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화장실 ‘한 걸음 더 가까이’ 표어를 찢어라! -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슬라예보 지젝
오늘날, 우리에게 ‘공동선’이란 무엇인가? FTA, 우리가 결정권을 지녀야 하는 이유
‘공부공동체’ 인디고, 지금의 한국 사회에 대한 고민을 품고 ‘동유럽의 기적’ 지젝을 찾았다. 그리고 인터뷰 집을 냈다.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인디고 연구소 기획|궁리 펴냄). 지젝이 한국을 찾기 전, 영상을 통해 독자들과 먼저 만났다. 지난 4월27일,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출간 기념 강연회였다.
“여러분들의 투쟁은 지금 우리가 사는 삶이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지젝이다. 지난 6월 방한했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한국에 온 그는, 대규모 정리해고 뒤 세상을 뜬 스물두 명의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을 추모하는 ‘쌍용자동차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희생자 영정에 분향했다. 그는 그것이 ‘사회적 살인’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말, 던졌다. “자본은 ‘회사 결정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필요한 조처’라며 정리해고를 하지만, 이 모든 게 다 거짓말이죠. (쌍용차 투쟁은) 민주주의의 중요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 제기를 한 것입니다.”
“지젝은 우리가 자명하다고 믿는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 질문을 통해 의미 있는 파열음을 남긴다.”(p.8)
우리는 매일 같이 행복하지 않음을 확인한다. 그 분향소는 곧 우리 모두의 사회적 죽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현실에 대한 자각이다. 우린 그렇게 아프고, 행복하지 않음을 실감해야 한다. 지젝 또한 그것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묻는다. 우리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우리에게 공동선은 있는가?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바쁘다는 핑계, 너무 익숙하지만,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공부공동체’ 인디고, 지금의 한국 사회에 대한 고민을 품고 ‘동유럽의 기적’ 지젝을 찾았다. 그리고 인터뷰 집을 냈다.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인디고 연구소 기획|궁리 펴냄). 지젝이 한국을 찾기 전, 영상을 통해 독자들과 먼저 만났다. 지난 4월27일,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출간 기념 강연회였다. 지금 우리가 왜 <무한도전>을 볼 수 없으며, 왜 허구 한 날 ‘경제위기’를 맞닥뜨려야 하는지, 만날 투쟁과 시위를 할 수밖에 없는 그 이유를 사유하게 만든 시간.
“자, 오늘날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바디우는 오늘날 우리가 처한 후기사회주의적 곤경을 “악(Evil)이 파멸된 자리에서 악이 춤추는 것을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문제적 상황”이라고 인상적으로 규정했다.”(p.231)
지젝을 말하다
지젝 인터뷰를 기획하고 인터뷰어로 나섰던 인디고 연구소의 박용준 편집장이 이야기를 푼다. 그에 의하면, 지젝은 난잡한 사람이다. 글쓰기가 사유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이다. 지젝의 글쓰기는 그래서 머릿속에 떠오른 모든 것을 쓴다. 이른바 천재들의 방식. 인터뷰할 때도 이 얘기를 했다가 저 얘기를 하는 종횡무진 했단다. 책은 많이 다듬어진 편이다.
지젝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문구 중의 하나는 “이성의 공적인 사용”이다. 칸트의 짧은 에세이로서, 지젝의 모든 저작과 활동을 관통하는 아이디어라고 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이성의 공적인 사용과 발휘에 있다. 지젝은 그것을 실천한다. 아울러 책을 통해 우리에게도 그 문제의식을 던진다. 다만, 혼자 책을 읽는 건 공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보편적인 목적에 부응하는, 즉 진실에 부응하고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공적인 행위다.
“중대한 경제적 사안들, 즉, 북미자유무역협정과 같은 국제무역협정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투표권이 없고 논의 과정에서도 배제되어 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결정되어버리는 것이지요.”(p.114) | ||
공동선은 무엇이며, 이 문제의식의 의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유럽의 전통에서 보자면 미학은 신, 인간 등으로 이런 것은 늘 최고의 실체적인 선이었다. 그러나 근대는 그렇지 않았다. 오늘날 공동선은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 정치는 윤리보다 우선이다. 우리가 고차원적인 공동선을 이야기할 때 우리의 은밀한 목적에 의해 정의된다.
“제가 보기에 정치는 윤리에 우선합니다.(…) 우리가 ‘선(좋음)’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p.27) | ||
지금이 이론의 시대라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이론적 질문은 무엇인가?
두 종류의 질문이 가능하다. 사회민주의의는 딱히 실패했다고 할 수 없지만, 공산주의나 지방자치에 근거한 시도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대안을 상상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진정 어떠한 정치적 모델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네그리와 하트에게 갖는 문제의식도 이 지점이다. 그들에 의하면 국가가 사라지고 다중이 스스로 지배하게 되는 최후의 순간이 올 거라고 예견하지만, 사실상 어떤 징후도 없다.
오늘날 인간됨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유전자 조작이나 생태계 파괴 등은 인간됨에 대한 근본 개념을 바꾸고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됐고, 이는 인간됨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게 한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말할 때, 가능과 불가능 사이의 구분에는 분명한 문제가 놓여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모든 것이 가능해지고,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고,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난 구제는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
가능과 불가능, 이 두 가지 측면을 하나의 추상적인 문제로 합칠 수 있다면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다. 불가능한 것들도 일어난다. 나는 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유의 방식을 재정의 하는 것,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구분을 없애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인간 사유의 궁극적인 과제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한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입니다.”(p.207) | ||
당신에게 공동선은 무엇이며, 공동선을 향한 추구는 어떻게 이뤄지는 것일까?
공동선은 투쟁의 문제다. 내게 공동선은 자유를 향한 공동 투쟁을 의미한다.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의 허점을 뚫고 가는 것이다. 해답을 제시할 수 없지만, 이는 매우 중요하다.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제공해주는 좋은 영화들은 유럽이민자 출신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많다. 외부에서 보는 것이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보다 더 적절한 시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나는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한 데카르트를 좋아한다. 자신을 바라볼 때 이방인의 시선으로 보자는 것이다. 자신만의 관점에 스스로를 가둬선 안 된다.
““보편적 선(좋음)을 향한 유일하게 훌륭한 길은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바라볼 때, 이방인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보고 또 상상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인류에게 가장 훌륭한 사유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pp.197~198) | ||
신을 만들 시간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서로를 의지했다. 가녀린 떨림들이 서로의 요람이 되었다. 구해야 할 것은 모두 안에 있었다. 세상 모든 종교의 구도행은 아마도 맨 끝 회랑에 이르러 우리가 서로의 신이 되는 길... 갸날프지만 함께 우는 손들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일을 위해 눈물 흘리는 그 손들이 서로의 체온을 엮어 짠 그물을 검은 하늘로 던져올릴 때... 수만개의 그물코를 가진 하나의 그물이 경쾌하게 띄워올려졌다.. ... 나의 혁명은 지금 여기서 이렇게 - 김선우,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중에서 - | ||
““바닥에 침을 뱉지 마세요. 음식을 버리지 마세요” 등의 문구가 적힌 식당은 유럽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상식을 강요받을 이유가 없죠. 이것이 바로 한 사회의 윤리적 표준입니다. 허용되거나 금지되는 것들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죠.”(p.63) | ||
세 가지 질문이 있다. 지젝을 인터뷰하면서 이런 말도 하는구나 싶은 게 있었나? 둘째, 이 책이 기존 지젝의 책에 어떤 주춧돌을 놓을 것이라고 보나? 마지막은 지젝은 자본주의 이후 세계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혁명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에 대해 사유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하는데, 지젝 역시 사유를 말하는 게 지식인이라는 한계 때문은 아닐까?
지젝을 만나서 참신했던 건 외설적인 부분이었다. 인종주의적인 농담 역시도. 터부시 되는 것을 너무 쥐고 있으면 해소가 안 된다. 외설적, 인종주의적인 것도 다 까발릴 필요가 있다. 인간이란 존재는 수동적으로 되기 쉽다. 책을 사는 게 목적이 아니고, 책이 많다고 흡족해할 것도 아니고, 읽고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 TV의 녹음된 웃음소리가 우리 삶을 지배하는 수동적인 모델이다. 나라는 주체가 웃을 때 웃고 안 웃을 때 안 웃는 게 중요하다.
둘째, 지젝의 책이 한국에 많이 번역됐는데, 많은 책이 어렵다. 참신하고 재밌는 얘기가 그 사람이 사용하는 인문학 도구에 가리거나 현학적이거나 난잡한 논의 방식 때문에 묻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핵심적인 주제를 공유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 아카데믹한 것을 희석하고 대중과의 다리 역할을 하고 싶었다.
셋째, 지젝이 해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새로운 형태의 정치모델은 우리가 개발해야 한다. 다만 지젝은 전체주의를 옹호한다. 네그리나 하트의 것을 반대한다. 지젝은 파시즘이 아닌 전체주의의 모습을 본인이 구상하는 것 같다. 철학자는 답이 아닌 정확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공산주의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그건 문제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더라. 그것으로부터 표상되고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모델을 구상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지젝의 공동선에 대해 좀 더 듣고 싶고, 인디고는 지금 한국의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 어떤 기획을 하고 있는가?
지젝은 모든 공공의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 공동의 선택의 문제로 본다. 가령 국민성은 유전자가 아닌 살면서 내재화하는 건데, 우리가 어떤 국민성을 가질 것인지 토론을 하거나, 결정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윤리적 표준이다. 근대이후 절대선이 있다고 상정한 것과 달리, 지젝의 공동선은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더한다. 그래서 지젝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회의를 뚫고 나온 것이다.
공동선은 있을 수 없다기보다 빈개념이다. 시대적 상황이나 정치구조적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공공의 문제는 당사자들이 알려고 하는 태도를 통해 공공의 문제가 무엇이고,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 나온다. 지젝의 공동선은, 구체적 보편성을 직시하고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장에 우리를 위치시키는 것, 그것이 정치적 실천이다.
지젝 인터뷰는 그가 유명해서 한 것이 아니다. 공공적인 문제에 대해 왜 우리는 관심을 가지지 못할까, 문제의식을 가졌다. 또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한 시스템에 관심을 가졌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는 목적성 때문이었다. 인디고는 여전히 그런 문제에 대해 기획, 구상중이고, 진행되고 있는 것이 많다. 기대해 달라.
슬라보예 지젝. 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혁명가의 이름이다. 그런 그를 인디고 서원 학생들이 직접 만나 궁금한 것들을 묻고 그에 대한 답을 기록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단순히 철학자 한 명과의 만남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지젝이 수많은 저서들을 통해 말해왔던 사유의 궤적과 정치적 지향점이 압축적으로 제공되고 있으며, 충실한 주해(註解)를 통해 그의 사상사적 연대기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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