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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이현우, “좋은 책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

“책 읽는 사회 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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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흔히 독서가 전인적인 사람, 완벽한 사람을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요. 이런 얘기 하잖아요. ‘책을 읽었다면서 왜 저 모양이야?’ 그건 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인생을 변화시키는 책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몇 권의 책이 진로를 바꿔주기 때문에, 양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고, 책과 어떤 관계를 만드느냐 그게 더 중요할 것 같아요.

그래도 책 읽기는 계속된다




로쟈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인터넷 서평꾼 이현우 씨가 독자에게 두 권의 책을 내밀었다.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그래도 책 읽기는 계속된다』다. 세계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필명이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의 애칭이라는 걸 알 것이다. 실제로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고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저자의 이력을 보면 꽤 오랫동안 세계문학에 관한 애정을 품어온 게 느껴진다.

오래 벼르다 마침내 펴낸,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에는 셰익스피어의 『폭풍우』, 괴테의 『파우스트』,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등 어렸을 적 필독서 목록에서 만난 세계 고전 이야기가 빼곡하다. ‘고쳐 읽고 다시 쓰다’라는 부제처럼, 기존에 전형적으로 해온 독서 감상에서 벗어나, 다른 텍스트 혹은 다른 정보와 겹쳐 읽으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소설에 접근할 수 있게 길을 터준다. ‘세계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2부는 혼동해서 쓰고 있는 세계문학의 개념과 역사를 짚어본 글들이 실렸다.






『그래도 책 읽기는 계속된다』는 전작 『책을 읽을 자유』에 이어 서평 전문가 로쟈의 서평이 실린 책이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읽은 책을, 독서/ 인문학/ 삶/ 정의/ 정치 다섯 개의 분야로 분류해 글을 정리했다. <로쟈의 저공비행>이라는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신간을 소개하고, 여러 매체를 통해 서평을 쓰고 있는 그는 아마 누구보다 부지런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일 것이다.

스스로는 하는 일이 이것밖에 없어서 좀 더 읽고 좀 더 쓰는 것뿐, 환상을 거두어 달라고 당부했지만, 그가 책에 가진 애정과 열정을 보자면, 프로 서평가란 누구나 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거나 독자 중에서도 프로 독자, 서평가 중에서도 프로 서평가가 어떻게 책을 읽는지는, 독서 애호가들의 관심사이기 때문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책 좋아하는 일은 언제 들어도 즐겁고 반가우므로 로자의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 문학을 좋아하는 당신이 들으면 솔깃할 만한 책 이야기를 여기에 옮긴다.


로쟈의 세계문학 읽기, “고전, 신화도 그 책의 일부”







“고전에 대한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서 지혜를 발견하고 지혜를 발견하고 자아를 확장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즐거운 경험이다.(…) 게다가 이 즐거움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독서의 가장 강력한 동기는 이 쉽지 않은 즐거움, 곧 ‘어려운 즐거움’ 혹은 ‘즐거운 어려움’에 대한 갈망이다. 단순한 즐거움이 아닌 이 고차원의 즐거움이 독자가 얻을 수 있는 숭고한 경험이다.(『그래도 책 읽기는 계속된다』p.45)”

질문

셰익스피어나 안데르센 작가의 이야기를 곁들여, 기존에 문학만 접했을 때보다 다양한 맥락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어요. 다시 읽고 쓰면서 새롭게 발견한 건 무엇이었나요?

답변

『이방인』이나 『데미안』을 처음 읽은 건 고등학생 때였는데, 그때 느낌하고 많이 달랐어요. 아무래도 그때보다 공부를 많이 했으니까요. 이 책을 쓰면서 관련 논문도 많이 찾아보면서, 작품을 더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는데, 이 모든 일이 최초의 독서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과 또 달랐을 거예요. 젊은 시절에 읽은 텍스트를 지금 다시 읽으면서 생각해보면, 그 시차가 있잖아요. 그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질문

저도 아주 오래전에, 자발적 혹은 강제적으로 읽은 책들을 다시 떠올려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다시 읽었을 때의 즐거움은, 그 최초의 충격을 재생한다는 의미일까요?

답변

첫사랑이 그리운 것처럼 나르시시즘적 사랑이 있어요. 충격이든 애정이든. 한국 독자들에게 그 텍스트는 세계 문학일 확률이 높아요. 우리의 독서 여건상 그래요. 초등학교 때 제3세계 문학을 읽을 순 없었어요. 서양 문학에 편향되어 있다는 게 문제점이긴 한데 그게 우리 조건이었거든요. 이제 와서 그 조건을 바꿀 순 없지만, 읽기는 다시 할 수 있잖아요. 그런 교정작업을 병행해 기존의 독서 경험을 두텁게 하는 것, 그게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봅니다.

질문

최초의 충격을 준 세계명작이라면, 무엇이었나요?

답변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보통 문학과 자기 동일시가 될 때, 이건 나잖아! 하면서 빠져들잖아요.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늘 주시 대상이었고,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 기대를 한 몸에 받다가 문학 하는 친구와 사귀면서 급기야 자살 비슷한 죽음을 맞는 소년의 이야기잖아요. 결말이 좀 충격적이었어요. 제가 얼추 모범생이라고 생각했고, 공부를 좀 등한시했거든요.(웃음)

질문

고전으로 남는 작품들의 비밀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답변

어떤 아우라 같은 거예요. 사실 다시 엄밀하게 블라인드 심사를 하게 되면, 세계 문학 리스트에 빠질 작품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신화라는 것은 그 작품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그 작품에 부여된 신화적인 의미, 아우라를 다 걷어내고 민얼굴로서 작품을 볼 수 있는지? 또 그게 정말 제대로 보는 건지는 의문이에요. 셰익스피어를 비판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그것까지도 셰익스피어의 아우라에 포함되는 게 아닐까요. 그 밖으로 우리가 벗어나 작품을 마주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경험적으로는 어렵다고 봐요.


세계 문학의 가장 가장자리에 한국어 문학


질문

이 책을 읽으면서 세계 문학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섬세하게 따져보니, 해외 문학, 혹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혹은 고전으로 남은 세계 문학 세 가지 의미가 혼용되어 쓰이고 있더라고요.

답변

일반적인 의미는 월드 클래식에 해당하는 것이 세계 문학인데, 우리 말에서 다의적으로 쓰이고 있죠. 어떤 경우에는 혼선이 빚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문제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는 제안이에요. 이 문제에 대해 따져보려고 할 때 이런 문제를 고려하면 좋겠다는 거죠.

질문

지금의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은 어떤 차이를 갖고 있을까요?

답변

두 가지로 얘기할 수 있어요. 일단 지금 한국에서 쓰이는 문학이 세계 문학이에요. 외국 문학으로서의 세계문학, 동시대 문학이라는 의미에서 세계문학이에요. 무슨 자격조건 없이 그 자체가 세계 문학의 일부인 거죠. 월드 클래식이라는 범주를 생각하자면, 여기에는 번역의 문제가 들어가 있어요. 한국 문학 그 자체로 읽힐 수가 없어요. 이게 가장 큰 변수죠. 제아무리 대단한 작품이라고 해도,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읽을 수가 없으니까요.

그게 세계 문학이 될 경우.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쳐 전달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선 다른 문학일 수 있어요.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신경숙 작가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그 작품은 원작과 달라요. 영어권 독자에게 맞춰서 분량도 줄이고, 그들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재가공된 작품이에요. 우리 작품이 세계 문학이 된다고 할 때, 무엇이, 어떻게 읽히느냐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하죠. 그건 어려운 문제라고 봐요.

질문

제3세계도 그 점을 감수하고 인정받는 게 아닌가요?

답변

한국이 가장 특수해요. 제3세계 문학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언어는 제2세계 언어에요.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쓰죠. 그래서 실시간으로 읽혀요. 동남아 작가나 인도 작가도 영어를 쓰잖아요. 주요 언어 가운데 한국어가 가장 마이너 언어에요. 세계문학의 가장 가장자리에 한국’어’ 문학이 있어요. 그래서 막 바로 진입할 수가 없어요.

질문

주제적으로 봤을 때는 어떨까요? 세계 문학과 한국문학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답변

이미 가라타니 고진이 한 얘기에요. 문학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주요한 작품들은 제3세계 출신이면서 제1세계 언어를 쓰는 사람에게서 많이 나와요. 살만 루시디나 부커상 작가들. 제1세계는 이미 문학적 활력을 잃고 있어요. 그런 진단에 의미가 있다고 봐요. 선진국에서도 지금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 문학의 전성기였던 19세기, 20세기 초반 전성기 작가들이 다루고 고민했던 사회적 문제들이 임계치에 도달했다는 거죠.

그런 문제들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고, 따라서 문학의 역할이 그만큼 축소되어 있어요. 위대한 문학이 나올 만한 생산 조건은 아니죠. 한국은 거기에 비해 그런 조건은 충분하다고 봐요. 우리는 여러 가지 역사적인 아픔이 있고 진통이 있잖아요. 사회적으로 불행하지만, 문학을 위해서는 긍정적인 조건이라고 생각되고, 거기에 부응하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는지는 따로 생각해볼 문제에요.


로쟈의 책 읽기 “책과 어떤 관계를 만드는지가 중요해”







“자전거 타기에 비유했지만, 독서도 몸이 하는 일이기에 ‘책 읽는 몸’ ‘책 읽는 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혹 조금만 책이 읽어도 몸이 쑤신다거나 몸이 뒤틀리시는가?(…) 그게 진단이라면 처방은 물론 그렇게 익숙해지고 각인될 만큼 책과 가까이하는 것이겠다. 여기서 ‘가까이하다’라는 말은 복합적인 의미를 갖는다. 눈으로 직접 읽는 것만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그냥 손에 들고 다니거나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것까지 포함한다.(『그래도 책 읽기는 계속된다』p.37)”

질문

『그래도 책 읽기는 계속된다』를 보면 정치, 정의, 인문학 등 최근의 독서 경향을 살피는 글이 있는데요. ‘정의 열풍’ 이후에 독자의 발걸음이 사회적 관심에서 벗어나 자신의 처지를 돌보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위로, 힐링 코드가 여전히 출판계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보시나요?

답변

제 역할은 서평가이기 때문에, 그런 현상을 분석하는 건 출판평론가의 몫인 것 같아요. 다만, 한국 사회의 무의식이 그렇게 이동하는 걸 출판이 보여주고 있구나, 아는 정도죠. 사회가 점점 유아화되는 것 같아요. 그건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거든요. 프랑스 작가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에세이 『순진함의 유혹』을 보면, 책임 회피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대요. 어리거나 정신박약이거나. 우리 사회도 포지셔닝을 그렇게 해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질문

로쟈 선생님은 그렇게 피하고 싶은 상황 앞에서 어떻게 대응하시나요?(웃음)

답변

각자 해결하는 일인 것 같아요. 엄살 부리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고요.

질문

그런 태도나 힘을 기르는 것 역시 우리가 계속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겠죠?

답변

나한테 위로가 위안을 주고 힘을 주고. 그게 하나의 역할이긴 하지만, 책에서 기대할 수 있는 전부는 아니잖아요. 좀 더 다양한 책을 접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원하는 걸 충족시켜 주는 책은 조심해야 해요. 자기 욕망을 회피하기 해주거든요. 지젝 방식의 분석이에요. 지젝은 원하는 것과 욕망하는 것의 간극이 있다고 얘기하는데, 욕망하는 건 굉장히 급진적이에요. 쾌락원칙 너머에 있어요.

자기가 온전히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면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건 자기가 정말 욕망하는 게 아닐 확률이 높아요. 정말 원하는 거라면, 쾌감 원칙만을 충족시켜주지 않아요. 어떤 고통을 수반하게 되어 있어요. 『데미안』식으로 말하자면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이죠. 이런 것을 반드시 수반해요. 그런 게 없는 달콤하고 편안한 휴식 같은 거라면 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어요.

질문

그럼 좋은 책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인가요?

답변

사사키 아타루의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도 나오는 얘기에요. 책은 ‘읽을’ 수 없다. 읽고 나면 읽기 전과 후가 달라질 수 밖에 없으니까. 어떤 책이 읽은 후에도, 이렇게 머물러 있어도 괜찮아, 안주하게끔 하는 책이라면, 일급의 책은 아니에요. 읽은 후에 이대로 지속될 수 없다고 자극을 주는 책. 그게 일류의 책이고, 그런 일류의 책들은 많지 않아요. 자기 계발서가 주는 충격은, 세상이 더 큰 충격으로부터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보다 더 큰 충격. 망치로 때리는 것 같은 충격을 주는 책이 아닐까 싶어요.

질문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 나오는 대목을 빌어 질문 드리겠습니다. 알면 미쳐버릴 정도의 일류의 책. 읽기도 두려운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답변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이 그랬고, 니진스키나 지젝의 책도 그랬어요. 제가 전도사로 활동하는 책들이 그렇죠.(웃음)

질문

우리나라에서 다독가를 꼽자면, 선생님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상징성을 획득하셨어요.(웃음)

답변

‘유주얼 서스펙트’ 같은 거죠.(웃음) 티를 내서 그런 거고, 저보다 더 많은 책을 읽는 분들이 있어요. 다만 책을 검색하는 횟수는 손가락 안에 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무슨 책이 나오고 있는지 끊임없이 모니터링 하고, 책 정보를 스크랩하고, 올리고 하는 작업은 제가 제일 오랫동안 많이 해오고 있는 것 같아요.

질문

이전에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책이라고 했는데, 정말 책을 많이 읽으면 똑똑한 사람이 되나요?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나요? 선생님은 많은 독서를 통해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요?

답변

좀 더 나이 들어봐야 알 거에요.(웃음) 반론이 있을만한 얘기지만, 지젝이 이런 얘기를 했어요. 신념을 지키는 것과 지성을 갖는 것과 정직한 것, 한 사람이 이 세 가지를 다 가질 수 없다고요. 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책을 통해서 자기가 가진 신념을 강화시킬 수 있어요. 지성을 확장할 수 있어요. 더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셋 다 갖추긴 어려워요.

사람들이 흔히 독서가 전인적인 사람, 완벽한 사람을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요. 이런 얘기 하잖아요. ‘책을 읽었다면서 왜 저 모양이야?’ 그건 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인생을 변화시키는 책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몇 권의 책이 진로를 바꿔주기 때문에, 양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고, 책과 어떤 관계를 만드느냐 그게 더 중요할 것 같아요.


로쟈 읽기 “러시아 문학의 영혼, 부활의 이야기, 흥미롭다”







“분류하자면 나 또한 책 중독자다. 더 나쁘게는 평민 책 중독자.(…) 문제는 라비의 정확한 지적대로 대부분의 책중독자는 치유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치유되고자 하는 욕구가 우리 영혼을 들어 올릴 수 있기 전에, 우리는 중독이라는 시궁창에서 나뒹굴어야 한다.” 이게 치유법인가? 그렇다. (…) 라비의 충고는 이렇다. “책을 많이많이 사들여라. 그래서 심한 곤경에 빠져 다시는 책을 사고 싶지 않을 때까지.”(『그래도 책 읽기는 계속된다』p.33)”

질문

로쟈는 도스토예스프키 소설 『죄와 벌』에 나오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애칭이죠. 가난한 대학생인데 이 이름에 지극한 애틋함을 느끼는 까닭은 뭔가요?

답변

그때, 『죄와 벌』이라는 소설을 번역하고 있었어요. 그 계기로 쓰기 시작했는데, 두 자아를 갖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또 가난한 대학생 시절이었는데, 저와 로쟈가 처지가 비슷하더라고요. 아주 작은 하숙집 독방에 살았고, 주머니에 돈도 별로 없고, 자연스럽게 초인 사상에 관심을 둘 수 밖에 없고…… 하는 것들이요.(웃음)

질문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을 읽고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고요. 그때, 러시아 문학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혹적이었나요?

답변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요. 유럽 문학에도 하층민을 다룬 소설이 있는데 거기에는 빈곤만 있어요. 『죄와 벌』 같은 작품에는 빈곤과 또 다른 코드가 있잖아요. 혹은 영혼이라든지 부활이라든지 혹은 문학의 역할이나 책임이라든지, 그런 데에 질문을 던지는 게 매혹적이었어요. 그런 게 맘에 들어서 좋아하게 된 거고요. 인간이 기본적으로 유한하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그럼에도 기대하고,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것, 의지 욕망을 갖는다는 게 흥미로워요. 인간은 단순히 유기체로서 삶을 사는 게 아니라, 꿈을 갖고 생각을 하면서 형이상학적 삶을 사는 거잖아요. 그런 문제가 늘 흥미로워요.

질문

러시아 문학은 구원에 대해 묻는 이야기가 많잖아요. 공부하면서 생각해보셨을 것 같아요. 삶을 구원해 주는 건 무엇인 것 같나요?

답변

지금은 ‘어떻게 인간을 구원할까’가 아니라 ‘과연 인간이 구제받을만한가’에 대해서 생각해요.(웃음) 문제의식이 바뀌었어요. 조금 더 쿨해졌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기대치가 낮아졌다고 해야 하나.

질문

책에서 선생님이 독서 운동을 꿈꾼다고도 얘기하셨잖아요. 세계문학 다시 읽기, 번역서 다시 읽기 같은 작업이라든지. 오역을 지적한다든지 서평을 쓴다든지 등의 선생님 활동은 한 맥락에서 이뤄지는 작업인 것 같아요.

답변

며칠 전에 고등학생 대상으로 독서 강의를 하러 갔어요. 이런 강의에 관심 있는 친구들만 모였을 텐데도 절반 이상 자고 있었어요. 물어보니까 책을 한 달에 한 권 또는 두 권 읽는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아주 놀랄 일은 아니지만, 좋은 데이터는 아니죠. 과연 한국에 장래가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어제 주제는 책을 읽을 자유였는데, 책을 읽는 자유를 말하기 전에 책을 먼저 손에 들어야……(웃음)

질문

결국, 독서부흥운동을 위한 거죠?

답변

우리가 독서 국민이 되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해요. 한 달에 한 권에서 일주일에 한 권 책 읽는 사회로 바뀌면 한국은 어떻게 달라질까?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유혹하는 방법, 하나는 사회적으로 무시하는 방법. 읽지 않는 사람을 이상하게 여기는 분위기를 만드는 거죠. 하지만 어떤 책을 권장도서로 읽히는 건, 전체 사이즈는 변화가 없고, 책만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데 그치기 십상이에요. 그건 의미가 없어요. 전체 독서량이 늘어나는 게 중요해요.


“책 읽는 사회 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질문

어떻게 유혹해야 할까요?

답변

한국 사람들이 그간 여유가 없었다고 생각해요. 도서관에서 강의할 때 보면, 60~70대 연세의 독자들이 열정적으로 참석하는 모습을 봐요. 그런 거 보면 아예 수요 자체가 없는 건 아니구나 싶죠. 다만 여건의 문제가 있는 거죠. 제도적으로 바뀌어야 할 부분은, 공부하고 독서와 분리된 지금 상태를 개선해야 해요. 책 읽는 훈련이 전혀 되지 않은 채로 대학에 오잖아요. 대학공부에 맞는 맞춤식 공부가 중고등학교 때 이뤄져야 하는데, 그게 독서에요. 우리는 입시에 관심이 많으니까 독서력으로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방법이 어떨까? 한국적 국민성이 있으니까, 한번 독서 붐이 불면, 놀랍도록 빠르게 달궈질 수도 있다고 봐요.

질문

독서 대중화에 어떤 직업적 목표를 두고 계신가요?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세요?

답변

독서 대중화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중간 다리 역할을 하고 싶어요. 쉬운 책 독자, 어려운 책 이렇게 독자가 분리된 건 제가 생각하는 좋은 사회의 모습이 아니에요. 중간으로 좀 더 모이게 하고 싶어요. 중계상 역할, 삐끼 역할을 하는 거예요. 가끔 서평 덕분에 책을 읽었다, 고맙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지금 하는 일이 아주 효과 없는 일은 아니구나 싶어요. 원래는 관심 밖에 있고, 포기한 책이지만 제가 적당하게 다리를 놔서 관심 두게 되고 읽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면 괜찮을 것 같아요.

질문

책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래도 책 읽기는 계속된다』에는 모르는 책이라도 옆에 끼고 있으라고 제안하셨죠. 아무런 독서 기반이 없어서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답변

책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다 소화하겠어요? 들고만 다녀도 되고, 한 줄만 읽어도 돼요. 책의 용도는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질문

로쟈 선생님을 만났으니, 묻지 않을 수 없네요. 서평을 잘 쓰는 방법 하나만 알려주세요.

답변

서평 쓸 때 분량을 정해놓고 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경우에는 너무 길어요. 그러면 긴장이 떨어지거든요. 정해놓은 분량에 맞추려면, 퇴고하게 돼요. 그게 자기 서평 쓰기를 조금 개선해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질문

로쟈 선생님이 가장 많이 가진 건 뭐고, 가장 적게 가진 건 뭔가요?

답변

책이 가장 많아요. 처치곤란이에요. 매주 쌓여요. 이런 책을 계속 쓰는 것도 책을 치워버리기 위해서인 것도 있어요. 쏟아지는 책들에 비해서는 쓸 수 있는 책이 비교되지 않기 때문에 쌓일 수 밖에 없어요. 일주일에 30권 정도 사는 것 같은데, 읽는 건 10분의 1이고 나머지는 쌓여요. 기회만 보고 있는 거죠. 아이하고 놀아주는 시간? 대단히 이기적이라고 해요. 다른 스케쥴을 생각할 수 없어요. 다른 것에 대해 욕심이 별로 없어요. 자기 욕망은 길들이기 나름이니까. 저는 휴가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없어요. 내가 무슨 자격으로 휴가까지. 뭘 했다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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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 이현우 저 | 현암사
쉼 없이 책읽기-쓰기-소개하기를 이어온 ‘괴물의 서평가’ 로쟈의 두 번째 서평집이다. 이번 서평집은 2010-2012, 2년간의 독서 기록이다. 새 책에는 ‘삶처럼 계속될’ 책읽기뿐 아니라 지속적인 국민적 독서가 바꾸어 놓을 우리의 삶을, 모두가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고 말하는 사회를 꿈꾸는 로쟈의 희망이 담겨 있다. 이번 책에서는 정치, 사회학적 독서에 대한 한층 두터워진 관심이 돋보인다. 그리고 저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독자로서 우리가 어떤 책들과 함께하고 있는 것인지” 독자들이 확인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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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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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가던 섬유공장 버크셔 해서웨이가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거듭난 과정을 보여준다. 버크셔의 탄생부터 버핏의 투자와 인수 및 확장 과정을 '숫자'에 집중한 자본 배분의 역사로 전한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담아 가치 투자자라면 꼭 봐야 할 필독서다.

뇌를 알면 삶이 편해진다

스트레스로 업무와 관계가 힘들다. 불안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 그냥 술이나 마시고 싶다. 이런 현대인을 위한 필독서. 뇌과학에 기반해 스트레스 관리, 우울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수면과 식습관에 관해 알려준다. 처음부터 안 읽어도 된다. 어떤 장을 펼치든, 삶이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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