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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 국민에게도 책임 있다” - 『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 이진경

대학이 ‘영업비밀’을 가진 사회의 뻔뻔함, 어디까지 갈까? 철학자, ‘정치’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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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이진경(서울과학기술대 교양학부 교수)은 ‘한 줌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 줌의 정치? 무엇일까? 이 교수, 독자들과 만나 한 줌의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지난 7월20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 스퀘어였다. 『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라는 첫 시사평론집을 내고 독자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철학자인 그가 왜 본격 시사평론집을 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풀었다.

아마 지금-여기에 돌고 있는 바이러스가 있다면, ‘뻔뻔함’일 것이다. 그것,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마음으로도 대부분 보지 못한다. 많은 경우, 인식하지도 못한다. 그게 내 욕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으면서 그러고 싶다고만 말한다.


그렇다면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철학자 이진경(서울과학기술대 교양학부 교수)은 ‘한 줌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 줌의 정치? 무엇일까? 이 교수, 독자들과 만나 한 줌의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지난 7월20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 스퀘어였다. 『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라는 첫 시사평론집을 내고 독자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철학자인 그가 왜 본격 시사평론집을 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풀었다.


철학자, ‘정치’를 말하다




대통령에 대한 언급, 빠질 수가 없다. 이 교수, 누가 대통령이 든 나아질 것이라고 보진 않았다. 그럼에도, 누군가 대통령이 되면 망가지는 데 극한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뿐 아니라, 바윗덩어리까지 수모를 당하는 시대. 그에 의하면, 정치가 재난이 된 시대다. 물론 그도 안다. 지금 끝물에 다다른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 효과도 없다. 좀 더 넓게 보자고 한다.

“이명박 한 사람의 문제일까?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것도 이명박에 미친 대중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직시하고 냉정하게 보지 않으면 정권이나 대통령이 바뀌어도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런 점에서 뿌리를 자를 시도를 하지 않으면 우리도 공범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책을 냈다. 또 철학 한답시고 고상한 얘기만 해선 이 시대를 제대로 살았다는 자신감을 갖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생각을 글로 썼다.”

책에는 일상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우리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했기에 이 교수가 함께 얘기하고 싶은 것을 담았다. 그가 보기에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모든 것을 부차적으로 만들어버리는 화려한 빛 안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화려한 빛과 대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이날의 주제는 그 화려한 빛을 발하는 정치에 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을 ‘뻔뻔한 시대’라고 불렀을까. 역사를 돌려보자. 1980년대. 책 대신 돌을 들고, 강의실 대신 거리를 헤집고 다녔던 시절. 그는 그때를 ‘진정성의 시대’로 일컬었다.

“목숨을 건다는 말이 은유가 아닌 시대였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간극 속에 미안함의 파토스(정념)가 있었다. 70년대도 그랬다. 강하고 노골적인 정치적 억압이 지배했었고, 타협의 강요가 있었다. 저항할 것인지, 고개 숙이고 살 것인지, 반복해서 번민하게 만들었었다. 동시에 억압으로 인해 감수해야 했던 고통, 공포가 지배했었다. 고통의 상징 같은 것이 전태일, 광주시민들이었다. 그 공포를 이기면서 저항하는 삶이 도덕이나 의무가 됐다. 양심과 저항 사이에 걸려있던 진정성의 끈이 삶을 끌고 가는 시대였다.”

한편으로 진정성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도 많았다. 미안함의 파토스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어둠의 시대’이기도 했다. 도덕적 선의가 삶의 무게를 떠받치던 시대. 진정성은 시대정신이고 시대의 도덕이었다.


박정희, 위선의 체제




반면, 그것과 짝을 이루는 정치적인 체제가 있었다. 진정성의 도덕주의를 낳은 조건이었다. 즉, 위선적인 정치체제였다. 위선. 선함을 가장하는 것이자, 자신을 위한 것도 남을 위한 것인 양 가장하는 것이다.

“지배자 입장을 대변하는 정치 체제는 모두를 위한다는 방식으로 말을 한다. 불가피하게 위선적이다. 정치체제나 국가 체제는 위선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대중을 자신들의 속임수에 포획하는 것이고, 위선의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또 정치권력을 정당성 없는 형식으로 장악했을 때도 원죄를 가리기 위해 포장을 해야 한다. 장악의 정당성이 없는 권력은 위선을 가리기 위한 의무를 행한다. 이런 경우, 위선의 체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교수가 보기엔 박정희, 전두환이 그랬다. 박정희는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아서 이를 포장ㆍ위장해야만 했다. 그가 택한 것은 사적인 폭력, 즉 정치깡패나 조직폭력배를 소탕했다. 자신들은 공적 폭력이라는 방식으로 자신들을 포장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위장의 기술.

박정희는 특히 ‘조국근대화’ 등과 같은 위선의 전략을 썼다. 노동자와 민중의 희생을 공적인 이름으로 요구했다. 이런 위선의 기술, 몇 년은 먹혔으나 70년대 들어 저항이 일어났다. 대표적인 이름이 전태일이었다. 이것이 위선의 시대에 균열을 냈다. 금이 가게 했다.

“당시 부각되진 못했지만, 위선의 전략에 저항하는 한 줌의 사건이었다. 위선의 장막을 찢었고, 민중 속으로 들어가자는 운동이 시작됐다. 1970년대 노동운동의 시작이었다. 1980년대 초에도 그랬다. 민중을 이해하고 고통을 나누겠다는 마인드가 팽배했다. 이것이 편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을 채찍질하고 낮은 곳으로 끌어당겼다. 진정성이라는 것이 그랬다.”

이 교수, 진정성의 힘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사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들었다. 그에게 붙여진 ‘바보’라는 말로 요약되는 감동. 그 속엔 우직한 진정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것이 사람을 감동시켰고, 그 감동이 사람들을 미치게 혹은 정치판으로 몰려들게 만들었다는 것.

“노무현의 진정성은 노무현에 미쳤던 사람의 진정성이었다. 그 시대 한국 대중이 가진 대중성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노무현의 죽음은 전세계에서도 유일무이한 경우다. 이 죽음은 진정성이 삶을 더 이상 버티게 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알려준 사건이었다. 진정성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이명박, 뻔뻔함의 체제의 탄생






“위선의 시대가 속에 없어도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자신의 행위를 다른 이를 위한 것으로 포장하기 위해 애쓰는 시대라면, 뻔뻔함의 시대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득과 목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추구하는 시대다.”(p.12)



‘진정성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자, 이를 대신한 것은 ‘뻔뻔함의 체제’였다. 이 교수, 이해가 안 됐다. 앞서 진정성에 매료돼 돈과 시간을 털어놓은 대중은 어디가고 정반대의 인물이 대통령되는 반전이 발생했는가! 그가 보기에도 다른 대중이 투표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위선의 체제에서 뻔뻔함의 체제로 이행하게 됐는지 추적하면, 문민정부 이후 위선이라고 부르는 가식과 과장을 본질로 하는 체제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진정한 실망이 있었다. 진보의 도덕적인 무력함 같은 것?”

이 교수에 의하면, 노무현의 성공은 위대한 성공이었다. 노무현은 위대한 정치가였으며,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대중도 위대한 대중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때 대중은 통계의 법칙을 벗어나는 대중이었다. 통계가 갖는 일반적인 패턴과 다른 독특한 활력이 있었다.

다만 그렇게 강력한 힘이 성공은 물론 노무현의 발목을 잡은 족쇄가 됐다. 취임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전사처럼 나섰다. 검사들과 대판 붙었고, 부동산 투기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대중을 적으로 만들었다. 검사 뿐 아니라 관료들과 등을 돌렸던 것. 야전사령관의 마인드였다. 관료들, 움직이지 않았다. 대통령을 무시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하고자 했던 것을 관철시킬 수가 없었다.

“대통령은 전사가 아니다. 그런데 지배자와 싸우는 전사의 마인드로 대통령을 했다. 집권 후반기엔 물론 반대가 됐다. 관료들을 칭찬하고,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강정마을을 해군기지화 했다.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은유가 노무현 정권을 특징짓는 말이 됐다. 정치는 선한 의도가 중요한 게 아니다. 차악 정도만 돼도 다행인 경우가 많다. 그는 자신의 삶에 진정성을 갖고 돌진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좌충우돌했고, 그것이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좌우 양쪽으로 등을 돌리게 했다.”

결국, ‘대통령 이명박’이 탄생했다.

“이명박은 대통령 될 인물이 아니지. 생긴 걸로, 교양으로, 목소리로, 어떤 걸로 봐도 대통령이 될 인물이 아니다. (웃음) 서울시장도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기업 사장이야 모르겠지만. 더구나 객관적 결함이 얼마나 많나. 전과 14범에 BBK 등 현안이 터지는데도, 사람들은 이를 무시했다. 사람들이 도덕주의에 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눈을 감았고, 귀를 닫고 안 들었다. 오직 하나였다. 쟨 최고경영자(CEO) 해봤잖아.”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자, 먹고 살기가 힘들어졌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자, 돈을 벌 줄 아는 누군가가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착각이었다. 경제적 어려움, 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해서였는데, 대중들은 어리석음에 사로잡혔다.

이런 착각 속, 대중들은 이명박의 허점에도 억지로 눈을 감았다. 덕분에 이명박 체제는 이를 동력으로 삼았다. 뻔뻔함의 체제가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첫 장관 임명 때부터 후보자의 범죄경력 등을 무시하고 임명을 강행했다. 자신이 대통령 됐던 조건을 목줄로 썼다.

“속내를 까놓고 드러내는 정치의 분기점이 됐다. 뻔뻔함의 시대가 시작됐다. 자신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이명박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명박은 뻔뻔함의 이데아를 보여줬다. 앞으로 뻔뻔함을 떠올릴 때마다 이명박이라는 이름을 새길 것이다. 이것이 영원성을 획득하는 방법이다. 정치학적으로 뻔뻔함의 이데아다. 이명박은 한국은 별걸 아닌 걸 갖고 시끄럽게 한다고 외국 나가서 자기 국민들 욕을 한다.”


사회적인 뻔뻔함의 확산






“이명박은 개인으로서도, 주변 인물로도, 정부 전체로도 이런 뻔뻔함의 최대치를, 극한값을 보여주는 ‘전형’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pp.13~14)



이명박 정권의 뻔뻔함은 이런 방식이다. 모든 이견은 쓸데없이 떠드는 소리니까, 뭉개고 밀고 나가. 최근 재신임을 받은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정권 말기임에도, 그냥 밀어붙였다.

“법적인 뻔뻔함도 유명하지. 대통령 될 때 이미 전과 14범이니, 남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불법, 탈법 별로 생각 안 한다. 그러고선 법을 들먹인다. 법하곤 제일 거리가 멀면서. 대통령도 재테크가 필요하다는 마인드로 경호실 돈을 갖다 쓰고.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평생 해 온 걸 그냥 한 거지. 순결한 뻔뻔함 같은 것이다.”

용산 참사도 마찬가지다. 세입자들, 오랜 농성을 했으나, 그는 건설회사 사장의 마인드로 용산을 바라봤다. 제풀에 지쳐 쓰러질 테니 그냥 놔두라고 했을 거라고 이 교수는 말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관련, 22명이 죽어도 그냥 둔다. ‘사회학적 뻔뻔함’이라고 표현, 적절하다.

“부자 되세요”가 인사였던 시절이 있었다. 부자가 되고 싶은 건, 어느 시절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그렇게 노골적이었던 적, 없었다. 부자여도 겸손한 척, 미안한 척, 남들한테 쓰는 척했다. 돈이 많으면 잘 쓸 생각을 하고, 세금을 많이 거두라고 하는 외국의 괜찮은 부자들을 안다. 그러나 한국에는 그런 부자, 희소하다. 대부분의 부자들이 천하디 천한 사회다.

“부자 되세요. 그건 천해지라는 말인데, 어떻게 그렇게 함부로 할 수 있을까. 스스로 천함에 몸을 던진 거다. 돈 버는 것에 인생을 걸었다며 자랑으로 여긴다. 그건 모욕 아닌가? 돈 많으면 어떻게 쓸지 고민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이것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든 마인드다. 우리 마음의 뻔뻔함이다.”

이 교수, 최근에는 수위가 높아진다고 지적한다. 정치인이나 자본가들, 그러려니 하고, 검사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최근 대법관 임명 과정. 판사는 공정성을 대변하는 사람이니 괜찮을 거라고 여겼던 것이 무너졌다. 그 청문회, 뻔뻔함의 극치였다. 쪽팔려서라도 대법관 안 할 텐데, 끝까지 하겠다는 이들. 이젠 뻔뻔함이 대법원을 지배하게 됐다. 이명박 정권이 끝난 뒤에도 대법원을 장악할 수 있게 됐다. 이게 대한민국 사회의 뻔뻔함이다.

예를 더 든다. 어느덧 기업이 된 대학.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이 그렇고, 대학은 더 이상 교육기관이 아닌 영업비밀을 지닌 기업이다. 고려대의 고해성사(?)가 그것을 대변한다. 지난 2010년, 고려대는 입시전형 모집요강과 관련, 전형에 적용한 산식의 구체적인 내용과 산식에 적용한 상수를 ‘영업비밀’이라며 이를 법원에 제출하는 것을 거절했다.

그러면서 대학은 한 학기당 500만원 안팎의 등록금을 받아 건물을 짓고 몸집을 불린다. 정작 그 속의 학생들, 등록금 때문에 허리가 휜다. 학업이 아닌 알바가 우선이다. 알바하면서 틈틈이 학교를 다닌다. 대학에서부터 채무자를 낳는 구조. 학생은 가도, 건물은 남는다. 총장의 업적은 건물의 숫자로 남는다. 그야말로 뻔뻔함의 극치다. 한국에 대학교육은 없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이런 것이 바뀔까? 좌파가 대통령이 돼도 이런 건 안 바뀐다. 가슴 아픈 건, 요즘 노동자들도 그렇다.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거부한다. 자신들의 임금 인상에만 관심을 둔다. 뻔뻔한 거지. 이런 것들이 이명박이 사라진다고 없어질까? 대통령이 바뀌어도 이런 마인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훨씬 더 무섭다. 나빠지는 건 와르르다. 다 같이 무감해지고, 두꺼워진 거다. 불행하게도 피부 두꺼운 것이 전염됐다.”


구제역 파동에서 본 인간의 몰지각함

구제역 파동. 그건 학살이었다. 이 교수에 의하면, 한국 1200만 마리 가축 중에 28% 350만 마리가 매장됐다. 지구사를 통틀어 센 전염병이 돌아도 28%가 죽는 일은 없었다. 1831년 유럽에 콜레라가 돌았을 때, 프랑스 전체 사망률 평균은 17%, 빈민지역은 32%였다.

“페스트 말곤 비교할 게 없을 정도로 죽었다. 그런데 이 350만 마리는 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죽였다. 구제역은 가축에게 감기같은 병이라 하더라. 치료비 많이 든다고 사람을 죽이나? 구제역이 퍼지게 뒀어도, 그리 많이 죽진 않았을 거다.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28%를 죽였다. 정말 끔찍하지 않나? 인간은 ‘악마의 이데아’ 같은 걸로 등극할 거다.”




문제는 비판의 소리, 크지 않았다. 한술 더 떠서 동물들의 목숨이 죽었다고 아닌, 잃은 경제적 자산 가치만 계산했다. 처참한 풍경이다.



“이런 종류의 체제일수록 영광을 찾아다닌다. 그런 것들이 정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건 스펙터클이지, 정치가 아니다. 권력을 행사하는 것, 지배라고 하지, 정치라고 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지배적인 지위를 지속시키고 재생산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지배다.”
“스펙터클이 지배적이 된다 함은 시각적인 외양에 의해 지배되며, 그것에 사로잡혀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게 됨을 뜻한다. 스펙터클이란 실제 삶과 시각적 외양이 분리되고, 그 분리된 외양이 지배하는 체제를 뜻한다.”(pp.97~98)



그렇다면 정치는 무엇일까? 지배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드러났을 때, 이견이 드러났을 때, 끌어안는 것이다. 정치적인 능력은, 용량이 큰 것을 말한다. 즉, 자신이 담을 수 있는 이질성의 폭이 얼마인가.

“예를 들어, 돈이라는 가치와 돈이 안 되는 것의 관계를 생각해보라. 돈이 안 되는 건 경제적 가치가 없다. 진화를 부정하는 것이 이런 경제적 가치다. 가치가 돈만 뜻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자본주의 시대 경제적 가치가 없는 건 사라졌다. 돈으로 점철된 가치에 복속되지 않은 것이 존재를 지속하고 주장하는 것, 지배에 반하는 것이 정치다. 지배적인 가치와 불화를 일으키는 것, 불화하는 것의 존재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 정치에 부합한다고 본다.”

문제는 이런 것들은 지속되기 힘들다는 것. 즉, 작은 것, 마이너. 이 교수는 이것을 강조한다. 침묵 속에 있는 자들이 말하게 하는 것, 보이지 않는 자들을 보이게 하는 것, 세워지지 않은 자들을 세우는 것. 이것이 정치라고 말한다. 스펙터클의 시대, 화려하지 않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스펙터클과 반대되는 미광을 끄집어내자고 주장한다. 가령, 촛불 같은 것.

“지구에 인간이 아닌 종은 있을 곳이 없다. 지금 대대적인 멸종의 시대다. 여섯 번째 멸종기라고 사회생물학자 윌슨은 말한다. 과거 멸종 속도보다 지금이 더 빠르다고 하더라. 후대, 인간이 멸종 원인이라고 쓸 것이다. 우리 때문에 수많은 생물이 멸종의 대열에 끼어든다. 그러나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인간보다 개체수는 많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것을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것을 봐야 안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남들에게 안 보이는 것을 봐야 안목이 있고, 남들에게 안 보이는 것을 보게 해야 정치를 한다고 할 수 있다. 영광의 정치가 아닌 미광의 정치다.”

휘황한 스펙터클에 취함으로써, 우리는 노래하는 능력을 잃고, 우리가 가진 많은 것을 접고 포기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을 잃는데도, 잃어버리는 줄 모른다는 것.

“이데아가 스펙터클의 형태로 있고, 그것이 내 옆에 존재할 때, 스스로 갖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이것이 새로운 종류의 니힐리즘 형식이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니체는 삶을 사랑하라고 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움직여야 한다. 부딪혀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해보면서 계속 가보는 거다. 나의 영혼은 나의 몸과 속성이 다르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야 한다. 내 안에 있는 것을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다.”



“있어도 보이지 않기에 ‘한 줌도 안 된다’고 간주되는 ‘소소한 무리들’, 있어도 제대로 세어지지 않기에 ‘한 줌’밖에 안 된다고 간주되는 ‘보잘것없는’ 것들, 그래서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항상 ‘소수자’로 간주되는 것들. 그들을 보이게 만들고 그들을 제대로 세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한 줌의 정치’다.”(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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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 이진경 저 | 문학동네
『뻔뻔한 사회, 한 줌의 정치』는 그간 급진적 이론과 실천의 방법론을 소개해온 ‘탈주의 철학자’ 이진경이 써내려간 최초의 본격 정치평론집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깊이 있는 철학적 통찰에 기반한 풍자적이면서도 명쾌한 문장으로, 논리 정연한 정치비판이 읽는 이에게 선사해줄 수 있는 쾌감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재 우리 사회를 ‘뻔뻔함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규정한다. 이는 현 정부를 비판적으로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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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

<이진경> 저12,820원(5% + 2%)

‘닥치고 정치’ ‘닥치고 경제’만이 능사일까 철학자 이진경이 쓴 본격 정치평론집 『뻔뻔한 사회, 한 줌의 정치』는 그간 급진적 이론과 실천의 방법론을 소개해온 ‘탈주의 철학자’ 이진경이 써내려간 최초의 본격 정치평론집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깊이 있는 철학적 통찰에 기반한 풍자적이면서도 명쾌한 문장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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