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남편 모두 죽고, 친정도 망하고 결국…” - 『덴동어미전』 박정애
고 최진실 씨가 이 책을 쓰는데 박차를 가하게 만들었다” “한 여인의 일대기가 살아있고 기록된 것은 덴동어미전이 유일”
가부장제가 심한 영남 지방에서 1년에 한 번 여자들만의 축제. 수다를 떤다. 각자의 처지를 털어놓고 서로를 위로한다. 이야기 치료의 장. 그리고 『덴동어미전』은 기고한 덴동어미의 생을 통해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준다. 그리고 지난 6월29일,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덴동어미전』 출간 기념 소설가 박정애와 함께하는 북콘서트가 열렸다.
대개의 한국 남자들, 소아병적인 연대를 한다. 알코올 연대. 오죽하면 이런 우스개가 있을까. “한국 성인 남자는 여가의 절반을 술을 마시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술을 깨우는 데 사용한다.” 그들은 술이 없으면 ‘반심불수’다. 술자리를 갖고 술에 취해야 의리를 찾고 정을 느낀다. 퇴행적 온정주의.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이 아님에도, 꼭 그래야만 버티는 서글프면서도 미성숙한 연대 아닌 연대.
그러나 여자들은 다르다. 여자들의 연대는, 남자들의 것이 짝퉁이라면, 진짜다. 이야기를 많이 하고, 서로를 위로해준다. 목적지향적인 남자와 달리 여자는 관계지향적이기 때문이다. 경쟁적으로 남자들의 관계가 형성된다면, 남녀관계는 성적 긴장감이 있고, 여자들의 관계는 피지배자의 연대감이 개입, 그들을 묶는다.
과거, 화전놀이에서도 그 전통을 찾을 수 있다. 가부장제가 심한 영남 지방에서 1년에 한 번 여자들만의 축제. 수다를 떤다. 각자의 처지를 털어놓고 서로를 위로한다. 이야기 치료의 장. 그리고 『덴동어미전』은 기고한 덴동어미의 생을 통해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준다.
그리고 지난 6월29일,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덴동어미전』 출간 기념 소설가 박정애와 함께하는 북콘서트가 열렸다. 사회자는 이날 부산에서 올라온 소설가 서진. 여름비가 내렸고, 훈훈한 이야기가 오갔던 이날의 풍경. 모던가야그머, 정민아도 함께 했다.
이 책, 어떻게 쓰게 됐나?
소설의 모티브가 된 ‘화전가’가 있다. 작자 미상이다. 보통 내방가사와 달리 이야기가 있고, 캐릭터도 선명하다. 학자들이 다른 화전가와 구분하기 위해 ‘덴동어미전’이라고 이름 붙였다. 『구운몽』이나 『한중록』처럼 유명한 고전은 아니다.
“이 소설의 모태는 《소백산대관록》이라는 필사본 시가집에 실린 작자 미상의 <화전가>입니다. 여느 화전가와 달리 덴동어미라는 인물의 성격과 이야기가 뚜렷이 살아 있어 <덴동어미화전가>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하지요.”(p.242) | ||
“오늘도 사는 게 힘든 당신, 제 설움에 눈멀어 ‘다른 길’, ‘다른 풍경’은 통 못 보는 당신. 어떤가요, 저 비봉산 화전놀이에 슬그머니 끼어보심이? 덴동어미의 마술 같은 말에 당신의 상한 마음을 얹어보심이?”(p.246) | ||
화전가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은 알았다. 그래서 날로 먹은 것 아닌가, 물어봤다. (웃음) 뒷부분이 특히 좋았다.
내방가사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시가 문학이고, 분량이 길진 않다. 덴동어미라는 인물을 가져왔으나 사건 등은 여러 가지를 내가 만들었다. 날로 먹은 건 아니다. (웃음) 처음과 뒤는 완전히 새로 창작한 것이다.
남편이 네 번 바뀌었고, 덴동어미에 대한 해학적 이야기를 무척 재밌게 읽었다.
되게 슬픈 이야기인데, 해학적으로 읽었다고? (웃음) 당시는 결혼을 하면 친정나들이를 못했었다. 시집을 가서 1년 뒤에나 친정을 간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가장 좋은 나들이가 친정 나들이, 그 다음이 화전 나들이였다. 첫 번째 남편은 그네를 타다가 죽고, 두 번째도 남편이 망하고 역병에 걸려서 죽는다. 경주에서 바깥머슴 안머슴을 부리고 살다가 경주에 역병이 돌면서 남편이 죽는다. 돈 빌려준 사람도 다 죽고, 결국 덴동어미가 구걸을 한다.
남편이 죽고 나서 구걸도 하고 그런다. 요즘 같으면 목숨도 위태롭고 보살펴 주지 않는데, 이때는 인정이 남아서 동네 사람들이 도와주고,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 그릇 장사하는 남자.
두 번째 남편이 죽고 걸인이 돼서 울고 있는데, 그릇 장사하는 노총각이 다가와서는 너무 서럽게 운다며 덴동어미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릇 장사하는 남자가 마음 맞춰서 살아보자고 해서 함께 살아간다.
사투리를 아주 구수하게 구사했다.
사투리가 처음에는 읽는데 애로가 될 수 있는데, 고비만 넘기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많이 사랑해 달라. (웃음) 내가 친숙해서 그렇지, 다른 지방 사투리였으면 엄두가 안 났을 거다.
마지막에 나이 든 엿장수 남편을 만났다. 그때 애가 나온다. 불에 대였다고 ‘덴동’이다. 불에 데인 아이라는 뜻이다. 결국 그 남편도 죽는데…
마지막 남편인 조 첨지와 덴동어미가 아이 재롱에 빠져서 대목이 온 줄도 모른다. 조 첨지 친구가 애를 위해 돈을 벌라고 하자, 사흘 밤낮 엿을 만들었다. 열기가 가득 찬 상황에서, 동해안에 푄현상이 있는데, 심한 바람이 분다. 초가집이 홀랑 타고, 남편도 불에 타 죽는다.
네 명의 남편이 죽고, 친정도 망했다. 그때 덴동어미를 보살펴 준 사람이 안동댁이다. 주변 사람도 함께 보살펴주고. 그리곤 마을 사람들과 화전을 간다.
화전놀이가 영남 지방에서 성했다. 영남이 가부장제가 가장 강했다. 여자에 대한 억압이 심했던 거지. 그래서 여자들이 숨 쉴 수 있는 숨구멍이 있어야 했는데, 1년에 하루 여자들끼리 화전놀이를 나갔다. 배불리 먹고 수다를 떨면서 산천 구경도 한다. 영남 지방 여자들은 꼭 이걸 지키려고 한다. 여자들의 명절이지. 다른 명절은 ‘일 명절’일 뿐이었다.
그 좋은 날, 10대 청상과부가 계속 울고 있다. 함께 놀러가서 한 사람이 울면 분위기가 가라앉잖나. 이유를 들어보니, 친정에서 개가하라는데, 그 자리도 전실 자식이 줄줄이 딸려 있는 거다. 어떻게 해야 할지 죽고 싶은 거다. 진달래가 자기를 비웃는 것 같고, 바람소리도 슬프고, 꾀꼬리는 보기도 싫고. 다 싫은 거지. 왜 나를 화전놀이 오자고 했느냐고.
이때 덴동어미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풀고, 깨달음을 말한다. 이야기 치료라는 것이 있다. 정신과 치료도 억눌려 있던 자신의 감정, 분노를 말로 풀어내는 거다. 화전놀이를 하면서 집단 치유의 장이 열린 셈이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불현듯 깨닫는다.
그때 달실댁과 안동댁의 수양딸 봄이가 어떻게 변하는지가 주제라고 생각한다.
과거 여성들은 개가와 수절의 프레임에만 갇혀 있었다. 다른 길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덴동어미가 말해준다. 덜 가파른 비탈길이 있을 수도 있고, 계곡을 돌아가는 길도 있을 거라고. 개가 여부만 놓고 고민하지 말라고 한다. 당시가 1920년대였는데, 학교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도 해준다. 개가 여부에 갇히지 말고 다른 풍경에 눈을 돌리라고 말한다.
여성들의 연대의식이 특이한가 보다. 남자들 술 마시면서 연대한다. 우리 친구 아이가, 그러면서. 그런 연대의식과 여성들의 것은 다르다.
아직도 여름마다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고등학교 때, 대구에서 자취를 같이 한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과 만나면 여행보다 이야기를 많이 한다. 서로 위로해주고. 그런 시간이 좋다. 대학 때 함께 책을 읽고 격려해준 부분이 지금도 내 인생에서 큰 역할을 한다. 지금은 그런 전통이 많이 사라졌지만.
말씀하신 이야기 치료, 진짜 공감한다.
덴동어미도 남편들이 계속 죽고, 자신도 죽으려고 한다. 그때, 할머니들이 꽃도 필 때가 되어야 핀다는 식의 이야기를 해준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눈을 뜨는 거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책이라도 읽어야 한다.
원전을 조금 훑어봤다. 이렇게 여인의 일생을 다룬 조선시대의 다른 문학이 있나? 또 영화나 뮤지컬로 제작할 의향은 없나?.
없다. 한 여인의 일대기가 살아있고 기록된 것은 덴동어미전이 유일하다. 영화나 뮤지컬 같은 것, 제작하면 좋은데, 돈이 없어서 못한다. (웃음) 자본 있는 분들이 해줬으면 좋겠다.
수업을 들은 학생인데, 수업 때 보면 거침이 없으셨다. 책 역시 거침이 없다. 비결이 뭔가? 타고 나는 건가, 노력의 결과인가?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쓴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기도 하지만,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쓴다. 나는 서진 작가처럼 뉴욕의 좀비 이야기는 못 쓴다. 나는 청도 초가집에서 10년을 살았다. 소 키우고 막내 동생 업어서 키우고. 그래서 이런 늙은 소설 쓰는 것 같다. (웃음)
또 살던 곳이 집성촌이어서 나가면 다 삼촌, 아제, 이모였다. 그래서 그런 세계를 형상화하는 것 아닐까? 나는 내 속에서 이야기가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걸 쓴다. 전업소설가가 아니라서 시간이 파편적인데, 앞에 쓴 것을 읽어보고 그 리듬을 타면서 읽고 쓰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그 이음새가 거침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오늘, 다른 책이 나왔다. “『사람 빌려주는 도서관』이라는 책이다. 어린이 책, 청소년 책도 썼는데, 책이 사람에게 가장 영향을 미치는 시기는 청소년기다. 나도 청소년기에 읽은 책이 내 삶의 방향을 바꿨다.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하고,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그때 읽은 책 덕분이다. 그래서 청소년 책의 힘을 높이 평가한다. 책임감도 느낀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도 청소년 책이고, 앞으로도 청소년 책 몇 권을 더 쓸 것 같다.
하나만 소개하자면, 원주 출신의 기생이야기다. 엄마가 기생, 아빠는 양반인데, 기생의 딸은 기생이 된다. 기생 아들에게 시집을 가든지. 김금원이라는 아가씨도 길이 두 가지였다. 기생집 아들에게 시집가든지, 기생이 되든지. 그런데 이 아가씨가 몸은 약했는데, 열네 살에 부모와 담판을 짓고, 남장을 하고 전국 여행을 떠난다. 구경도 실컷 하고 돌아 와선, 내 인생 살겠다며 기생이 되는 여자의 이야기다.
운명이나 팔자를 넘어서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김금원은 나는 왜 이 모양이냐고 생각하지 않았다. 요즘으로 치면, 성적 압박 등으로 죽고 싶을 때, 죽느니 여행을 하는 게 나은 것 같다. 그렇게 조선시대, 여자, 신분의 한계에 묶여서 힘들었던 열네 살 소녀가 세상을 구경한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그리고 이 여성이 여행기를 남겼다. 여행기도 짧고, 한문으로 써서 독자들이 감흥을 받기 어렵다. 그것을 텔링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바람이 돼야 만날까/ 구름이 돼야 만날까/ 강물.. 바다.../ 그대가 무엇이 되었어도 그 무엇이 되었어도, 난 그대 가까이 있는 무엇이 되고 싶네/ 물고기로 이별할까, 가재 되어 이별할까/ 그대가 무엇이 되었어도 그 무엇이 되었어도/ 난 이대로 그대와 나 사이/ 이별 안에 있네/ 그대가 무엇이 되었어도, 그 무엇이 되었어도/ 난 이대로 그대와 나 사이에 이별 안에 있네/ 무엇이 되어 만날까. 어찌 이별할까. |
제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물의 말』의 작가 박정애의 장편소설. 무명의 조선조 여인이 쓴 내방가사인 '덴동어미화전가'를 소설화하여 쓴 장편소설. 아내의 임무, 모성의 의무, 여성의 압박을 모두 벗어던지고 단 하루 그녀들이 해방되는 시간. 남편과 시어머니 '뒷담화'도 마음껏 하고, 출산과 육아의 스트레스도 확 날려버리고, 364일 고된 노동을 잠시 접고 딱 하루, 아내들의 기적같은 외출이 빚어내는 감동의 하모니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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