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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공부는 네 머리로 해야지!”

아이가 스스로 머리를 쓰도록 하기 위해 엄마는 무엇에 머리를 써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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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 하나라도 배우고 익히게 하려면 아이가 스스로 머리를 써야 한다. 엄마가 머리를 쓰면 아이가 아닌 엄마가 공부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럼 엄마는 무엇에 머리를 써야 하는가? 무엇을 하든 아이가 집중해서, 신이 나서 머리를 쓰도록 유도하는 것, 그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6월도 중반이 지나갔으니 학기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을 불러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2주 뒤가 시험이란다. 시험날짜는 알고 있었지만 공부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계획은 없는 것 같았다. 이 나이면 혼자 공부할 때도 된 것 같지만 내 기억에 초등학교 때 스스로 계획을 세워 공부한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아직은 아닌 듯했다. 하여 아들과 함께 시험공부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시험에 대한 계획이라고 해도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다. 우선 과목별로 분량을 확인하고, 과목별로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과 덜 필요한 것을 나누어보았다. 우선 고학년이 되니 사회 과목에서 외울 것이 상당히 늘어난 것 같았다.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매 단원마다 단원평가를 보는데, 가져온 시험지를 보면 유독 사회 시험에서 틀린 개수가 많았다.

아이에게 확인해보니 내용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외워야 할 게 너무 많다는 것이다. 강과 산맥의 이름과 위치는 물론 우리나라의 주요 중공업 단지, 특정한 농산물이 많이 나는 곳 등 내 어린 시절에 나를 괴롭혔던 것들이 아직도 살아남아서 내 아이를 괴롭히고 있었다. 어렸을 땐 우리나라가 지구상에서 차지하는 넓이가 얼마나 코딱지만 한지도 모르고 웬 강과 산이 이렇게 많은지 원망했던 적도 있었다.

어쨌거나 사회는 암기가 필요하니 많은 시간을 할당해 공부하기로 하고, 그 다음은 수학 과목에 주력하기로 했다. 과학은 좋아하는 과목이니 크게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고, 국어도 기본은 하는 것처럼 보여 우선은 사회와 수학에 주력하기로 했다.

과목별로 날짜를 배분하고, 공부해야 할 단원을 정한 뒤 미리 정한 단원을 공부하면 내가 집에 가서 해당 단원을 시험보고 틀린 것들은 다시 정리해서 공부하는 것으로 개략적인 계획을 세웠다.


예전에 딸아이 공부를 도와줄 때는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의 특징 때문에 여러 가지로 머리를 써야 했다. 아이는 특히 수학을 힘들어했는데 더하기, 빼기를 배우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물론, 쉬운 문제도 자주 틀렸고, 기분에 따라 학습 효율성의 기복도 심했다.


세 자릿수 덧셈, 뺄셈을 처음 배울 때였다. 한 페이지 정도 분량의 문제를 풀라고 했는데 십분 쯤 지나자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유를 묻자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세 자릿수 더하기가 힘들다니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아이의 얼굴을 보니 엄살은 아닌 것 같고, 마치 오랫동안 고시공부를 한 사람처럼 힘들고 지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리학을 공부하기 전 나는 화학을 전공했었다. 문과 체질의 내가 이과에서 공부하자니 내용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고, 무엇보다도 공부하고 싶은 의욕이 없어 4년 내내 학교 다니는 게 고역이었다. 그나마 부전공으로 국문학 과목을 들으면서 인문학에 대한 허기를 채웠고, 학점에서도 조금 도움을 받았다. 특히 수리에 취약한 나에게 물리와 수학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과목이었다. 수십 개의 변수로 이루어진 공식이 교과서 하나 가득 실려 있었고, 시험을 보려면 그 변수 하나하나에 숫자를 대입하며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그 때마다 울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딸아이의 우는 모습을 보니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수학을 못하는 엄마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짠했다. 수십 개의 알 수 없는 기호로 된 공식을 배우는 대학생이나 세 자리로 된 수를 더하거나 빼는 초등학생의 괴로움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때 아이를 위해 나는 게임을 고안했다. 한 자릿수 씩 나와 번갈아 가면서 더하기를 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일의 자리를 더하면 나는 그것을 받아 십의 자리를 더해 답을 내고, 마지막 백의 자리는 아이가 답을 쓰는 식이었다.

그 다음 문제는 내가 먼저 일의 자리에서 시작해 아이가 십의 자리를 더하고, 백의 자리는 내가 맡았다. 이런 식으로 계산문제를 풀어가니 조금 전만 해도 울상을 하며 비비 꼬던 아이가 놀이라도 하듯 수학책에 달려들었다. 숙제를 수월하게 끝낸 것은 물론 네 자릿수, 다섯 자릿수 셈으로 확장하는데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고학년이 되었을 때 딸아이는 사회공부를 한 뒤 나에게 문제를 내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냥 문제집을 풀어도 될 텐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엄마와 공부하는 시간이 노는 시간처럼 느껴졌나 보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초등학교 사회지만 문제를 내려면 교과서 내용을 전부 읽어보고, 이해하고, 문제로 통합해야 하기 때문에 한 문제를 낼 때까지 시간이 꽤 걸렸던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끙끙대며 책을 들여다보는 나와는 달리 아이는 이것저것 넘겨보며 심심해했고, 심지어 TV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이건 딸아이가 공부하는 상황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책을 주며 말했다.

“엄마하고 게임할래? 여기 책을 보고 네가 엄마한테 문제를 내봐. 엄마가 한 문제 틀릴 때마다 오십 원씩 줄게.”
“정말? 정말로 오십 원 줄 거야?”
“그럼. 약속한 건데 주지.”


공부해야 할 분량과 공부가 끝나면 간식을 사주려고 했던 예산을 얼른 맞추어보니 오십 원이면 맞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이는 갑자기 하늘에서 돈이 뚝뚝 떨어진다고 느꼈는지 책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어려운 문제를 내려고 끙끙댔다. 물론 그 시간 동안 나는 이리 저리 둘러보고, 누웠다 앉았다 하며 머리를 쉬고 있었다.

머리는 공부해야 하는 사람이 쓰는 게 맞다. 그래서 공부를 잘 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사소한 것 하나라도 배우고 익히게 하려면 아이가 스스로 머리를 써야 한다. 엄마가 머리를 쓰면 아이가 아닌 엄마가 공부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럼 엄마는 무엇에 머리를 써야 하는가? 무엇을 하든 아이가 집중해서, 신이 나서 머리를 쓰도록 유도하는 것, 그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아들의 사회공부는 문제집을 푸는 대신 머리를 좀 많이 쓰도록 만들었다.

“조선시대의 정치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를 만들어서 말해 줄래?”
“임진왜란은 왜 일어난 거야? 그래서 어떻게 끝났대?”


아들이 신이 나서 설명하면 나는 중간 중간 질문을 던진다.

“네 생각은 어때? 이때 조정 대신들이 결정한 게 잘한 것 같아? 네가 영의정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들은 이제 자기가 이 순신 장군 혹은 권율 장군이 된 듯이 군을 어떻게 지휘해야 하는지 장황하게 이야기한다. 머리를 쓰고, 감정이 움직였으니 공부가 충분히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자주 공부를 시키지는 못한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에 주로 머리를 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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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선미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부터 한국 임상심리학회 전문가 수련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으며, 임상심리학과 관련된 저서와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1994년부터 아주대학교 병원에 재직하고 있으며, 아동을 대상으로 심리평가와 치료프로그램, 부모교육을 해왔다. 부모와 전문가를 대상으로 아동 이상심리, 부모교육훈련, 행동수정을 주제로 다수의 강의를 하였다. 현재 EBS TV ‘생방송 60분 부모’에 고정출연하고 있다. 저서로, 『부모 마음 아프지 않게, 아이 마음 다치지 않게』『조선미 박사의 자녀교육특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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