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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빈 인 더 우즈>에 호러영화 팬들이 열광하는 이유 - 밀실공포에 관한 영화들

출구 없는 밀실, 그 공포 입구는 있다. 그러나 출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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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청춘 남녀가 GPS에도 안 잡히고 휴대폰도 안 터지는 산골짜기로 들어간다. 가는 길에 느낌이 좋지 않은 노인을 만나고, 뻔히 수상한 줄 알면서도 호기심으로 낯선 공간에 발을 들여 놓는다. 여기에는 일행과 떨어져 독단적인 행동을 하는 철없는 아이들이 또 있다. 여기까지 줄거리만 들으면, 우리가 흔히 보아온 여러 가지 하이틴 슬래셔 영화가 떠오를 것이다.


<큐브>

갑자기 멈춰버린 엘리베이터, 출구를 알 수 없는 미로, 문이 잠겨버린 지하실, 어둠 속에 갇혀 버린 지하철, 그리고 꼼짝없이 갇혀있을 수밖에 없는 교실…….일상 속에 늘 존재하는 그 공간에 탈출구가 없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덜컥 겁을 먹고 만다. 1997년 빈센초 나탈리 감독의 <큐브>는 이러한 인간의 원초적인 밀실 공포를 소재로 한 영화였다.

영화가 시작되면 푸른색 큐브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선다. 두려운 눈빛으로 자신이 서 있는 공간을 살피던 그는 벽마다 설치된 거대한 금속 문을 발견한다. 그는 하나의 문을 연다. 문 너머 또 다른 큐브공간이 보인다. 이번엔 붉은 방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조심스럽게 그 방으로 내려선다. 그가 한숨을 내쉬는 순간,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금속성의 그물. 그의 몸은 수백 개로 산산조각이 난다. 그의 피부는 작은 큐브가 되어 부서져 내린다. 살아남은 사람은 여섯 명, 그들은 자신들이 왜 큐브에 갇혔는지 모르지만, 탈출하기 위해 애쓴다.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단서를 찾고 탈출구를 찾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들은 맨 처음 그 큐브로 돌아오게 된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원점, 17,576개의 거대한 큐브는 무엇이었을까?

영화는 그 해답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지만,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현대인의 공포, 그 이기적인 생존 본능, 분명한 악의 축은 존재하지만 그 실체가 불분명해서 누구도 책임질 사람은 없다는 현대 사회의 이면을 꿰뚫어 보고 있다.




이런 밀실공포를 소재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는 호러 영화가 최근 한편 완성되었는데 그 영화가 <캐빈 인 더 우즈>이다. 다섯 명의 청춘 남녀가 GPS에도 안 잡히고 휴대폰도 안 터지는 산골짜기로 들어간다. 가는 길에 느낌이 좋지 않은 노인을 만나고, 뻔히 수상한 줄 알면서도 호기심으로 낯선 공간에 발을 들여 놓는다. 여기에는 일행과 떨어져 독단적인 행동을 하는 철없는 아이들이 또 있다. 여기까지 줄거리만 들으면, 우리가 흔히 보아온 여러 가지 하이틴 슬래셔 영화가 떠오를 것이다.

그렇게 <캐빈 인 더 우즈>는 예측 가능한 스토리로 시작하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단 한 순간도 관객의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파격적이다 못해 엉뚱하다고 느끼는 매 순간에 이 영화는 슬래셔에서 좀비 물로 변화하는 가하면, 앞서 말한 영화 <큐브>처럼 탈출구를 찾기 위한 지적 추리물이 되는가 싶더니, 지구 종말과 미신에 대한 이야기까지 마구잡이로 끌어 들인다.

<클로버필드>와 미국 인기 시리즈 <로스트>의 각본을 쓴 드류 고다드가 감독을 맡은 이 영화는 호러 영화하면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공포의 순간과 모든 공포의 대상을 한 번에 집어넣고 마구 혼합시키고 떼로 덤비게 만드는 영화다. 이 영화에 열광하는 관객들이 이 영화의 후반부를 호러 영화의 진정한 축제라고 부르는 이유는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든 호러 영화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관객들이라면, 모든 호러 장르를 집대성한 이 영화의 후반부를 좀 더 짜릿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배우 오디션도 가짜 시나리오로 진행했을 정도라고 하니, 깜짝 반전에 대한 기대를 해봐도 좋을 것 같다.


탈출구가 없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패닉 룸>

각종 호러 영화에 대한 다양한 장치들을 끌어들여 짜릿한 공포를 주고 있지만, <캐빈 인 더 우즈>의 기저를 흐르는 가장 큰 공포 장치는 바로 ‘공간’에 있다. 인적이 드문 고립된 낯선 공간, 정체를 모를 가해자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달아나야 하는 그 공포는 아주 오랜 시간 많은 공포영화와 스릴러 장르의 소재가 되어 왔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모태라 불리는 1920년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공간’의 표현을 통해 ‘정신’을 표현해낸 영화였다. 형태와 색채를 왜곡하고, 부조화 시키는 회화적 특성을 살려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내면을 극대화시켜 표현하고 있다. 이 영화는 밀실이라는 소재를 통해 독일인들의 의식 저편에 있는 불안과 공포심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2002년 데이비드 핀처의 <패닉 룸>은 가장 안전해 보이는 공간이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을 때,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처절한 사투와 늘 흐르고 있지만 소통하지 않는 거대 도시의 한 단면을 서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였다. 가장 완벽하다는 최신보안 시스템을 갖춘 완벽한 건물도, 지상 최고의 안전지대라 만들어진 패닉 룸도, 심지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경찰관마저도 주인공을 지켜주지 않는다. <패닉 룸>은 신경병적인 표정의 조디 포스터의 사투를 통해 결국 어떤 공간도 어떤 사람도 나를 지켜줄 수 없다는 근원적인 우리의 무의식에서 오는 공포와 두려움을 보여준다.


<베리드>

2010년 <베리드>는 밀실 공포를 다룬 영화중에서 아마 가장 좁은 공간을 활용한 영화일 것이다. 이 영화는 라이언 레이놀즈를 관 속에 가둬두고, 카메라는 관 속을 벗어나지 않는다. 관 속의 1인극으로 1시간 30분짜리 장편 영화라니 로드리고 코르테즈 감독은 밀실 공포 체험에서 더 나아가 완벽하게 갇혀버린 개인을 통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유연하게 녹여낸다. 가까스로 어둠을 몰아내는 지포라이터 불빛에 비친 주인공의 얼굴과 맞닥뜨린 후, 그의 시원한 탈출을 기대하겠지만, 관객들은 1시간 30분 동안 라이언 레이놀즈의 절망과 살기 위한 몸부림에 동참해야 한다. 카메라는 그 흔한 플래시백 한번 없이 땅속에 묻힌 단 한명의 인물과 단 한 공간만 비추는 우직한 카메라워킹으로 러닝타임을 메운다. 거의 발작에 가까운 주인공의 사투에 따라 관객도 함께 가쁜 숨을 몰아쉬게 만든다.

<베리드>는 관 속에 갇힌 개인의 사투를 그리고 있지만 그 이면에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국가가 막상 국민이 곤경에 처했을 때에는 국익 운운하며 싸늘하게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는 사실, 힘없는 개인에게 공권력이란 허울일 뿐이라는 사실을 강렬한 메시지로 보여주고 동참하게 만든다. 우리에게 진정한 공포는 ‘관’이 아니라, 거대한 사회 속에 힘없는 개인으로 살아야한다는 그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베이컨시>

2007년 님로드 앤탈 감독의 <베이컨시>도 폐쇄된 공간을 활용한 흥미로운 공포영화다. 어쩔 수 없이 깊은 밤 낯선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사이 나쁜 부부에게 닥친 현실은 폭력과 외설에 갇힌 시선이다. 이 영화는 스너프 필름의 희생자가 될 것임을 감지한 부부가 갖은 노력으로 탈출을 시도하지만, 그들의 모든 행동이 카메라를 통해 모두 공개된다. 심야에서 새벽까지의 짧은 시간에 벌어지는 이 부부의 탈출기는 방과 지하를 오가며 전개되고, 이들이 보이는 화면 너머에서 어떠한 외설적이고 잔혹한 일들이 연출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관객은 다만 화면 너머로 들리는 비명과 비디오 화면으로 슬쩍슬쩍 보이는 녹화장면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스너프 필름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는 사방으로 튀는 피 없이 폐쇄적인 공간을 활용한 긴장감을 통해 공포를 선사하는 노련함을 선보인다. 물론 극한의 긴장감에 비해, 반전 없는 온전한 결말이 다소 싱겁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을 수도 있지만, 밀실이라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긴장과 공포감은 충분히 즐길만한 영화였다.


<디바이드>

2012년 자비에르 젠스 감독의 <디바이드>는 핵전쟁 발발 이후 뉴욕 도심 한복판의 지하 벙커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생존기를 다룬 영화다. 뉴욕의 어느 건물이 핵공격으로 추정되는 대폭발에 산산 조각난다. 건물 관리인 미키(마이클 빈)는 지하벙커로 급히 대피하고 그를 따라온 단 8명만이 폭발을 피한다. 공포에 떨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외면하고 미키는 생존을 위해 지하 벙커의 철문을 굳게 잠가 버린다. 하지만 생존자들은 외부와 단절된 지하벙커에서 또 다른 공포와 맞이한다. 구조될 것인가? 밖으로 나갈 것인가?

밀실에서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 없는 6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는 우선 생존을 위한 본능을 선택한다. 먹을 것을 소유한 자는 권력을 지니고 병든 자는 버려진다. 다수의 남성은 여성을 지배하려 하고 친구도 연인도 심지어 종교도 없다. 살아남은 자들에게서 희망을 빼앗고 잔혹한 본성을 드러내며 극한의 공포를 선사한다.


<에일리언>


<쏘우>

앞서 언급한 영화 이외에도 <에일리언> 시리즈는 우주의 낯선 곳이라는 밀실공포를 활용한 성공적인 장르영화였다. 학교라는 지극히 폐쇄적인 공간에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여야 하는 학생들의 성장기 <여고괴담>, <고사> 시리즈는 학교라는 사회적 함의에 갇혀 숨 막혀 하는 학생들의 근원적인 공포를 파고든다. 이외에도 지하 요가학원을 소재로 한 <요가학원>, 별장에서의 슬래셔 영화 <해변으로 가다>, <스승의 은혜>, <인형사> 등의 한국 공포영화도 있지만, 공간의 활용도에 비해 심리로 파고드는 공포가 다소 약한 것이 아쉬웠다.

너무 많은 시리즈가 쏟아져서 흥미가 떨어지긴 했지만, 지하실에 갇힌 채 자신의 발목을 끊어내고서야 살아날 수 있는 잔인한 극한의 공포를 보여준 <쏘우>, 이혼한 한 여성의 삶에 대한 공포를 아파트라는 공간을 활용하여 보여준 <검은 물 밑에서>, 광장에 놓인 공중전화이지만 그곳을 벗어나면 죽을 수밖에 없기에 공중전화박스의 폐쇄공포를 보여준 <폰 부스> 등 완성도 높은 스릴러, 호러 영화들도 찾아보면 꽤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밀실공포란 사전적 의미로 ‘밀실에 공포증을 느끼는 정신병적 증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밀실’의 기준은 뭘까? 좁은 엘리베이터, 패닉 룸, 큐브, 학교, 외딴 집, 지하에 묻힌 관, 미지의 우주, 지하벙커, 어쩌면 <28일 후>처럼 달아날 곳 없는 하나의 도시?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과 이정호 감독의 <베스트셀러>에서처럼 정작 공포스러운 것은 외딴 별장이 아니라 스스로의 죄의식으로 가둬버린 자신의 정신세계 그 자체에 있다. 그래서 수많은 공포영화들이 밀실이라는 무서운 ‘장소’를 소재로 하지만, 그 기저에 단절, 소외, 폭압이라는 사회적 함의를 담아내고 있다. 어쩌면 밀실공포는 갇힌 공간의 크기에서 오는 게 아니라 갇힌 정신의 크기에서 오는 것이라고 이 영화들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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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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