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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릿수 나이의 비밀 - 집안일을 내 일처럼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법

“숫자가 둘이 되면 그때부터는 남을 위한 것도 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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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이란 남의 시킴이나 부탁을 받고 그 일을 대신하는 것을 말한다. 즉, 내 일이 아닌데 해준다는 것인데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집 안에서는 네 일, 내 일의 구별이 분명치 않다. …… 살다보면 때로는 내 일이 아니더라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또 내 일이 아니더라도, 단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왜 나만 해야 되죠? 대체 언제까지요?”


직장을 다니면서 두 아이를 키우는 한 엄마에게 남편과 집안일을 할 때 역할 분담을 하되 남편이 고생하고 애쓴다는 점을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하자 항의하듯 한 말이다. 부부가 함께 일하는데 왜 나는 인정받지 못하면서 남편이 돕는 것은 어째서 알아주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일차적으로 엄마의 몫이며, 또 남편이 집안일을 돕도록 설득하기 위해서는 애쓴다는 점을 알아주는 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지만 그 엄마는 수긍하지 않았다.

“아이들한테 엄마는 하나잖아요. 아무리 부모라도 엄마 자리는 특별한 거예요. 그런데 자꾸 ‘왜 나만’이라고 하면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요? 엄마 노릇하는 게 그렇게 억울하면 미리 계획하고 가족을 꾸렸어야지요.”

내 입에서 기어이 입바른 소리가 나왔다. 몇 년 동안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아이들이 외로워하다 못해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데 왜 나만 힘들게 살아야 하느냐는 그 엄마의 말이 너무 이기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일주일 후 그 엄마를 다시 만났다.

“그동안 생각 많이 해봤어요. 내 아이를 내가 돌보는 게 맞는데도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도무지 그런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어요.”

아이 엄마의 목소리는 어느덧 떨리고 눈시울은 점차 붉어지고 있었다.

“어렸을 때 일이 생각났어요. 엄마가 집안일을 시킬 때 언니는 공부해야 돼서 안 되고 동생은 어려서 할 수 없으니 네가 해야 되지 않겠냐고 항상 그러셨어요. 저도 해야 될 공부가 있고, 아직 어려서 집안일이 버거웠는데 늘 내가 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셨어요.”
“어린 마음에 많이 속상하고 억울했겠네요.”
“맞아요. 왜 나만 집안일을 해야돼? 언제까지 나 혼자 이걸 감당하라는 거야? 이런 울분이 늘 있었던 것 같아요. 심지어 그런 일이 어린 시절에 끝난게 아니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그 감정이 남편에게까지 간 것 같아요.”


속마음을 털어놓은 아이 엄마는 어렸을 때 감정을 현재와 분리하고 엄마 자리로 돌아가겠노라고 하였다.

집안일. 식사 준비에 필요한 두부나 계란 사 오기, 빨랫줄에 걸린 빨래를 걷고 개서 서랍에 넣기, 누가 흘렸는지 모르는 쓰레기 줍기 등. 집안에서는 하루 종일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일들이 사방에 널려있다. 이 때 자잘한 일들은 흔히 아이들 몫이 된다.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다. 심부름이란 남의 시킴이나 부탁을 받고 그 일을 대신하는 것을 말한다. 즉, 내 일이 아닌데 해준다는 것인데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집 안에서는 네 일, 내 일의 구별이 분명치 않다.

심부름을 시키는 엄마 입장에서는 심부름을 맡기기에 믿음직하거나 만만한 자식이 있고, 그렇지 않은 자식이 있다. 유순하고 동작이 민첩해서 실수 없이, 군소리 없이 맡긴 일을 해내는 자식이 심부름을 도맡는 일은 어느 집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이 때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심리적으로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난 그런 거 하기 싫어. 동생이 있는데 내가 왜 해야 돼?”
“난 원래 못해. 내가 제대로 못하니까 동생만 칭찬하고 나는 자꾸 혼내는 거잖아.”
“왜 오빠는 안 시키고 나만 시켜?”
“엄마한테는 항상 언니가 최고니까 난 칭찬받으려면 심부름이라도 잘해야지.”


우리 집 두 아이에게도 심부름은 다른 스토리를 갖는다. 천성적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읽는 큰아이는 내가 뭔가를 시키면 군소리 없이 잘하는 편이다. 거기에 비해 둘째는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군소리를 하는 편이다. 큰아이와 둘째는 나이 차이가 여섯 살이라 둘째는 오랫동안 막내 취급을 받았다. 웬만한 것은 우리 부부가 하고, 아이가 할 만한 심부름거리가 있으면 큰아이가 하곤 했다.

둘째가 커가면서 소소한 심부름을 시키자 아이는 그게 자기가 할 일인지 아닌지 따지기 시작했다. 워낙 자기와 관련된 것들을 다른 사람이 해주다 보니 추가로 생기는 일에 대해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한 것 같았다. 대신 자기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별 말 없이 해내기에 그런 행동을 고쳐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가 커가면서 이런 태도가 크게 바뀌지 않자 나는 고민이 되었다. 살다보면 때로는 내 일이 아니더라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또 내 일이 아니더라도, 단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아이가 이걸 왜 내가 해야 하느냐고 따진다면 문제가 될 것 같았다.

둘째가 초등학교 3학년, 우리 나이로 열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아이를 불러 놓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너 올해 몇 살이지?”
“열 살.”
“숫자로 써 봐.”
“10.”
“여기 숫자가 몇 개 있어?”
“?”
“잘 봐! 10이면 여기에 숫자가 두 개잖아. 1하고 0. 누나는 열여섯 살이니까 1하고 6. 엄마, 아빠도 나이는 모두 두 자릿수야.”


아이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은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너 작년에는 아홉 살이니까 9자 하나였잖아. 나이에 숫자가 하나냐 둘이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어. 숫자가 하나일 때는 나 하나만 생각하고 살아도 돼. 근데 숫자가 둘이 되면 그때부터는 남을 위한 것도 해야 돼.”


아이의 눈이 더 동그래졌다. 뭔가 어른들끼리만 은밀하게 공유하던 삶의 비밀을 이제 알아차렸다는 듯이 우쭐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제는 네가 버린 쓰레기도 주워야 되지만 엄마나 누나가 흘린 것도 가끔은 주워서 버려야 돼. 넌 이제 두 자릿수니까!”

나도 잘 이해가 안 되지만 그날 이후 둘째는 심부름을 할 때 더 이상 군소리를 하지 않는다. 물론 심부름 뒤에 돌아오는 풍성한 칭찬과 이따금 건네받는 선물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나는 믿는다. 이것이 바로 두 자릿수 나이의 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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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선미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부터 한국 임상심리학회 전문가 수련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으며, 임상심리학과 관련된 저서와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1994년부터 아주대학교 병원에 재직하고 있으며, 아동을 대상으로 심리평가와 치료프로그램, 부모교육을 해왔다. 부모와 전문가를 대상으로 아동 이상심리, 부모교육훈련, 행동수정을 주제로 다수의 강의를 하였다. 현재 EBS TV ‘생방송 60분 부모’에 고정출연하고 있다. 저서로, 『부모 마음 아프지 않게, 아이 마음 다치지 않게』『조선미 박사의 자녀교육특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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