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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인 여인의 춤에 탄성 또 탄성 ‘플라멩코’

콜럼버스 무덤과 플라멩코 - 세비야 올레Ole! 올레Ole! 올레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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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픈 기타 소리가 울려 퍼지고 가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곧 비장한 표정의 댄서가 무대 위로 등장한다. 가냘픈 몸매의 댄서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절도 있고 격렬한 동작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강약에 맞춰 현란한 동작을 선보인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 댄서는 손목의 스냅으로, 때로는 캐스터네츠로 박진감을 더하기도 하고 부채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화려하게 춤을 꾸민다.

플라멩코는 왜 플라멩코라고 부르는 걸까? 플라멩코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처럼(아마도 이는 바람처럼 떠도는 집시의 영혼 때문이리라) 어원 역시 마찬가지란다. 춤추는 모습이 플라밍고 새와 닮은 데서 유래됐다는 설(정말 손 모양이 플라밍고의 굴곡진 부리와 비슷하다), 안달루시아어로 ‘펠라 민 구에르 아드(‘땅 없는 농민’이라는 뜻)’에서 유래됐다는 설, 집시들이 처음부터 그냥 그렇게 불렀다는 설 등이 있지만, 아직까지 정설로 밝혀진 것은 없다.

플라멩코의 기원 역시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슬람 문화, 무어인과 유대인 문화, 안달루시아 토착문화 그리고 1425년에 안달루시아에 상륙한 집시 문화의 융합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플라멩코는 2010년 유네스코의 ‘인류 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으로 지정될 만큼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지만, 플라멩코가 등장한 시기는18세기 후반으로 비교적 최근이다. 그런데도 뿌리를 정확히 모른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플라멩코는 단순한 춤이 아니라 공연예술이다. 플라멩코를 이루는 네 가지 요소는 바일레Baile(춤), 토케Toque(기타), 칸테Cante(노래), 할레오Jaleo(손뼉과 추임새)다. 나는 이 중에서 할레오가 가장 흥미롭다. 플라멩코 댄서가 열정적으로 춤을 추면 노래하는 사람들이 음악의 강약에 따라 종종 손뼉과 추임새를 넣는다. 할레오를 뺀 공연은 ‘팥소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다. 할레오는 그만큼 댄서와 관객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다.

플라멩코 공연은 19세기 중반 세비야에서 처음으로 올려졌다. 당시 플라멩코를 공연하는 곳을 카페 칸탄테Cafe-Cantante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오늘 내가 예약한 로스 가요스Los Gallos가 현재 세비야에서 가장 오래된, 또 가장 유명한 플라멩코 타블라오Tablao(플라멩코를 공연하는 극장식 식당)인데, 1966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드디어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름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열댓 명이나 와 있다. 맨 앞자리는 이미 다 차서 남은 자리 가운데 무대가 잘 보이는 곳을 골라 앉았다. 공연장은 세계 각국 관광객이 떠드는 소리에 무척 시끄럽다. 하지만 무대가 어두워지자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든다. 모두 숨죽이며 기다리는데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구슬픈 기타 소리가 울려 퍼지고 가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곧 비장한 표정의 댄서가 무대 위로 등장한다. 가냘픈 몸매의 댄서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절도 있고 격렬한 동작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강약에 맞춰 현란한 동작을 선보인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 댄서는 손목의 스냅으로, 때로는 캐스터네츠로 박진감을 더하기도 하고 부채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화려하게 춤을 꾸민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플라멩코 의상이다. 치마 밑단의 주름장식은 마치 공작 깃털처럼 굉장히 풍성하고 길어서 무게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이런 옷을 끌고(?) 다니는 것만 해도 힘들 텐데 입고서 춤까지 추다니! 무게도 무게지만 댄서가 격렬하게 돌면 치마가 다리를 휘감는데, 자칫 잘못했다가는 다리가 묶여 꼼짝 못 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됐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그녀들은 프로니까. 치마가 다리를 친친 휘감을 찰나, 그녀들은 발로 치마를 탁 찬다. 그녀들의 숙련된 기술은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게다가 플라멩코 의상은 또 얼마나 관능적인가! 상체와 엉덩이 부분은 꽉 끼고, 치마 밑단의 풍성한 주름장식은 춤동작에 맞춰 치마를 조였다 풀기를 반복하며 여성의 아름다운 곡선을 살려낸다. 허리를 뒤로 젖히거나 몸을 휘는 동작 또한 유혹적이다. 플라멩코는 여성의 춤이지만, 응축된 에너지를 폭발한다는 점에서는 마초 이미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거기에 곡선을 드러내는 춤으로 여성의 관능미를 극대화한다고나 할까. 투우사가 뿜어내는 강렬한 이미지에 필적하는 강렬한 유혹의 춤이다.

열정적인 플라멩코 무대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아낌없이 환호했다. 올레Ole! 올레Ole! 올레Ole!


잘 알려지지 않은 스페인의 진짜 매력, 더 알고 싶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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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소도시 여행 박정은 저 | 시공사

중남미 여행 중 스페인어를 배우며 시작된 이 나라에 대한 관심은 저자를 마침내 순례자의 길로 이끌었다, 순례자의 길은 저자에게 큰 깨달음이자 행운의 길이었다. 이 길에서 저자는 스페인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에 감동하고, 감칠맛 나는 음식에 매혹당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저자는 다시 스페인을 찾았다. 이번에는 스페인 소도시 이곳저곳을 걸어다녔다. 마치 둘시네아 공주를 찾아 걸었던 돈 키호테처럼. 흔히 정열, 사랑, 자유로 표현되는 스페인은 감히 한 단어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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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소도시 여행

<박정은> 저13,05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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