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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유는… - 알랭 드 보통 『사랑의 기초 한 남자』

사랑 다음에도 사랑이 있나? 사랑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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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알랭 드 보통은 서문에서 “한 남자의 시선으로 그 남자의 관심과 고민을 통해 사랑을 탐구하고 세상을 바라보려 애썼다, 남자들이 얼마나 쉽게 사랑에 빠지고 또 쉽게 싫증을 내는지를 깨달았다.”면서 오래된 관계에 대한 얘기, 최초의 행복감이 사라진 다음의 사랑,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이야기하려고 하였다고 밝혔다.

최근 흥미로운 소설 두 권이 출간되었다. 소설가 정이현과 알랭 드 보통이 『사랑의 기초』라는 하나의 주제로 ‘연인들’과 ‘한 남자’라는 소설을 각자 쓴 것이다. 2000년 출간 된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 Blu와 Rosso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 책이 두 작가가 한 이야기를 릴레이로 남자와 여자의 관점에서 같은 주인공들로 써내려 간것과 달리 이 책은 20대에서 30대를 바라보는 미혼 남녀의 사랑과 30대 후반에서 40으로 넘어가는 결혼 중년기의 사랑을 대조하는 두 권의 다른 소설로 이루어져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그 나이여서 그런지 ‘한 남자’에 공감을 하며 읽었다.

저자 알랭 드 보통은 서문에서 “한 남자의 시선으로 그 남자의 관심과 고민을 통해 사랑을 탐구하고 세상을 바라보려 애썼다, 남자들이 얼마나 쉽게 사랑에 빠지고 또 쉽게 싫증을 내는지를 깨달았다”면서 오래된 관계에 대한 얘기, 최초의 행복감이 사라진 다음의 사랑,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이야기하려고 하였다고 밝혔다. 보통은 철저히 남자의 시선에서 결혼에 빠지는 심리, 그리고 결혼이 안정기에 접어드는 순간 객관적으로는 불만을 가질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불만거리가 생기고, 만족하지 못하는 면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섬세하고 미시적으로 묘사하면서 동시에 저자 특유의 철학적 사유를 소설 곳곳에 박아놓아 소설을 읽다 멈추고 밑줄을 긋고 싶게 만든다. 그의 첫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 걸까』가 1993년에 발간된후 20년만에 나온 책인데, 1969년인 저자가 20대 중반의 사랑에 빠지는 설레는 마음을 철학적으로 전작에서 풀었다면 이 책에서는 중년이 된 생활인이자 결혼제도에 대해 몸소 경험을 한 바를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추측하게도 된다.

이 책은 39세로 런던북부 주택가에서 두 아이를 아내 엘로이즈와 키우며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벤이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일주일에 한번 자잘하게, 보름에 한 번은 크게 싸운다. 아이를 데리고 동물원에 가는 중에 길을 잃었다. 아내는 길을 묻자고 하고, 남편은 물어보기를 거부하고 만일 물어보라고 하면 그냥 집에 가겠다고 버틴다.

부부관계도 갈등이다. 남성은 부족하다고 느끼고, 여성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긴장과 대치속에 있다. 침대에서 로맨틱한 면은 하나도 없이 타월을 두른 채 피부손질을 하는 아내, 몇 주째 관계를 갖지 못해 불만인 벤은 눈치를 주지만 엘로이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벤이 “당신 졸린가봐”라고 넌지시 말하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그런가 피곤하네”라면서 바로 등을 돌리고 누워버린다. 몇 년전 처음 술집에서 처음 만나 관심사가 일치하는 것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사랑을 느꼈던 날, 두 사람만의 집을 사서 함께 계획을 세울 때의 흥분은 까마득한 옛날 얘기가 되었을 뿐이다.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아닌가? 바다건너 한국의 부부와 너무 비슷해서 놀랄 정도였다. 사람사는 것이 다 비슷하고, 고민하는 것도 다 비슷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만들었다. 그런 과정에 벤에게도 흥분할 우연이 발생했다. 우연히 알게 된 25세 여성 베키와 세미나를 갔다가 하룻밤을 보낸다. 만일 드라마적 구성의 소설이라면 여기서부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독자들의 환상을 충족시켜줘야 했을 것이다. 벤은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통상적인 시각에서 약간 비켜나면, 외도 자체는 죄가 아니다. 외도가 거부감을 주는 이유는 그 부조리한 천진난만함, 그 속에 담긴 희망, 그것의 감상주의때문이다. 즉, 그것에 깃든 낭만성이 거슬리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은 딱 여기서 멈춘다. 너무나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 벤은 죄책감을 갖고, 불안해하며 다시는 만나지 않으면서 자신의 현실을 이렇게 고백한다.

“결혼한 사람이 기회가 될때마다 바람을 피우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얼마나 비겁한 사람인지 정확히 아는데서 오는 겸손함때문이다. 결혼생활이 그들에게 주는 통찰이다.”

비겁하지만 평범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중년의 심리를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이어 벤은 출장에서 돌아오는 공항에서 갑자기 자신의 위치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또렷히 깨닫고, 거듭된 실수와 자만심때문에 결국 이렇게 별볼일 없는 중년이 되어버린 것에 대해 어린 날 그를 믿어준 모든 이에게 사과하고 싶어졌다. 더 멋지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자신의 현재가 초라하게 느껴졌고, 나아가 그러리라 기대했던 모든 이들에게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이런 평범함의 틀을 깨기 위해 벤은 40살이 되는 생일에 자신에게 선물을 준다. 바로 헬리콥터를 타 본 것이다. 헬리콥터에서 바라본 세상을 보며 벤은 평범한 삶을 유지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생에서 영웅이 될 기회를 제공한다 역설적 진리를 깨닫는다.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를 그럭저럭 계속해나가는 것, 이것이 진짜 용기이고 영웅주의라는 것이다.

소설의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는 무척 밋밋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끌고 나가는 힘은 사이사이 나오는 보통의 결혼, 육아, 사랑에 대한 경구들이었다. 그러던 중 벤이 이 평범한 삶이 영웅주의라는 것을 깨닫는 장면으로 페이지를 넘기면서 갖고 있던 다소의 불만이 한 번에 사라졌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가 영웅이 되고, 뉴스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또 그래서도 안된다. 그보다 우리가 지향해야하는 것은 아주 평범하고 지루하고, 그저 보통의 삶일 것 같아보이나, 그것을 그래도 안정되게 유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웅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 자평하고 만족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알랭 드 보통이 ‘보통의 평범한 삶이 영웅적이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그의 이름을 생각하면 웃기기도 하지만, 정신과 의사인 내 입장에서는 공감이 가는 면이었다. 사랑 다음에 또 다른 사랑이 있을 것을 우리는 기대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만나는 것은 또 다른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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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초 한 남자 알랭 드 보통 저/우달임 역 | 톨

『사랑의 기초_한 남자』는 알랭 드 보통이 『키스&텔』(1995) 이후 17년 만에 쓴 소설로,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여 결혼에 성공한 부부인 벤과 엘로이즈를 중심으로 그들의 가정생활, 자녀양육, 사랑과 섹스 등에 관한 고민을 그린 작품이다. 저자는 지금껏 우리가 섣불리 입 밖에 꺼내놓지 못했던 결혼의 일상성과 그 그늘을 밀도 깊게 탐구하고, 행복한 부부로 사는 법은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연습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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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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