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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스릴러 웹툰 <이끼> 성공 요인은… - 윤태호 작가의 모든 것

만화에 발광(發狂)하다 만화로 발광(發光)하다 “분노를 모르는 불감증 걸린 사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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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윤태호. 2007년부터 연재한 『이끼』의 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끼』는 3600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강우석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때 웹툰으로 윤태호를 접한 이들은 그를 신인작가로 인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1993년에 데뷔한 중견 작가이고, 1998년 이미…

만화가 봉인가?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 순정만화의 대모라 불리는 황미나가 직접 겪은 일이다.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사전검열이 존재하던 때, 이런 웃기지도 않은 일이 이따금 일어났다. 황미나의 말, 직접 들어보자.

“경찰이 범인을 쫓아가며 ‘서라’라고 외쳤는데 범인이 그냥 도망간 걸 놓고 공권력 침해라며 수정을 지시한 경우가 있어요. 순수 민간단체의 심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경찰이 범인을 잡았는데, ‘난 돈이 너무 많아 잡아도 소용없다. 최고의 변호사를 댈 거다……’라는 범인의 말을 놓고 ‘황금만능주의 표현’이라며 문제를 제기해요.”1)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는 격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지금도 계속 일어난다는 것이다. 2012년 2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폭력을 조장한다며 웹툰 만화 24개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사전 통지했다. 정확히 말하면 ‘청소년 유해매체물 결정 관련 사전통지 및 의견제출 안내’라는 공문을 포털사이트에 내려보낸 것이다. 이 공문으로 만화가들은 자신이 그린 만화가 폭력적이 아님을 직접 해명해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처했다.

방심위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만화평론가 서찬휘는 2011년 12월 대구와 광주에서 학교 폭력과 집단따돌림으로 두 학생이 자살한 사건이 배경이 되고, 2012년 1월 4일 오토바이 날치기 사건을 저지른 아이들이 만화를 보고 따라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언론에서 포털사이트 야후에 연재 중이던 <열혈 초등학교>를 학교 폭력을 조장하는 만화라고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그 이후 상황, 마저 들어보자.

“1월 7일에는 『조선일보』가 이 같은 공격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 신문 1면 헤드라인을 통째로 걸고 ‘열혈 초등학교, 이 폭력 웹툰을 아십니까’라고 대서특필한 것이다. 이틀 뒤인 1월 9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웹툰의 폭력성을 심의하겠다고 화답하고 나섰고, 1월 10일 <열혈 초등학교>가 업체 차원에서 연재를 중단당하기에 이른다. 이에 한국만화가협회를 비롯한 만화가 단체들은 1월 11일 ‘‘만화’가 사라지면 ‘학교 폭력’도 사라지나?’라는 제목으로 표현의 자유 침해를 비판하는 반박 성명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2월 둘째 주쯤 여러 포털사이트를 통해 웹툰 24편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사전 통지했다.”2)






만화가 학교 폭력을 조장한다라? 글쎄다. 그 이유도 참 식상하고, 그 화살이 만화로 향했다는 것 역시 식상하다. 그런데 이런 식상한 일이, 백주대낮에, 일어났다. 그것도 참 폭력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사실 우리나라 만화의 역사에선 검열사를 따로 쓴다 해도 충분할 정도로 숱한 검열이 계속되어왔다. 군사정권 시절 5월이면 느닷없이 만화 화형식이 열렸고, ‘코 묻은 돈’을 벌어들이는 만화가에게 ‘작가’란 호칭은 어울리지 않다는 창작자에 대한 비하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사전검열이 횡행하던 때 검열기관의 삭제로 누더기 만화책을 발간해야 하는 일도 흔했고, 국내 작가에 대한 그런 검열 덕분에 일본 해적판 만화가 더욱 널리 퍼지기도 했다. 국가의 검열기관이 한국 만화의 자생력을 키우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사전 검열이 없어진 뒤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97년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를 두고 벌어진 논란이 그 증거다. 『천국의 신화』는 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법정에까지 가야 했고 항소심, 상고심에서 모두 기각되며 음란물 혐의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그 와중에 이현세의 창작 의욕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당시 태동하던 성인만화잡지가 폐간되는 등 만화계는 때 아닌 침체를 겪어야 했다.


만화는 봉이 아니다!

이쯤 해서 왜 만화가 유독 표적이 되는지 살펴보자. 우선 만화는 힘이 없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주 소비층이 청소년층이다 보니 만화에 심한 검열이 가해진다 해도 그에 반발하는 여론 형성이 힘들다. 여론에서 청소년의 의견은 묵살되기 일쑤고 만화를 보는 어른들이 별로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 만화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이 검열기관에서, 보수적인 시민단체에서 또는 보수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것만으로 마녀사냥 하듯 만화에 주홍글씨를 새기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만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히 굳건하기 때문이다. 물론 예전과 비교했을 때 만화의 위상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만화는 소중한 창작물로, 또 영화화와 드라마화 되면서 새로운 콘텐츠 공급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산업적인 측면에서만 만화는 인정받는다. 어떤 만화가 영화화가 결정되었네, 이번에 인기를 끈 어떤 드라마의 원작이 만화네, 이런 ‘공식’이어야만 인정받을 자격이 생긴 것처럼 회자되는 게 현실이다. 이런 근원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만화에 대한 표적 심의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만화에 대한 심의,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폭력적인 소설도 있고 폭력적인 영화도 있다. 그런데 유독 만화에만, 또 게임에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건 부당하다. 힘이 없는 아이를 유독 괴롭히는 것, 그것이 요즘 나타나는 학교 폭력의 양상이다. 그에 빗대어 얘기하자면 힘이 없는 만화라는 매체에 정부기관과 보수언론이 ‘십자포화’를 집중하는 것은 학교 폭력을 닮아 있다. 이를 두고 당신들이 학교 폭력을 조장한다고 주장하면 어쩔 텐가? 어이없지 않겠는가. 만화를 두고 벌어지는 지금 이 사태 또한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이번에 방심위에서 유해만화로 지정한 작품 중에는 ‘2011 대한민국 콘텐츠 어워드’ 만화 부문에서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상을 받은 『더 파이브』가 있었고, 2011년 ‘오늘의 우리 만화 수상작’인 『살인자ㅇ난감』과, 현재 영화화가 진행 중인 『전설의 주먹』도 있었다. 그 만화를 솜솜 뜯어보고 내린 결론은 어이상실과 황당무계다. 방심위원들이 분명 배운 사람들일 터인데 이토록 맥락을 읽을 줄 모르는가란 허탈함은 덤으로 따라온다. 그런데 방심위원들에게는 맥락이 문제가 아닌가 보다. 한 방심위 관계자는 “만화의 맥락과 무관하게 폭력이 난무하는 만화를 보고 청소년이 그대로 따라할 가능성이 높아 규제가 필요하다”“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는 만큼 만화계에서도 되돌아보는 계가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3) 이 관계자의 말은 결국 청소년은 영혼이 없는 존재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또 이 말만 들으면 유해매체물로 지정한 24개 만화에는 맥락과 상관없이 그냥, 갑자기, 느닷없이 폭력이 난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중 몇 개를 읽은 나로서는 동의하기 힘든 말이다. 참 재미있게 본 『전설의 주먹』만 놓고 봐도 그렇다.

그래서 방심위원들의 만화를 읽는 독법 자체부터가 문제다. 조금이라도 그 의도를 알았다면, 또 만화를 제대로 읽었다면 이런 결정이 가능했을 리가 없다. 더구나 방심위가 유해매체물로 지정한 24개 작품 중 15개는 이미 작가들 스스로 ‘19금’ 딱지를 붙여놓은 상태였다. 포털사이트 등에서 성인 인증을 해야만 볼 수 있게 한 것이고, 작가 스스로 규제한 것이다. 그런데 폭력을 조장한다며 유해매체로 지정한 것이다. 어떤가? 난센스란 말은 이때 써야 되지 않겠는가?

만화는 오랫동안 공공의 적이었다. 아니 공공의 ‘봉’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만화작가들이 방심위의 결정에 반발하고, 많은 사람이 이에 동참하는 것이 그 증거다. 그래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만화는, 봉이, 아니다 라고 말이다.


“너무 수치스럽고 분하다”

서론이 다소 길었다. 방심위가 일으킨 이 사태는 만화가들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2012년 2월 18일 만화계는 ‘표현의 자유 수호와 웹툰의 심의 철폐를 위한 범만화인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했고, 만화가 윤태호가 공동위원장이 되어 검열 반대 시위를 이끌었다. 윤태호는 “저도 애를 키우는 부모인데 웹툰이 이런 식의 취급을 받는 것이 너무 수치스럽고 분하다”4)면서 “다른 장르들의 폭력성에 대해선 별 대처를 하지 않아온 당국이 유독 만화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일이 되풀이되다 보니 만화계로선 창작의 자유라는 기반이 흔들리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느끼고 있다”고 방심위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했다.5)

“청소년 문제가 생겼다 하면 비난의 화살이 만화 아니면 게임 쪽으로 온다. 나도 부모의 한 사람이다. 걸핏 하면 만화가를 수치스럽게 하는 데 대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용기를 냈다”“학생들도 나름대로 가치관과 판단 기준이 있습니다. 작가는 자기가 그리고 싶은 대로 표현하면 되고 판단은 독자가 하면 되는 겁니다. 그것을 심의기구나 국가기관이 해선 안 됩니다”라며 검열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6)

그리고 3월부터 윤태호, 강풀(강도영), 주호민, 김수용 등 인기 웹툰 작가들이 방심위 앞에서 ‘웹툰 검열 반대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만화가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번 사태가 1997년 『천국의 신화』를 두고 벌어진 검찰 수사 때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1997년에도 수많은 만화작가들이 나서서 절필 선언을 하고 검찰 수사에 반발했지만, 결국 『천국의 신화』가 약식기소 되고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무려 4년 동안 음란물이란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전철을 또다시 밟는 것 어닌가 하는 우려가 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2012년 4월 9일 방심위와 한국만화가협회가 ‘웹툰 자율규제 협력을 위한 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 협약을 이끌어낸 윤태호는 “이 협약에 따라 방통심위의와 만화가협회는 웹툰 자율규제 체계 마련, 웹툰 관련 불만제기 사항에 대한 정보공유 및 자율조치, 웹툰을 활용한 청소년의 올바른 인터넷 이용환경 조성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향후 한국 만화계는 더 재미있고, 더 가치 있는 만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더불어 만화에 주어진 사회적 책무 역시 진지하게 감당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7)

방심위와 한국만화가협회의 업무 협약은 전에는 꿈조차 꿀 수 없던 일이다. 만화의 위상이 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영화나 문학 등 다른 문화예술 장르와 비교해보면 아직 만화의 위상이 만족스러울 정도로 높아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반증하기도 한다. 방심위로 대변되는 정부기관과 다른 문화예술 장르가 자율규제 업무 협약을 맺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이번 협약은 하나의 기회가 될 것이다. 걸핏하면 벌어지는 만화에 대한 마녀사냥을 차단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만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가 중요하고, 그 기회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만화가, 특히 웹툰의 자율심의를 이끌어내고, 앞으로 방심위와 계속 자율규제 방식을 놓고 논의하게 될 윤태호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여곡절 만화가 데뷔

만화가 윤태호. 2007년부터 연재한 『이끼』의 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끼』는 3600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강우석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때 웹툰으로 윤태호를 접한 이들은 그를 신인작가로 인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1993년에 데뷔한 중견 작가이고, 1998년 이미 『야후』라는 걸출한 작품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또 같은 듯하지만 그 표현 방식이나 독법 자체가 전혀 다른 출판만화와 웹툰을 고루 경험하고, 양 매체에서 성공한 보기 드문 작가이기도 하다.

윤태호는 1969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 사정과 맞물려 그는 선천적으로 약한 피부 탓에 아이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다. 또 육성회비를 내지 못하는 그에게 쏟아지는 선생들의 언어폭력과 멸시가 트라우마가 되기도 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박탈감’과 ‘이질감’이라는 두 단어로 설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8)

그런 그에게 떼놓을 수 없던 것이 만화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 신문에 네 칸 만화를 연재하는 등 일찌감치부터 만화에 재능을 보인 그는 학창시절 내내 만화와 삽화 등을 그렸다. 이때 그에게 영향을 준 만화가는 허영만이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던 만화가 허영만 만화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만화가의 꿈을 키워가던 그는 미대에 진학하려 했으나 고3 때 집안 사정이 더욱 어려워진 상태에서 실기시험 비중이 10%에 불과하던 한 대학의 미술교육과에 지원했다가 낙방하고 말았다. 그래도 만화가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그는 만화잡지 『만화광장』 부설 만화학원 광고를 보고, 아버지에게 “학원 졸업할 때까지만 학원비를 책임져주시면 알아서 하겠다”면서 1988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9) 처음에는 생전 처음 보는 사촌형 집에서, 나중에는 만화학원 주변에서 노숙을 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나가던 그는 마침 학원 주변에 있던 허영만의 화실에 다니는 문하생을 만나 허영만을 찾아가 문하생으로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화실 주소를 알아서 그다음 날 제 그림을 들고 바로 찾아갔죠. 문하생으로 받아달라구요. 그런데 일언지하에 거절하시더군요. 자리가 없다구요. 저는 제 그림 실력이 형편없어서 그러시는 줄 알고, 그림을 모두 찢고 다시 그려서 1주일 후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또 거절하시더라구요. 하지만 다시 그려서 찾아갔습니다. 근데, 너무 쉽게 받아주시는 겁니다. 알고 보니 정말로 자리가 없었더라구요. 마지막으로 찾아갔을 때, 한 사람이 나갔던 거죠.”10)

그렇게 힘겹게 들어간 허영만 화실에서 윤태호는 2년 동안 생활하다가 1990년 만화가 조운학의 화실로 자리를 옮긴다. 당시 허영만 화실의 일이 너무 많아 자기 만화를 연습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운학 화실로 자리를 옮기고 난 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림 연습을 한다. 그리고 1993년 『월간 점프』에 「비상착륙」이란 만화를 연재하면서 데뷔하게 된다. 하지만 윤태호는 이 작품이 창피했다고 한다. 스토리가 빈약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윤태호는 다시 조운학 화실로 돌아가 송지나의 드라마 『모래시계』를 베껴 쓰고, 최인호의 시나리오 전집을 보면서 스토리 공부를 한다. 그 결과 그는 1996년 성인만화잡지 『미스터 블루』에 「혼자 자는 남편」을 연재하며 주목받았고, 1997년 『연씨별곡』으로 제법 알려진 만화가가 되었다.

‘흥부전’을 패러디한 『연씨별곡』에는 윤태호 나름의 기발한 상상력이 묻어난다. 우선 이야기 자체가 그렇다.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교훈을 지닌 흥부전은 『연씨별곡』에서 기가 막히게 비틀린다. 재벌2세 연생원의 두 아들인 놀부와 흥부는 원전과는 달리, 선악이 뒤바뀌어 있다. 놀부는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동생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 애쓰는 인간이다. 그에 반해 놀기 좋아하고, 잔꾀가 많아 유산 상속을 받지 못한 흥부는 그야말로 천덕꾸러기다. 흥부는 기방 출신의 음탕한 계집 초선이를 아내로 맞아 다섯 명의 자녀를 둔 가장이 되지만 여전히 놀고먹을 궁리만 한다. 동생의 미래를 걱정한 놀부는, 흥부에게 충고를 하지만 그것은 쇠귀에 경 읽기였고, 흥부는 놀부의 충고를 빌미로 독립을 선언하고 집을 나간다. 그러자 졸지에 놀부는 동생을 내친 악독한 인물이라는 악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초기 설정부터 원전을 과감히 뒤집는 『연씨별곡』은 순수 친목도모형 성인 놀이조직인 ‘모레쉬게’파와 ‘강남제비파’가 등장하면서 점점 재미를 더해가고, 냉소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풍자하는 윤태호의 시선과 언어유희적 재미가 더해져, 그야말로 요절복통 패러디가 되어간다. 이후 윤태호는 별주부전과 춘향전을 패러디한 『수궁별곡』과 『춘향별곡』 등 고전 패러디 시리즈를 내놓았다.


“분노를 모르는 불감증 걸린 사회를 위하여”

한창 고전 패러디 성인 코믹물로 인기상종가를 치닫던 윤태호는 1998년 만화잡지 『부킹』에 문제작 『야후(YAHOO)』를 연재한다. 우연히 영어사전을 뒤적이다 ‘야후’란 단어를 발견한 그는, 야후가 짐승 같은 인간 혹은 인간 같은 짐승을 가리키는 말임을 깨닫고 이를 제목으로 원용했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야후’는 후이넘이라는, 인간 사회보다 뛰어난 문화를 지닌 말[馬]의 나라에 사는, 인간과 비슷한 모양이나 탐욕스러운 짐승으로 천대받던 동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스위프트가 야후를 통해 탐욕스럽고 포악한 인간을 풍자하고 조롱했듯이, 윤태호 역시 『야후』를 통해 인간을 짓밟는 권력의 하수인을 풍자한다.

1990년대 끝자락에 태어난 『야후』는 분노의 감성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502명의 사망자와 937명의 부상자를 만들어낸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사상자가 발생하기까지는, 부실 공사를 자행한 시공회사, 불법 로비를 벌인 사장, 뇌물을 받고 감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감리사와 부실시공을 눈감아준 공무원 등이 있었다. 마땅히 사람들은 그에 울분을 토하고 너도나도 삿대질을 해대며 분노를 표했지만, 그걸로 그만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삼풍 사건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갔고, 분노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후 거대한 재난이 일어나도 그때뿐이었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것은 비극적인 사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냥 ‘아이구, 저걸 어째’ 라고 중얼거리거나 ‘저런 쯧쯧’ 하고 혀를 찰, 그런 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윤태호는 이런 모습이 마땅치 않았다. 분명 분노해야 할 일임에도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을 힐책하듯, 그는 모두들 그 사건을 잊어갈 무렵, 다시금 그 사건을 상기시키는 만화를 들고 나왔다. 잊어서는 안 될 사건이었기에,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야후』 4권에 실린 ‘작가의 특별 메시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년이 지나고 있다. 모두들 어서어서 잊자고 한다. 잊혀졌다고 한다. 잊혀졌다고 믿으려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고, 견뎌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곤 또 잊어야 할 대상과 마주하게 된다. 습관처럼 또 잊는다. 그래서 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모든 게 지났으면 좋겠다. 적어도 다시 생각나지만 않았으면 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그들은 아직도 TV 안에, 여의도에, 종로에, 강남에, 대한민국에, 세계에 퍼져 오늘도 어느 빌딩, 어느 다리를 부수고 있기 때문이다.11)




1999년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한 『야후』는 앞서 말한 것처럼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모티브로, 그 사건을 몸소 겪은 김현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끌어간다. 1985년 이름 모를 한 건물이 붕괴되고, 보일러 수리공인 아버지와 함께 매몰된 김현은 눈앞에서 아버지가 압사당하는 장면을 목도한다. 아버지에게 몹쓸 짓만 한 김현. 그는 죄의식에 시달리며 방황하다, 치안을 위해 만들어진 수도 경비 특수 기동대(수경대)에 들어가 시위진압 및 구조활동을 벌인다. 그렇게 10년을 지내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 일어나자 구조활동에 나선 김현은 아버지와 똑같이 압사당하는 여고생을 목격하고, 그동안 꾹꾹 참아온 분노를 터뜨린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분노를 잃어버린 이 사회를 대상으로 말이다. 윤태호는 단행본 『야후』 1권 ‘작가의 특별 메시지’를 통해 『야후』가 어떤 의도로 기획ㆍ탄생되었는지를 말한다.



아현동 가스 폭발,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참사 등등. 만약, 당신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위 사건들의 중심에 있었다면? 만약, 당신이 아버지의 죽음을 두 눈 똑바로 뜨고 구경할 수밖에 없다면? 만약, 당신이 학창시절 변변한 반항이나 분노를 직접 표현해본 적이 없다면? 만약, 뉴스를 보며, 신문을 보며, 모든 사건 사고의 중심에 있었던 이들의 분노를 한데로 모아 현실로 쏟아낸다면? 무언가 분명 다를 것이다.

-분노를 모르는 불감증 걸린 사회를 위하여-12)




1988년 서울에 정착한 이후, 윤태호는 수많은 정치ㆍ사회적 사건을 지켜보아야 했다. 이 사건들을 보고 느끼며 그는 분노했고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어떤 메커니즘이 존재하기에 다리와 건물이 무너지고, 어떤 내재율에 따라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끔찍했던 참사를 잊어가는 것일까? 그가 보기에 이 사회는 단순히 부패와 비리로만 둘러싸인 사회가 아니라, 분노를 모르는 불감증의 사회였다. 사람들이 망각의 강을 그렇게 쉽게 건너는 것에 대해 윤태호는 분노했고, 그 감성으로 『야후』를 그린 것이다. 그와 함께 분노를 모르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사회인지를 드러낸다.


‘과거 시점의 SF’로 좀 더 자세히 구현되는 현실

역사물을 주로 다루는 김혜린은 자신의 유일한 SF 작품 『아라크노아』를 ‘미래사극’이라 지칭한다. 이와 비슷한 어투로 윤태호의 『야후』를 평하면, ‘과거 SF’ 정도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야후』의 첫 출발 시기는 1985년이고, 김현이 폭주하는 시기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95년이다. 과거 시점을 기반으로, 윤태호는 수경대라는 상상의 공중 경찰을 만들어, 그 역사적 사건 곳곳에 투입시킨다. 그들은 88올림픽 때 성화봉송 주자를 경호하고 시위진압에 나서며 범죄와의 전쟁 일선에 투입돼 범죄자를 소탕한다. 또 각종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구조 활동을 벌인다. 윤태호는 지난했던 한국 현대사를 모조리 기록하며, 김현과 그를 닮고자 하는 신무학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들은, 역사적 사건에 어떻게든 관계하며, 윤태호는 이를 통해 과거의 사건을 좀 더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야후』에 구현된 시대를 20대 청춘으로 보낸 윤태호에게 그 시대는 분명 분노의 시대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적 사건을 만화적 배경으로 끌고 들어와 분노의 시대를 낱낱이 기록하며 그것을 비판했으리라. 윤태호는 이것이 『야후』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한다.

“원래 과거의 SF물들이 먼 미래의 공간을 동원해서 현재를 비판해낸다. 그러나 난 현재를 배경으로, 보다 현실감 있게, 현재의 열 받는 상황을 재현하고 싶다. 그게 내 출발점이었다. …… 나는 한 명의 인물이 여러 사건을 통해 그처럼 열 받는 심정을 드러내고 싶었다. 아현동, 성수, 삼풍. 삼풍은 주인공의 기억을 되살리는 계기, 설정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이 만화를 보는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리는 거였다.”13)

역사적 사건에 SF적 요소를 가미한 『야후』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더욱 인기 있는 작품이 되었고 문제작으로도 불렸다. 윤태호 역시 『야후』로, 작가주의를 표방한 작가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자신은 작가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야후』로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나에 대해 부담을 가지더라. 박흥용이나 이희재 선생처럼 작가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으로 알고 무슨 대가를 대하는 태도를 갖고 오더라. 그렇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작가주의라고 이야기 한 적도 없고. 이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이야기라서 최선을 다해 그리는 것뿐인데,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한번 그렇게 생각하고 오시더라. …… 그걸 스스로 표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몇몇 말고는. 자기 입으로 그렇게 규정짓긴 어려운 문제 아닌가. 왜냐하면 용어에 자신이 함몰되어서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면, 그건 변절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사고의 유연성을 희생하는 꼴이 될 테니까. 그런 점에서 작가라는 용어는 위험하다.”14)


악취미 개그 만화

흔히들 악취미 개그 만화 하면, 우스타 쿄스케의 『멋지다 마사루』나 유타카 타카하시의 『골 때리는 연극부』 그리고 후루야 미노루의 『Let's go! 이나중 탁구부』, 『그린힐』 등을 떠올릴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런 만화를 가리켜 ‘헤타-우마(へた-うま)’라 부르는데, 헤타는 하수(下手)란 뜻이고 우마란 상수(上手)란 뜻이다. 이 말을 해석하면, 하수의 그림처럼, 일부러 어설픈 그림을 선보이는 상수의 그림 스타일이란 뜻이 된다. 즉 그림 실력이 뛰어남에도 의식적으로 어설픈 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다.15)

윤태호의 『발칙한 인생』과 『수상(水上)한 아이들』이 바로 이런 만화다. 『발칙한 인생』은 동네 야구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다. 『미스터 블루』에 연재하다 잡지가 폐간되자, 잠시 중단된 『발칙한 인생』은, 2002년 만화잡지 『웁스』에 다시 연재되었다. 윤태호가 “10여 년이 넘게 준비를 했던 작품이라 아까워 다시 꺼내들었다”고 밝히는 『발칙한 인생』은, “3류 인생들이 변변한 직업도 없고 피해의식에 쌓인 채 살아가다 어느 날 야구를 하게 되”“야구를 통해 세상을 살아나가는 방법을 깨닫”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16) 그러나 『발칙한 인생』은 2002년 7월 잡지 『웁스』의 폐간으로 연재 매체를 잃어버리는 불운을 당했다.

『발칙한 인생』의 그림체는 윤태호의 말처럼 낙서 수준인데, 그런 그림체가 나오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발칙한 인생』은 동네야구 만화다. 내가 동네야구를 한 2년 정도 했다. 화실 사람들이랑 여의도에서 야구를 했는데, 동네 사람들과 하다 보니 엉망이었다. 거의 폭력이었지만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걸 그리려 했고, 그러다 보니 기존과는 다른, 낙서 같은 그런 그림체가 나왔다.”17)

이에 비해 만화잡지 『히트』에 연재한 『수상한 아이들』은 출판사에 반항하기 위해 어설픈 그림을 그려 내놓은 작품이다. 『야후』 한 작품에만 몰두하고 싶어 하던 윤태호는, 출판사 편집장이 다른 작품을 내놓을 것을 종용하자 홧김에 『수상한 아이들』을 그렸다. 출판사를 골탕 먹이려는 의도도 다분했다.

“난 출판사 욕 먹이려고 그랬다. 당신도 한번 당해봐라, 이렇게 성의 없는 만화에 원고료 줘 가면서 돈 아까운 줄 좀 알아봐라, 그런 심정이었다. 출판사에서는 수구부 자료를 뽑아주더라. 그렇지만 난 『수상한 아이들』에서는 수구부 룰 같은 건 안 나오니까 그런 걸 필요 없다고 거부하고 그냥 그렸다. 거기에 수구에 관해서는 전혀 안 나온다.”18)

『수상(水上)한 아이들』은, 정말 수상(殊常)한 만화다. 수구부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수구 경기규칙은커녕 수구에 대한 상식조차 나오지 않는다. 수구부에 있는 아이들도 수상하긴 마찬가지다. 덩크슛을 꽂아 넣어 농구부의 스카웃 제의를 받는 이들 모두가 수구부 소속이고, 그들이 기껏 한다는 수구 연습은 운동장에서 가슴에 선을 그은 채 행해진다. ‘깬다’는 말이 절로 흘러나온다. 그러나 그 점 때문에 『수상한 아이들』은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작가의 의도에서는 한참 빗나갔지만 말이다.

2001년 스포츠신문에 10달 동안 연재되었다가, 2002년 7월 단행본으로 출간된 『로망스』 역시 개그 만화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10대를 주요 독자층으로 삼는 국내 만화 시장에서 잘 다뤄지지 않던, 아니 거의 다뤄진 적이 없는 노인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만든 작품이라는 것이다.

노인들의 성 문제, 요실금 문제 등 노인들만이 고민하고 그들만이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를 3등신의 희화체 그림으로 표현한 『로망스』는, 잔잔한 일상의 재미를 독자에게 전해준다. 윤태호는 『로망스』로 2002년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 저작상을 수상했다.



웹툰으로의 진화

『로망스』를 연재할 때까지만 해도 윤태호가 활동하던 공간은 만화잡지나 신문 연재, 단행본 출간으로 이어지는 출판만화시장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각 포털사이트에서 만화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웹툰 시장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강풀과 강도하 등 웹툰 1세대들이 활동 영역을 넓혀갔고, 기존의 출판만화가들이 연재할 지면(만화잡지)이 점점 줄어드는 대신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한 웹툰을 연재할 공간이 점점 늘어갔다. 대세는 점점 웹툰으로 기울고 있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윤태호도 2006년 포털사이트 파란에 『첩보대작전』을 연재하며 웹툰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그리고 2007년 만화 유료 웹진 <만끽>에 자신의 이름을 새롭게 알리게 되는 『이끼』를 연재한다. 『이끼』는 이후 <만끽>의 폐간으로 연재할 곳을 잃었다가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2008년 8월부터 다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사실 윤태호가 『이끼』를 포털사이트가 아닌 만화 유료 웹진 <만끽>에 처음 연재한 것은 웹툰 작가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웹툰 영역은 나도 만화가 같은 재야의 아마추어 작가군들이 포털의 유머게시판 등을 이용해서 유저들하고 같이 놀면서 만든 공간이란 생각이 강했어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탄탄하게 닦아놓은 공간에 기성작가인 내가 무혈입성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정당한가? 그것도 그네들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아가면서? 이게 마음을 불편하게 했죠.”19)

그 때문인지 윤태호는 웹툰 작가들의 권리 보호에 앞장서기도 했고, 웹툰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동료 웹툰 작가들과 ‘누룩미디어’란 만화미디어 전문기업을 세우기도 했다. 그가 방심위의 검열에 맞선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한국판 본격 잔혹 스릴러, 『이끼』

웹툰으로 자리를 옮긴 뒤 윤태호는 『이끼』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끼』는 박소희의 『궁』과 함께 『한겨레』가 선정한 2000년대 한국만화 베스트 공동 1위 자리에 올랐고, 강우석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이끼』가 인기를 끈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작화와 스토리 모두 뛰어났기 때문이다.

사실 스릴러는 보통 숨김과 드러냄의 조화가 관건이다.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드러낼 것인가. 숨겼던 것을 언제 드러낼 것인가. 이런 조화가 스릴러의 생명인 긴장감을 살릴 수 있는 관건이다. 관객이나 독자가 결론을 미리 알아버린다면 스릴러의 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영화나 책을 보는 내내 ‘왜’ 혹은 ‘누가’란 질문이 끊임없이 관객이나 독자들의 입에서 곱씹어질 때 스릴러는 살아난다. <유주얼 서스펙트>가 그랬고 <식스센스>가 그랬다.

『이끼』도 마찬가지다. 아니 어쩌면 스릴러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되 한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정확히 응시하고 있기 때문에 더 잔혹한 스릴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끼』는 그 시작부터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음울한 배경에 음울한 인간 군상들. 낯선 곳에서 낯선 인간들이 벌이는 수상한 행동들. 윤태호는 만화가 한 편 한 편 진행될 때마다 무언가를 숨기고 무언가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 드러냄이 확연하진 않다. 무엇을 숨겼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이 만화는 첫 장면부터 강렬하다. 어둑한 배경의 집안에서 한 노인이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숨을 멈춘다. 노인의 죽음을 누군가 확인한다. 마침 노인의 아들로 보이는 이 만화의 주인공(류해국)은 서울에서 이혼 도장을 찍고 있다. 아버지가 살던 섬의 동네사람들로부터 아버지의 부음 소식을 들은 그는 곧 섬으로 떠난다. 아버지가 보기 싫어 7년 동안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던 그 섬으로.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다시는 나올 수 없을 만큼 깊은 굴”로 말이다.20)

『이끼』에는 여러 정보가 숨겨져 있다. 류해국의 가정사는 만화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알려진다. 그는 1년 전 사사로운 시비로 이혼을 했고 직장에서 잘렸다. 잘살고 있다는, 잘살아왔다는 믿음은 자기만의 생각이었을 뿐. 그는 그 일이 있기 전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어서 우연찮게 그가 찾아든 섬은 도피처였다. 그 도피처에는 그러나, 그를 반기지 않는 섬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서울로 돌아가지 않는 것에 이상할 정도로 심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왜 마을 사람들이 그를 꺼려하는지, 아버지의 죽음이 마을 사람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그리고 도대체 마을사람들은 어떤 사람인지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암시와 복선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이 만화에서 도드라지는 인물은 마을 이장이다. 만화가 진행될수록 그는 마을의 실질적인 지배자임이 드러난다. “돌맹이 하나까지 우리 손 안 닿은 기 없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마을을 지배하고 마을 사람들을 지배한다.21) 그 지배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완벽하게 보이는 지배가 이뤄졌는지 등은 나중에 드러난다. 이장이란 존재는 가장 베일에 싸여 있고, 그래서 가장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이끼』는 ‘본격 한국식 잔혹 스릴러’를 표방한다. 그리고 스릴러물다운 그림을 자랑한다. 검은 배경에 마을 이장이 누군가를 노려보는 듯한 2회의 첫 그림은 섬뜩함을 안겨준다. 누군가를 쏘아보는 그 눈(아니 눈깔이란 표현이 어울리겠다)은 만화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듯하다. 윤태호는 때로는 빛(명암)으로, 때론 얼굴 표정으로, 때로는 눈 하나로 이 만화의 분위기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끝까지 이어진다. 한 번도 에둘러가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고, 한국 사회의 비리와 부조리 그리고 잔혹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이끼』는 성공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작품이었다. 윤태호는 『이끼』로 다시금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렸고, 2007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나를 발광(發光)하게 만드는 발광(發狂)

현재 윤태호는 2010년 11월 8일부터 『한겨레 훅』에 「내부자들」을, 2012년 1월부터 포털사이트 다음에 『미생(未生)』을 연재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내공(?)이 팍팍 느껴지는 작품인데, 「내부자들」은 그 제목부터 심상찮다. 윤태호가 말하는 ‘내부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어떤 조직에나 조직의 정서와 반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보수 신문에서도 꽤 진보적 정서를 가진 기자가 있습니다. 반대로 진보 신문에서 보수적인 마인드를 가진 기자도 있죠. 그런 사람들이 조직에 순응하는 것은 현실적 선택 때문입니다. 살기 위해서죠. 이런 사람들을 ‘내부자들’이라고 봤습니다.”22)

그는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말이 환상이라고 느껴졌다”며 내부자들에게 시선을 돌린 이유를 설명한다. 즉 내부자들의 실체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23)

현재 연재 중이어서 성급하게 뭐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내부자들」이 한국 사회의 정치ㆍ경제ㆍ언론계는 물론 검찰과 경찰조직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내부자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비리와 부패의 근원과 메커니즘을 살피고 있다는 점만 밝혀두자. 그리고 내가 「내부자들」과 『미생(未生)』이 하루 빨리 완결돼 단행본으로 출간되길 기다리고 있다는 점도 밝혀두자.






예전에 윤태호는 “나를 발광(發光)하게 만드는 발광(發狂), 그것이라면 예측불허의 세상에서도 지속성장은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24) 그 말처럼 그는 ‘만화’에 발광(發狂)해 만화로 발광(發光)하는 중이다. 그의 발광(發光)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 주 |

1) 이성욱, 「만화심의 철폐 추진위원장 황미나 씨: “상상력 옥죄는 심의 강화 안될 말”」, 『한겨레』, 1996년 11월 8일, 21면
2) 서찬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이 웃기는 곳 아십니까」, 『시사IN』, 2012년 3월 10일, 64면
3) 구본준ㆍ문현숙, 「‘웹툰이 학교 폭력 조장’ 동의하십니까?」, 『한겨레』, 2012년 2월 28일, 11면
4) 박새미, 「웹툰이 만만한가? 만화가들 화났다」, 『미디어오늘』, 2012년 3월 15일, 인터넷판
5) 구본준ㆍ문현숙, 앞의 글
6) 김윤숙, 「“웹툰이 술ㆍ담배처럼 해롭나” 작가 윤태호, 검열 반대 앞장」, 『경향신문』, 2012년 3월 30일, 29면
7) 김윤숙, 「방통심위위ㆍ만화가협 ‘웹툰 자율규제’ 업무협약」, 『경향신문』, 2012년 4월 11일, 29면
8) 서찬휘, 「독특한 시선의 힘 만화가 윤태호」, 『네이버캐스트』, 2009년 5월 8일,
    //navercast.naver.com/korean/cartoonist/427
9) 서찬휘, 앞의 글
10) 최을영, 『만화에 살다』, 인물과사상사, 2002, 239쪽에서 재인용
11) 윤태호, 「작가의 특별 메시지」, 『야후 4』, 학산문화사, 1999, 2쪽
12) 윤태호, 「작가의 특별 메시지」, 『야후 1』, 학산문화사, 1999, 2쪽
13) 면식범(필명), 「만화가 윤태호」, 『퍼슨웹』, 2000년 12월 1일, //www.personweb.com/articles/104
14) 면식범, 앞의 글
15) 이재현, 「일본의 악취미 개그 만화」, 『만화 세상을 향하여』, 푸른미디어, 1999, 206쪽
16) 박인하, 「발칙한 그러나 신선한 상상력: 새해를 빛낼 작가 ② 윤태호」, 『동아일보』, 2002년 1월 21일, C7면에서 재인용
17) 면식범, 앞의 글
18) 면식범, 앞의 글
19) 서찬휘, 앞의 글
20) 윤태호, 『이끼 1』, 한국데이타하우스, 2010, 48쪽
21) 윤태호, 앞의 책, 227쪽
22) 이정국, 「한국사회 숨은 ‘엑스맨’들 뜨끔하겠죠」, 『한겨레』, 2010년 11월 3일, 26면
23) 이정국, 앞의 글
24) 김종목, 「주류의 길을 거부하고 자신의 길에서 우뚝 선 ‘미친 열정’」, 『경향신문』, 2011년 4월 30일,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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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을영

2005년부터 월간 <인물과사상>에 시사인물포커스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화에 살다』(2002)와 공저 『환경주의자들』(2001), 『미래를 파는 디지절 상인들』(2001), 『남성의 광기를 잠재운 여성들』(2001), 『베스트셀러과 작가들』(2001), 『상상력과의 전쟁』(2002), 『한국영화산업 개척자들』(2003) (이상 인물과사상사 펴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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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소설가가 그려 낸 사랑의 모습

어느 작품 하나도 놓칠 수 없는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앤솔러지 소설집. 다섯 편 모두 기존 문단 문학과 SF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우정과 사랑, 그리고 그 너머의 마음들까지 헤아린다. 장의사 안드로이드, 바이오 해킹 등 조금 낯선 소재지만, 당신의 시야를 환히 넓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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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시골 오두막에서 읽고 쓰는 것만으로 가득한 생활을 담은 배수아 작가 신작 에세이. 그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읽고 씀으로 인해 더 자라난 자신이, 자아의 자유로움이 보이는 것 같다. 삶 자체가 책이 되는, 낯설지만 환상적인 그 순간들로 안내할 매혹적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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