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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남성들을 TV 앞에 앉힌 드라마 <신사의 품격>

로맨틱 코미디를 비튼 <신사의 품격>식 로맨틱 코미디 이런 싱글이라면, 그냥 혼자 남겠다는 ‘남자들의’ 판타지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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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은 드라마의 극을 좌우하는 중요한 도구다. 그리고 그렇게 수 없이 반복되어 왔던 ‘신데렐라 스토리’가 다시금 먹히는 것도 이는 이미 클리셰가 아니라 ‘고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사의 품격>은 손쉬운 카드를 먼저 걷어내고 여덟 명 주인공들의 심리를 조금씩 읽어내려 간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울다가도 누가 농담을 건네면 피식하고 웃을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일상처럼, 힘든 상황의 멜로를 끌고 나가다가도 오프닝 시퀀스처럼 ‘피식’ 웃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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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남자와 여자가 한 집에 사는 일반 가정에서, 주말 저녁 시간은 채널 쟁탈전이 벌어지는 때다. 드라마와, 뉴스, 스포츠 중계를 치열하게 오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뉴스와 드라마, 스포츠 중계와 드라마 사이에서 방황하던 채널권이 주말 저녁 <신사의 품격>에서 멈췄다. 단순히 채널 우선권(?)을 점하고 있는 여성들이 리모컨 쟁탈전에서 이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드라마, 의외로 드라마에 무심했던 30대 남자들을 TV 앞에 앉혔다. 더구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인 이 드라마가.

<신사의 품격>은 이처럼 인기 포인트가 흥미롭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주 시청층인 2-30대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들을 TV 앞에 앉혔다. 게다가 무려 극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평균 연령이 적어도 37세(이건 뭐 ‘무한도전’도 아니고)는 된다. 총 8명의 남녀 주인공 중 20대는 임메아리(윤진이)가 유일할 정도. 게다가 가난한 스턴트맨도, 영화 감독 지망생도, 시청 공무원도 없다. 다들 넉넉하긴 해도, 또 재벌은 아니다. 이처럼 로맨틱 코미디의 요소는 즐거이 갖추었지만, 뭔가 묘하게 핀트가 엇나간 듯한 이 드라마가 가진 매력은 당최 무어란 말인가. 주말 저녁, 집 나갔던 남자들 조차 10시만 되면 ‘뛰어 들어오게 하는’ 이 드라마의 매력 한 번 살펴보자.


이런 싱글이라면, 그냥 혼자 남겠다는 ‘남자들의’ 판타지 속으로




드라마 초기, <신사의 품격>은 ‘비현실적’ 스토리 논란에 시달렸다. 그도 그럴 것이, 등장하는 여덟 명의 주인공 중 소위 말하는 ‘서민’ 계층은 한 명도 없다. 로맨틱 코미디의 단골 손님처럼 등장했던 ‘계급 차이’가 없는 셈이다. 대신 <신사의 품격>은 철저히 적어도 중산층 이상, 상류층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럭셔리하게’ 풀어나간다. 번듯한 중견 건축사무소 대표에, 스트릿(Street)을 보유한 아내를 가진 카페 사장에, 변호사에. 물론 우리 삶 주변에 저런 사람은 없다. 근데, 생각해 보면 서민인 여자 옆에 재벌 3세쯤 되는 남자가 있을 리는 더욱 없다. 고로, 결국 드라마는 다 판타지라는 것. 물론 그 사이 개입될 만한 여지가 없어졌다는 점(동일시 할 만한 주인공이 없다는 점)에서 좀 서운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신사의 품격>은 기존에 없었던 ‘판타지’를 제공한다. 남자들이 로맨틱 코미디를 즐겨보지 않았던 건, 그런 드라마들이 철저히 여성적 시각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자들은 여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 하고, 재벌 남자들은 언제나 그런 여 주인공들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을 보냈다. 남자들은 이 곳에서 이입할 대상을 잃는다. 그런데 <신사의 품격>은 그 여지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물론 대부분의 남자들이 변호사도, 건축설계사무소 대표도, 카페 사장도 아니지만. 네 명의 남자 주인공은 40대가 되었을 때쯤 싱글이라면 한 번쯤 꿈꿔봤을 법한 살고 있다. 30대에 결혼을 하지 않고, 40대까지 치열하게 실패하고 성공했으면 저런 삶이 불가능하리란 법도 없지 않은가.




대부분의 2-30대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남성들에게, 이들의 삶은 판타지이자 동일시 할 여지가 남는 삶인 것이다. 네 명의 친구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절친이고, 틈만 나면 뭉쳐 술을 마시거나 수다를 떤다. 그리고 그들이 공유하는 20여 년의 세월은 보편적인 그 나이 때 가정(정록도 아이가 없다는 점에서)의 결핍에 대한 보상책이 되어 준다. 서로를 지지해 주며 안정은 찾아주지만, 구속하지는 않는 삶. 결혼과 연애의 구속에 지친 많은 남자들이 원하는 삶 아니던가. 게다가 이들은 재정적으로도 넉넉하고, 충분한 사회적 지위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남자들은 이들에게 판타지의 매력을 느끼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게다가 거기에서 그렇게 ‘잘난’ 남자들이 ‘찰진’ 대사들로 여성들에게 구애를 펼치기까지 하니, 여기에 여성 시청자는 덤. 물론 우리는 서이수(김하늘)가 아니지만, 언제는 길라임(하지원)이었던가를 생각해 보면 뭐 그 정도의 갭은 봐 줄 만 하다.




이렇게 <신사의 품격>은 기존 드라마에서 충족시키지 못하던 ‘남성적 판타지’를 충족한다. 그것도 ‘다크’하게가 아니라 뽀송뽀송하게. 성인 남자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장난감이라는 자동차에 ‘베티’라는 애칭을 붙이고, 당구장에서 ‘도다리배’ 내기를 하고. 아이크림을 비롯한 화장품을 바르며 미모에 신경쓰는 남자들. 요즘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은 김도진(장동건)도, 임태산(김수로)도, 최윤(김민종)도, 이정록(이종혁)도 아니지만 어찌됐건 ‘어두운 복수극’이나 ‘정치적 다툼’ 없이도 남성들의 판타지를 충족하는 드라마가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나이가 없는, 또래의 연기를 하는 배우들




여덟 명의 남녀 주인공들이 무려 평균 연령 37세에 달하는 이 드라마. (그나마 이 마저도 이십대 초반 설정의 임메아리 덕분이다) 서른이면 노처녀라던 드라마(<내 이름은 김삼순>)가 엊그제 같 같은 벌써 이런 드라마가 나왔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노처녀’ 드라마들 보다 훨씬 현실감이 든다. 이십대 초반이면 이미 이십대 중 후반의 연기를 해야하고, 십대 후반은 되어야 이십대 초반의 파릇한 여대생 연기를 하거나. 아니면 여섯 살 연상 정도는 가뿐하게 뛰어넘어 연하 연기를 해야 하는 그야말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요즘 드라마에서 <신사의 품격>은 배우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자기 나이 또래 이야기를 하는 흔치 않은 드라마다.

마흔 한 살의 네 남자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흥미롭게도 평균 나이가 41살이다. 김도진과 최윤 역할을 맡은 장동건과 김민종은 실제로도 72년 생으로 마흔 하나고, 김수로는 43살, 이종혁은 39살이지만 그 차이가 두 해를 넘지 않는다. 김하늘과 윤세아도 78년 생으로 극 중 나이와 한 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는 임메아리나 김정난도 비슷하다. 모두가 자신의 나이 또래의 연기를 한다는 건, 연기자들에게는 상당히 안정감을 주는 일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배우가, 자신의 나이를 연기하는 것은 보는 사람도 또 하는 사람도 어색함이 비교적 적다. 동안이 대세인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연상 연하를 뒤엎는 것쯤은 익숙하던 시청자들에게, 모처럼 ‘자기에게 맞는’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나타난 것이다. 외모 중심적(?)인 캐스팅이 대세를 이루던 이 때, 모처럼 그야말로 나이 중심적(?)인 캐스팅이 등장한 것이다. 인기나 외모에 따라 나이를 넘나드는 캐스팅이 당연한 때에 <신사의 품격>은 또 한 번 살짝 엇나간 포인트를 짚어낸다.

이처럼 극중 캐릭터의 나이 대와 동일한 캐스팅 덕분에 신인 윤진이도 신인 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고, 실제 3살 가량 연상인 김정난과 이종혁도 덕분에 아주 ‘괜찮은 케미스트리’를 보여주는 커플이 됐다.


재벌이 없는 드라마, 그 갈등의 틈을 메꾸는 건 대본의 몫




멜로, 혹은 로맨틱 코미디 속 재벌은 단순히 ‘극적인 판타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극 속 갈등을 위해서도 중요한 요소다. 계급 갈등이라는 것만큼 두 남녀의 사랑에 위기를 불어넣기 좋은 것은 없으니까. 하지만 <신사의 품격>은 ‘서민’도, 계급 간의 갈등도 없다. 그래서 캐릭터가 처한 환경에 손쉽게 기대어 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외적인 강력한 요소가 있을 때, 캐릭터는 단선적으로 변한다. 그 상황만 이겨내면 되니까. 하지만 드라마 속 캐릭터에서 환경적 제약(계급차)을 없애면, 캐릭터의 심리가 더 잘 드러난다. 그 또래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실질적인 심리에 대해 파고 들 수 있다는 것이다.

‘돈 많다고 외롭지 않고 행복한 것은 아니듯’이, 이들은 저마다 나름대로 실패도 하고 아픔도 안고 살아가는 ‘중년’들이다. 이제 누가 보기 부끄럽지 않을 만큼 성공은 이뤘지만, 성공을 이루느라 아직 사랑은 이루지 못했고 부재한 가정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시기다. 덕분에 이들은 서로의 감정과 망설임으로 고민을 하고, 지키고 싶은 것과 지켜야 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을 하며 극을 만들어 나가지 적어도 손쉬운 계급 갈등을 통해 극을 밀어나가지는 않는다.

재벌은 드라마의 극을 좌우하는 중요한 도구다. 그리고 그렇게 수 없이 반복되어 왔던 ‘신데렐라 스토리’가 다시금 먹히는 것도 이는 이미 클리셰가 아니라 ‘고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사의 품격>은 손쉬운 카드를 먼저 걷어내고 여덟 명 주인공들의 심리를 조금씩 읽어내려 간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울다가도 누가 농담을 건네면 피식하고 웃을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일상처럼, 힘든 상황의 멜로를 끌고 나가다가도 오프닝 시퀀스처럼 ‘피식’ 웃기면서.

이렇게 재벌 없는 드라마를 설정한 건, 순전히 작가의 자신감일 것이다. 중대한 갈등 없이, 인물들 간의 환경 차가 아니라 입장 차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들로 20회의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극은 좋다 하더라도, 다수의 시청자들에게 인정 받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신사의 품격>은 그 길을 택했고, 폭풍 같은 갈등이 없는 틈을 다소 가벼워 보일지도 모르는 재기 발랄한 대사와 상황들로 꼼꼼하게 메워냈다. 재벌도 없는 중년의 ‘로코(로맨틱 코미디의 준말)’라니. 이건 분명 앞으로도 흔치 않을 지점이다.




<신사의 품격>은 이처럼 기존 ‘로맨틱 코미디’물과 다른 특징으로 화려한 캐스팅과 제작진에 비해 극 초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을 받아 들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며, 초반에 깔아두었던 인물들의 캐릭터에 갈등을 얹자 극은 조금씩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20%를 넘어가며 배우와 제작진의 이름값을 톡톡히 해 내고 있고 있는 것이다. 제 나이대를 연기하며 탄력이 붙은 배우들의 연기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오며 대본을 기대 이상으로 그려내는 신우철 PD의 조합이 서서히 시너지를 내고 있는 셈이다.

남은 8부, 사실 대단한 암시처럼 장치해 둔 콜린은 맥거핀처럼 쓰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갈등의 폭발과 해결은 여덟 명의 인물들 사이에서 나올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뜻이다. 재벌이 없고 이십 대 초반의 가난한 여주인공이 없고, 평균 연령 37세로도 ‘잔망스러운 연애 세포’를 살리고, 다크함이 없이도 남자 시청자들을 불러 앉히는 이 기묘한 드라마. 가장 큰 약점이자 매력이 될 <신사의 품격> 이 요소들로 작가는 과연 남은 8부의 능선을 어떠한 방식으로 내려갈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 시작한다. 당분간 <신사의 품격>은 주말이 쉰다는 이유 말고도 또 기다려지는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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