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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들은 왜 운동 후 다함께 목욕탕에 갈까? - 같이 망가져야 ‘한 배’ 타는 사회

“나도 살아야 하니까” 탤런트 이영애가 골프 일행과 샤워실에 들어오자… 상관이 주는 술은 ‘무조건’ 마셔야 하는 대한민국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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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청년에게 고한다. 원치 않는 일이라면 ‘No’라고 말하라. 굳이 단호할 필요까진 없다. 예의를 갖춰 “저는 빠지겠습니다”라고 말하라. 폭탄주 마시려 취업한 건 아니지 않은가. 알몸 드러내려 사업하는 것 아니고, 어깨 걸어 술주정하러 대학에 들어온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만약 그것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다면 (경험상, 틀림없이 ‘응징’이 따를 텐데) 달게, 당당하게 받아 들여라.

“탤런트 이영애씨가 앞팀에 있다는 대요.”

마지막 홀을 남겨둔 시점에서 캐디가 만원 짜리라도 길에서 주은듯 신이 나서 외쳤다. 서울 근교 골프장에서 톱스타 이영애와 앞뒤 나란히 샷을 날리고 있었던 거다. 우리 일행은 이영애가 드라이버를 휘두르는 폼도 궁금하고, 장난기도 동하여 플레이 속도를 높여 부지런히 앞 팀을 따라갔다. 그러나 불행히도 남편, 또 다른 남녀와 라운드하고 있다는 이영애의 스윙은 보지 못하고 클럽하우스에서 간신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역시 발군의 미녀였다. 얼굴은 물론 온몸에 칼을 대어 나 같은 사람으로선 잘 구분도 되지 않는 요즘 ‘플래스틱 우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용모였다. 호기심이 동한 우리는 아줌마 일행 둘에게 당부했다. “이영애 몸매도 얼굴 만큼 멋진지 알려달라”고. 자, 어떤 소식을 들었을 것 같은가.

이영애는 일행 여성과 함께 탕 안으로 들어오긴 했으나, 골프 웨어를 그대로 입은 채였다! 그런 차림으로 엉거주춤 다른 사람들과 눈을 전혀 마주치지 않은 채 일행이 다 씻기를 기다렸다가 라커로 나갔다는 것이다. 천하의 김혜수까지 가슴을 드러낸(영화 ‘얼굴없는 미녀’) 이 시대에 전혀 벗은 모습을 보인 적 없는 이영애였기에 우리의 실망(!)은 컸다. 헌데, 이영애는 씻지도 않을 거면서 왜 남들 다 벗고 있는 탕 안에서 뻘쭘히 서 있었던 걸까?

한국은 참으로 이상한 나라다. 비즈니스 관계로 처음 골프장에서 만난 성인 남성들이 운동 후에는 예외 없이 치부를 드러낸 채 함께 목욕탕으로 향한다. 가족끼리도 서로 벗고 씻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서구사회(독일에서 일부 남아 있는 남녀 혼탕은 극히 드문 예외일 것이다) 기준으로는 입이 딱 벌어질 풍습(?)이 아닐 수 없다.

서양은 일단 씻는 곳 자체가 없는 골프장이 많다. 자기 집에서 씻으면 되지, 갈아 입을 옷까지 바리바리 챙겨와서, 더구나 악성 피부염이 있는지 전염성 질병이라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전혀 검증할 수 없는 익명의 다수와 같은 탕 안에 들어 앉아있기까지 할 생각은 그들로선 꿈에서도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선 그러는 게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일러주면 아마도 기겁을 할 것이다. 마치 우리가 수저 대신 한 손으로 밥을 떠먹고, 다른 손으로는 항문을 닦아내는 어느 문화를 이해 못하듯이.

카투사 근무를 해본 이라면 다 알겠지만, 여건상 어쩔 수 없이 같이 씻어야 할 상황에서도 절대 남이 씻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게 서양인들이다. 너무나 당연하지 않는가? 왜 남의 벗을 몸을, 은밀한 부위를, 상대의 동의도 받지 않고, 안 그런 척 슬쩍슬쩍 관측하고, 평가하고, 우쭐하거나 좌절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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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우정이든, 상하 복종이든, 횡적 비즈니스 관계든, 종적 조직관리든 이른바 ‘한 배를 탔다’는 의식을 공유하기 위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러 의식들이 시도되어 왔다. 제3제국 독일의 국민들이 모두 손을 앞으로 뻗으며 ‘하일 히틀러(Heil Hitler)’를 외친 것이 대규모 집단 환각이었다면, 일부 공산주의자들이나 조직폭력배들이 ‘피의 서약(blood oath)’을 맺는 것은 사조직의 결속력을 높이기 위한 행위였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폭탄주를 돌리고, 함께 나체로 탕 안에 들어 앉는 것이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본다. 검찰(‘검사동일체의 원칙’)이나 군대처럼 일사불란(一絲不亂)과 상명하복이 우선시되는 조직에서는 예외 없이 폭탄주가 난무한다. 기자와 의사도 ‘한 폭탄주 하는’ 직군이다.

검사들은 일명 ‘검찰 그립(grip)’이라고 잔을 쥐는 법이 따로 있을 정도로 폭탄주로 똘똘 뭉친 업종인데, 자타가 인정하는 이 방면의 ‘권위’는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이다. 검찰 재직 시절 주로 특수수사 분야에서 정치권이나 검찰 수뇌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사를 밀고나간 것으로 유명한 이다. 1997년 한보사건 재수사를 계기로 대검 중수부장으로 발탁되자 ‘국민이 뽑아준 중수부장’ 이라며 집권세력의 반대를 뿌리치고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를 구속한 뚝심의 소유자다. 서울지검 초대 강력부장 시절에는 국내 최대의 폭력조직으로 알려졌던 서방파 두목 김태촌을 구속하기도 했다.

심 전 고검장은 검찰 재직 시절 술과 관련해 ‘4대 불구(不拘)’를 강조했다고 한다. 진정한 주당은 양주ㆍ소주ㆍ막걸리 등 주종을 막론하고 마셔야 한다는 ‘청탁(淸濁) 불구’, 돈이 있건 없건 마시는 ‘금전 불구’, 다음날 업무를 제쳐놓고 마시는 ‘업무 불구’, 그리고 ‘건강 불구’다. 그는 폭탄주도 꼭 ‘텐텐(10ㆍ10)’을 고집했다. 뇌관(양주)과 장약(맥주) 모두를 한잔 가득 채운 술인데, 이거 한 번이라도 마셔본 사람은 그 가공할 파괴력에 치를 떨 것이다. 그는 ‘폭탄주를 가능한 쉽게 목구멍으로 털어넣기 위해’ 독특한 술잔 파지법 ‘심스(심’s) 그립’을 만들어 내기도 했으며, 폭탄주를 꼴깍 한 번에 넘기는 ‘이글’(eagleㆍ골프에서 기준 타수보다 2타 적은 타수)로 항상 들이켰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과, 사시미칼ㆍ야구방망이를 파리채 휘두르듯 하는 조폭 두목을 감옥에 집어 넣은 게 이런 폭탄주의 힘 덕분이었다면 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런 말은 심 전 고검장도 싫어할 것이다.

강력부장이 마시면 강력부 소속 검사들은 ‘당연히’ 마셔야 한다. 연장자이자 상관인 부산고검장이 마시면, 다른 지검으로 발령나길 갈구하지 않는 한 마셔야 한다. 만성 간염 보균자이건, 엄격한 크리스찬이건,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건, 밤늦게라도 집에서 아이 숙제를 봐줘야 하건, 이유불문 불문곡직(不問曲直) 마셔야 한다.

술 잘 마시는 사람들은 관심 없겠지만 술이 체내에 흡수되면 알코올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독성 물질이 생긴다. 1급 발암물질로 체내에 무척 위협적이다. 이게 잘 분해되지 않으면 구토와 극심한 두통이 발생하며, 일정 분량 이상이 체내에서 생성되면 사망에까지 이른다. 한국인의 10~20% 가량이 아세트알데히드를 분해할 알코올 분해 효소, 즉 ‘알코올 탈수소(脫水素) 효소(alcohol dehydrogenase)’가 체질적으로 없다.

한마디로 선천적 ‘술 장애인’이며, 이들에게 다량의 독주와 폭주를 강요하는 것은 술 먹다 죽으라는 얘기와 같다. 매년 수 명의 대학 신입생이 환영회 술자리에서 스무살을 채우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럼에도 모두가 상관이 주는 술을 받아 마시는 건, 받아 마시는 시늉이라도 하는 건 ‘한 배’를 타기 위해서다. 열외(列外)되어 불이익을 받고, 심지어 책상이 없어지는 게 두려워서다. 그닥 신통치 않은 스윙에도 ‘굿 샷’을 외치고, 한 이불 덮고 자는 마누라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알몸으로 같은 탕 안에 들어 앉는 건 “이제, 우리 한 배를 탄 거지요?” 확인하고 싶어서다. 향후 ‘기브 앤 테이크’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몸을 말린 뒤 갑(甲)이 “입가심이나 하자”며 한 잔 말기라도 하면, 백주대낮이든, 음주운전 위험이든, 가족과의 저녁 나들이 약속이든, 주중에 미뤄둔 업무 처리든, 이유불문 불문곡직 마셔야 한다. ‘전가(傳家)의 보도(寶刀)’, “나도 살아야 하니까” 탓이다.

사단장 사모님이 김장을 담그시면 연대장ㆍ중대장 부인들이 줄줄이 도열하고, 관내에 신임 경찰서장이 부임하면 ‘지역발전 간담회’라는 이름으로 해당 지역 경제인들이 어떻게든 얼굴을 내밀며 ‘성의’를 보이고, 국회의원 출판기념회에 해당 상임위 소속 공무원들이 두툼한 봉투 하나씩 들고 줄을 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구내식당에서 부장판사가 숟가락을 놓으면 배석판사들은 식사를 미처 끝내지 못했어도 역시 같이 일어나야 한다. 개콘식으로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모두가 그 폐해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피곤한 ‘출석 점검’이 횡행하는 건, 이런 되도 않는 일체성(一體性)이 최우선시 되는 건, 한국 사회 후진성의 결정적 방증에 다름없다. 똑같이 시위를 해도 우리는 어깨를 걸고 스크럼을 짠다. 1960년 4ㆍ19 때도, 20년이 흐른 1980년 ‘5월의 봄’ 때도 서울역 앞에서 스크럼을 짰다. 서양의 시위는 물론이고, 중국 천안문 사태 때도 스크럼은 없었다. 우리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하는 사회니까. 이영애가 옷을 입은 채 탕 안을 서성인 건, 벗을 수 없는 자신(내면의 욕구)과, 함께 자리해야 하는 현실(무형의 외적 압력) 사이에서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 아니었을까?

10여 년 전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과, 정적(政敵)이 된 그의 전 경호실장이 젊은 시절 두 차례에 걸쳐 ‘피의 서약’을 맺었던 것이 뒤늦게 밝혀진 적이 있다. ‘다 소용없더라’는 권력무상(無常), 혈맹(血盟)의 허망함에 대한 짤막한 뉴스였다. 피부색과 체형이 다른데도 러시아인과 한국인, 의외로 비슷한 구석이 많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체홉의 사실주의 연극, 차이코프스키ㆍ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ㆍ협주곡이 세계 어느 곳에서보다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인기가 높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한국 청년에게 고한다. 원치 않는 일이라면 ‘No’라고 말하라. 굳이 단호할 필요까진 없다. 예의를 갖춰 “저는 빠지겠습니다”라고 말하라. 폭탄주 마시려 취업한 건 아니지 않은가. 알몸 드러내려 사업하는 것 아니고, 어깨 걸어 술주정하러 대학에 들어온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만약 그것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다면 (경험상, 틀림없이 ‘응징’이 따를 텐데) 달게, 당당하게 받아 들여라. 직무 수행 능력보다 이른바 ‘업무 외적 강제’를 앞세우는 조직이라면, 그리 미련을 둘 필요가 없는 조직이라 여겨라. 젊은 당신들이 하나둘 바뀌기 시작하면 머지 않은 장래에 우리도 합리성이 지탱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본말전도(本末顚倒)라고 했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고 있는가. (如人以手指月示人, 彼人因指當應看月) 달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 끝에만 집착하면 달도 못보고, 가리키는 손가락도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생명은 유한한 것이다. 살아오면서 ‘끈 떨어지는 거’ 두려워하다 명줄 끊어지는 거, 주변에서 숱하게 봤다. ‘한 배’도 노(櫓) 저을 힘이 있어야 타는 것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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