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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는 두 개의 심장과 세 개의 다리로 추는 춤 - 박종호 『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의 3분은 인생의 30년” ‘섹스가 육체의 위안이라면, 탱고는 영혼의 섹스다’ 탱고는 춤, 음악, 성악, 문학이 함께하는 종합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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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어보지 않고는 맛을 알 수 없는 것처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직접 보기 전에는 그 나라를 알 수 없는 것처럼, 『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읽지 않고는 탱고를 다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탱고의 숨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탱고가 춤이기 이전에 음악이고 문학이라는 저자의 관점부터가 새롭다.



두 사람은 상체를 완전히 밀착시켰지만 그러면서도 팔은 서로를 마음껏 안지 못한다. 몸통이 붙었으나 움직임을 위해서 긴장된 거리를 유지한다. 둘은 고개를 돌려서 함께 한 방향을 바라본다. 이런 둘의 자세는 상대의 갈구하는 시선과 뜨거운 숨결과 몽환적인 향수와 소용돌이치는 심장 박동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저자 박종호가 탱고를 묘사한 부분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탱고 ‘춤’ 에 대한 묘사다. 이것이 저자의 의도에 좀 더 가까울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춤으로써의 탱고가 아니라 ‘음악으로써의 탱고’이기 때문이다. 탱고라고 하면 으레 남녀가 함께 추는, 애절하면서도 관능적인 춤을 떠올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통해 기분 좋은 배신감을 맛볼 것이다. 탱고 춤에 대한 이야기인줄 알고 책을 펼쳤다가 음악으로써 탱고에 새롭게 눈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탱고는 춤, 음악, 성악, 문학이 함께하는 종합 예술이다.

“탱고는 춤이 아닙니다. 그것이 이 책에서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탱고는 관능이기 이전에 슬픔이고, 춤이기 이전에 음악입니다. 그리고 음악이기 이전에 문학입니다.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탱고가 음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음악이다. 그들의 모든 삶과 애환이 그대로 녹아있는 음악이다.’ 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직접 가서 느낀 점은 탱고가 문학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5월 4일에 있었던 저자 강연회에서 한 말이다. 물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만큼은 탱고는 춤이 아니다. 저자가 누구인가. 클래식 음반 매장 풍월당의 대표이자 오페라 평론가다. 춤이 아닌 음악으로써 탱고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오히려 그에게는 더 자연스럽다.

그가 생각하기에 탱고 춤을 추는 사람은 탱고를 감상하는 리스너(Listener)다. 탱고 음악 연주를 듣고 그 감상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탱고 춤이다. 그것은 음악을 듣고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것과 다름없는 하나의 표현 방식이다. 저자에게 있어 ‘탱고 춤이 가장 완벽한 순간’은 춤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직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다.


최초의 탱고는 남자와 여자가 아닌, 남자끼리 추는 춤이었다.

탱고는 보는 것이 아닌 듣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그에게 탱고라는 음악은 성악이다. 전적으로 보컬리스트의 역량에 달려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들이 부르는 탱고 중 대부분은 사랑으로부터 버림받은 남자의 이야기다. 바로 여기에 탱고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가 숨어있다.

탱고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라보카 지역은, 19세기 후반에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유럽의 하층민들이 주로 살던 곳이다. 당시의 유럽 이민자들은 대부분 홀로 고향과 가족을 떠나온 남성이었다. 자연스럽게 라보카 항구 주변에는 유곽이 형성되었다. 유럽에서 건너온 매춘부나 사랑하는 연인을 찾아 아르헨티나에 왔다가 매춘부가 된 여성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곳에 모여든 남성들이 그리움과 외로움에 함께 부둥켜안고 춤을 춘 것이 탱고의 시작이다. 매춘부와 사랑을 나누기 위해 기다리는 순간이나 사랑을 나눈 후에 돌아서는 순간이나, 마음이 공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움은 찰나의 쾌락으로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최초의 탱고는 남자와 여자가 아닌, 남자끼리 추는 춤이었다. 함께 스텝을 옮기고 노래를 부르며 삶의 고단함과 고향에 대한 향수, 사랑에 대한 갈망을 서로 공유하고 위로했다. 저자가 ‘탱고는 이 도시에 있었던 시민들의 추억, 어린 시절, 청춘, 사랑, 성공, 실패, 배신, 좌절, 그리고 타락과 관조 등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고 말하는 이유다.


영화 <여인의 향기> 탱고 음악은 ‘말 대가리 하나 차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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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관능적인 탱고의 춤과 음악이 부두의 남성 노동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카를로스 가르델의 곡 ‘포르 우나 카베사(Por una cabeza)’의 진짜 이야기 역시 놀라운 반전이다. 이 곡은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와 가브리엘 앤워가 함께 탱고를 추는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유명하다. 카를로스 가르델은 탱고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가수로, 모든 탱고 가수들의 우상이다.

“카를로스 가르델의 ‘포르 우나 카베사’는 영화 <여인의 향기>의 유명한 탱고 곡이죠. 사실은 아무런 상관없는 노래라고 할 수 있어요. 이 곡의 제목이 ‘말 대가리 하나 차이로’라는 뜻이거든요. 당시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경마를 많이 했는데, 말 대가리 하나 차이로 져서 돈을 모두 잃었다는 이야기에요.”

저자가 들려주는 노랫말의 내용은 이러하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싶지만 돈이 없는 부두의 노동자가 모든 돈을 경마에 건다. 그런데 돈을 건 말이 말대가리 하나 차이로 져서 모두 날리게 된 것이다.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동시에 무엇보다 로맨틱하니, 묘하다고 할 수밖에.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돈을 모두 잃은 상황에서 그들은 노래를 한다고. 탱고가 곧 삶이자 정신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사람들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가 탱고를 주제로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시인이었고, 그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모든 말들은 그 자체로 문학이었다. 그들 안에 탱고가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예술과 함께 산다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다.


탱고는 두 개의 심장과 세 개의 다리로 추는 거라고 얘기하죠.
인생하고 똑같은 거에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탱고는 파리로 전해져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하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상류층 사람들이, 탱고의 본고장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탱고를 따라 추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저자는 탱고를 통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상류층과 하류층의 사회적 통합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이라 평했다.

“탱고를 출 때는 항상 다리를 하나 들죠. 네 다리가 서 있는 경우는 없고, 항상 세 다리만 땅에 있고 한 다리는 들려 있어요. 사람이 항상 누구와 함께 살아가듯이,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것처럼 탱고를 추어야만 하는 거죠. 혼자서는 다리 하나를 들 수가 없겠죠. 굉장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죠. 탱고는 두 개의 심장과 세 개의 다리로 추는 거라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탱고는 영원히 두 개의 심장인 거에요. 두 사람의 심장은 결코 하나의 심장이 될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안다는 것, 인생하고 똑같은 거에요. 탱고의 3분이라는 건 인생의 30년과 똑같다고 생각을 해요.”

그 시작이 외로움을 달래고 고달픔을 위로하기 위해 가슴을 맞대었던 것처럼, 지금도 탱고는 서로에게 의지한 채 걸음을 옮기는 움직임의 연속이다. 탱고의 음악도 마찬가지다. 책을 통해 저자가 ‘섹스가 육체의 위안이라면, 탱고는 영혼의 섹스다.’라고 말한 것처럼, 음악으로써 탱고는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다.


『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다른 각도에서 탱고를 바라보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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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두고 ‘남미의 파리’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곳을 남미의 파리라 부르지 마라. 이곳은 부에노스 아이레스다.’ 단언한다. 그는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도시라고 했다. 남미의 파리라는 그곳에서 파리가 아닌 남미를 만났다고 했다. 파리와는 전혀 다른 부에노스 아이레스만의 독특함이 있다고 했다. 굉장히 칙칙하고 초라한 가운데 그들만의 애환이 있는,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색채와 냄새가 묻어 있는 곳이었다.

음식을 먹어보지 않고는 맛을 알 수 없는 것처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직접 보기 전에는 그 나라를 알 수 없는 것처럼, 『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읽지 않고는 탱고를 다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탱고의 숨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탱고가 춤이기 이전에 음악이고 문학이라는 저자의 관점부터가 새롭다. 『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읽어야만 탱고를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에서 탱고를 바라보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음악으로써의 탱고를 이야기하기 위해 책을 쓰면서 아무래도 활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것일까. 저자는 독자들에게 탱고 음악을 선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초판본에 한정해 작은 음반을 첨부했다. 카를로스 가르델의 노래 세 곡을 담고 있는 이 음반에는 앞서 이야기한 ‘포르 우나 카베사’도 포함되어 있다. 저자가 이 음반에 가장 담고 싶었던, 가장 추천하는 곡은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날(El dia que me quieras)’이다. 그는 오리지널 판보다 더 나은 음질의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고 자부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면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람들처럼 카롤로스 가르델과 탱고를 사랑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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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박종호 저 | 시공사

풍월당 대표이자 정신과 전문의, 클래식과 오페라 비평가인 박종호가 이번에는 탱고를 소개해 주기 위해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향한다. 우리나라와 정반대편에 있는 머나먼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삶을 간직한 탱고와 예술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소개된다. 탱고가 어떻게 발전하여 문학과 음악을, 더 나아가 아르헨티나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낳았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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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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