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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방화, 강간… 10대는 원래 옛날부터 무서웠다

10대들의 적나라한 범죄 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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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스크랩 15권(1983년), 16권(1984년), 17권(1985년)을 편다. 고2~3때와 대학교1학년 때다. 아버지는 50대 중년의 고지를 넘고 있었다. 시대적으로는 서슬 퍼런 제5공화국 군사독재가 중후반부로 치달았다. 날이면 날마다 대학생들의 시위였다. 아버지의 스크랩엔 대학생들의 각종 ‘과격행동’ 을 전하는 신문기사들이 도배돼 있다. 그런 가운데서 탈선한 10대들의 기사들이 읽는 이를 화들짝 놀래킬 만한 강도로 박혀있다.

선배는 칼을 맞았다. 그런데 히죽 웃고 있다.
<한국의 발견>이라는 책을 아시는가. 70, 80년대 저명한 잡지사인 ‘뿌리깊은나무’에서 각 도별로 그 지역의 역사와 지리, 전통과 문화를 각종 문서자료와 현장취재로 엮어낸 단행본이다. 꼼꼼한 고증과 발로 뛴 글, 빼어난 사진들 속에서 장인정신이 풀풀 묻어난다. 나는 지금 그 책의 ‘강원도’ 편(1983년 5월 발행)을 보고 있다. 맨 앞 차례에서 내가 태어나 살던 도시를 찾아 페이지를 넘긴다. 첫 장에 큼지막한 사진이 등장한다. 하얀 유니폼을 입은 한 고등학교의 밴드부 대원들이 반짝거리는 나팔을 하나씩 든 채 시내 중심가를 행진하는 모습이다. 아무개 일간지 주최 마라톤대회 참가 선수들을 환영하러 나선 길이라는 설명이 적혀있다. 아, 그들은 내가 나온 학교의 옛 동기와 선배들이다. 끝에서 카메라를 향해 히죽 웃고 있는 저 사람은 1년 선배다. 잊을 수 없다. 얼마 있다 세상을 떠났다지. 교실에서, 친구의 칼을 맞아.

고2 때 학교에서 살인사건이 났다. 무대는 고3 교실이었다. 쉬는 시간에 그는, 반 급우가 찌른 칼에 기습을 당했다.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곧 숨을 거뒀다. 겨울이었다. 영결식은 학교 운동장에서, 2000여명 학생들이 조회대형으로 도열한 가운데 숙연하게 진행됐다. 유족들은 고개를 숙이고 오열하는 듯 보였다. 밴드부는, 고인이 속했던 밴드부는 나팔을 높이 들어 구슬픈 장송곡을 반복해서 연주했다. 어떻게 내가 고2때 아버지의 서재에 꽂힌 <한국의 발견-강원도>에서 그 선배의 사진을 ‘발견’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나는 귀신같이 그 책 속의 사진에서 죽은 이의 얼굴을 찾아냈다.

10대는 무섭다. 그러나 “요즘 10대들 무섭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10대들은 원래 무서웠다. 10대들은 옛날부터 눈에 봬는 게 없었다. 10대 시절 주변에서 확인한 일이거니와, 아버지의 스크랩에 기록된 그 시절의 기사들이 증명하기도 한다. 시대와 지역과 피부색을 초월해, 10대들은 “버릇이 없고, 망둥이처럼 뛰며 몹쓸 짓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땐 안 그랬는데…”라는 기성세대의 읊조림은 자기기만이다.

아버지의 스크랩 15권(1983년), 16권(1984년), 17권(1985년)을 편다. 고2~3때와 대학교1학년 때다. 아버지는 50대 중년의 고지를 넘고 있었다. 시대적으로는 서슬 퍼런 제5공화국 군사독재가 중후반부로 치달았다. 날이면 날마다 대학생들의 시위였다. 아버지의 스크랩엔 대학생들의 각종 ‘과격행동’ 을 전하는 신문기사들이 도배돼 있다. 그런 가운데서 탈선한 10대들의 기사들이 읽는 이를 화들짝 놀래킬 만한 강도로 박혀있다. 대학생 형들한테 기죽지 않으려는 몸부림인가. 아니, 10대들의 행각은 20대 대학생들을 뺨쳤다. 오, 무섭다.



세 어린이 살해범은 이웃10대
도피중 맹장수술 입원, 돈 털러 들어갔다 범행
그날 밤 태연히 시체운반 도와


【부산=연합】부산 영도구 봉래동 세 어린이 피살사건의 범인은 돈을 훔치러 들어갔던 이웃 10대 소년이었다.
부산시경은 사건발생 5일 만인 28일 오후2시 시내 영도구 대교동 5가65 신애외과에서 맹장수술을 하고 입원중인 박모군(17ㆍ영도구 봉래동5가)을 이사건의 범인으로 검거, 범행일체를 자백받고 박군 집에서 범행 때 입었던 피 묻은 청색 트레이닝 한 벌, 범행에 사용했던 피묻은 장갑 한 켤레, 운동화 마스크 및 칼 두 자루를 증거물로 압수했다.
박군은 용돈이 궁해 강도를 계획하고 있던 중 사건 당일인 지난23일 오후7시쯤 이웃에 사는 신동격씨(39)가 경영하는 영도구 봉래동소재 N라면 영도대리점에 들렀다가 신씨부부가 이날밤 청학동으로 제사지내러 간다는 종업원들의 대화를 엿듣고 신씨 집을 털기로 했었다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범행】박군은 이날 오후9시쯤 자기 집에서 아버지가 사용하던 면마스크와 장갑을 준비, 신씨집앞 을 배회하다가 오후9시50분쯤 신씨 부부가 집을 나서는 것을 확인하고 10시20분쯤 잠겨져 있지 않은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박군은 평소 안면이 있는 신씨의 조카딸 영숙양 (13ㆍ봉학국민교6년)등 어린이3명이 방안에서 TV를 보고 있는것을 확인, “놀러왔다”며 자연스럽게 들어가 신씨의 2남 윤열군(6)을 변소앞으로 유인했다. 박군은 장갑을 낀뒤 윤열군의 목을 졸라 실신시키고 부엌에 있던 길이30cm의 식칼로 윤열군의 전신을 난자, 살해했다.
이때 이같은 끔찍한 광경을 엿본 장남 원열군(8)이 집밖으로 도망치려하자 부엌에 있던 숟가락을 들고 대문쪽으로 뒤쫓아가 문고리를 안으로 잠그고 원열군을 변소 앞으로 끌고가 두 번째 범행을 저질렀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박군은 이같은 사실을 모르고 계속 TV를 보고있던 영숙양에게 “돈있는 곳을 대라”며 칼로 위협, 겁에 질려 대문 쪽으로 달아나는 영숙양을 뒤따라가 칼로 찔러 살해했다.
박군은 다시 방으로 들어가 전축위에 있던 손지갑 속에서 현금1만7천원과 화장대위의 돼지저금통에서 현금1만5천원 등 모두 3만1천원을 턴 뒤 장롱 속을 뒤졌으나 금품이 없자 방안에 있던 옷가지로 자신의 피묻은 발자국을 모두 지우고 달아났다.

【도피】박군은 밤11시10분쯤 사건현장에서 20여m떨어진 자기 집으로 돌아와 피묻은 흰색 면장갑은 집 뒤 폐품처리장, 마스크는 옥상으로 올라가 골목건너편 쪽으로 던져버렸다.
피살된 어린이들의 부모가 집에 돌아와 끔찍한 현장을 보고 ‘도둑이야’ ‘불이야’ 라고 고함지르는 소리를 듣고 박군은 형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가 죽은 아이들을 병원으로 옮기는것을 도와주기도 했다. 박군은 다음날인 24일 어머니 이모씨에게 피묻은 트레이닝을 “싸움을 말리다 피가 묻었다”며 세탁해달라고 건네주고 이틀 동안 평소와 다름없이 태연히 들락거렸다. 26일 오후5시쯤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어머니와 함께 영도구 대교동 소재 신애외과에서 맹장염 수술을 받았다.

【경찰수사】경찰은 범행수법이 유례없이 잔인한데다 피해품이 전혀 나타나지 않아 처음에는 원한관계에 수사초점을 맞추고 피해자가족 주변을 뒤졌다. 그러나 사건발생 이틀이 지나도록 원한관계의 실마리가 전혀 잡히지 않아 사건현장에 대한 정밀감식을 다시 한 결과 손지갑과 저금통에 있던 현금이 없어진 것을 뒤늦게 발견, 수사방향을 면식범에 의한 강도살인 쪽으로 바꾸어 인근 불량배 및 공장종업원등 2백여 명의 우범자들에 대한 행적수사에 나섰다.
이에 따라 범인 박군 등 직업 없이 떠돌던 16명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집중수사를 펴오던 중 27일 낮 박군 어머니가 핏자국이 있는 박군의 트레이닝을 받은 일이 있음을 밝혀내고 병원에 입원중인 박군을 추궁한 끝에 범행 일체를 자백받은 것이다.

(<조선일보> 1983년 1월29일치)






위 기사는 29년 후인 2012년 4월30일 벌어진 서울 신촌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그날 저녁 서울 신촌의 한 공원에서 대학생 김 아무개(20)씨가 고등학생 이 아무개(16)군과 그의 친구 홍 아무개(15)양에게 흉기에 찔려 잔혹하게 살해됐다. 초자연적 현상을 믿는 한 인터넷 카페에서의 갈등이 원인이라고 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고등학생인 피의자들은 피해자를 수십여회 찔렀을 뿐 아니라 죽은 뒤에도 시신을 옮겨 또 칼질을 했다. 숨진 김씨는 목과 배 등을 심하게 찔려 일부 장기가 노출될 정도였다. 이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어쩌자고 이렇게까지 죽인 것인가.

1983년 1월23일, 부산 영도구 봉래동의 박 아무개군도 그렇다. 어쩌자고 이렇게까지 이웃집 어린이 세 명을 무참하게 죽인 것인가. 6살, 8살, 13살 아이의 목을 조르고 조그마한 몸뚱이에 사정없이 칼을 휘둘렀다. 그래봤자 얻은 돈은 달랑 3만1천원. 어떤 결핍과 분노가 그를 살인마로 만들었을까.

2012년 신촌 살인사건의 고등학생 피의자들은 모두 부모의 폭력과 정서적 방임, 집단 따돌림 등 학대의 경험을 지녔다고 한다. 그 트라우마 탓에 대인관계에 서툴렀으며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를 누르지 못했다고 한다. 학대받는 이들에게 인터넷 카페라는 가상 공간은 일종의 안식처였다. 그 공간에서 상대와의 작은 갈등은 공격처럼 느껴졌고 결국 살인 동기로 작용했다. 이는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들의 면접 조사결과다.

박 아무개군은 이런 조사를 받지 않았으리라. 당시 ‘프로파일링’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닥치고, 소년원 또는 감옥을 갔겠지. 몇 년 형을 살았을까. 위 기사에 따르면, 그는 17살인데 고등학생이라고는 나오지 않는다. 학교를 안 다녔던 모양이다. 부모에게 사랑은 받으며 컸을까. 서로 보듬어주는 친구는 있었을까. 그의 성장과정을 캐고 싶다. 필시 어떤 스토리가 있을 테다. 당시 나와 동년배였던 그의 지금 모습이 궁금하다.



중학생 ‘살인결투’
돌멩이 들고 싸우다 도망치자
급우심판들이 “비겁하다” 뭇매


같은반 친구5명이 심판을 보는 가운데 1대1의 격투를 벌이던 중3생 1명이 비겁하다는 이유로 심판을 보던 급우들로부터 뭇매를 맞아 숨졌다.
1일 하오6시50분께 서울 강서구 신정1동168 모래하치장에서 인근 목동중학 3년 신재식군(15)이 같은 반 친구 김모군(15) 홍모군(14) 등 3명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실신, 신월동 서안복음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신군은 이날 낮 학교에서 급우 김모군(15)과 사소한 시비 끝에 싸움을 벌이다 “수업이 끝난뒤 정정당당하게 결투를 벌이자”고 제의, 하오8시50분께 홍군 등 급우5명을 심판으로 정하고 5백여m 떨어진 모래하치장에서 상대가 쓰러질 때까지 3분 싸우고 1분 쉬는 권투경기식 싸움을 시작했다.
2라운드까지 싸우다 팔을 다친 신군은 상대인 김군에게 “돌멩이를 들고 싸우자”고 제의, 지름 20cm의 돌을 하나씩 들고 싸움을 계속하던 중 김군이 결투장소를 벗어나 도망치자 홍군등 5명의 심판진은 김군과 신군을 불러다 세우고 “비겁하게 싸웠으니 20대씩을 맞아라”며 차례로 가슴을 쥐어박기 시작했다.
10여대를 맞은 신군은 실신 끝에 인근 서안복음병원으로 업혀 갔으나 장파열로 숨졌다.

(<한국일보> 1984년 6월3일치)






계획적인 범죄는 아니었다. 우발적인 사고였다. ‘맞짱’에 흥분할 일은 아니다. 중고생들한테는 흔하디 흔한 이벤트다. 힘의 우열을 가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이에 정정당당한 일대일 결투는 ‘깨끗한 승복’의 문화를 만드는 측면이 있다. 그래도 이건 심했다. 비겁하게 도망친다는 이유로, 심판들이 ‘선수’를 팼다. 장파열을 일으킬 정도로.

‘맞짱’은 도전과 모험의 용어다. 인터넷에서 ‘맞짱’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책 제목이 몇 개인지 세어보라. 정치와 맞짱 뜨고, 미국과 맞짱 뜨고, 일본어와 맞짱 뜨고, 법과 맞짱 뜨고…. 투지를 갖고 세상 일에 과감히 도전하라고, 즉 ‘맞짱을 뜨며’살라고 책들은 권한다. ‘소년이여 꿈을 가져라’는 말은 ‘소년이여 맞짱을 떠라’는 말과 다름없다. 단 친구와 주먹질로 맞짱 뜨는 일만 피할 것.



초중고 주변 학생 협박ㆍ갈취 사고
하루평균 2백2건
서울시교위 조사 2개월간 1만2천여건


서울시내 초ㆍ중ㆍ고등학교 주변에서 협박ㆍ구타ㆍ절취에 의한 학생들의 피해가 하루평균 2백2건씩 발생한다.
이같은 사실은 서울시교위가 학교주변폭력일제단속을 시작한 지난3월21일부터 5월말까지 서울시내각급학교(국민교=358, 중학교=267, 고교=229)에서 조사한 자료에서 밝혀졌다.
9일 서울시교위에 의하면 2개월 여 동안에 발생한 학생피해 총사고 1만2천1백65건중 73%인 8천8백89건은 학교 밖에서 일어난 것이고 나머지 3천2백76건이 교내에서 발생했다.
피해내용별로는 ▲돈이나 신발 등을 빼앗는 갈취사고가 4천1백10건(교내202건ㆍ교외3908건)으로 가장 많고 ▲협박이 2천4백건(교내274건ㆍ교외2126건) ▲절취 2천9백8건(교내1896건ㆍ교외1012건)순이며 사취 3백14건, 강도 19건, 기타 5백42건 등이다. (하략)

(<한국일보> 1984년 6월10일치)






이번엔 ‘삥’이다. ‘협박ㆍ갈취’란 이름의 삥. 어쩌면, 가장 건전하다. 칼로 찌르거나 주먹으로 때리지는 않았으니. 대신 치졸하고 째째하다. 푼돈을 뜯어가는 청소년 범죄계의 ‘잡범’들이다. 서울 시교위는 째째하게 뭐 이런 통계까지 냈을까. 학교 주변 폭력과 ‘전쟁’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심야통금’ 65명 적발
청소년 선도 첫날…6명 입건 4명 감호조치


속보=청소년 범죄를 예방키 위해 경찰의 ‘청소년심야통금’ 단속이 실시된 첫날인 26일 밤 서울시내의 유흥가, 우범지대 등에서는 평소와는 달리 배회하는 청소년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경찰은 27일 자정과 새벽4시 사이 하릴없이 배회하는 10대 청소년 65명을 연행, 파출소로 보호시킨 뒤 이날 아침 49명을 보호자에 인계하고 6명은 형사입건하는 한편, 6명은 즉심에, 4명은 소년감호소에 수용조치했다.
경찰은 우범지대가 아니라도 하릴없이 주택가를 배회하거나 인적이 없는 곳을 남녀청소년이 배회할 때는 귀가를 종용하거나 연행했다. 경찰은 그러나 도서관에서 늦게 귀가하는 학생이나 심부름 등 통행목적이 뚜렷하고 부모의 확인이 있으면 귀가시켰다.

(<한국일보> 1984년 3월27일치)






살인을 하지 않아도, 맞짱을 뜨지 않아도, 삥을 뜯지 않아도, 심야에 거리를 배회하면 경찰이 잡아간다. 이건 ‘배회죄’인가? 통금이 해제된 게 1982년 1월5일이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부터 무려 37년간이나 시행된 제도였다. 통금 해제 2년 만에 ‘청소년 통금’이라는 조치가 생겨버렸다. 기사에 따르면 하룻밤 사이 65명을 연행해 6명이나 형사입건을 했다고 한다. 무엇 때문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내 기억에, 중고등학생들의 칙칙한 교복이 완전히 사라진 건 1983년 1학기였다. 내가 고2때였다. 아이들에게 사복이 허용되었다. 등하교 길은 형형색색 컬러의 물결이었다. 친구들은 멋을 내기 시작했고, 그 무렵부터 ‘나이키’니 ‘프로스펙스’니 하는 브랜드 신발들이 유행했다. 이렇게 사복을 입고 마음이 들뜬 청소년들과, 당시 번창일로에 있던 이른바 ‘향락산업’과의 접점을 차단하려는 것이 교육당국과 경찰의 의도였으리라.




흐지부지된 ‘청소년 통금’은 이후 재기를 꿈꿨다. 1995년 12월엔 행정쇄신위와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가 공동주최한 가운데 ‘청소년 심야통금제도 도입을 위한 특별법 제정 찬반 토론회’가 열렸다.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은 걸 보면, 토론만 하고 끝난 듯 싶다. 1999년엔 청소년보호법이 발효되면서 유흥가 근처 청소년통행금지(제한)구역을 뜻하는 ‘레드존’이 전국 67곳에 생겨났다. 물론 이 역시 흐지부지됐지만.

‘청소년 통금’의 정신은 아직도 살아있다. ‘셧 다운제’는 통금의 다른 이름이다. 청소년(16세 미만)들의 인터넷 게임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나서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게임구역에 통행을 금지’시키는 내용이다. 부모가 요청하면 인터넷게임 서비스 업체들은 이 시간대에 연령과 본인 인증을 통해 해당 청소년이 게임에 접속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2011년 5월 도입된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에 따라 계도기간을 거쳐 2012년 7월1일부터 시행됐다.

다시 1984년으로 돌아간다. 국무총리가 주재한 ‘청소년 범죄예방 대책위원회’가 열렸다. ‘전 행정력 동원’이라는 제목이 단호하다.



청소년범죄예방 전행정력 동원
정부, 강력사건 종합대책 마련
5월말까지 특별단속 실시
유해업소ㆍ비디오ㆍ출판물도
‘야간배회’ 단속 전국대도시에 확대


정부는 30일 하오 총리실 대접견실에서 진의종 국무총리 주재로 금년도 제1차 청소년대책위원회를 열어 최근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강력사건과 관련한 종합적인 청소년 선도대책을 협의한 끝에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여 청소년범죄예방과 선도에 주력하기로 결정했다.(하략)

(<경향신문> 84년 3월30일치)






생략된 기사에 따르면, 5월말까지 특별단속기간을 설정해 관계기관 합동으로 학교주변 불량배를 집중단속하고 야간배회 단속을 전국 대도시로 확대할 예정이었다. 또한 청소년 출입을 묵인하는 유흥접객업소와 불량음반 비디오ㆍ도서 등의 제조ㆍ판매업자에 대해서는 영업취소 등의 강력한 행정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대대적인 범죄예방 대책이 가시적 효과는 있었나 보다. 법원행정처가 펴낸 <법원사>에 따르면 위 기사가 실리던 1984년 한해 소년보호사건(19세 미만의 범죄사건)의 법원 수리 건수는 18,151건이었다. 그 전해인 1983년의 20,113건에 비해 10% 가까이 줄었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2년 뒤 해당 건수는 20,438건으로 가파르게 상승하더니, 93년으로 가면 28,957건을 기록한다.



무서운 10대 범죄 곳곳서 난무
연말 앞두고 유흥비마련위해 범행
고교 숙직자 2명 살상강도-성남
미장원여주인 살해 뒤 추행-펑크족
부녀납치 폭행살해 뒤 암장-울산


청소년들의 범죄가 갈수록 흉포화해가고 있다.
3일 새벽 경기도 성남에서는 10대 6명이 학교에 들어가 경비원 등 숙직자 2명을 살상, 금품을 털어가는 등 10대청소년들의 흉악범죄가 잇달고 있다. 관계전문가들은 특히 대입학력고사가 끝나고 겨울방학이 다가오면서 청소년탈선과 범죄가 급증할 것으로 보여 청소년선도에 대한 사회의 보다 높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유흥비를 마련키 위해 우발적인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별로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3일 새벽2시경 경기도 성남시 야탑동 성도고교에 10대강도 6명이 침입, 자고있던 경비원 김경환씨(37)를 몽둥이로 때리고 입을 막아 살해하고 숙직 중이던 서무과 직원 박기성씨(28)에게 중상을 입힌 뒤 교육용비디오2대 비디오카메라 1대 컬러TV 1대 현금5만원 등 모두 3백60여만원 어치의 금품을 털어 달아났다.
중상을 입은 박씨에 따르면 침입한 이들은 모두 10대 후반으로 학생 또는 재수생으로 보였으며 청바지와 잠바 차림이었고 머리는 장발이었으며 종이안경으로 얼굴 윗부분을 가리고 있었다는 것. (중략)

△서울동대문경찰서는 3일 정모(19ㆍ주거부정ㆍ전과1범)군 김모(16)군등 10대 5명을 살인 강도상해 강도강간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지난달 11일 밤10시경 동대문구용두2동 문미용실(주인 조현자ㆍ33)에 들어가 조씨를 목졸라 숨지게 한 뒤 현금19만5천원 팔목시계 금반지등 50여만원어치의 금품을 털었다는 것이다.
펑크머리를 하느라 미장원을 출입해온 이들은 이날도 머리를 손질하다 조씨를 밀어 바닥에 쓰러뜨리고 철제의자로 목을 눌러 숨지게 했다. 김군은 조씨가 숨진 것을 확인한 뒤 치정살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숨진 조씨의 옷을 벗기고 추행까지 하고 달아났다.
또 이들 5명중 도군등 3명은 지난10월29일 새벽2시경 서울성동구장안동 앞길에서 서울4파2140호택시(운전사 이형돈ㆍ31)를 타고 성남으로 가자고 한뒤 차가 성남시상대원동 앞길에 이르자 운전자 이씨의 목을 조르고 손톱깎기용 칼로 얼굴을 마구 찔러 실신시키고 현금8만원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도 받고있다.
중학교 선후배사이인 이들 5명중 4명은 친척관계이기도 한데 충남논산에서 지난해 6월 진학 취업등을 이유로 상경, 자취방에서 10대 소녀들과 혼숙하며 주로 제기동 장위동 일대에서 등하교길의 학생들을 위협, 금품을 뺏어 유흥비로 써왔고 빼앗은 팔목시계 반지등은 함께 지내는 소녀들에게 선물을 해왔다는 것이다.

△【울산】울산경찰서는 3일 훔친 봉고차를 이용, 8차례에 걸쳐 부녀자를 납치, 강간한후 1명을 살해하는 등 집단으로 폭력을 휘둘러온 H공고3년 박모군(17ㆍ울산시 야음2동)등 7명을 강도 강간 살인 시체유기혐의로 구속하고 이모군(17ㆍ신정동)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박군등 10대청소년 8명은 지난달 6일경 울산시 신정동 Y유치원 앞길에 세워둔 부산6가 1870호 봉고차를 훔쳐 이날밤 10시경 술집일을 마치고 귀가중이던 접대부 정순옥양(23)을 차안으로 납치, 준비해둔 커튼으로 입을 틀어막은 뒤 5명이 집단으로 욕을 뵌후 차안에서 정양을 목졸라 죽여 암장했다는것.

△서울강남경찰서는 3일 주택가부근 산중턱 토굴 안에서 혼숙하며 폭행 등을 해온 모중학3년 박모군(15ㆍ강남구역삼동)등 7명을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하고 달아난 김모군(15)등 6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대부분 중학교 재학중이거나 중퇴생인 이들은 지난달 초부터 강남구역삼동 매봉산 중턱의 일제때 만들어진 방공호 토굴속에서 이모양(15)등 2명의 가출소녀들과 혼숙하면서 지난달 28일 밤8시경 강남구양재동 남부병원 앞에서 윤모군(15)을 칼로 찔러 상처를 입히는등 이일대에서 폭력을 휘둘러 왔다는것.

(<동아일보> 1984년 12월3일치)






연말을 조심하라. 기말고사가 끝나고, 대입학력고사(현재의 수학능력시험)가 끝나면 다들 긴장이 풀린다. 방학이다. 크리스마스다. 망년회다. 파티의 계절, 놀아야 한다.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였는가. 심야의 학교에서 숙직자를 죽이고, 미장원에 쳐들어가 주인을 죽이고, 택시기사를 마구 찌르고, 부녀자를 납치ㆍ강간ㆍ살해하고…. 에잇 못된 놈들. 게다가 머리 깎으란다고 학교 유리창을 마구 부수고, 전직 경찰관 집에 들어가 살인을 저질렀다. 또 소매치기의 60%는 10대란다. 위장납치극으로 여자친구를 집에서 빼돌려 함께 3박4일로 놀러갔다 온 뒤 다시 다른 집에서 강도극에 나섰다가 경찰 총에 맞아죽은 10대도 있다.



끔찍한 고교생
머리 깎으란다고 학교유리창 마구부숴
전직경관살해ㆍ성도고교범인도 재학생


△지난4일 오전11시반경 서울강서구신정동 명신고교(교장 오승근)에서 1학년생 최모군(17)등 7명이 “머리를 단정히 하라”는 조용호 교사(32)의 말에 반발, 청소용 밀대로 학교 3,4층 유리창 50여장을 부수는 등 5분동안 소동을 별였다.(중략)

△속보=서울은평구불광2동 전직경찰관집 강도살인사건을 수사중인 서부경찰서는 6일 하태일씨(20ㆍ방위병) 윤모(18ㆍ고등공민학교3년) 신모군(17ㆍ전과2범)등 3명을 붙잡아 범행일체를 자백받고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지난4일 새벽1시경 전직 경찰관인 이채린씨(48)집에 들어갔다가 이씨에게 들키자 흉기로 이씨의 옆구리등을 마구 찔러 숨지게하고 달아났다는 것.

△【성남연합】속보=경기도 성남시 야탑동 성도고교 살인강도사건을 수사중인 성남경찰서는 5일 이 사건의 범인으로 성도고교3년 김모군(18)등 일당6명을 붙잡아 범행일체를 자백받고 강도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하략)

(<동아일보> 1984년 12월6일치)





소매치기 60%가 10대
서울시경 올해검거 2,844명 분석
한해 털린 돈 2백억넘어
최연소 9 최고령 75세…자가용타고 지방원정,
취객상대 ‘아리랑수법’에 출국자 전문털이도


서울시내에서 한햇동안 소매치기당하는 액수가 2백억원가량 되는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소매치기의 60%가 10대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경찰에 붙잡히는 소매치기중 학생과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가 전체의 30%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서울시경이 올 한햇동안 일어난 소매치기사범을 분석한 결과에서 나타났다.
서울시경이 올 들어 11월말까지 검거한 소매치기범은 2천8백44명. 이가운데 14세미만의 형사미성년자가 3백99명으로 전체의 14%를 차지하고 있다.(중략)
소매치기 수법중에서는 빽따기 (핸드백열고 훔쳐가는것)가 23ㆍ8%, 날치기 (핸드백째로 낚아채는것)가 20ㆍ3%로 흔한 수법. 최근에 많이 나타나고 있는것은 ‘아리랑’ 수법으로 술취한 사람을 “집에 모셔다 드리겠다”며 부축하는체하다 돈과 시계등을 털어가는것.
또 낮동안에는 직장에서 일하다 밤에는 치기배로 변해 일당을 차량 뒷자리에 태우고 도심지에서 돈이 많아보이는 사람을 “같은 방향”이라고 합승시킨뒤 털어가는 수법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국내선여객기를 타고다니는 소매치기도 있다.
지난 10월30일 붙잡힌 김모군(17ㆍ전과2범)이 그 예. 검거때 김군의 주머니에서는 서울∼부산간 비행기표가 발견됐는데 경찰이 추궁하자 김군은 “비행기 승객중에는 돈을 많이 갖고 다니거나 공항출구에서 소지품검사를 할때 지갑을 어느 호주머니에 넣는지를 알수 있어 범행이 쉽다”고 말했다. 최근들어 자가용승용차를 직접 운전하고 다니는 소매치기도 늘어났다. 대부분의 서울소매치기들은 인천 성남 안양 이천등 서울주변도시로 ‘출장’을 다니고 있다.
검거된 소매치기중 최연소자는 9세, 최고령자는 75세. 서울시경은 올해 조직소매치기 70여개파를 검거했으나 아직 30여개파 2백50여명이 활보중인 것으로 보고있다.(하략)

(<동아일보> 1984년 12월19일치)





경찰, 칼든 강도 사살
피살범은 ‘여고생 인질’10대
위장납치…사실은 애인관계
강릉놀러가 사건전날 귀가-봉천동


가정집에 들어가 금품을 턴 10대강도 1명이 칼을 들고 반항하다가 출동한 경찰관이 쏜 권총에 맞아 숨졌다.
사살된 강도범은 4일전인 지난 14일 여고 1년생 친구집에 침입, 여자친구를 ‘인질’로 위장해 데리고가 3일간 애정행각을 벌여 경찰의 수사를 받아오던 인질범으로 밝혀졌다.(하략)

(<한국일보> 1984년 12월19일치)




10대들의 적나라한 범죄 퍼레이드를 감상했다. 칼을 들고 강도짓을 하다가 경찰에 사살된 10대 기사엔 못다 핀 러브스토리가 스며있다. 그 주인공은 18살 김 아무개군과 여고1학년생 정 아무개 양이다. 총에 맞아 죽기 4일전인 1985년 4월14일 새벽 김 군은 정 양의 집에 침입해 강도인 척 하면서 정 양을 데려가 강릉과 주문진 등 동해안에서 함께 여행을 즐겼다. 정 양은 김 군을 ‘H고 3년 오빠’로 알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김 군은 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4번의 절도 전과가 있었다. 동해안에서 돌아와 서울 봉천2동 집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 봉천7동 주택가로 ‘새벽 작업’을 나갔던 김 군은 출동한 경찰과 몸싸움을 하다 총을 맞았다. 총알은 그의 뒷머리 아래부위에서 45도 각도로 왼쪽눈썹 아래쪽을 관통했다. 왜 경찰은 다리가 아닌 뒤통수를 겨냥했을까.

이 사건을 보며 2010년 발표된 독립영화 <회오리바람>(감독 장건재)이 떠올랐다. 이성친구와 금지된 여행을 즐겼다는 점에서만 그렇다. 고2 겨울방학 때 연애 100일 기념으로 동해바다 여행을 다녀온 태훈과 미정. 태훈의 부모는 철이 없다는 꾸지람으로 끝나지만, 미정의 아버지는 다르다. 태훈과 그의 부모를 굳이 집으로 불러 ‘같이 잤는지’ 수사관처럼 캐묻는다. 살기 띤 얼굴로 “절대로 만나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하고, 심지어 탁자에 식칼을 꽂고 위협한다. 위의 사건처럼 최악의 비극은 없지만, 회오리바람에 휩싸인 10대들의 욕망과 조바심, 한계를 잘 그린 영화다.

미숙한 러브스토리는 계속된다. 이번엔 애인의 변심에 꼭지가 돈 10대의 방화다.



고교생 빗나간 반항심리
3개월간 20곳 연쇄방화
공부성화ㆍ애인변심에 앙심
“여자방만 보면 불지르고 싶었다”


부모에 대한 반항심과 사귀어오던 재수생 애인의 변심에 대한 분풀이로 주택가에 잇달아 불을 지른 고교생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종암경찰서는 1일 정모군(18ㆍS공고 3년)을 붙잡아 그동안 잇달아 발생한 주택가 방화사건의 범인으로 조사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정군은 지난 1월부터 3월말까지 3개월 동안 서울성북구하월곡동, 도봉구미아동등 반경 2km이내의 주택가 20개 가옥에 불을 질렀다는 것.(중략)
정군은 경찰에서 “부모들이 지나치게 공부만 하라고 해 반항심에서 밖으로 나돌아 다녔는데 최근 사귀어오던 박모양(19ㆍ재수생)이 절교하자고해 여자 혼자 사는 방이나 결혼하지 않은채 동거중인 방만 보면 불을 지르고 싶어졌다” 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정군은 또 “불을 낸 뒤 방안에 현금 등이 있으면 가지고 나왔고 다른 방에 사람이 있으면 ‘불이야’하고 소리치고 달아났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1985년 4월2일치)






제목이 ‘고교생 빗나간 반항심리’다. 부모가 공부만 하라고 해 반항심이 생겨 밖으로 싸돌아다녔는데 여자친구까지 절교를 선언했다. 화를 풀 방법이 없자 무려 주택가 20곳에 불을 질렀다. 그 밑에 1단으로 흐르는 여러 기사들은 당국에서 ‘대학생 빗나간 반항심리’로 이름붙일 만하다. 학내언론자유를 요구하며 경희대생 1백여 명이 데모를 했다. 경찰이 민정당 지구당 투석사건과 관계된 이대 졸업생을 조사했고, 학생회 인정을 요구하는 숙대생 70명이 농성을 했단다. 화염병을 던진 전남대생 3명은 징역 1년6개월에 처해졌다. 에이, 싱겁네~

1984, 1985년은 ‘학원자율화’ 국면이었다. 대학에 경찰을 상주시킨 채 일체의 데모를 불허하고, 주동자급으로 찍힌 학생들을 제적시키거나 군대로 끌고 가던 정부가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 일제 식민지 시절에 비유를 하자면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의 변화였다. 1983년 12월21일 문교부가 제적생 복교허용을 골자로 한 ‘학원자율화조치’를 발표한 것이다. 캠퍼스를 활보하던 경찰병력은 철수했다. 데모하다 잘린 학생들에겐 학교 다닐 기회를 줬다. 각 대학마다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학자추)등이 구성되고 군대식 학도호국단이 아닌 ‘총학생회’ 부활 움직임이 일어났다. 학내 데모는 자유로운 편이었다. 당연히 대학가는 시끄러워졌다. 학내 민주화와 사회 민주화를 이슈로 건 각종 집회가 벌어졌다. 이는 곧잘 살벌한 투석전으로 이어졌다. 대학 안의 보도블록은 남아날 새가 없었다. 최루탄 냄새도 마를 날이 없었다. 20대 대학생들한테 지친 경찰이 10대를 돌아볼 틈이 있었을까? 그래도 10대는 묵묵히, 꾸준히 일을 저질렀다.



10대 절도 3명 파출소 습격
새벽 공범 빼내 도주
훔친 차로 경찰유인한 뒤
각목ㆍ벽돌 들고 난입
차 붙잡고 추격하던 경관 중상


18일 상오 4시15분께 서울 동대문구 면목1동 120의1 서울 태릉경찰서 면일파출소(소장 이광범 경위ㆍ43)에 차량절도범 박모군(19ㆍ전과 7범ㆍ서울 동대문구 면목1동) 등 10대 3명이 난입, 취조중이던 김은봉 순경(32)을 위협하고 공범 최모군(17ㆍ전과4범ㆍ경기 남양주군미금읍 도농리)을 빼앗아 달아났다. (하략)

(<한국일보> 1985년 6월19일치)






10대들이 파출소를 습격해 조사받던 공범을 빼냈다. 대담하다. 그 밑에는 ‘총장실 부수고 난동’이라는 다른 기사의 제목이 붙어있다. 외대 용인 캠퍼스 학생들이 주인공이다. “부당징계 철회하라” “부실재단 물러가라”등을 요구하며 서울 이문동 외대 본관으로 난입, 총장실과 재단이사장실 등 50여개 사무실 유리창 7백여 장을 깨뜨리고 기물을 부쉈다는 내용이다. 잠시 둘을 놓고 비교해본다. 누가누가 더 험한 짓을 했나. 저울질하기 어렵다. 아무튼 10대와 20대의 하모니(!)가 신문 사회면을 빛내고 있다.

파출소 습격은, 5공 정권 후반기에 운동권 대학생들의 몫이었다. 특히 1987년 6월항쟁 직전 ‘파출소 화염병 습격’은 대유행을 이뤘다. 파출소에 근무하는 일선 순경들로서는 공포에 떨만한 일이었다.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총기를 사용해 문제가 된 적도 있다.

아버지의 스크랩 16, 17권에서 20대 대학생들의 ‘과격 불법행동’을 더 살펴보자. 1984년 3월19일 전남대생 1백여 명은 총학생장 직선을 요구하며 총학생장 보궐선거장에 들어가 빈병을 던지고 교직원을 폭행했다.(<경향신문> 1984년 3월20일치) 서강대생 50여명은 4월6일 후문 밖 길 건너편에 있는 대흥동 동사무소 3층에 난입해 유리창 등 집기를 마구 부수고 시위광경을 지켜보던 마포경찰서 김형춘 순경을 끌고 갔다.(<한국일보> 1984년 4월7일치) 9월27일 고대생들은 학교 앞에서 거리시위를 벌이던 최루가스분사용 지프를 뒤엎고 경찰지휘차에 불을 질러 전소시켰다.(<한국일보> 1984년 9월28일치). 11월14일엔 서울지역 대학생 1백50여명이 서울 종로구 관훈동 민정당사를 점거했다.(<한국일보> 1984년 11월15일치) 1985년 2월5일 서울대ㆍ중앙대생 등 3명은 서울 동작구 사당5동 남성국민학교에서 열린 2.12 총선 합동연설회에서 연설 중이던 민정당 허청일 후보에게 암모니아를 뿌렸다.(<동아일보> 1985년 2월6일치) 5월23일 서울대생 등 5개 대학생 75명은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미국문화원을 점거하고 미국 대사와의 면담과 미국의 ‘광주사태 사과’를 요구했다. “강제해산 땐 음독ㆍ투신하겠다”고 위협했다.(<경향신문> 1985년 5월24일치)


사고를 친 대학생들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1985년 11월엔 서울 중구 소공동 미국상공회의소(4일, 14명)와 가락동 민정당연수원(18일, 1백70명)을 점거했다. 젊은이들이 떼거리로 몰려가 공공건물을 무작정 점거하던 시대였다. 그래봤자, 점잖다. 무섭지 않다. 위에서 처음부터 열거한 10대들의 사건에 비하면 말이다. 아무리 법을 위반하고 폭력을 써도 20대 대학생들에겐 전략ㆍ전술과 논리와 명분이 있었다. 10대들은 충동적이었다. 겁이 없고 막무가내였다. 술에 취한 폭주오토바이 같고, 그치지 않을 회오리 광풍 같았다. 20대가 질풍노도라면 10대는 광풍노도였다. 똑같은 시대의 산물이어도 ‘운동으로 단련된 10대’와 ‘운동권에서 단련된 20대’의 행동양태는 많이 달랐다.

삐뚤어진 10대는 삐뚤어진 사회를 반영한다. 개인의 인격은 가족과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그렇다고 ‘선도’는 웃기는 얘기다. ‘청소년 선도’가 아닌 공감과 소통이 필요하다는 식의 공자말씀도 이 지면에선 감당이 안 되는 거대담론이다. 그저, 새삼 알았다. 10대, 그들은 원래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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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고경태

「한겨레」 토요판 에디터. 「한겨레21」「씨네21」편집장과 한겨레 esc 팀장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 홈스쿨』(2011)과 『유혹하는 에디터』(2009), 『직설』(공저, 2011)이 있다. 가족을 사골국물처럼 글감으로 우려먹는다는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아버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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