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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을 죽인 사람은 바로 우리 반에 있습니다.” - 딸 잃은 엄마의 한서린『고백』

복수는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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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은 교사의 4살 먹은 딸이 무참하게 살해당한 후, 그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이 털어놓는 고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직자, 순교자, 자애자, 구도자, 신봉자, 전도자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진 6개의 장은 저마다 자신의 입장에서 본 사건과 그 사건 이후의 일들을 ‘고백’한다. 여교사의 고백이 먼저 시작된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을 보고 있으면 궁금해진다. 그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그런 짓을 한 것일까? 프로파일링은 그런 살인자들의 마음을, 행동을 통해서 읽어보려는 시도다. 어떤 지역에서 어떤 희생자를 고르는지,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범행을 저지르는지를 통해 그들이 어떤 인간인지를 추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파일링은 하나의 수사기법일 뿐이다. 프로파일링을 통해서,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을 통해서 인간의 모든 것을 다 읽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범죄 드라마를 보면 수사 기법은 다양하다. < CSI >의 그리썸 반장은 진술을 믿지 않는다고, 목격 증언도 절대적으로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간은 눈으로 보고도,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때로는 선입견이 기억을 조작하기도 하고, 사후에 심어진 기억이 실재했다고 믿기도 한다. 의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진술도 마찬가지다. 그리썸 반장은 오로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증거’만을 신뢰한다.

반면 < CSI >의 스핀오프인 < CSI 마이애미 >의 호라시오 반장은 직감을 꽤나 중시한다. < 뉴욕특수수사대 >의 고렌 형사는 범인이라고 확신하지만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을 때, 상대를 심리적으로 옭아매는 수법을 사용한다. 용의자의 자존심, 적개심, 두려움 같은 감정을 이용하여 무의식적으로 범행을 자백하게 한다거나 가짜 증거를 이용하여 궁지에 몰아넣고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다.

다양한 수사 기법과 심문을 통해서 형사들은 범인의 자백을 받는다. 그런데 자백이라고 해서 다 똑같다고 할 수는 없다. 위협에 의해서 없었던 사실을 인정하기도 한다. 더 큰 범죄를 감추기 위해, 작은 범죄를 미리 털어놓기도 한다. 혹은 정당방위이거나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행동이었다고 변명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들의 자백도 그저 연기이고, 거짓일지도 모른다.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고 인정하기 힘든, 말로 되뇌는 것조차 치가 떨리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태연한 범인들의 가슴을 열고 들여다본다 한들 속속들이 알 리가 없다.

그렇다면 고백은 어떨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것. 흔히 죽음을 앞두고 하는 말들은 거짓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났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라면 거침없이 ‘진실’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이러이러한 죄를 저질렀지만 지금은 다른 인간이 되었다, 라고. 하지만 고백 또한 주관적인 토로일 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합리화하고, 부담을 덜어내고, 편안해지려 하는 속성이 있다. 그러니 모두 믿지는 말자. 고백은, 차분하게 듣기는 하되 그 이면을 꿰뚫어봐야 한다. 가감 없이, 최대한 냉정하게 들어보고 판단해야 한다.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고백』 『속죄』 『야행관람차』 등은 시점을 바꿔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고백』은 중학교 선생의 아이가 살해당한 후 벌어지는 일을 각자의 ‘고백’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 『속죄』는 초등학교 여학생이 살해당한 후, 동급생이었던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겪는 ‘속죄’의 과정을 그린다. 『야행관람차』는 고급 주택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이후의 모습을 다양한 사람의 눈을 통해 보여준다.

각각 시점을 달리하며 진술되는 형식은, 개입된 다양한 사람의 시각에서 하나의 사건을 들여다본다는 효과가 있다. 3인칭으로도 가능하지만, 주관적 시점이 개입되면서 더욱 생생하고 각자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전달해준다. 또한 각자 알고 있는 정보가 제한되고, 때로는 왜곡되기 때문에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의외의 단서나 상황이 발견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증언’이 극적인 반전을 가져오기도 한다. 정서적인 울림을 강하게 끌어내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형식은 미나토 가나에 소설의 특징이다.

데뷔작인 『고백』에서는 그런 효과가 탁월하게 발휘된다. 『고백』은 교사의 4살 먹은 딸이 무참하게 살해당한 후, 그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이 털어놓는 고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직자, 순교자, 자애자, 구도자, 신봉자, 전도자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진 6개의 장은 저마다 자신의 입장에서 본 사건과 그 사건 이후의 일들을 ‘고백’한다. 여교사의 고백이 먼저 시작된다. 아이가 사고로 익사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살해당한 것인지 알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범인들이 어떻게 아이를 죽였는지도. 가해자인 두 학생의 이야기도 진행된다. 그들이 어떻게 서로를 이용했는지, 혹은 무모한 경쟁을 했는지 각자의 말을 들을 수 있다. 그 중 한 학생의 누나의 말도 들려준다. 이지메를 당하게 된 범인에게 다가가는 여학생의 말도 있다. 희생자도 있고, 가해자도 있고, 방관자도 있다. 독자는 그들의 고백을 들으면서, 그들의 마음속에 담긴 ‘진의’를 유추해 보고,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를 추리해 본다. 그러고 나면 어렴풋이 알게 된다. 아이를 살해당한 엄마의 마음이 무엇인지, 그녀의 복수가 왜 합당한 것인지를.

미나토 가나에는
『고백』의 첫 장인 ‘성직자’를 단편으로 발표하여 일본의 소설추리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성직자’의 뒷이야기를 묶어 발표한 첫 장편소설 『고백』으로 2009년 서점대상까지 수상했다. 서점 직원들이 고객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을 선정한다는 의미의 ‘서점대상’을 받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고백』은 쉽게 읽히면서도 감동과 여운을 남겨주는 대중적인 미스터리 소설이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바로 우리 반에 있습니다.’란 말로 시작하는 유코의 고백을 시작으로, 유코가 학교를 떠난 뒤 그 학급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전하는 반장의 편지 그리고 가해자들의 말을 통해서, ‘고백’은 단지 사건을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건을 진술하는 이들의 마음속까지 그대로 전해주게 된다. 『고백』은, 고백하는 이들의 내면을 독자의 마음으로 공명하게 한다. 그들이 얼마나 절박한지, 그들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 때론 그들이 얼마나 유치하고 초라한 인간인지까지, 오로지 그들 자신의 고백을 통해 전달한다. 그 고백은 무척이나 힘이 세다.

그런데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을 계속 읽다 보면 암울해진다. 『고백』을 지나 『소녀』 『속죄』 『야행관람차』까지 미나토의 소설에 등장하는 세계는 악의로 가득 차 있다. 악의의 이유는 어찌 보면 별게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상처를 받게 된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것. 그게 인생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상처가 자신에게만 가혹하고, 특별하다고 믿으며 집착하게 되면 뒤틀린다. 내가 고통 받았기 때문에, 나는 무엇이든 해도 용서받을 수 있어. 자신의 고통을 이유로, 자신의 악의와 악행을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외부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엉뚱한 타인에게 풀어내기 시작한다. 『고백』 『야행관람차』의 아이들이 그랬듯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전에 외부에게, 타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하고.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존감이다. 물론 그들은 상처받았고, 고통스러웠다. 그것이 상처이고, 고통이라고 인정하고 이겨내면 된다. 이겨낼 수 없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솔직하게 토로하면 된다.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겨낼 만한 힘은 얻게 된다. 하지만 비대해진 자존심 때문에 현실을 외면하면,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나가기 십상이다. 가장 쉬운 것이 인터넷상에서 누군가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스토킹하는 것. 아니면 가족에게 화풀이하는 것이다. 더 심해지면 현실의 폭력, 범죄로 이어지고.

요즘 일본의 범죄소설은 이렇듯 이유 없는 악의를 다루는 작품들이 많아졌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아직 소설에 반영된 경우는 많지 않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보면 느끼게 된다. 이 세상이 얼마나 악의로 가득 차 있는지 느끼는 기분은 정말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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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미나토 가나에 저/김선영 역 | 비채

2009년 서점대상을 비롯하여 제29회 소설추리 신인상, 2008년 미스터리 베스트10 1위 등으로 2008년 일본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작품. 형사적 처벌 대상이 아닌 열세 살 중학생들이 벌인 계획적인 살인사건. “내 딸을 죽인 사람은 바로 우리 반에 있습니다”라는 충격적인 고백을 던지고 범인인 학생들에게 믿을 수 없을 만큼 가혹한 복수를 실행하는 담임 선생님. 너무나도 충격적인 내용에 출간 즉시 독자들의 열띤 찬반양론을 불러일으키고, 너무나도 강렬한 흡인력에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다는 격찬을 받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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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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