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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암 악화… 남편 안락사 시키고 부인도 뒤따라

‘병신새끼’ ‘변태새끼’라 하지 마세요! “저 세상엔 불구라고 놀리는 사람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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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는 1970년대와는 뭔가 확실히 달랐다. 컬러티브이 같은 총천연색 꿈이 피어오르던 시대였다고나 할까. 그러나 약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무늬만 바뀐 군사정권 아래서, 80년대 보통 사람들의 인권 감수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편견의 장벽은 여전히 굳건하고 높았다. 이번회는 그 장벽에 깔려 고통받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증조할머니는 문맹이었다.
새삼스럽게 확인한 사항이다. 내가 고등학생 때까지 사셨던 증조할머니가 문맹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이 글을 쓰며 문득 궁금해졌다. 전화로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1896년생인 증조할머니는 전혀 읽지도 쓰지도 못하셨단다. 그 분의 며느리였던 1912년생 할머니는 업그레이드되셨다. 가끔 신문을 펼쳐놓고 제목을 읽으며 나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수첩에 공과금 내역을 적기도 했다. 한데 맞춤법은 엉망이었다. 절반은 틀렸다. 글씨도 삐뚤삐뚤했다. 엉터리 한글이라고 장난삼아 놀리면 이렇게 되받아치시곤 했다. “나도 제대로 학교에서 배웠으면 너보다 잘했어 이놈아.”

할머니들을 떠올리게 한, 엉터리 한글을 본다. 글씨는 ‘온전’하지 않다. 몸을 떨면서 쓴 것 같다. 맞춤법도 기본이 안 돼 있다. 그러나 어찌 잘난 척하며 놀릴 수 있으랴.

나는 사람들의
놀림감이 실다
국어선생에게 맛기도
수학선생에게 욕
어더 먹기도 실다
더 이상 주위 사람
에게 피해주기 실다
이만큼이나
배우게 해주신
엄마게 감사
드립니다
아니면 이것도
못 쓸 건데



중학생 남구현 군의 유서다. 1981년 당시 중1이었다. 나이를 보니 또래보다 네 살이나 많은 만 열일곱이다. 학교를 다니다 말다 했던 모양이다. 난 그때 중3이었다. 나보다 학년은 낮지만 한참 형이었을 그는 사람들의 놀림이 지긋지긋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피를 토하는 듯한 절규를 유서로 남겼다. 떨리다 못해 터질 듯한 가슴으로, 떨리는 손에 의지해 써내려간 글씨다. 그는 결국 목을 매 자살했다.

“저세상엔 불구라고
놀리는 사람 없겠지”
지체부자유 중학생 피맺힌 ‘절규’…목매 자살


지체가 부자유스런 중학생이 친구들의 놀림과 교사의 질책등 학교생활을 견뎌내지 못해 자살했다. 이 소년은 하루를 거르지 않고 쓴 일기와 유서를 통해 지체부자유자로서 시달리는 학교생활의 고통스러움을 낱낱이 기록, 지체부자유자를 외면하고 고통 주는 사회를 고발했다. ‘장애자의 해’의 행사가 겉치레로 흐르는 사회의 비정을 나무라는 절규로서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부끄러운 ‘장애자의 해’
“식목일…나도 나무를 심고 싶어
심고나면 마음까지 푸를 꺼야” 일기

28일 낮 11시경 서울관악구봉천중1년 남구현군(17ㆍ관악구봉천7동172)이 자기집 공부방에서 목매 숨져 있는것을 남군의 어머니 유재순씨(44)가 발견했다.
어머니 유 부인에 따르면 남군은 이날 아침 “이젠 학교에 다니지 않겠어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라고 울부짖어 달래어 공부방에 들여보냈는데 점심 무렵까지 아무 소식이 없어 문을 열어보니 문고리에 끈을 매달아 목매 숨져 있었다는 것.
남군은 유서에서 “더 이상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기 싫고 공부를 계속할 힘이 없어요. 부모님 오래 사셔요”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유부인은 남군이 이틀 전부터 국민학교 때와는 달라 결석을 하면 수업을 따라 갈수가 없고 글씨도 쓰기 힘들어 시험을 제대로 치를 수 없다며 학교에 가기를 거부해 왔다고 말했다. 남군은 생후3개월 되면서 뇌성마비를 앓아 신체발육이 제대로 되지 않고 말을 더듬으며 발작을 일으키는 등 불구가 됐다.
남군은 11세가 돼서야 봉천국교에 입학, 17세가 되는 지난2월 졸업, 봉천중에 다녔었다. 남군의 국교성적은 잦은 결석에도 불구하고 중상 이상이었다. 감기등을 심하게 앓아 1개월 이상 결석하는때도 있었으나 성적은 비교적 괜찮은 편이었다.
남군은 신장기능도 좋지 않아 소변이 잦은데다 스스로 변소에 갈 수 없어 어머니 유부인이 매일 학교에 나가 쉬는 시간마다 변소에 데리고 다녔었다.


남군이 남긴 일기

오늘은 식목일
나는 나무 한 구루
심질 못했다
언제나 심허볼까

나는 하루하루
가 정말 고통
스럽다
학교는 학교
데로 선생님 눈이
고통을 주고
집데 데로 또 고통

(1981년 4월29일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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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때 반에 잘 듣지 못하는 친구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난청이었다. 보청기를 끼고 다녔다. 그 친구의 어머니는 자주 학교를 찾았다. 담임선생님께 자신의 아들을 잘 좀 보살펴달라는 부탁을 여러차례 했으리라. 반 친구들의 놀림과 손가락질로 아들의 자존감이 꺾이지 않을까 노심초사 했을 거다. 선생님도 장애를 지닌 친구에게 친절하게 대하라고 조회시간에 여러 번 당부했다. 평소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 친구와 가끔 사소한 갈등이 벌어지면 상대방 친구의 욕은 어김없이 치명적 약점을 파고들었다. “귀머거리새끼.”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닥을 기던 때였다. 위 기사의 주인공인 남군처럼 몸이 뒤틀리는 뇌성마비라면 친구들에게 얼마나 더 심한 모욕을 당해야 했을까. “병신새끼”라는 말에 수없이 절망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스크랩 제13권(1980~81년), 제15권(1983년), 제16권(1984년)을 편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이 ‘정의사회구현’이라는 기치아래 군사독재 시즌2를 시작하던 때다. 과외가 금지(1980년 7월)되고, 고교입시가 평준화(1981년)됐으며 교복이 자율화(1983년)됐다. 나 역시 고2때인 1983년부터 검은 교복을 벗고 사복으로 등교하기 시작한 기억이 있다. 흑백티브이 대신 컬러티브이도 볼 수 있게 됐다.(1980년 12월) 프로야구가 출범(1981년 12월)했으며, 88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1981년 9월)되었다. 1980년대는 1970년대와는 뭔가 확실히 달랐다. 컬러티브이 같은 총천연색 꿈이 피어오르던 시대였다고나 할까. 그러나 약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무늬만 바뀐 군사정권 아래서, 80년대 보통 사람들의 인권 감수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편견의 장벽은 여전히 굳건하고 높았다. 이번회는 그 장벽에 깔려 고통받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당신은 놀림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남 군과 같은 뇌성마비 장애인에 관해 제대로 알고 있는가. 혹시 뇌성마비를 저능인과 같은 개념으로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뇌성마비 장애인들은 몸의 여러 근육이 경직되어 얼굴과 입술, 팔과 다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말도 이렇게 한다. “아아 아안녕하아아아세요오오~.” 여기서 핵심은 이 증상이 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남 군의 성적 역시 잦은 결석에도 불구하고 중상 이상이었다지 않은가.

1994년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서 일할 때 뇌성마비 장애인들을 여러 명 인터뷰했다. 종이에 글씨까지 써가며 의사소통을 하느라 곤란을 겪었지만 그들의 사고능력은 너무나 멀쩡했다. 그중엔 유명 전자회사의 프로그래머도, 스님도, 소설가도 있었다. 뇌성마비 장애인 아들을 전혀 배려해주지 않는 교육 환경에 절망해 미국으로 이민 간 50대 아버지도 있었다. 그 아들은 변호사가 되었다. 내가 만난 뇌성마비 장애인들이 각자 사회적 성취를 하기까지 넘어서야 했던 이상한 시선과 냉대, 우여곡절에 관해 쓰려면 책 한권이 모자랐다. 그들은 지독했고, 운이 좋았기에 ‘성공’했다. 아직도 뇌성마비 장애인들을 저능인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저능인이면 또 어떤가. 그들의 잘못인가?) 무지는 흉기다.

1984년 9월19일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인 김순석(지체장애 1급, 34세)이 도로의 턱을 없애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했다. 그는 서울시장 앞으로 다섯 장 분량의 유서를 남겼다. “시장님 왜 저희는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저희는 목을 축여 줄 한 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또 우리는 왜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지나는 행인의 허리춤을 붙잡고 도움을 호소해야 합니까?”

1980년대 초엔 개인으로서의 ‘불구자’만이 존재했다. 사회 집단으로서의 ‘장애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장애인’이란 말도 90년대 중반부터 퍼졌다. 그 전까지는 ‘장애자’였다. 장애인에 관한 기사에서 장애인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정상인’이란 말을 썼다가 장애인 독자로부터 호된 항의를 받기도 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매체에서 ‘비장애인’이라고 쓴다.

집을 나서자마자 주차장에서 휠체어 표식을 만난다. 장애인 주차구역이다.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되는 저상버스도 생겼다. 지하철 입구 계단 옆엔 휠체어 장애인 이동을 위한 리프트가 설치돼 있다. 2008년 4월부터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됐다. 저절로 된 것이 아니다. 남구현 김순석 같은 장애인들의 비극이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을 각성시켰다. 1987년 이후 청년 장애인들을 중심으로 진보적 장애인 운동이 태동하고 장애인 차별금지를 포함한 각종 제도 개선 노력과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박김영희씨는 2007년 간행된 『차별에 저항하라』는 책의 추천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운동을 시작한 후 절실히 깨달은 것은, 착한 장애인으로 침묵하면 천년이 가도 자기 삶이 달라지지 않고 세상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성동본 금혼벽’ 너무나 높다
14년부부 자살극…일가파탄
아내소사ㆍ화상남편은 수감
동거 14년 이웃 불러 마지막 소주파티

동성동본인 남녀의 사랑은 살인방화로 끝을 맺었다. 동성동본금혼제도의 두터운 벽에 부딪쳐 생긴 비극이었다. 여자는 불에 타 숨지고 남자는 살인방화 혐의로 경찰서에 갇혔으며 두사람 사이에 태어난 2남2녀의 죄없는 아이들은 돌보는 사람 없이 울며 하루하루를 지낸다. ‘동성동본’은 결혼할 수 없는가. ‘동성동본’임을 모르고 시작한 사실혼은 어떻게 처리되는가. 양자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영원한 사생아인가. ‘적당한 법률적 요령’으로 파국을 막을수 없었던 주인공 이광연씨 (34ㆍ노동ㆍ서울관악구봉천2동산98의1)의 무지와 고지식함을 나무라기 전 ‘동성동본금혼제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이미 지난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지금 20만쌍 이상의 동성동본부부가 ‘그늘'속에서 살고 있다.


자녀입학때마다 연령감정서로 주민등본 대신
20만쌍 ‘그늘인생’ 대책시급

경기강화가 고향인 이씨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뒤 인천에 와 이발소 종업원으로 일하다 20세 되던 해 아내 이봉자씨(31)를 만났다. 아내 역시 10세 되던 해 부모를 모두 잃은 고아여서 둘은 자연스럽게 가까와졌고 결혼식도 생략한 채 사글세방을 얻어 동거를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이씨 부부에게는 은주양(1ㆍ원당국교4년) 은숙양(원당국교2년)등 자녀가 생겼고 은숙양이 생후 석달이 됐을때 관에서 마련해준 합동결혼식까지 치렀다.
그러나 이때부터 단란하던 이씨 가정에는 파란이 일기 시작했다. 혼인신고를 하러갔던 이씨 부부에게 ‘동성동본’이기 때문에 신고가 안된다는 통고가 내려진 것. 어려서부터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외롭게 만난 처지여서 전주 이씨인 이들간에는 본관을 확인할 마음의 여유도, 지식도 없었던 것.
그것은 수난의 시작에 불과했다. 주민등록부에는 이씨 자신만이 기재되었을 뿐이고 아이들은 출생 신고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됐다. 맏딸 은주양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도 병원에 가서 뗀 연령감정서로 신원확인을 대신해야 했다.
은주양이 커가면서 “왜 우리 엄마 아빠는 같은 이씨냐”고 물어도 비밀을 지켜야 했다. 그러다가 다시 문제가 부각됐다. 지난 2월11일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때 아내 이씨가 다시 들고 일어난것.
혼인신고를 할수 없다면 동거인으로라도 해놓자고 졸라 처남 이종역씨(43ㆍ경기 인천시 송림동)에게 아내의 주민등록 퇴거를 부탁했으나 2∼3차례 연락해도 소식이 없었다. 이같은 처가쪽의 냉담한 태도는 14년을 참아오던 이씨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멀지않아 중학교에 입학할 은주양이 한없이 불쌍해 졌다. 결국 아내와 함께 죽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이씨는 지난달 26일밤 방바닥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는 분신자살미수를 벌이게 됐다.
그러다가 지난3월5일 하오6시 밀린 노임 1만5천원을 받아온 이씨는 이웃 황모씨(여ㆍ40)등 4명을 집으로 초대, 소주파티를 마지막으로 벌였다. 황씨등이 돌아가자 이씨는 아내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것을 확인한 뒤 아이들을 밖으로 나가게 하고 곤로를 뒤집어 석유를 아내와 자신의 몸에 붓고 성냥불을 그어댔다.
이 불로 아내 이씨는 타 숨지고 옆집 신동원씨(50ㆍ노동) 집 등 19가구를 태워 3천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냈으나 자신은 화상을 입은 채 구조돼 경찰에 구속되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고 아빠가 잡혀가 올데 갈데 없게된 은주양등 4남매는 이웃에서 우선 맡아 기르고 있지만 앞날이 캄캄하기만 하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동성동본 부부가 20만쌍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정부는 이들 혼인신고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기위해 지난77년12월 국회에서 ‘혼인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 78년 1년 시한을 정해 혼인신고 길을 터줘 이 기간 동안 모두 5천쌍의 동성동본부부가 혼인신고를 마친 일도 있다.【김종래 기자】


“근친혼 외는 관습에 맡겨야”
한국만 금지…78년5천쌍 구제
각계인사의 의견

이에대해 서울대 박병호 교수(법학)는 “이씨 부부가 법률상의 부부가 되지는 않더라도 4자녀는 아버지 이씨 앞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고 어머니 이씨 앞으로도 할 수 있어 최소한 불행을 막을수 있었다” 면서 “동성동본간의 결혼이 법률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지적, “개인적으로는 동성동본간의 결혼을 무조건 막을것이 아니라 근친혼을 제외하고는 관습에 맡겨, 허용, 붏허용을 법에 규정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말했다.
김동정 변호사는 “민법8백9조가 동성동본과 부계8촌 모계4촌 이내의 인척사이의 결혼을 금지한 것은 과거 봉건적 폐쇄사회의 대가족제도 아래서 가까운 혈족들이 거의 함께 모여살던때 근친혼을 금지한 관습의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전제, “현재와 같은 개방 사회에서는 이를 재고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또 안동일 변호사도 “동성동본결혼은 혈통을 깨끗이 해 결혼의 순수성을 보장한다는 명분에서 금지하고 있으나 제2세가 우생학적으로 열등하게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면 사실상 본인들이 조심할 일이지 법으로 규제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1981년3월13일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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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동성동본’이다. 성과 본관이 같은 사람은 결혼할 수 없다는 민법 제809조가 같은 ‘전주 이씨’였던 부부를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몰았다. 기자가 잘 지적하고 있듯이 “‘적당한 법률적 요령’으로 파국을 막을 수 없었던 주인공 이광연의 무지와 고지식함을 나무라기 전 ‘동성동본금혼제도’가 가진 문제점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야 할 때”였다. 그래도 그렇지, 아내를 불로 태워 죽이다니. 남겨진 남매는 지금쯤 40대 초반이겠다. 고아원에 갔을까? 그날의 충격과 후유증을 딛고 일어나 어디선가 잘 살고들 있을까? 그 아버지가 살아남았다면 자식들에게 아버지 대접은 받고 있을까?

위 기사에서 보듯 정부는 1978년 한 해에 한해 ‘혼인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해 모두 5천쌍의 동성동본 부부 혼인신고를 해줬다. 1988년에도, 1996년에도 한시적으로 혼인을 허용해주었다. 이광연씨 부부가 7년을 기다렸더라면, 하는 가정이 덧없지만 말이다.

동성동본 불혼의 원칙은 지금은 유물이 되었다. 1997년 7월 헌법재판소가 이에 관해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1995년 5월 동성동본 부부 8쌍의 위헌제청 신청을 받아들여 서울가정법원이 위헌심판 제청서를 제출한 지 2년 만이었다. 2005년 3월2일엔 “8촌 이내 혈족, 6촌 이내 인척간의 혼인만 금지하고 그외 동성동본간의 혼인은 허용한다”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박희범씨(충남대 전총장)부부 동반자살
간암악화…안락사 시키고 부인도 뒤따라
자택서 링겔 주사 꽂아
의사 부인 미리 묘소부탁도 해놓고

충남대총장과 문교부차관을 지낸 박희범씨(59ㆍ현 계명대교수ㆍ경제학박사)와 내과의사인 부인 채수희씨(53ㆍ조폐공사경산조폐창의무실장) 부부가 24일 대구시 동구만촌1동620 자택 안방에서 영양제 주사를 꽂은 채 나란히 누워 숨졌다. 이같은 사실은 함께 사는 조카겸 가정주부 윤건영씨(32)가 현장을 발견,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밝혀졌는데 이날 상오 8시께까지 박씨 부부가 일어나지 않자 안방 문을 열어 보니 박교수는 링게르주사를 꽂은 채 숨져 있었고 부인 채씨도 주사바늘이 꽂힌 채 중태였다는 것.
가족들은 채씨를 경북대부속병원으로 옮겼다가 가망이 없다는 병원측 통보로 집으로 옮겼으나 오후3시께 숨졌다. 경찰은 안방에서 신경안정제, 심장병치료약, 감기약, 진통제등 5종의 약병이 숨진 채부인이 누워있던 머리맡에 놓여있었음을 밝혀내고 이 약병들을 링게르병과 함께 수거, 경북도 보건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하는 한편 박씨 부부가 약물중독으로 숨진것 같다는 경북대부속병원의 부검결과에 따라 부인 채씨가 박씨를 안락사시키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끓어 동반자살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8월1일 간암으로 경북대부속병원에 입원했다가 지난 19일 병원측으로부터 “회복 가망 없다”는 통보를 받고 퇴원, 그동안 집에서 부인 채씨의 치료를 받아왔다. 또 부인 채씨도 6년전부터 앓아온 심장병이 최근 악화돼 약을 상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 채씨는 박씨가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자 링게르를 박씨에게 놓아주고 심장병을 앓고있던 자신도 직접 주사를 맞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박씨가 숨진것을 확인한 채씨가 뒤따라 자살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두사람이 맞았던 영양제 주사의 수액을 채취, 경북대보건연구소에 감정하고 박씨부부의 시체부검을 의뢰했다.
경찰이 동반자살 했을것으로 보는 것은 박씨가 지난21일 이종동생 문종수씨(50ㆍ김천시 평화1동320)를 자기집으로 불러 선산이 있는 경북금릉군 어모면 도암동에 있는 박씨의 전처무덤 옆에 묘소2개를 빨리 장만해 달라고 부탁한 점등을 들고있다. 경찰은 또 박씨가 경북대 부속병원에서 퇴원한 후 부인과 묘소문제에 대해 자주 논의했고 이종동생 문씨에게 2∼3일안에 묘소에 석곽을 넣게 묘봉까지 만들라고 독촉한 사실을 밝혀냈다.
박씨집에는 박씨부부를 비롯 가정부 윤씨와 며칠전 다니러온 장모 신정숙씨(80) 등이 살고 있었으며 3남2녀의 자녀들은 모두 서울에 거주하고 있어 이날 하오에는 친척들만 모여 집을 지키고 있었다. 경제학 박사인 박씨는 서울대, 고대교수, 문교부차관 충남대총장등을 역임하고 지난 79년 8월부터 계명대학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해왔으며 지난3월1일부터 이 대학의 산업경영연구소 소장직을 맡아 왔었다. 부인 채씨는 지난73년 박씨와 재혼했다. 조카 박순용씨(42ㆍ대구시 내당동 삼익맨션5동207호)에 따르면 박씨 부부는 평소 금실이 좋아 죽으면 같이 죽고 살면 같이 산다는 말을 자주해왔으며 2∼3일전부터 자녀들에 대한 부탁도 다해두고 미국에 유학중인 장남 동률씨(32)에게는 금릉선산에 있는 농장을 잘 관리해 달라는 쪽지도 남겼다는 것이다. 박씨의 장모 신씨는 박씨로부터 숨지기 하루 전인 지난 23일 수의를 준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수의를 만들고 있었는데 이때 딸 채씨도 “어머니 내옷도 준비해주세요”라고 부탁했었다고 말했다.
한편 채씨의 진료를 맡았던 경북대부속병원 응급실 담당의사들은 채씨가 이날 낮 혈압이 40이하로 내려가고 호흡이 거의 멎어가는 상태여서 소생가망이 전혀 없다고 판단돼 퇴원시켰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박씨 부부가 숨지기 3일전인 22일께 유서를 써놓았다는 유족측의 말에 따라 유서를 찾고 있다. 유서가 발견되면 사체해부는 하지않을 방침이다.


부부박사…8년전 재혼
금실좋아 “함께 죽자” 입버릇

만년의 외로움을 함께 나누던 두 석학부부는 암의 고통과 공포를 이겨내지 못해 동반 자살했을까. 전 충남대총장 박희범씨(59)와 채수희씨(52)부부 변사사건은 많은 의문과 충격을 남겼다.
박씨가 문교부차관과 국립대학총장을 지낸 저명인사란 점에서도 그렇지만 박씨는 경제학, 채씨는 의학을 전공한 부부박사이며 의사인 부인이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간암진단을 받고 괴로워하는 남편을 안락사시키고 뒤따라 자살한 것으로 보여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씨는 서울대 상대를 나온 경제학박사로서 서울대상대학장과 문교부차관, 충남대총장을 지낸 석학으로 본부인과 사별하고 8년 전 채씨와 재혼했다. 채씨는 이화여대의대출신으로 충남대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조폐공사경산조폐창에서 의무실장으로 근무했었다.(중략)
이들부부는 금실이 좋기로 주변에 소문이 나있다. 조카 박순용씨(42ㆍ대구시서구내당동삼심익아파트 5동207호)에 따르면 대구에 내려온 후에는 포니차를 사들여 박씨가 손수 운전을 하면서 부인을 출퇴근 시키는등 함께 다녔고 “우리는 함께 살다가 함께 죽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는것.
이처럼 사이좋게 지내던 부부는 경북대의대부속병원에서 박씨가 간암진단을 받은후부터 깊은 고뇌에 빠졌다. 박씨는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은후 집으로 돌아와 의사인 부인의 간호를 받았으나 식음을 거의 전폐하고 링게르로 연명하면서 사후에 대비해왔다.
박씨는 조카인 박순용씨와 고향인 경북 금릉군 어모면 도암동의 농장과 선산을 관리하고 있는 이종사촌동생 문씨를 불러 자신의 산소를 전처의 묘소 가까이 마련하고 그 앞에 채씨의 무덤을 함께 만들도록 부탁했으며 사망후 보고와 비석에 쓸 자신의 약력까지 구술해줬다는 것인데 친지들은 박씨의 부탁대로 2개의 묘소를 만들고 있었다.
한편 부인 채씨도 5년전부터 심장병을 앓아왔으며 최근에는 남편의 간호를 도맡아 하느라고 더욱 쇠약해졌으며 정신적으로도 방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채씨는 숨지기 하루 전인 23일 남편의 수의를 만들고 있는 친정어머니 신씨에게 내옷도 만들어달라고 부탁해 울음바다를 이뤘으며 박씨가 약력을 구술할 적에도 울음을 터뜨려 몇차례나 구술이 중단됐었다고 가족들이 전했다.(중략)
한편 생전의 금실을 말해주듯 부부의 유영을 나란히 세워둔 상가에는 비보를 듣고 달려온 차남과 동료교수및 제자들이 흐느끼고 있었으며 경찰의 사인규명을 위한 시체해부를 완강히 거부하고있다.【대구=연합】(1981년 9월25일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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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자살이다. 맨 앞의 남구현 군이 혼자 자살했다면, 동성동본 이광연씨 부부는 50% 성공한 동반자살을 했다. 박희범 교수 부부는 100% 성공한 동반자살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의대 교수인 부인 채수희씨의 전문성 덕분으로 공을 돌리려니 살짝 난감해진다.

이 기사를 읽으며 ‘행복전도사’ 최윤희씨가 떠올랐다. 늘 웃음으로 긍정과 행복을 전파하던 그녀는 2010년 10월 일산의 한 모텔에서 유서를 남기고 남편과 함께 동반자살했다. 그 역설적 죽음에 비하면, 박희범 교수 부부의 동반자살은 덜 충격적이다. 목을 매지 않고, 잠든 듯 누운 상태로 죽음을 맞았기에 더욱 그렇다. 역시 링게르와 주사바늘을 꽂을 줄 아는 ‘전문성’ 덕분이다. 이 지점에선 얼마 전 트위터를 통해 막말 파문을 빚은 간호사가 생각난다. 그는 “시비를 거는 환자와 보호자를 3초면 숨지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가 비난을 받았다. 역시 무서운 전문성!

‘죽을 권리’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에 대한 첫 논쟁은 1975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벌어진 ‘카렌 퀼란 사건’이다. 인공호흡기를 단채 무의식 상태를 유지하는 21살 카렌 퀼란의 아버지는 더 이상의 인공호흡기 연명이 무의미하다며 이를 떼게 해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냈다. 검찰의 반대에도 법원은 인공호흡기를 떼는 쪽에 손을 들어주었고 이로인해 격렬한 찬반토론이 오갔다.

이와 비슷한 일이 1997년 한국에서도 있었다. 이른바 ‘보라매병원 사건’이다. 당시 의료진은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중인 환자의 부인이 “치료비가 없으니 퇴원시켜달라”고 요구하자 인공호흡기를 뗀 채 퇴원시켰다. 환자는 죽음을 이르렀다. 법원은 “회복기 환자를 퇴원시켜 죽음을 방조했다”며 의료진에 유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의학계로 하여금 연명환자의 조치에 대한 공식적 가이드라인을 만들게 했다.

2002년 5월 대한의학회(대한의사협회 산하 116개 의학학회 모임)는 ‘임종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의료지침’을 발표했다. 여기엔 무의미한 치료, 심폐소생술하지 않기, 임종환자의 중환자실 치료거절 등의 내용이 담겼다. 2009년 5월 21일 대법원은 이러한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 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와 같은 소극적 안락사를 ‘존엄사’라고 한다. 박희범 교수 부부와 같은 적극적 안락사는 아직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죽으려고 마음먹은 자에게 ‘법’ 따위가 대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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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장남자 ‘호스티스’ 원색의 교태
‘이상한 술집’ 성업
日 ‘게이바’ 흉내…서구향락주의 찌꺼기

게이바(Gay Bar)가 서울에도 등장했다. 문자 그대로 남자들이 여장을 하고 술시중을 드는 술집을 말한다. 서울시내에서만도 20여개소가 ‘성업중’이라고 들린다. 일본 동경의 게이바, 구라파나 미국의 남창이나 호모클럽의 모방판인데 퇴폐풍조가 낳은 차가운 성(Cold Sex) 의 한 형태로 서구향락주의문명의 찌꺼기.
세계적인 성개방풍토의 영향을 우리사회가 피할수 없다고는 하지만 이같은 ‘쓰레기 장사’까지 끼어든대서야 곤란하다. 위법성이 있고 없고를 따지기 전에 ‘한심하다’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나오고 있는게 이 사회의 ‘마음’인 것이다.
주말인 22일 밤11시께, 서울중구인현동 유흥가 골목길에 있는 ‘xx술집’.
지하계단을 내려가자 여느 술집과 마찬가지로 요란한 음악과 여장호스티스들의 간드러지는 웃음소리가 손님들의 취한 목소리와 어우러져 흥청거린다. 20평 남짓한 실내에는 2평 정도의 낮은 무대가 있고 무대주위의 테이블 6개에는 손님이 꽉차있다. 20대 후반의 남녀3명이 일행인 팀, 40대 신사 2명과 30대 후반의 여자1명이 일행인 팀, 30대 초반의 남자2명이 일행인 팀 등이 1∼2명씩의 호스티스들의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갖은 교태를 부리는 호스티스들은 한결같이 짙은 화장에 웃몸을 온통 드러내다시피한 옷차림에 귀고리, 목걸이, 반지등 장신구도 요란하다. 모두 7명. 속살이 훤히 내비치는 드레스 아래로 드러난 각선미도 일품이다.
‘미스x’라고 소개한 아가씨(?)는 서구적 용모의 미인, 루지를 짙게 칠한 입술, 붉은 매니큐어를 칠한 고운손, 뽀얀 살결, 호리호리한 몸매, 늘씬한 다리를 모로 꼬고 앉은 자태와 입을 가리며 웃는 모습등이 자못 매력적이기까지 한다.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의 말투도 영락없는 여자다. 조금 이상한 게 있다면 모두가 1m70cm를 넘는 장신이고 어깨가 조금 넓다는 점. 그리고 대부분 앞가슴이 별로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 것이 눈에 뛴다. 이들이 손님들에게 하는 서비스는 여느 술집에서와 다름이 없다. 스스럼없이 손님들의 뺨에 입을 맞추는 것 등은 오히려 한층 더 대담하다.
밤12시가 가까와지자 호스티스들은 번갈아 무대에 서서 ‘흘러간 노래’등을 간드러지게 부른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일본 가요도 흘러 나온다. 모두가 상당한 수준급. 흥에 겨운듯 손님들도 무대로 올라가 이들을 껴안고 함께 노래를 불렀고 이어 부르스곡이 나오자 마주잡고 돌아가기도 한다. 객석에 있던 30대 후반의 여자손님도 이들과 어울려 ‘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호스티스의 가슴속에 ‘팁’을 찔러 넣어주는 여자손님들도 눈에 뛴다. 호스티스들은 연신 내실을 들락거리며 드레스와 한복, 궁중의상등을 바꿔입고 나와 디스코, 화관무, 스페인풍의 춤등 갖가지 춤으로 손님들을 즐겁게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모’와 ‘몸매’가 가장 뛰어난 미스x란 호스티스가 나비날개 같은 드레스차림으로 무대에서 홀로 괴상한 포즈의 춤을 춘다. 옷가지를 하나씩 벗는 이른바 스트립쇼다. 결정적인 순간이 되자 갑자기 10대후반의 미소년이 나타나 파트너가 되어 어울린다. 이들 한쌍은 갖가지 묘한 동작과 자세를 연출, 소위 라이브쇼 흉내도 낸다. 이런 식으로 새벽3시께 까지 기상천외한 각종 쇼가 이어진다.
술값은 일반 술집보다 비싸다. 맥주1병에 2천원. 안주는 1만원선이다. 이곳은 서울에 등장했다는 게이바의 하나. 이같은 미모의 호스티스들은 실제로 모두 남자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여자이고 화장실도 여자화장실을 드나들지만 옷을 갈아 입는 것을 보면 틀림없는 남자란다. 본인들이나 업주도 굳이 이들이 ‘남자’임을 숨기려하지 않는다. 고객들도 이들의 정체를 미리 알고있는 듯하다. 이곳의 여장남자 호스티스들의 정체는 동성애자들인것 같다.
대구출신으로 K중을 나왔다는 미스‘x’(25)는 어릴때부터 곱상한 외모에다 여자기질이 짙었는데 몇년 전 우연히 이들 사회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직업적인 길로 들어섰다고 털어놓는다. 의정부 E종합고를 나온 ‘미스J’ (21)도 비슷한 경로로 호스티스가 된 미소년. 23일 낮에 만났을때도 짙은 화장은 없었지만 여자에 가까운 옷차림에 말투와 태도는 여자성향이 짙었다.
이들에 의하면 이같은 변태업소를 찾는 고객들도 대부분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거나 이런 분위기를 즐기려는 중년부인들이 대부분이라는것. 하룻밤에 10만원 정도의 팁을 별도로 주는 ‘경우’까지도 발전할수 있다.
이들 사회의 속어로는 화장을 더덕더덕 바른다는 뜻으로 ‘더덕바’로 부르는데 서울에는 이밖에도 낙원동 할리우드극장 뒷골목의 C, 이태원의 G, L등이 있다. 이중 대표적인 업소가 이태원 뒷골목의 L. 3년전 처음 생긴 이곳은 허름한 빌딩 3층에 은밀히 자리잡고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내부를 들여다보면 ‘별세계’다. 30평 남짓한 실내는 한쪽벽면 전체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 나오는 남녀 나신상 그림으로 가득차 있고 객석은 고급소퍼로 꾸며져있다.
15명의 호스티스가 모두 여장남자들. 저녁6시부터 다음날 새벽7시까지 역시 갖가지 쇼로 페스티벌을 펼친다. 이곳의 특징은 다른곳과는 달리 단골만을 받는 회원제 클럽형식으로 운영되는 점. 일본인등 외국인들이 많이 찾기도 하지만 모디자이너ㆍ유명가수등이 이곳의 단골이라는 귀띔을 한다. 이들 여장남자들은 스스로를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3의 성’을 가진 본성때문”이라고 변명하기도하고 ‘장미족’ 이라고 미화해 부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변태성을 가진 사람들이 직업적으로 나선것에 불과하다는게 전문가의 진단. 이들은 구미에서의 게이의 권익주장과 이에 따른 사회적 반응 등의 영향을 받은듯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권리’등을 조심스럽게 내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지하세계’가 건전한 사회기풍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일반적인 퇴폐풍조와는 또다른 형태의 악영향을 미치며 사회의 밑바닥에 스며들고 있는 점이 문제다.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할뿐 아니라 이들을 치유 불가능한 ‘변태성’쪽으로 몰고 가는것도 심각한 폐해다. 한편 이들 ‘게이바’에 대한 단속은 현행법규의 적용이 어려워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서울용산경찰서 보안과장 송일순경정은 지나친 장발과 여자옷차림등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사실을 지적, 구류나 벌금형에 처하는 외에는 달리 단속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또 업소자체에 대해서는 이들이 미성년자를 출입시키는 경우에는 미성년자보호법위반으로 형사입건할 수 있지만 실제적발이 어렵다는 것. 또 이들이 윤락행위를 하는 경우에도 윤락행위방지법이 ‘부녀자의 윤락행위’ 만을 적용대상으로 하고 있어 처벌근거가 없는 실정이다.【강승태 기자】


심각한 사회문제화 우려-전문가들 의견

고려병원 정신신경과장 이시형박사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성의 일탈행위가 사회저변으로 퍼져나갈 때 이들 사회의 각종 범죄행위의 증가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크다”고 염려했다.
정신신경과전문의 정동철 박사는 “개인적으로는 성장과정등에서 ‘성의 주체성’을 갖지 못한 이상성격자들이 호모로 발전한다”고 분석하고 “인간의 본능속에 잠재해있는 동성애행위가 ‘영업적인 차원’으로까지 타락해갈 경우 사회의 통념적인 가치관을 해칠뿐 아니라 이들의 왜곡된 심리상태로 인한 자살률의 증가, 범죄의 증가등이 필연적인 해악”이라며 역시 우려를 나타냈다.
또 김준수변호사는 “호모나 레스비언등 동성간의 성관계를 현행법률로 다스릴 근거는 없다고 본다”고 말하고 “외국의 예처럼 크게 성행, 사회문제화 되기 전에 계도책이 마련돼야 할것이다”고 말했다.

(1983년 1월25일 <한국일보>)



장애인의 권리, 자유로운 결혼의 권리, 죽을 권리, 그 다음은 게이의 권리다. 장애인과 자유로운 결혼의 권리에 대해선 신문 기사들이 동정적이었다. 당사자들의 편을 들어주기도 했다. 죽을 권리에 대해선 사건 자체만을 보도할 뿐 특별한 입장이 없었다. 게이의 권리에 대해선 왜 이토록 비난 일색인가. ‘변태’와 ‘호모’라는 단어가 그 입장을 웅변한다. 기사내용이 가관이다. 성의 일탈이 범죄로 연결된다는 둥, 이상성격자들이 호모로 발전해 자살률 증가에 한몫을 한다는 둥, 계도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둥. 그러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이상한 술집’들을 홍보해준다.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한번쯤 가보고 싶게 만든다.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20대 후반까지도 동성애자들을 혐오했다. 내 주변 친구들은 대개 ‘호모’라는 말을 썼다. 성적 취향이 다른 걸 불온하게 여겼다. 진보적이라는 한겨레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1996년 시사주간지를 만들 때였다. 한 기자 선배가 ‘성비 파괴 가상 시나리오-2020년 남성 대재앙’이라는 제목의 콩트를 썼다. 20세기 남아선호가 부를 성비파괴의 끔찍한 미래를 상상하는 내용이었다. 한데 그 해악의 한 예로 동성애와 성전환을 꼽으며 이를 성범죄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 기사가 나간 뒤 ‘한국동성애자인권운동협의회’ 회원들이 화가 나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들은 “동성애와 에이즈 감염자, 성전환자의 인권과 자긍심을 해치는 근거 없는 편견”이라며 반론권을 달라고 했다. <한겨레21>에선 2주 뒤 사과했다. 1쪽의 반론도 실었다.

신문기사는 찾지 못했지만,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고민하다 목숨을 끊은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동성애와 관련된 고민을 유서에 남기고 죽는 경우는 드물다. 주변에서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고, 가장 가까운 가족들조차 ‘변태새끼’라며 정신이상자로 몰면 ‘멘붕’(멘탈붕괴)이 될 만하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1980년대 후반에 장애인들이 떨쳐 일어나기 시작했다면, 동성애자들들의 권리찾기운동은 1990년대 후반부터 활발해졌다. 게이나 레즈비언, 성전환자를 마음 속에서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는 하지만, 드러내놓고 멸시하는 이들은 줄었다. ‘호모’라는 단어를 썼다가는 몰상식한 사람으로 찍히기 딱 좋다. 트렌스젠더 연예인 하리수가 티브이에 등장하고, 노골적 동성애 코드가 담긴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안방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는 시대가 됐다. 동성끼리의 키스나 정사신이 담긴 영화도 이젠 특별하지 않다. 웬만한 대학엔 동성애 동아리가 하나쯤 있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고 사회활동하는 김조광수 영화감독 같은 이들도 늘고 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동성애 결혼 합법화를 지지한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단일민족’신화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에서, 소수자들의 1980년대는 어둠이었다. 그렇다면 1990년대엔 환하게 빛이 들어왔나? 2000년대엔? 2010년대엔? 어떤 소수자들이냐에 따라 조금씩 명암이 다르겠다. 사상의 소수자(비전향 장기수), 장애인 소수자, 성적 소수자(동성애자, 트렌스젠더), 국적 소수자(이주 노동자), 신념의 소수자(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사회를 향해 마이크를 들었다. 아직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발짝 한발짝 진보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럼 지금 떠오르는 소수자들은 누구인가? ‘자’(者)는 아니지만, 동물을 꼽아본다. 이미 외국에선 10~20년 전부터 동물원이나 고래포획 반대운동이 중요한 의제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이제 동물권리와 동물복지 문제가 떠들썩한 이슈다. 동물보호 시민단체들에 기부금을 내는 숫자도 막강해졌다. 최근 야생방사를 확정한 서울대공원의 제주 앞바다 출신 돌고래 ‘제돌이’는 그 동물보호운동의 혜택을 입은 한 마리(!)다.

소수자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관점은 ‘공동체 구성원의 의무’라고들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무지는 폭력의 씨앗이 된다. 그 지식과 관점은 다른 말로 ‘교양’으로 불린다. 교양이 모자라면 무식해지고, 무식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소수자들을 괴롭히는 편에 설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다음 소수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들의 ‘그런 짓’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오럴섹스를 하다 적발되면 처벌한다는 홍콩을 떠올리게 한다. 일벌백계! 옛날엔 이런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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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섹스남녀에 중벌
서울지법 동부지원 처벌1호…구류2일씩

선진국에서 골치를 앓고 있는 카섹스(차내 성행위)가 우리주변에도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마이 카’ 붐을 타고 급증하고 있는 차치기 범죄등 선진국형 신종범죄에 편승, 어느 사이 우리주택가 골목길에서 카섹스를 하는 등 양속을 해치는 행위가 등장했다.
9일 밤 9시40분께 서울 강남구개포동 공무원아파트단지 옆 차도에서 서울1다8xx3호 포니승용차를 세워놓고 차속에서 ‘행위’를 하다 주민들에게 들킨 조모씨 (24ㆍ무직ㆍ서울강남구대치동)와 애인 김모양(24ㆍ강남구개포동)의 경우가 바로 한예.
조씨는 아버지 승용차를 끌고나와 애인 김양을 태우고 아파트에서 1백여m 떨어진 차도옆에 차를 세우고 차뒷좌석에서 즐기다가 산책 나온 주민들에게 적발돼 경찰에 넘겨졌다. 주민들은 가로등이 없고 호젓한 가로변이라고 하지만 아파트단지에서 1백여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런짓’을 하는 사람들의 양식을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찼다.
강남경찰서에 연행돼 10일 서울지법 동부지원의 즉결심판에 넘겨진 조씨와 김양은 2일씩의 구류처분이란 중벌을 받았다. 즉결담당 고병석 판사는 카섹스처벌1호인 조씨와 김양에게 “형법제245조(공연음란)를 적용, 일벌백계의 뜻에서 엄하게 다스렸다”고 말했다.

(1984년4월11일치 <한국일보>)


※ 참고한 책

『차별에 저항하라』(김도현 지음ㆍ정태수열사추모사업회 기획, 박종철 출판사, 2007년)
『말 말 말 : 대한민국사를 바꾼 핵심 논쟁 50』(권오문 지음, 삼진기획,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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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고경태

「한겨레」 토요판 에디터. 「한겨레21」「씨네21」편집장과 한겨레 esc 팀장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 홈스쿨』(2011)과 『유혹하는 에디터』(2009), 『직설』(공저, 2011)이 있다. 가족을 사골국물처럼 글감으로 우려먹는다는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아버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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