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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각류 알레르기 이승철, 간장게장에 도전하다

간장게장과 어울리는 최고의 궁합은… 간절함, 대중의 마음을 얻는 가장 큰 무기 – 가수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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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우러난 맛이 있듯, 세월이 우러난 무대라고나 할까요. 시간이 스며든 맛으로는 역시 간장게장이죠. 제게 ‘해냈다’는 기쁨을 안겨준 음식이기도 하고요. 간장게장을 대할 때마다 ‘못 하는 건 없다’던 결의가 다시 솟아요. 아무나 만들 수 없는 그 맛을 보면서, 아무나 선사할 수 없는 편안함을 대중에게 안겨 드리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간장게장에 스민 세월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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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소리와 끼는 타고난 재능이에요. 그걸 대중에게 들려주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합니다. 끼 있는 사람에겐 대중의 시선이 에너지의 근원이에요. 하다못해 골프를 쳐도 누가 쳐다봐야 더 잘 치니까요. 누군가 바라봐줄 때 자신감이 솟는 거죠. 전 ‘내 음악 세계를 대중에게 들려준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대중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음악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음악은 이렇습니다, 라고 해본 적이 없어요. 앨범 타이틀도 제가 안 정해요. 동네 아주머니나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결정해요. 타고난 재능에 감사하는 만큼, 항상 노래를 해야 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고 무대에 섭니다. 스타라는 계급장은 스스로 다는 게 아니죠. 대중이 달아준 계급장을 제가 맘대로 뗐다 붙였다 할 수는 없잖아요.

 

제가 타고난 것 중에 결코 감사할 수 없는 것도 있어요. 갑각류 알레르기 아세요? 새우와 게는 물론 조개도 못 먹게 하는 고통이에요. 초등학교 때 게를 한 번 먹었는데 눈이 돌아가고 입이 비뚤어져서 병원 구급차에 실려 갔어요. 그러면 안 먹으면 되는 거 아니냐 하실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희 가족이 워낙 먹는 걸 즐기고 맛있는 거 따지는 미식가들이에요. 어머니께서 저 어렸을 때 궁중 요리도 즐겨 해주실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집안에서 그까짓 알레르기 때문에 진미(眞味)를 즐길 줄 모른다는 게 저로서는 용납이 안 되는 거였죠. 무엇보다 남들과 달리 뭔가를 못한다는 게 너무나 싫었어요. 안 할 수는 있어도 못 할 수는 없는 게 저예요. 끝까지 해보고 어떻게든 이겨내야 직성이 풀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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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맛. 그게 오랜 세월 저의 도전과제였어요. 심지어 해물 스파게티도 못 먹었으니까요. 그러다 이십대 때,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를 작곡한 박광현 씨와 꽃게탕 집에 갔어요. 당시 방배동에 꽃게탕이 한창 유행이었거든요. 자꾸 먹어보라고 권해서 마음을 다잡고 도전해봤죠. 젓가락에 국물을 살짝 찍어서 맛을 봤는데 역시나 목구멍이 가렵고 부어오르더군요. 옆에서 다들 맛있다고 먹는데, 저도 너무나 먹고 싶더라고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다음부터는 아예 알레르기 약을 봉지 째 옆에 갖다놓고 도전하기 시작했어요.

 

간장게장은 삭힌 거라 아무래도 좀 낫겠다 했죠. 다들 그렇게나 좋아하는 음식인데, 나도 꼭 먹어보리라, 밥 귀신이라는데, 어디 귀신하고 싸워서 이겨보자 했지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소주를 맥주잔에 가득 따라서 마신 후에 게장을 찍어 먹었어요. 취한 정신이었지만 그것도 넘기기가 어렵더라고요. 국물 한 젓가락 찍어 먹고 약 한 봉 먹고, 또 한 젓가락 찍어 먹고 약 한 봉 먹었어요. 그러다 몇 번째던가 간지러운 게 좀 참을 만한 거예요. 나도 되겠구나 싶어서 마구 찍어 먹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아, 이 맛이구나’하고 느꼈던 순간, 저만의 에베레스트에 오른 것 같았어요. 내가 해냈다는 그 느낌. 지금은 간장게장을 너무나 좋아해요. 여전히 살짝 간지럽긴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갑각류 중에서도 굽고 찌고 익힌 건 이제 아주 잘 먹어요.

그런 간절함, 무엇이든 이겨내겠다는 간절함이 있었기에 오늘의 이승철이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그런 간절함을 제가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에서 봐요. 3년째 하고 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출연자들의 수준이 높아져요. 심사 첫 해에는 잘 한다 못 한다를 가리는 기능적인 심판의 눈으로 냉정하게 평가했어요. 그러다 보니 독설도 나오게 됐고요. 그때는 반쯤 장난삼아 장기자랑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참가하는 사람도 있었죠. 두 번째 시즌이 되면서 진지한 대결이 무르익더니 허각과 존박의 대결이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됐죠. 세 번째 시즌 참가자들에겐 간절함이 보여요. 간절한 사람한테는 독설이 안 나가요. 가르쳐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죠. 평가하는 심판이 아니라 손잡고 가는 조언자가 되고 싶어지더라고요.

슈퍼스타K가 사랑받는 건 각본 없는 드라마이기 때문이죠. 우리 인생의 한 토막을 그대로 보는 것 같잖아요. 제 음악도 그래요. 전 계획을 짜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앨범 녹음하기 전에 치밀하게 계획해두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녹음하면서 감각으로 가요. 색소폰 넣으면 재즈가 되고, 바이올린 넣으면 클래식 되는 거죠. 그 순간에 꽂히는 쪽으로 가는 거죠. 이번 앨범은 콘셉트가 클래식이니까 바이올린을 꼭 넣자는 강박관념은 없어요. 대중이 원하는 건 음학(音學)이 아니잖아요, 음악이지.

음악은 색소폰을 넣어서 이렇게 갈 수 있고 기타를 넣어서 저렇게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무궁무진한 조합과 만남의 가능성을 품고 있죠. 음식도 마찬가지에요. 김치찌개 종류가 몇 가지나 나올까요? 소시지 넣으면 달라지고 햄 넣으면 또 바뀌고 고기 넣으면 다시 변신하겠죠. 창조하는 손에 따라서 어떤 것도 가능할 수 있고, 완전히 다른 느낌과 맛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음악과 음식은 통하는 것 같아요.

제가 미식가까지는 모르겠지만, 식도락가 정도는 되다 보니 전국 투어 시작하면 가는 곳마다 맛집 찾아다니기에 바빠요. 이름난 맛집 찾아다니면서 먹어보고, 여러 곳의 맛을 알게 되고 비교하다 보니 저절로 깨쳐지는 식도락의 경지가 있어요.

혀가 발달하게 되면 손으로도 감각이 옮겨오나 봐요. 아내가 지금 네 살 된 둘째딸 임신했을 때 제가 삼시 세끼 음식을 다 해줬어요. 그때가 긴 투어 끝나고 석 달 간 미국에 함께 있을 때였죠. 아내가 건강하고 태어날 아이가 튼튼하기를 바라는 제 마음을 요리에 그대로 담았어요. 장어가 좋다고 해서 수시로 먹였어요. 미국에서는 민물고기를 구할 수가 없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거기로 수입되는 장어가 있어 그걸 구해서 만들어줬죠. 한번에 10마리씩 사다 10시간 정도 푹 과요. 그러면 묵처럼 되거든요. 그걸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식사 때마다 끓여서 한 그릇씩 데워서 줬어요. 소꼬리와 우족도 구해서 고아줬고요. 몸에 좋다는 건 다해줬죠. 태교에 매우 큰 도움이 됐어요. 아내가 행복해 했으니까요. 저의 간절함이 음식을 통해서 아내와 아기에게까지 전해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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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고 ‘라이브의 황제’라고 하는데, 가장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시절이 제게 황제의 왕관을 씌워준 거나 다름없어요. 90년대 초 5년간 방송 금지를 당했죠. 방송에 나갈 수도 없었고, 새 앨범이 나와도 공중파를 탈 수가 없었어요. 그때 어머니께서 딱 한마디 해주셨어요.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고요. 그래, 혼자서 어떻게든 이 시기를 뚫고 가자, 했죠. 안 하는 건 있어도 못 하는 건 없는 거니까요.

매니저 도움 없이 혼자 독립해서 회사를 만들었어요. 앨범 제작은 물론 홍보도 제가 직접 했어요. 운전기사와 함께 언론사 다니면서 제가 직접 LP판 돌렸어요. 노래가 방송을 못 타니 현장에서 직접 들려주자고 생각하고 콘서트를 닥치는 대로 했어요. 200석 규모 소극장에서부터 세종문화회관, 잠실체조경기장까지 어디서든 팬들을 만났죠. 그때 제 공연장을 찾아왔던 많은 분이 나이 들면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자리 잡으셨죠. 제 공연이 예매순위 상위권에 있는 건 그때 그분들이 계속 공연장을 찾고 이승철을 찾기 때문이에요. 가장 답답하고 어두웠던 시기가 ‘라이브의 황제’ 초석을 다지게 한 거죠.

그래서 제가 후배들에게 그래요. 자신을 믿으라고요. 작은 시도이건 큰 도전이건 결국 자신이 해내야 하는 일이니, 자기 자신을 믿어야죠. 제일 나쁜 건 자학과 자책이에요. 자신을 믿고,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의 행복감은 무대 밖으로도 전해져요.

1985년 데뷔 무렵에는 사각의 링에 올라선 파이터처럼 음악을 했다면, 지금은 갤러리에 가서 그림을 보고 있는 느낌으로 해요. 음악을 바라보고 듣고 즐기는 거죠. 예전에는 마치 청중과 접전을 치르듯 ‘뭔가 보여줘야 해, 압도해야 해’ 하면서 노래를 한 거였고, 지금은 듣는 사람도 편안하고 부르는 저도 편안하게 하니까요. 시간에 우러난 맛이 있듯, 세월이 우러난 무대라고나 할까요. 시간이 스며든 맛으로는 역시 간장게장이죠. 제게 ‘해냈다’는 기쁨을 안겨준 음식이기도 하고요. 간장게장을 대할 때마다 ‘못 하는 건 없다’던 결의가 다시 솟아요. 아무나 만들 수 없는 그 맛을 보면서, 아무나 선사할 수 없는 편안함을 대중에게 안겨 드리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간장게장과 오랜 시간 크고 작은 전투를 치르면서 제가 발견한 최고의 궁합은 레드와인입니다. 차가운 레드와인을 곁들여 먹는 간장게장의 맛, 편안한 제 음악과 함께 즐겨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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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다, 내 인생 신정선 저 | 예담

맛은 추억이고, 위로이다. 맛있는 먹을거리가 풍성해진 요즘에도 사람들은 어릴 적 먹던 거칠고 투박한 음식을 기어이 찾아다니며 먹는다. 추억을 음미하고,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서이다. 이 책은 이순재 신경숙 이승철 에드워드권 김대우 윤대녕 패티김 배병우 김수영 황주리 강수진 박찬일 이원복 하성란 이지나 배한성 서상호 이진우 진태옥 문훈숙 이왈종 장석주 조태권 이희 승효상 전무송 정끝별 안효주 김윤영 조은과 같은 이 시대 최고의 명사들과 함께 한 끼 식사를 나누며, 그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간절한 맛의 기억을 함께 음미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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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정선

1974년 3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언어학과를 어렵게 입학해 간신히 졸업했다. 2001년 8월 수습 41기로 조선일보에 입사해 날마다 책상에 머리를 찧으며 기사를 쓴다. 2011년 12월 현재 문화부에서 공연을 담당한다.

맛있다, 내 인생

<신정선> 저12,510원(10% + 5%)

추억으로 맛을 내고, 그리움으로 차려낸 생애 잊을 수 없는 맛 맛은 추억이고, 위로이다. 맛있는 먹을거리가 풍성해진 요즘에도 사람들은 어릴 적 먹던 거칠고 투박한 음식을 기어이 찾아다니며 먹는다. 추억을 음미하고,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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