시교위 감사지적사항을 조목조목 짚어나가며 자신의 견해를 밝혔으며 그때마다 “시교위측이 자료를 잘못 판독한 것 같다” “육영회측이 법을 잘 몰라서 실수했다”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을 언론에서 잘못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또 “항간에서 많든 적든 간에 돈을 만지는 사람에게는 ‘콩고물’이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내가 육영회 기금을 모으면서 콩고물을 떨어뜨리느냐 아니냐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기부자들은 청와대에 들어오면 비서실에 들어가 기부금을 내고 그후 내 접견실로 안내돼 영수증을 바로 전달받는 과정을 거쳤으므로 나는 돈 자체를 만져보지도 않아 콩고물을 떨어뜨릴 여가조차 없었다”고 ‘콩고물’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써가며 결백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략)


(<동아일보> 1988년 10월15일치)




이순자 여사가 비참해졌다.
더 이상 당당한 퍼스트레이드가 아니다. 구질구질하게 변명을 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교육ㆍ문화ㆍ복지단체인 ‘새세대육영회’의 재산형성과정에 의혹에 제기되면서 문교부가 조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녀는 문제가 불거진 지 넉 달 만인 1988년 10월14일, 새세대육영회 회장직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찬조금 96억원을 걷었다, 정부에게서 6억원을 지원받았다, 감사는 하나도 안 받았다, 수입지출을 직접 관리했다”는 비난에 ‘콩고물도 만져본 적 없다’고 맞서면서….

여중 2학년 때 그는 전두환을 처음 만났다. 아버지는 육군사관학교 참모장이었던 이규동이었고, 전두환은 육사 생도였다. 여중생 이순자는 성장하여 전두환과 사랑에 빠졌고 서둘러 식을 올렸다. 할머니가 어떤 스님에게 결혼택일을 받으며 신랑의 사주팔자를 물어봤더니 ‘만인을 구할 훌륭한 인물(대통령)’으로 나왔다는 것이었다. 이순자는 결혼을 위해, 대학(이화여대 의예과)도 중퇴했다.

1980년대 대학생들은 영부인이었던 그녀를 ‘주걱턱’이라고 조롱했다. 긴 턱을 과장해서 붙인 별명이었다. 전두환은 머리카락이 없다 하여 ‘대머리’라고 했다.
“도낏날 갈아 대머리 찍고/ 대팻날 갈아 주걱턱 썰자”라는 민중가요 가사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외모차별이라는 인권침해적 요소가 다분하지만.

남편이 대통령에서 물러나면서, 이순자는 서러워졌다. 네 살이나 위였지만 2인자의 부인답게 꼬박꼬박 자신을 ‘성님’으로 모셔준 노태우의 부인 김옥숙의 태도부터 달라졌다. 1987년 12월20일 노태우의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부부 동반으로 모인 육사 11기 모임 자리에서 김옥숙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국민이 직접 투표로 뽑아준 대통령이어서 체육관 대통령하고는 달라요.” 이순자는 소름이 끼쳤고, 세상의 변화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5공화국(5공)과의 차별화는 6공화국(6공)의 살길이었다. 전두환은 일해재단을 설립해 ‘상왕’노릇을 하고 싶었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꿈이었다. 권익현과 권정달을 비롯한 5공 실세들은 1988년 4ㆍ26총선 공천과정에서 일찌감치 배제됐다. 그랬음에도 노태우의 민정당은 총선에서 참패했다. 6공은 더더욱 5공과 선을 긋지 않을 수 없었다.

3월31일 전두환 동생 전경환이 구속됐다. 4월21일엔 이순자 아버지 이규동의 화성군 농장이 ‘군 예산으로 묘목 20만 그루 기증받았다’는 특혜의혹이 일었다. 6월11일엔 이순자가 회장으로 있는 새세대육영회 비리의혹이 보도됐다. 6월27일엔 ‘5공비리 특위’가 구성됐다. 전두환 부부는 9월17일 서울올림픽 개막식 참석도 하지 못했다. 11월2일부터는 5공 청문회가 시작됐다. 장세동 안현태 허문도 등 5공 실력자들이 줄줄이 불려나왔다. 거리에서는 ‘전두환ㆍ이순자 체포조’를 결성한 대학생들이 연희동 자택으로 쳐들어가겠다며 이를 막는 경찰과 돌과 화염병으로 싸웠다. 11월15일엔 이순자의 남동생 이창석이 회사자금 1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그 다음은 ‘귀양살이’였다.



전씨 사과…백담사 암자 은둔
정치자금 백39억ㆍ전재산 헌납
“5공 과오 모두 내 책임…용서를 빕니다”
대국민사과 내용
광주사태 비극적 상처 치유 못한 것 후회
삼청교육ㆍ해직ㆍ인권침해 피해자에 사과
일해ㆍ새세대 물의ㆍ친인척 비리 면목없어
해외재산 전무…밝혀지면 모든 책임 감수
국민 가라면 국외 아닌 한 어디든 가겠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23일 자신의 재임 중 일어났던 정책적 과오와 친인척 비리 등을 시인, 사과하고 재산일체를 국고에 헌납한 후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서울을 떠나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상오 연희동 사저 응접실에서 TV로 전국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읽은 뒤 승용차 편으로 연희동을 떠났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물러난 대통령이 퇴임하자마자 비리의 주인공으로 국민적 비판의 표적이 되고 만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하겠으며 국민여러분의 어떠한 비난과 추궁도 모면할 길이 없어 속죄하는 뜻에서 재산 모두를 밝혀 국가 관리에 맡기고 연희동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은 “제 가족의 재산은 연희동 집 한 채(대지 3백58평, 건평 1백16.9평)와 두 아들이 결혼해 살고 있는 바깥채(대지 94평, 건평 78평), 서초동의 땅 2백평, 그밖에 용평에 콘도(34평) 하나와 골프회원권 2건 등이며 금융자산은 재산등록제도가 처음 실시된 83년 총무처에 등록한 19억원과 그 증식이자를 포함해 모두 23억원”이라고 밝히고 “이 모두를 정부가 국민의 뜻에 따라 처리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하략)


(<한국일보> 1988년 11월24일치)




사진 속에서 이순자는 운다. 전두환은 그녀를 달랜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백담사로 귀양살이를 떠나기 위해 승용차에 오른 직후다. 그 순간 그녀의 뇌리로 ‘권불십년’이란 말이 스쳐지나갔을까. 권력은 달콤하다. 아이스크림처럼 빨리 녹을 뿐이다. 아버지가 1988년 스크랩에 남긴 또 한편의 시를 뒤늦게나마 그녀에게 선물한다. ‘고달픈 민중의 얼굴’과 ‘바가지를 쓰던 세월’을 생각하며 자신의 처지를 위로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바가지 민중

그렇게도 가난했던 옛날
슬프게 울부짖던 바가지생활
모질게 학대받던 고달픈 민중의 얼굴

차라리 바가지를 쓰던 세월이 그립구나
바가지 인생 서민의 애환이 아른거린다

이제와서
더 학대받고 심하게 천대받는 바가지
그래도 바가지처럼 사는 것이 좋다

1988. 1. 2





정주영이 다녀왔다.
1989년 연초를 뜨겁게 달군 뉴스는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이었다. 그는 1월23일부터 2월1일까지 9박10일간 북한을 방문했다. 제3국을 통한 이 방북은, 정주영 회장이 김포공항으로 귀국할 때에야 비로소 언론에 보도됐다. 1989년 2월2일치 <동아일보> 관련기사의 첫 문장은 이렇다.
“휴전선을 넘어 금강산 관광이 허용된다.” 금강산 관광을 실현하기 위해 정주영 회장은 4월에 한 번 더 20여명의 기술진과 함께 북한에 가겠다고 했다. 희망적인 뉴스였다. 드디어 남북화해의 물꼬가 화끈하게 터지는 것일까. 아, 결론은 1987년과 같았다. 개뿔.




3월25일엔 문익환 목사가 베이징을 거쳐 평양에 갔다. 소설가 황석영이 이미 3월20일 북한 땅을 밟은 직후였다. 두 사람은 3월27일 김일성 주석을 함께 면담했다. 검찰은 같은 날 “명백한 보안법 위반 행위”라며 구속수사 방침을 발표했다. “문 목사의 북한방문은 정부의 사전승인 없이 자의로 이뤄진 것으로 국가보안법 제6조 잠입ㆍ탈출죄와 8조 회합ㆍ통신죄에 저촉되는 명백한 범법행위”라고 했다. 4월3일 안기부ㆍ검찰ㆍ경찰ㆍ보안사 합동으로 ‘공안합동수사본부’가 설치됐다. 공안몰이 칼바람의 시작이었다.




一片至恨

밥상 위에 서리가 내린다
수저를 든 오른손 끝 마디 마디가 숨을 죽인다
밥알은 씹을수록 맛이 없구나

여심은 갈대밭과 같은 것
바람소리도 없는데
비명소리만이 구름을 타고 춤을 춘다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왜 날까
이상하구나 불지핀 일이 없는데
위조지폐가 웃으며 탄다

교회 종탑 위에 십자가를 본다
까치 한 마리가 잠시 머문다
세월이 지나면 그것도 잊어지겠지

(1989년 스크랩 서시)





아버지의 시처럼, 서리가 내렸다. 1988년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5공비리 청문회로 내내 구석에 몰렸던 노태우 정부가 벌이는 반격의 서리였다. 어쩌면 분단의 밥상 위에 쏟아지는 서리였다. 수저를 든 손들이 숨을 죽였다. 밥알은 맛이 없다 못해 돌덩이가 씹혔다.

4월12일엔 방북취재 계획을 세웠다는 이유로 한겨레신문 임원들의 집에 공안합동수사본부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논설고문 리영희는 국가보안법 제6조5항 ‘탈출예비’와 7조1항 ‘찬양ㆍ고무ㆍ동조’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사실 방북취재는 대통령 노태우가 바람을 불어넣은 기획이었다. 그가 1년 전인 7월7일 이른바 ‘7.7선언’을 통해 ‘남북간 평화공존과 각계인사 교류’를 천명했기 때문이다. 정주영의 방북도 이 선언과 궤를 같이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허가를 받느냐 안 받느냐는 로맨스와 간통의 차이만큼 컸다.


4월13일 남한으로 돌아온 문익환은 구속되었다. 6월28일엔 평민당 서경원의원이 1년 전인 1988년 8월 평양을 비밀리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구속됐다. 서경원의 비서관과, 여비서, 동서는 방북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불고지죄’(국가보안법 제10조)로 구속됐다. 안기부ㆍ검찰ㆍ경찰은 ‘서의원 특별수사단’을 구성했다. 명색이 제1야당(평민당) 총재인 김대중은 서울 중부경찰서와 검찰청사로 두 번이나 불려가 역시 ‘불고지죄’혐의가 있는지를 조사받았다. 6월30일엔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 참석을 위해 전대협이 파견한 외국어대생 임수경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6월21일 서울을 출발해 도쿄와 베를린을 경유한 긴 여정이었다. 45일간 북한에 머물던 그녀는 8월15일 문규현 신부와 함께 휴전선을 걸어넘어와 구속된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방북 공안정국’으로 지칭할만한 1989년의 모순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제목은 ‘김현희 만나는 임양’. 스크랩에 있는 1989년 9월9일치 <한국일보>에 실린 사진인데, 아마 안기부가 모든 신문에 제공했을 것이다. 설명을 보자. “임수경양과 김현희가 만났다. 임양을 수사 중인 안기부는 김현희와의 면담을 통해 북한을 바로 알도록 했으나 임양은 김이 KAL기 폭파범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임수경이 김현희의 고백을 듣고 북한의 실상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헛된 통일운동의 꿈을 접고 우익으로 전향한다? 바로 위에 있는 아버지의 시 중 ‘위조지폐가 웃으며 탄다’라는 구절이 이 상황에 딱 들어맞는 느낌이다. 억지로 꾸며낸 위조지폐 같은 상황! 그 위조지폐조차 불타는 듯한 부조리하고 희극적인 시추에이션! 그해 11월엔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2월31일엔 백담사에 있던 전두환이 국회 청문회에 서서 증언을 했다. 당시 통일민주당 의원이던 노무현은 명패를 집어던졌다.

교회는 슬프다

독재자(獨裁者)가 毒劑者가
되고
설교가 자기나팔소리에
춤을 춘다
똥 싼 놈은 휴지도 없이
두리번거린다
종교적 부패
中世紀라는 거울을 보라
대통령도 슬프다
牧者도 슬프다
불꽃은 붉게 뜨겁게 타오르지만
기름은 얼마 남지 않았다

(1990년 스크랩 서시)





말장난이다. 독재자(獨裁者)가 독제자(毒劑者)가 된다고? 독약을 짓는 사람이 된다고? 말이 된다. 1990년의 최대뉴스였던 3당합당은 눈앞의 위기를 수습하고 얼마간의 쾌락을 보장하는 정치적 약물이었다. ‘불꽃은 붉게 뜨겁게 타오르지만 기름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종교적 부패를 더 말하고 싶었겠지만, 나에게는 정치적 부패가 읽힌다.



신당 5월 전당대회
내달 말께 전면개각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합당에 따라 오는 2월말께 전면개각이 단행될 것으로 22일 알려졌다.
특히 이번 개각에는 3당합당에 따라 민주ㆍ공화당 측 인사가 내각에 기용될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의 고위소식통은 이와 관련, “노태우 대통령과 2기 총재는 청와대 3자회담에서 정계개편에 따른 내각의 면모쇄신과 3당간의 통합의지를 구체화하기 위해 3당인사가 내각에 함께 참여하는 전면개각이 단행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의 접근을 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따라서 2월 임시국회가 끝나고 6공 출범 2주년이 지난 2월말이나 3월초께 대폭적인 개각이 단행되면서 3당의 인사가 고루 기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일보> 1990년 1월23일치)




1988년 4월26일 총선이 만들어낸 여소야대 정국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여당인 민정당 총재 노태우, 제2야당인 통일민주당 총재 김영삼, 제3야당인 신민주공화당 총재 김종필이 세 당을 하나로 합치기로 했다. 이로써 1990년 2월9일 의석수 216개의 거대한 민주자유당이 창당되었다. 3인은 모두 최고위원이 되어 집단지도체제를 형성했다.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에 뿌리를 둔 정치인이 손을 잡고 여기에 충청도 정치인이 깍두기 노릇을 했다. 전라남북도에 기반한 김대중의 평화민주당만 고립되고 포위됐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완성한 보수대연합이었다. 노태우는 여소야대의 불리한 세력관계를 말끔히 타파했다. 김영삼은 제2야당(통일민주당은 평화민주당보다 국회 의석수가 적었다)의 열패감에서 벗어났고 차기 대통령까지 꿈꾸게 됐다. 김종필은 내각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3인은 ‘독제자’(毒劑者)였다.

만파식적(萬波息笛)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오줌을 눈다
그래도 그것이 강물이 되어
배가 뜨고 수영을 한다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하품을 한다
그래도 그 모습이 웃음이 되어
슬픈 사람에게 위로가 된다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소리를 지른다
그래도 그것이 용기가 되어
힘이 없는 자에게 담력을 준다

모든 사람이 다 보는 앞에서
앞으로 넘어지고 꺼꾸러진다
코가 깨지고 피가 흘러도
그래도 그 모양이 겸손이 되어
칭찬이 되고 상금이 된다

(1990년 스크랩)





‘만파식적’이란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해결된다는 신라 전설상의 피리다. 아버지는 ‘독제자’(毒劑者)의 나라에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피리를 말하고 싶었을까. 현실에서 ‘만파식적’은 없었다.

그해 김영삼은 여당 안에서 노태우의 후계자로 알려진 박철언과 사사건건 부딪쳤다(4월). KBS 사원들은 서기원 사장 선임을 반대하는 대규모 제작거부투쟁을 했다(4월). 노태우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 한-소 수교의 물밑작업을 했다(6월). 방송법이 날치기로 통과돼 1년 뒤 SBS로 이름 붙여질 민방은 설립의 법적 근거를 얻었다(7월) 북한 총리 연형묵이 서울에 와 노태우를 만나고(9월), 남한 총리 강영훈은 평양에 가 김일성을 만났다(10월). 보안사에서 민간인 사찰자료를 갖고 윤석양 이병이 탈영해 기자회견을 했고(10월), 노태우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10월). 이 기사들을 다시 읽고 싶지는 않다. 내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뉴스는 이거다. 1990년 스크랩에서 선정한 최고의 기사!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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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고경태

「한겨레」 토요판 에디터. 「한겨레21」「씨네21」편집장과 한겨레 esc 팀장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 홈스쿨』(2011)과 『유혹하는 에디터』(2009), 『직설』(공저, 2011)이 있다. 가족을 사골국물처럼 글감으로 우려먹는다는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아버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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