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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술집 낙서 보고 제목 정했더니 대박!

베스트셀러? 제목이 70%다. 그런데 제목을 뭐로 하지? 김훈의『칼의 노래』가 원래 제목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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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관계자들이 고민을 토로하기를 ‘물론 책 내용이 제일 중요하지만 그래도 처음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데에는 제목이 70%는 하는 것이 경험상 사실’이라고 한다. 요새같이 출판이 불황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그런데 이런 일은 요즘의 일만은 아닌 가보다.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아침형 인간이 성공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모두가 다 아는 베스트셀러다. 제목은 누가 지은 것일까? 궁금하지 않나? 사실 처음부터 제목을 정해놓고 쓴 책도 있겠지만 대부분 글이 다 완성된 뒤에도 수 십 번 제목이 바뀐다. 그리고 책 제목은 유행을 타기도 한다. 앞의 세 권은 문장형 구조로 되어있는데, 그와 유사한 분위기의 제목이 한때 유행이었다. 또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는 스무살, 마흔살과 같이 연령별 서적의 붐을 일으키며 나이별 제목 붐을 일으켰다. 올해는 또 달라졌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과 같이 명사형으로 똑 떨어지게 끝나는 것들이 유행이다. 그만큼 저자와 출판사는 독자들의 눈에 띄고, 손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출판사 관계자들이 고민을 토로하기를 ‘물론 책 내용이 제일 중요하지만 그래도 처음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데에는 제목이 70%는 하는 것이 경험상 사실’이라고 한다. 요새같이 출판이 불황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그런데 이런 일은 요즘의 일만은 아닌 가보다. 미국의 유명한 편집자이자 출판인인 앙드레 버나드가 쓰고 한겨레 신문의 문학담당인 최재봉 기자가 번역한 『제목은 뭐로 하지』(모멘토)을 보면 범세계적일 뿐 아니라, 꽤 유서가 깊은 일이 바로 ‘제목’을 정하는 일이고 이를 두고 많은 고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명작에는 유서깊은 뒷얘기들이 있었다.

에드워드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는 단골술집의 일층 거울에 누군가 써놓은 낙서를 저자가 우연히 보고, 기억해놨다가 쓴 것이었다. 그는 울프(Woolf)를 무서운 늑대(wolf)와 같은 적으로 느껴지도록 은유적으로 사용했다고 했다. 탐정 필립 말로가 나오는 레이몬드 챈들러의 소설 『안녕 내 사랑』의 원래 제목은 세익스피어의 희곡의 한 장면을 따서 「두 번째 자객」이었다. 그러나 출판업자는 「달콤한 종들이 땡글거리고」를 제목으로 삼고 싶어했지만 챈들러는 문학적으로 젠체 하는 것 같다며 거절하고 「제기랄 죽이자꾸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 역시 채택되지 않아 지금의 제목이 되었다. 서양작가들에게 세익스피어는 영감의 원천인지라 그의 작품의 어구를 딴 작품이 꽤 많다고 한다.




명작이고 너무 딱 들어맞는 제목임에도 불구하고, 저자 본인은 출판된 이후까지도 망설인 작품도 있다. 바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다. 제목만으로도 1920년대의 롱아일랜드와 금주시대의 흥청망청이 딱 떠오르지만 막상 저자는 「웨스트 에그의 트리말키오」를 선호했고, 편집자는 반대를 했다. 결국 지금의 제목으로 결정되었지만 꽤 오랫동안 피츠제럴드는 후회를 했다고 한다. 정반대의 예도 있었다. 대실 해밋의 명작 『몰타의 매』는 그가 줄거리를 구상하기 전부터 잡아낸 제목이었다. 그러나, 그의 편집자는 매(falcon)라는 단어가 장애물이 될거라고 강하게 반발을 했지만 결국 이 작품은 크게 성공했다. 찰스 포티스는 이런 실랑이 때문에 ‘마음에 드는 제목을 갖고 있는 작가라면 모름지기 그건 아껴두고 먼저 쓸모없는 제목 두 세개를 제시해서 편집자가 딱지를 놓도록 해 그의 자존심을 살려라’고 전략적 조언을 하기도 한다.




번역자 최재봉은 책 후반부에 한국의 작품 40여 편도 따로 소개했다.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에서 따온 말인데, 저자는 ‘홀로 서지 못해 고통 받는 사람들에 빗대서 쓰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정했지만 막상 출판사에서는 난색을 표했고, 당시 신인 작가 공지영의 고집으로 이 제목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김훈의 『칼의 노래』는 원래 생각해 놓은 제목이 「광화문 그 사내」였다고 한다. 이순신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 그랬는데, 주현미의 노래 「신사동 그 사람」이 떠오르기도 해서, 출판사에서 장난스럽다고 난색을 표해, 저자가 내놓은 대안이 지금의 제목이었고, 자연스럽게 우륵의 이야기를 다룬 차기작은 『현의 노래』로 잠정 결정되었다.

이와 같이 이 책은 영, 미 문학뿐 아니라 번역자 덕분에 한국문학 작품의 제목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 작가들의 버릇과 요령, 그리고 작가와 편집자 사이의 피말리는 실랑이를 소개하고 있다. 번역자가 말했듯이 표지가 책의 얼굴이라면 제목은 눈동자에 해당하는 것이다. 본문 내용을 잘 집약하고 함축하여 암시를 해주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 화룡점정을 위해 눈동자를 그리는 일, 참으로 어렵고 살떨리는 일이 아니겠는가? 오늘도 출판을 앞둔 수많은 책들이 제목이라는 눈동자가 그려지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났으니 이제 여러분 눈앞에 펼쳐진 이 수많은 책 제목들이 얼마나 대단한 산고 끝에 나온 아이들인지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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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뭐로하지? 앙드레 버나드 저/최재봉 역 | 모멘토

우리에게 익숙한 문학작품의 제목들. 누구든지 익숙하게 접하고는 있지만 막상 그 제목의 기원은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잘 알려진 희곡들과 책 등의 제목은 어떻게 붙여졌을까? 이 책은 그 일화들을 중심으로 서술하며 여러 세기 동안 작가들을 미치게 만든 제목과의 싸움을 가볍게 살펴보고 있다. 『에덴의 동쪽』, 『테스』, 『살리나스 계곡』등 제목들의 매력적인 울림 너머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그리고 그 제목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존경과 놀라움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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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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